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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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명의 인원이 제철 기술 등 선진 기술을 습득하고 돌아온다면 이는 우리 대한제국의 공업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사옵니다. 이들 1,000명을 잘 활용하여 기술자를 계속해서 양성한다면 국가 발전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이번 기회를 꼭 살려야 산업입국産業立國의 기틀을 다질 수가 있사옵니다. 부디 넓으신 아량으로 깊이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산업입국이 무슨 말이더냐?”

“공업 등의 산업을 일으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자는 말이옵니다.”

황제가 고개까지 끄덕이며 감탄했다.

“허허! 산업 입국이라. 참으로 좋은 말이로구나.”

“그렇사옵니다. 아바마마께서 산업 입국의 기반을 만들어 주신다면 분명 백성들은 산업 보국을 할 것이옵니다.”

황제는 거듭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산업을 일으켜 나라에 보답한다. 허허! 참으로 좋은 말이로구나.”

가토 마스오는 내심 깜짝 놀라고 있었다.

‘의친왕이 똑똑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보니 괄목상대(刮目相對,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로 학식이나 인품이 부쩍 향상되었다는 뜻)할 정도가 아닌가. 의친왕이 외국을 수년 간 둘러보더니 참으로 세상 보는 눈이 높아졌구나.’

하지만 가토 마스오는 의친왕에 대해 별다른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일본이 러시아와의 해전에서 승리한 지금 이제 대한제국은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다는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토가 능숙한 한국말로 의친왕을 칭찬했다. 

“의친왕 전하께서 외국 유학을 다녀오셔서 그런지 세상 보는 눈이 많이 높아지셨습니다.” 

가토 마스오는 고개까지 숙여가면서 칭찬하자 의친왕이 답례했다. 

“좋게 봐줘서 고맙소, 가토 고문.”

황제는 황태자 책봉 문제로 의친왕과 약간의 사이를 두고 있었으나 고토 고문이 적극적으로 의친왕을 칭찬하자 아들을 칭찬 받은 아버지의 심정이 된 황제의 용안에 미소가 걸렸다.

“그 독일 영사가 한성에 있을 때도 짐에게 아주 잘하더니 상해로 가서도 우리 제국에 큰 도움을 주려고 하는구나.”

“그렇사옵니다.”

가토 마스오가 다시 나섰다.

“의친왕께서 말씀하신대로 제철소는 산업을 융성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시설입니다. 폐하께서 용단을 내려 제철 시설을 도입하는 것이 대한제국의 앞날에 큰 도움이 될 것이옵니다.”

“그런가?”

“그렇사옵니다. 우리 대일본제국도 천황 폐하께서 제철소도입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내각에 칙명을 내리셔서 지난 1901년 현대식 제철소를 도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토 마스오는 황제가 나이가 같은 명치일왕에 대해 경쟁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은근히 부추겼다. 이렇든 은근한 부축임에 경쟁심이 생긴 황제는 용안이 붉어지면서 질투심을 바로 내비쳐졌다.

“명치천황도 제철소 도입을 강력히 원했다고?”

“그렇사옵니다. 천황 폐하의 황은에 의해 도입된 제철소는 지금 대일본제국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사옵니다.”

이렇듯 가토의 적절한 질투심 유발 언사는 황제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차준혁은 가토 마스오의 현란한 화술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정말 교활한 혀로구나. 마침 우리가 추진하려는 일을 도와주고 있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저자의 혀는 수만 명의 군대와 다를 바 없이 우리를 몰아세울 수 있었겠구나. 더구나 한국말을 저토록 능숙하게 구사하다니 황제가 전폭적으로 신임할 만도 하겠어.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차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까지 조금 저으며 가토의 화술에 놀라워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황제가 가토를 찾았다.

“가토 고문.”

“예, 폐하.”

“우리 대한제국도 제철소를 도입하면 일본과 같이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

가토 마스오가 분명한 어조도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지금 대한제국은 변변한 철강 제품 하나 없어 대부분의 철강 제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런 대한제국에 제철소가 들어온다면 곧바로 획기적인 나라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철소에서 생산된 철로 전함도 만들 수 있겠소?”

가토 마스오는 황제가 묻고 있는 말의 의도를 바로 알아챘다.

“그렇습니다. 우리 대일본제국도 지금까지는 전함을 외국에서 건조한 것을 수입해 왔었으나 지난 1901년 야하타 제철소가 만들어진 이후 기술을 축적하여 얼마 전부터 자체적으로 전함을 건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가토는 황제가 전함을 보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일본의 전함 건조에 대한 것도 슬쩍 덧붙였다.

가토의 내심을 알지 못하는 황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제철소가 있으면 자체적으로 전함을 만들 수가 있겠어.” 

“물론입니다.”

한참 고개를 끄덕이던 황제가 의친왕의 뒤에 있던 차준혁에게 관심을 보였다.

“너는 이름이 뭔가?”

“차준혁이라고 합니다.”

“어디 사람인고?”

차준혁이 미리 준비하고 있던 말로 둘러댔다.

“소인은 이곳 한성에서 났으나 장사를 하던 부모님을 따라 어려서 외국으로 나갔사옵니다.”

“그래? 그럼 외국말도 잘 하겠구나.”

“다른 말은 잘 못하고 영어는 외국인과 소통할 정도는 됩니다.”

“그러한가?”

“예, 폐하.”

차준혁의 대답을 들은 황제가 내관에게 물었다.

“수지분(須知芬, 외교 고문 더럼 스티븐슨)이 궁에 들어와 있는가?”

“아직 입궐하지 않았사옵니다.”

황제는 차준혁의 영어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스티븐슨을 찾았지만 아직 입궐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자 바로 포기했다. 황제는 연미복燕尾服 차림의 차준혁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칭찬했다.

“그런데 참으로 차 비서의 기개가 헌앙하구나.”

그러자 의친왕이 거들고 나섰다.

“기개가 헌앙한 것도 있지만 저와 많이 닮지 않았사옵니까?”

의친왕의 말에 황제가 차준혁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감탄사를 토해 냈다.

“그래! 그렇구나. 정말 의친왕과 많이 닮았어.”

“황송합니다.”

차준혁이 사죄하자 황제가 손을 저었다.

“아니다, 아니야. 사람이 닮는 것이 어찌 황송한 일이더냐.”

그러면서 다시 한참을 바라보다 황제가 크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 하! 참으로 닮았구나. 네가 앞으로 의친왕의 비서 일을 본다고 하니 의친왕을 성심으로 잘 보필하도록 해라.”

“예, 폐하.”

근엄해야 할 접견실은 두 사람의 닮은 모습에 황제가 크게 웃음을 터트리자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이러한 부드러워진 분위기를 이용해 의친왕이 황제에게 다시 한 번 더 진언했다.

“아바마마, 소자가 조금 전에 말씀 올린 제철소 건설을 반드시 칙허하여 주셨으면 하옵니다. 우리 대한제국의 백년대계가 걸린 일이옵니다.”

“방법을 한 번 생각해 보자.”

황제는 조금 전의 불가하다는 말 대신 생각해 보자는 말을 하자 의친왕과 차준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황제가 의친왕에게 질문을 했다.

“독일에서 제철소를 도입한다고 한다는데 제철 기술은 영국이 더 좋은 것 아니냐?” 

“그 문제는 소자보다 여기 있는 차 비서가 더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래? 그럼 네가 설명해 보거라.”

“예, 폐하.”

차준혁이 대답하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본래 제철 기술은 폐하께서 아시는 대로 산업혁명이 먼저 일어난 영국이 가장 앞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지멘스란 회사에서 새로운 제철 기술을 개발하면서 제철 기술이 역전되었습니다. 지금 독일의 제철 기술은 현재까지 나온 기술 중 가장 선진화된 최신 기술입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공부한 제철 기술에 대한 설명을 황제에게 자세하게 해 주었다. 황제는 설명을 들으며 감탄했다.

“호오! 차 비서가 아비를 따라 외국을 많이 다녔다고 하더니 제법 외국에 대한 견문이 높구나.”

“의친왕 전하께서 제철 기술에 대한 연구를 지시하셔서 나름대로 조금 공부를 했습니다.”

차준혁이 의친왕을 앞세우자 황제는 의친왕과 차준혁을 보며 장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황제가 드디어 묻고 싶은 말을 꺼냈다. “차 비서는 배를 만드는 조선소에 대한 것은 알고 있느냐?”

“많이는 알고 있지 않으나 배를 만드는 일은 상당히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제국이 만일 독일의 제철소를 도입한다면 조선소 건설 기술도 배울 수 있겠느냐?”

“독일이 1,000의 연수생을 받아 준다고 했으니 그들을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구나.”

차준혁의 확신에 찬 말에 황제는 크게 흡족했다.

그러면서 황제는 차준혁에게 제철소는 물론 조선소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물었고 차준혁은 이미 두 시설에 대해 충분히 공부해 둔 터라 단 한 번의 막힘도 없이 대답하면서 황제를 크게 기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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