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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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가토 고문이 폐하께서 제철소 건설과 때를 같이 하여 조선소를 건설하고 싶다 말씀하셨다는 말을 듣고 본국에 미리 의견을 질의해 본 바 있습니다.”

“뭐라고 답신이 왔소?”

“우리 대일본제국 천황 폐하께서는 대한제국 황제 폐하께서 제철소와 조선소를 건설하시겠다고 하시면 적극적으로 도우라는 칙령을 본관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만일 폐하께서 조선소 건설을 추진하신다면 외신(外臣, 한 나라의 신하가 다른 나라의 왕에게 자신을 지칭하는 일인칭)은 물론 대한제국에 있는 일본인들 모두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함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 건설에 일본이 제동을 걸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던 황제의 용안이 아주 밝아졌다.

“아~! 참으로 다행이로다. 사령관은 일본 천황께 짐의 고마움을 전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폐하.”

일본의 의중을 확실히 알게 된 황제는 큰 짐을 덜어 내린 듯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일본이 이렇게 적극 도와준다고 하니 짐은 크게 마음이 놓이는구나.”

그러자 모든 대한제국 관리들이 허리를 숙였다.

“감축 드리옵니다, 폐하.”

차준혁은 황제가 제철소와 조선소 건설에 대해 일본의 의사를 묻는 것에 속이 뒤집히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쳐 의친왕이 허리 숙이는 모습을 보고는 황급히 허리를 숙여야 했다.

“모두 고개를 들라. 짐이 이번에 국가 기간산업이 될 제철소와 조선소를 건설하는 데 내장원의 자금을 동원하기로 용단을 내렸노라.”

대한제국 관리들은 조금 전보다 더 큰 소리로 동시에 외쳤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리고 이번 사업의 관한 일체의 관리 감독을 의친왕에게 맡기겠다.”

그러자 한규설이 황급히 나섰다.

“폐하, 종친이신 의친왕께서 국가 사업을 전담하시는 것은 아니 되옵니다.”

하지만 황제는 단호했다.

“그렇지 않다. 이번에 건설하는 두 시설은 모든 건설 자금을 내장원에서 조달할 것이고 또 건설 후에는 황실에서 직접 관장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의친왕이 관리 감독을 맡는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황제가 이렇게 단칼에 상황 정리를 마치자 의친왕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

“아바마마께 성려를 끼쳐드리지 않도록 두 시설 건설에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그렇게 하라. 짐은 비록 의친왕이 황족이기는 하나 이번 제안을 직접 한 장본인이고 또 의친왕을 보좌할 비서가 제철소와 조선소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니 사업을 추진하는 데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황공하옵니다.”

황제의 결정이 내려지자 모든 것은 일사천리였다.

물론 고문정치를 시작하면서 대한제국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일본의 적극적인 부추김이 큰 역할을 하였지만 일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황제가 내장원 자금을 풀어 국가 기간산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신문을 통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대한문에 몰려와 만세를 부르며 절을 할 정도로 황제의 용단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제철소와 조선소 건설추진사업단은 4월에 일본에 의해 폐지되었던 원수부가 있던 경복궁 앞 육조거리의 구 삼군부 건물에 자리 잡았다.

이어서 내각에서 발행되는 조보朝報와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 등 한성에서 발간되는 신문을 통해 독일 산업 연수생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가자 어려운 시대 상황을 말해 주듯 추진 사업단이 있는 구 삼군부는 지원자들로 이른 아침부터 연일 북새통을 이뤘다.

두 달여의 시간이 걸려 지원자를 추리고 추린 끝에 독일 연수생이 선정되었다. 이렇게 선정된 연수생들은 인천과 가까운 강화 진위연대가 쓰던 막사에 수용되었다. 

이때 강화도에 있었던 진위연대는 일본의 대한제국군 축소계획에 따라 이미 해체되어 빈 막사만 있었고 강화에 주둔하고 있던 진위대대도 제주 진위대대와 같이 200명의 병력만 남아 있었다.

의친왕은 차준혁의 건의에 따라 이때부터 연수생들과 외부와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시켰다. 그러고는 제주에서 선발되어 투입된 20명의 교수들의 지도로 외국 생활에 대한 기초 교육은 물론 독일에서 연수받을 전공의 적성에 따라 인원을 세분하기 시작했고 이 작업은 한 달의 시간이 더 걸렸다.

이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연수생들이 교수들의 인솔로 인천항에 들어온 독일 여객선에 승선을 마친 것은 출발 하루 전인 8월 말일이었다.

차준혁이 인천항에 정박해 있는 독일 여객선을 보며 지난 몇 달간 조바심 내며 일을 추진한 것이 생각나서 감회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드디어 내일 역사적인 출발을 합니다.”

의친왕이 몇 달 사이 호형호제할 정도로 아주 가까워진 차준혁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차 비서,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

“나라의 장래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니 고생보다 보람이 더 있었습니다.”

그러자 인솔 단장인 노선호 박사가 웃으며 거들었다.

“차 비서다운 생각이네. 하지만 난 힘들었어.”

“하하! 그러셨습니까? 이거 너무 잘난 척해서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 무슨, 힘들기는 해도 나도 자네같이 보람되긴 마찬가지야.”

“그래도 군기시 출신 장인들을 설득시키는 데 큰 고생하신 것은 누가 뭐래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노선호가 그때를 생각하며 힘들었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아~ 후, 정말 의외였어. 이번 독일 연수생의 가장 핵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외국에 나가는 것을 그토록 반대할 줄은 누가 알았겠나. 다행히 황제께서 특별히 칙명을 내려 주셨으니 동행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번에 못 데리고 갈 뻔했지 않았나.”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칙명을 받자 장인들 중 누구 하나 거부하지 않고 바로 짐을 꾸리는 것을 보고 황명의 위력이 지금 사람에게 얼마나 대단하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경험이야.”

의친왕이 여객선을 바라보다 노선호를 바라봤다.

“노 박사님, 연수생이 1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워 오겠지요?”

“물론입니다. 비록 1년의 연수 기간이 짧기는 하지만 대부분 철을 다룬 경험자들이고 또 왕복하는 몇 개월 동안에도 제주 출신 교수들에게 계속해서 교육을 받을 것이니 분명히 좋은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차준혁이 옆에서 거들었다.

“지금 제주에서 신지식 교육을 받고 있는 지사 분들은 한 달이면 확연히 교육 효과가 나타난다고 들었습니다. 비록 연수생들 교육이 전문 기술 교육이라고는 해도 대부분 전문가들이라 왕복 기간까지 포함해 1년 3개월 정도의 교육이라면 충분히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수 없이 좋겠지. 그나저나 제주에서 실시되는 지사들 교육은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가?”

“지난 6월부터 매달 50명 정도씩 늘어나 제주에서 교육받는 지사들이 이제는 200명이 넘어섰다고 들었습니다.”

의친왕이 크게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구나. 이제 나라를 이끌어나갈 지도층 교육도 착착 진행되고 있고 저들도 연수를 위해 드디어 독일로 떠나가니 이제 최소한의 준비는 끝난 셈인가?”

“그렇습니다.”

의친왕이 주변을 둘러보고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작은 목소리로 장주혁 중좌에게 질문했다.

“장 중좌, 제주에서 본토 수복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는지 혹시 소식 들은 것이 있습니까?”

“이제 거의 준비를 마쳤을 것입니다. 아마 연수생들이 출국하고 나면 정확한 날짜가 나올 것입니다.”

의친왕의 목소리가 기쁨에 높아졌다.

“정말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하!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의친왕은 장 중좌가 마치 모든 결정권을 가진 사람인 듯 얼굴까지 붉히며 손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잠시 후 흥분이 진정되었는지 장주혁의 손을 놓은 의친왕이 장주혁 중좌에게 다른 질문을 했다.

“그나저나 연수생과 동행하게 되는 일본군 장교들은 어떻게 합니까? 연수를 받는 내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그자들은 상해를 출발하면서 바로 제거될 것입니다.”

“제거를 한다고요?”

의친왕이 다시 묻자 그 말에는 옆에 있는 노선호 박사가 대답했다.

“저 여객선이 상해를 출발해 독일에 도착하려면 한 달 보름 정도의 시간을 선상에서 보내야 합니다. 우리 교수진들은 그 시간 동안 각종 교육 중 민족의식 고취 교육도 선상에서 실시하려고 하는데 그때 그들이 있으면 곤란하기 때문에 제거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겠습니다.”

차준혁이 아주 냉정하게 덧붙였다.

“어차피 우리 연수생들을 감시하기 위해 동행하는 자들입니다. 제거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차준혁이 너무도 냉정하게 말을 맺자 이날의 대화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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