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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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다 너희들 자업자득이니 억울해할 것 없다. 네놈들은 이 사령부를 만들기 위해 100만 기가 훨씬 넘는 묘지를 주인 허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파헤쳐 버리지 않았더냐. 저렇게 많은 일본인들이 이곳 용산에서 죽은 것은 앞으로 음택(陰宅, 묘지)도 없이 떠 돌아다녀야 할 100만이 넘는 원혼寃魂들의 원성怨聲을 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민영환에게 놀라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사령부 본관 건물에 일장기가 내려지고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는 것이었다.

민영환은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태극기가 게양된 장면을 민영환만이 본 것이 아니었다.

민영환의 옆에 탑승해 있던 양승환 참장이 앞에 탑승해 있는 황제에게 거의 울부짖듯 소리치며 보고했다.

“폐하! 사령부 본관을 보시옵소서. 우리의, 우리의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사옵니다!”

황제도 자신이 직접 지시해 제작된 태극기가 사령부 본관에 게양된 것을 보고는 가슴이 벅차올랐는지 심하게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오오! 과연 태극기로다. 일본군 사령부에 일장기가 내려지고 우리 태극기가 걸려 있구나.”

양승환은 울고 있는지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아~! 아~!”

민영환도 황제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자 울컥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일제 침략 야욕의 온상인 이곳에 우리의 태극기가 게양되다니. 아! 이들은 정녕 우리를 도와주러 온 한겨레가 맞구나. 비록 다른 세상에서 왔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정녕 우리와 같은 한겨레였어.’ 

이렇게 벅차오른 가슴은 처음 회전날틀을 탄 두려움을 대부분 털어 내었고 민영환은 게양돼 있는 태극기를 보면서 삼족오군에 대한 믿음이 아주 크게 생겨났다.

어떠한 강한 믿음이 생기면 두려움도 많이 사라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민영환은 믿음이 생기자 처음 탄 회전날틀의 불안감을 대부분 씻어 버리고 한층 편해진 마음으로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었다. 

회전날틀은 황제 일행을 위해 용산을 한 바퀴 더 돌고는 기수를 인천으로 돌리며 첨차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타! 타! 타! 타! …….

고도를 높여도 황제 일행의 안색은 처음과 달리 크게 평안한 모습들이었다. 이윽고 목표 고도에 도착한 회전날틀은 곧 속도를 높였다.

황제 일행이 마라도함에 도착한 것은 오후1시가 다 되어서였다. 

인천을 지나 황해를 한참 날아온 황제 일행은 바다에 떠 있는 대양 함대를 볼 수 있었다.

넓은 바다에 떠 있는 대양 함대는 전함의 규모가 황제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더구나 모든 전함에 태극기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곤 또다시 울컥한 심정에 황제는 다시 또 눈물을 흘렸다. 

마라도함의 엄청난 크기는 황제를 압도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황제를 태운 회전날틀은 마라도함에 바로 착륙하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인천 상륙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수십 대의 회전날틀들이 연속으로 이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 타! 타! 타! …….

20대 회전날틀 이륙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더구나 하늘에서 날아가는 수십 대의 회전날틀을 처음으로 내려다본 황제는 너무도 멋있게 날아가는 장면에 감탄사도 못하고 넋을 잃을 정도였다.

잠시 후 모든 회전날틀이 갑판을 떠나자 황제가 탑승한 회전날틀이 드디어 착륙을 했다. 

회전날틀에서 내린 황제는 마라도함의 엄청나게 넓은 갑판을 직접 밟게 되자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박충식과 삼족오군 지휘부는 갑판에서 황제를 기다렸다. 황제 일행이 다가오자 지휘부도 황제를 맞이하러 앞으로 나갔고 이윽고 양측은 마라도함 갑판 중앙에서 마주섰다.

차준혁이 모두를 인사시켰다.

“폐하, 이분이 우리 삼족오군 총사령관이신 박충식 대장님이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삼족오군 총사령관 박충식입니다.”

“반갑소이다. 짐은 대한제국 황제인 이희(李熙, 고종의 휘는 희, 철, 형 등이 쓰였으나 여기서는 희로 썼다.)라고 하오.”

의친왕과 민영환은 물론 박충식을 비롯한 삼족오군 지휘부도 황제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대한제국 황제가 자신의 이름을 남에게 말한 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고 또 이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박충식을 대한제국 신민이 아니고 다른 나라 외신外臣도 아닌 한 국가의 지도자로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단 한 번도 남과 악수하지 않은 황제가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까지 청하자 의친왕은 물론 민영환과 양승환의 얼굴이 경악에 물들었다.

박충식도 황제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고 황제의 손을 정중하게 마주 잡았다.

이어서 차준혁의 소개로 황제는 미르 부대 김종석 장군 등 삼족오군 지휘부와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황제는 다른 사람과도 악수를 나누었지만 자신의 이름은 두 번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황제가 인사를 끝내자 박충식 등이 민영환 등과도 인사를 나누었고 그렇게 인사를 마친 박충식이 지시했다.

“폐하께서 우리 대양 함대를 방문하셨다. 기함에 폐하의 깃발을 게양하라.”

그러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기수들이 줄에 미리 걸어 놓은 깃발을 절도 있게 게양하기 시작했다. 

“아~!”

황제는 처음 받아 보는 함대 게양 의식에 감탄했다.

기수들에 의해 올라가는 깃발에는 대한제국 황실 문양인 주황색 이화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자신의 깃발이 게양되는 것을 눈부시듯 눈까지 찌푸리며 바라보던 황제는 게양이 끝나자 고개를 돌려 박충식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짐에게 이런 의식을 거행해 주어서 참으로 고맙소이다.”

“아닙니다. 대한제국 황제이신 폐하께서 본 함에 승선하셨으니 당연히 해 드려야 할 의식입니다.”

“고맙소. 정말 뜻 깊은 의식이었소. 짐이 오늘의 이 일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이렇게 인사를 주고받고 있을 때 확성기로 송의식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사령관님, 곧 있으면 공군의 인천 공격이 시작됩니다.”

차준혁이 다시 나섰다.

“폐하, 안으로 드시면 전황을 살펴 볼 수 있는 상황실이 있습니다.”

최고 지휘관인 박충식도 나서서 황제에게 권했다.

“그렇습니다. 안으로 드십시오.”

“고맙소이다.”

황제가 상황실로 들어서자 총참모장 송의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충성. 어서 오십시오.”

“반갑소이다.”

송의식과 다시 인사를 나눈 황제는 미리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가장 가운데 황제와 박충식이 나란히 앉고 황제 옆으로는 의친왕이 앉았으며 그들의 뒤로 민영환과 김종석 등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차준혁도 당연히 뒷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으려 하자 삼족오군 중에서 가장 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차준혁을 황제가 불렀다,

“차 비서는 짐의 옆에 자리를 잡도록 하라.”

하지만 차준혁은 움직이지 않고 박충식을 바라봤다. 박충식은 그런 차준혁에게 지시했다.

“차 비서는 폐하의 옆에서 모시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이렇게 황제보다 박충식의 지시를 듣는 차준혁의 행동에 의친왕은 물론 민영환과 양성환 등 대한제국 인사 중 그 누구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전장에선 황제보다 지휘관의 명령이 우선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거기에 황제가 이미 박충식을 자신과 동등하게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자리 배치를 다시 해 황제와 의친왕 사이에 앉게 된 차준혁은 황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차준혁은 곳곳의 화면에서 방영되고 있는 장면들을 상황판까지 활용하며 황제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설명이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되어서 황제뿐 아니라 상황실의 다른 사람들도 전황을 바로 이해할 정도였다.

“지금 보시는 화면은 송골매가 하늘에서 촬영한 장면으로 인천 월미도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부대 전경입니다. 월미도에는 1개 대대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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