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회: 2-30화 -->
본부 중대장의 저격을 마쳤다는 보고에 김영문은 바로 지시를 내렸다.
“1중대는 병기창 접수하라. 나머지 중대는 도주하는 적들이 사령부 영내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아라. 포로는 인정하나 반항하는 적은 민간인 여부를 막론하고 무조건 사살하라.”
김영문의 지시가 떨어지자 대기하고 있던 1중대 병력이 빠르게 병기창 방면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용산역에 일본이 한반도 철도 시설을 장악하기 위해 설치한 부대인 임시 군용 철도 감부日本國臨時軍用鐵道監部 사령관 공병 대좌工兵大佐 마키노 기요토牧野淸人는 다행히 폭격에서 살아남아 정신없이 정문을 향해 도망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온몸은 불에 그슬려 있었고 화려한 일본군 정복은 몰라보게 더렵혀져 있었다.
“헉, 헉,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지다니,”
마키노 대좌는 이전 같으면 대일본제국의 위용에 맞게 사령부 영내가 넓다고 좋아했었으나 도망을 치려고 달리다 보니 연병장과 정문이 너무 떨어져 있었다.
“헉! 헉! 이런 제기랄 정문은 도대체 왜 이렇게 먼 거야.”
그런 마키노 대좌 옆으로 몇 명의 일본군과 민간인들이 함께 도망치고 있었다.
정문일대를 막고 있던 1대대 2중대 중대장 이평진 대위는 고급 장교 복장을 한 일본군이 달려 내려오고 있자 바로 헤드셋을 열었다.
“김 소위, 저기 정문으로 달려내려 오고 있는 일본군 보이는가?”
“보입니다.”
“복장이 고급 장교 복장이다. 되도록 체포해라.”
“알겠습니다.”
마키노 대좌가 막 정문을 달려 나가자 정문에 있던 경비 초소는 물론 정문 양옆 모래 주머니에 싸여있던 기관총 사수들이 모조리 사살되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멈칫.
순간 마키노 대좌는 등골이 오싹해져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꼼짝 마!”
마키노 소좌가 순간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삼족오군 몇 명이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번쩍.
마키노 대좌는 조금 전 엄청난 폭격에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이상한 얼룩무늬 복장에 얼굴도 온통 얼룩덜룩 위장을 한 군인들이 총을 들고 있자 너무도 놀라 자신도 모르게 반항도 못 하고 자동으로 손을 들었다.
탕! 퍽!
순간 총소리가 났고 마키노의 뒤를 따라 내려온 일본군이 도망을 치려 하자 121소대장 김을석 중위는 망설이지도 않고 바로 방아쇠를 당겨 사살했다.
일본군을 사살한 김을석이 냉정하게 소리쳤다.
“도주하지 마라. 도주하면 즉결 처분한다.”
일본인들은 김을석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상황을 보고 눈치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채고는 모두 그 자리에서 손을 들었다.
“채포해.”
일본인들이 모두 손을 들자 김을석은 부하들에게 바로 지시를 했고 그렇게 마키노 대좌와 다섯 명의 일본인들이 정문에서 채포되었다.
마키노 대좌는 포로가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본군은 사령부를 건설할 때 외곽 경비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경계 철망을 아주 높게 쳐 놓았다.
이것이 폭격이 시작되자 오히려 일본인들의 족쇄가 되었다. 사람이 쉽게 넘을 수 없는 이 철망은 폭격에도 요행히 살아남아 사방으로 도주하던 몇백 명의 일본인들을 거꾸로 병영에 가두어 버렸다.
철망을 넘지 못한 일본인들은 군인들의 주도로 저항을 시도했지만 그들에게 있는 무기는 군도뿐이었다. 그 결과 정문으로 도망친 몇십 명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특전 부대에 사살되면서 일본군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방책에 오히려 자신들이 걸린 것이다.
한성에서 전투가 벌어진 곳은 이곳만이 아니었다.
1대대가 이렇게 용산을 접수하고 있을 때 2대대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먼저 2대대 1중대인 21중대는 모든 간부들이 용산으로 내려가 경비병만 남아 있던 일본 공사관과 일본 헌병 사령부가 있는 남산 기슭을 힘들이지 않고 접수했다. 그리고 2대대 나머지 병력은 용산역과 마포나루를 전격 기습하여 철도를 장악하여 상륙 부대 진입로를 확보했다.
이렇게 순식간에 용산의 일본 사령부를 비롯해 남산의 일본 공사관과 일본 헌병 사령부, 그리고 용산역과 마포나루를 장악하고 있을 때 10대의 회전날틀은 유유히 한강을 넘어 경운궁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황제는 조금 전부터 용산 쪽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폭발음에 좌불안석하고 있었다. 황제가 아침 일찍부터 입궐해 있던 의친왕과 차준혁에게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고 질문했다.
“이 소리가 무슨 폭발 소리인고?”
의친왕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아바마마, 너무 성려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의친왕이 황제를 안심시키려 하자 오히려 황제가 역정을 냈다.
“성려를 하지 마라니 그게 무슨 말이더냐? 폭발 소리가 용산 쪽에서 나는가 본데 그렇다면 일본군 사령부에 변고가 발생한 게 아니더냐?”
의친왕이 순순히 동의했다.
“그렇사옵니다. 지금 용산의 일본군 사령부가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옵니다.”
황제가 깜짝 놀라 옥좌에서 일어났다.
“뭐라? 일본군 사령부가 공격을 받고 있다고?”
“그렇사옵니다.”
“아니! 그렇다면 러시아가 쳐들어온 것이냐?”
“아니옵니다.”
“러시아가 아니라면 대체 어느 나라가 일본을 공격한다는 말이더냐?”
“잠시 기다리시면 모든 전말을 아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허! 지금 일본군이 공격을 받고 있다면서 기다리라니. 네가 짐에게 감히 희언(戱言, 실없는 말)을 하는 것이더냐?”
“황송하오나 잠시만 기다리시면 모든 전말을 아시게 되옵니다. 소자를 믿고 잠시 기다려 주시옵소서.”
황제가 자세한 설명을 해 주지 않는 의친왕에 불쾌감을 나타내려고 할 때 밖에서 회전날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타! 타! 타! 타! …….
황제가 처음 듣는 회전날틀 소리에 허둥대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고?”
이번에는 차준혁이 대답했다.
“회전날틀이라고 하는 날틀입니다.”
“회전날틀? 날틀?”
“그렇사옵니다. 하늘을 나는 날틀입니다.”
“뭐라? 하늘을 나는 날틀이라고?”
“그렇사옵니다.”
그 말에 황제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차준혁이 그런 황제를 황급히 말렸다.
“폐하, 지금 밖으로 나가시면 위험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위험하다니.”
“지금 경운궁을 수비하고 있는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하늘에서 삼족오군이 내려올 것입니다. 잠시만 안전한 실내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냐? 어떻게 하늘에서 군대가 내려온다는 말이더냐?”
“지금 소리 나는 회전날틀에 타고 있는 것이 폐하를 일본군의 손에서 구하기 위해 온 삼족오군입니다.”
자세한 정황을 알지 못하는 황제는 차준혁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궁금증이 커졌다.
“안 되겠다. 아무리 위험하다고 하더라도 짐이 밖으로 나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황제가 다시 밖으로 나가려 하자 의친왕과 차준혁도 더 이상은 말릴 수가 없었다.
의친왕이 주변을 보고 바로 지시를 내렸다.
“시종무관侍從武官들은 폐하를 호위하라.”
그러자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시종무관장인 민영환이 나섰다.
“시종무관들은 폐하를 호위하라.”
민영환의 지시가 있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무관 네 명이 서둘러 접견실 안으로 들어왔다.
차준혁은 기왕 황제가 밖의 상황을 볼 것이라면 2층이 좋을 것 같았다.
“폐하, 기왕 보시겠다면 전망이 좋은 2층에서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게 하라.”
황제가 두말없이 승낙하자 모두는 2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황제가 석조전 2층 테라스로 나갔다.
황제의 눈에 날아오고 있는 회전날틀이 들어왔다.
“아! 저것이 회전날틀이라는 날틀인가?”
“그렇습니다.”
타! 타! 타! 타! …….
“그거 참, 마치 잠자리같이 생겼구나.”
차준혁은 자신이 어렸을 때 회전날틀을 보고 잠자리비행기라고 부르던 것이 생각나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황제가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그런데 저 날틀은 무엇으로 만들었기에 하늘을 날 수 있는가?”
“철로 만든 기계입니다.”
황제가 깜짝 놀랐다.
“철로 만들었다고?”
“그렇사옵니다.”
“어떻게 철이 날 수 있단 말인가?”
“저 위에 있는 바람개비의 상승력을 이용해 회전날틀이 뜨고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허~ 그거 참 대단한 기물이구나.”
황제가 회전날틀에 정신이 팔려 감탄을 하다 갑자기 차준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차 비서는 어떻게 저 날틀에 대해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것인가? 저 날틀에 타고 있다는 삼족오군과 관계가 있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황제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삼족오군이란 것을 보니 군대인가 본데 대체 어느 나라 군대이더냐?”
“자세한 것은 모든 작전이 종료되고 난 후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삼족오군은 절대 적이 아니란 것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흐음~~!”
황제가 너무도 이상한 생각에 계속 물으려고 하다 회전날틀이 경운궁에 아주 가까이 날아오자 곧이어 벌어질 상황이 더 궁금해 의문 가득한 용안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경운궁 장악 임무를 맡고 있는 특전 3대대 대대장인 윤석기 상좌는 회전날틀에 탑승하고 있었다.
인천을 지나 한강이 보이자 윤석기는 헤드셋을 열었다.
“나는 대대장이다. 2중대장 들리나?”
그러자 지상에서 경운궁을 포위하고 있던 32중대장 류원형 대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충성, 류원형입니다.”
“공격 준비는 끝마쳤는가?”
“예, 전 중대원 대기 상태입니다.”
“알았다. 잠시 후 경운궁 상공에서 하강을 위한 공중 정지를 함과 동시에 작전을 개시한다. 헤드셋을 계속 열어 놓도록.”
“알겠습니다.”
“3중대장 들리나?”
“예, 3중대장 김일엽입니다.”
“3중대는 최루탄으로 각국 공사관을 점검하기로 되어 있으니 적의 저항에 인명 피해가 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서 대처하기 바란다.”
“알겠습니다.”
“외교적 마찰이 예상되니 한계 상황이 아니면 절대 총기 사용을 금하도록 하라. 특히 독일 공사관을 맡은 331소대장은 최대한 예의를 갖춰 독일 공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당분간 본국에 상황을 알리지 말아 달라는 양해를 정중히 구하라. 만일 독일 공사가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억류 등 압박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중대 나와라.”
“예, 1중대장 박인환입니다.”
“이미 지시는 받았겠지만 다시 한 번 지시하겠다. 경무청에 있는 일본 헌병 놈들은 가장 잔혹하게 우리 국민들을 압제하던 놈들이니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모조리 사살하도록 하라. 그리고 만일 그들과 동조해 우리에게 반항하는 대한제국 경찰들이 있다면 그놈들도 가차 없이 사살하도록 알겠나?”
“알겠습니다.”
“절대 인정을 베풀지 말고 철저하게 처리하라.”
“명심하겠습니다.”
“대한제국군 시위 연대의 움직임은 어떤가?”
“의친왕과 최 비서의 설득이 주효했는지 병영 정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는 일체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혹 친일 장교들이 이근형 연대장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반란을 일으킬지 모르니 철저히 감시하고, 밖으로 나오는 병력이 있으면 이들은 분명 친일파일 것이니 이들도 무조건 사살하라.”
“대대장님, 같은 동포인데 그건 너무 심하지 않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 지난번 한성에 들어왔던 장주현 상좌의 대한제국 무관 동향 보고서에 시위 연대에 친일 장교들이 많다는 것을 읽지 않았나? 시위 연대장인 이근형 부령의 명령을 어기고 병영을 이탈하는 자들은 친일파로 봐도 무방하다. 만일 그런 자들이 도심지에서 한성 주민들을 인질로 삼아 소요를 일으킨다면 민간인 피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날 우려가 있으니 무조건 명령에 따르도록 하라.”
윤석기의 강력한 명령이 있자 박인환 대위도 감상적은 생각을 버리며 바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윤석기가 각 중대별로 빠르게 작전 지시를 마치자 편대장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통해 들려왔다.
“목표 상공 도착.”
“줄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