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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사령관 최경석은 귓가로 들려오는 회전날틀의 소음을 들으며 가져오지 못한 해리어기가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최경석이 입맛을 다시며 조종을 하고 있는 이기만 소좌에게 말을 건넸다.
“이 기장, 이럴 때 해리어기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해리어가 있었다면 이번 작전을 아주 쉽게 전개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가져오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쉬워.”
“그래도 회전날틀을 40대나 가져왔으니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작전 반경이 좁아서 문제잖아.”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국방과학연구소가 자동차 엔진으로 비행기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나만 그게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을 거야.”
“정 안되면 국방 연구소에서 비행선이라도 만들어 주지 않겠습니까.”
“비행선?”
“예, 비행선이라도 지금으로선 최선 아니겠습니까? 미국이 이제 겨우 비행기를 띄우네 마네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이번 작전을 마치면 내가 직접 비행선 제작에 뛰어들어야겠구나.”
“우리 중 경험이 제일 많으신 사령관님께서 직접 거드신다면 비행선 제작 기간이 크게 단축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겠지.”
그때 시간을 알리는 계기판 신호가 들어왔다.
“사령관님 목표 상공 도착 20분 전입니다.”
“그렇군.”
최경석이 수화기를 들었다.
“도착 20분 전이다. 모든 편대는 폭격 준비 점검하라.”
최경석의 지시가 있자 회전날틀 편대는 폭격 준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용산 폭격에는 모두 20대의 회전날틀이 투입되었다.
마라도함에 탑재되었던 40대의 회전날틀은 20대는 용산 폭격에 그리고 10대는 황궁 탈환에 투입되었으며 나머지 10대는 목포와 군산 등의 수복 작전에 투입되기 위해 제주에서 대기 중에 있었다.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요사이 심기가 아주 편치 않았다. 지난 7월 29일 도쿄에서 총리인 가쓰라 다로와 미국 대통령 특사인 육군 장관 데프트가 한반도와 필리핀에 대한 이권을 서로 나눠 먹자는 밀약을 맺었다.
밀약을 맺은 후 친일파인 미국 대통령 시어도 루즈벨트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8월 15일부터 러시아와 일본 대표단이 미국의 포츠머스에 모여 종전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양국의 종전 협상은 양국의 양보 없는 일방적 주장 때문에 조금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었다.
양국도 종전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연합함대의 실종에 있었다.
연합함대가 대양 해군에 나포된 지 몇 개월이 지나자 세상에 비밀이 없듯 연합함대에 관한 소문이 차츰 돌기 시작했다. 일본과 중국 외교가에 돌기 시작한 소문은 비록 확인이 안 된 소문이었으나 종전 협상에서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다.
비록 해전에서 참패했으나 연합함대의 소문을 들은 러시아로서는 아직 만주에 20만이 넘는 극동군이 있던 터라 종전 협상에서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특히 러시아 협상 대표인 재무장관 세르게이 비테는 곧 신설되는 총리 후보 물망 1순위였던 터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라도 종전 협상에서 절대 물러나서는 안 될 입장이었다.
이러한 양국의 입장 때문에 역사와는 달리 종전 협상이 8월 15일 첫 대면을 한 후 한 달이 넘도록 전혀 매듭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하세가와 사령관을 보고 참모 한 명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각하, 심기가 많이 불편해 보이십니다. 심기가 많이 불편하시면 오늘 의식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자신이 신임하는 참모인 마쓰모토 슌松本雋 공병 소좌工兵小佐가 상황도 모르고 나서자 짜증을 냈다.
“귀관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마쓰모토는 짜증을 내는 사령관의 물음에 순간 긴장하여 자세를 꼿꼿이 하며 대답했다.
“각하께서 너무 불편해하시기에 소관이 그만 주제넘게 말을 했습니다. 송구합니다.”
마쓰모토 참모가 고개를 숙이자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목소리를 낮추며 그를 나무랐다.
“오늘 의식에 우리 대일본제국에 아주 협조적인 조선의 대신들과 일진회 인사들도 대거 참여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나? 그런데 오늘 의식의 주제관인 본관이 불참을 하면 그런 큰 결례가 어디 있겠나? 귀관은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시정하겠습니다.”
신임하던 마쓰모토가 자세까지 바로 하고 대답하자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더 이상 질책하지 않았지만 그의 속은 영 편하지 않았다.
연합함대가 증발되고 몇 개월 지난 9월 하순에 접어들자 일본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러시아도 정정 불안과 아직 완공되지 않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인해 보급 문제가 그대로 상존해 있었으나 일본 연합함대의 부재는 일본군에게 모자란 전비보다 보급이 더 큰 문제로 대두됐다.
어쩔 수 없이 부산항을 이용한 육로 보급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으나 얼마 전부터 현해탄과 남해에서 수송선이 감쪽같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일본을 더욱 당혹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세가와 사령관은 복잡한 심사를 털어 내려고 의식이 시작되는 10시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자신의 집무실을 나와 대기하고 있던 주요 지휘관들과 함께 연병장으로 나갔다.
하세가와 사령관이 연병장으로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10여 대의 마차가 연병장으로 연이어 들어왔다. 그들은 다름 아닌 이완용과 박제순 등 대한제국 친일파 관리들과 친일 조직인 일진회장 송병준과 윤시병 이용구 등 일진회 주요 인물들이었다.
마차에서 내린 송병준은 하세가와 사령관이 먼저 내려와 기다리는 것을 보고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앞으로 황급히 다가갔다.
“각하께서 먼저 기다리고 계시는 줄 알았으면 소인이 조금 더 일찍 올걸 잘못했습니다.”
비굴할 정도로 황송한 표정을 짓는 송병준을 보고 하세가와 사령관은 답답한 가슴이 풀리는 기분이 들며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닙니다. 본관이 먼저 기다리면 어떻습니까?”
“그래도 대일본제국을 대표하시는 분이 사령관 각하신데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 결례를 범했습니다. 송구합니다.”
“하하! 별 말씀 다하십니다.”
송병준이 바닥을 길 정도로 굽실거리며 처신하자 기분이 살아난 하세가와 사령관은 특유의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박제순을 비롯한 이지용 등 100여 명의 친일파 인사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는 환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친일파 인사들은 이렇게 많이 행사에 참여한 것은 요즘 대한제국이 거의 일본의 손아귀에 넘어갔다는 판단에 일본에 잘 보이기 위해 이번 행사에 서로서로 연락하여 대거 참석한 것이다.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본래 모습을 찾고 친일파들과 환담을 나누자 일본군 지휘관들도 덩달아 친분이 있는 친일파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반갑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도착 10분 전입니다.”
“모든 편대 옆문 개방.”
최경석의 지시가 있자 20대의 회전날틀 양 문이 동시에 열렸다. 이렇게 열린 화물칸에는 양 문에 거치된 기관총 사수 두 명만이 탑승해 있었고 나머지 공간은 포탄 8발이 화물칸을 꽉 채우며 실려 있었다.
실려 있는 포탄은 다름 아닌 연합함대에서 가져온 것으로 전부 시모세 화약이 장약된 포탄이었다.
포탄은 포탄 투하를 할 수 있는 포탄창이 없는 수리온의 단점을 보완하여 안전사고를 방지하고 적재와 투하를 쉽게 하기 위해 새롭게 철로 만든 클립에 두 발이 한 조가 되게 적재되어 있었고 이동을 쉽게 하려고 본체 바닥에 간이 레일까지도 부착되어 있었다.
최경석이 옆문을 개방하라고 지시한 9시 50분이 되자 한성 일원에 미리 침투해 있던 특전 부대원들의 공격이 먼저 작되었다.
“시간이 됐다. 전화선을 절단하자.”
일주일 전부터 침투해 있던 특전 부대원들은 한성에서 한반도 각지로 연결된 주요 지점의 전화선을 모조리 절단해 버렸다. 러일전쟁이 발발하며 일본군이 그토록 애지중지하게 관리하던 전신망이 특전 부대의 공작으로 한 순간 먹통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이렇게 전화선을 절단한 특전 부대원들은 관악산으로 상황 보고를 하고는 신속히 다음 작전 장소로 이동했다.
한강이 보이자 기장이 다시 시간을 알려왔다.
“도착 5분 전.”
보고를 받은 최경석의 지시가 다시 떨어졌다.
“포탄, 투하 위치로.”
그러자 모든 수리온의 기관총 사수들은 레일을 이용해 포탄을 끌어내 문 옆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