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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월남 이상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섰다.
“이보시게 도산.”
“예, 선생님.”
“우리가 배운 원칙대로 하세요. 더 이상 저렇게 뼛속까지 친일파가 된 자와 더 이상 입씨름 해봐야 뭐하겠는가.”
“알겠습니다.”
안창호가 고개를 돌리자 반민특위에 배속된 대한제국군 장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사람을 포박해 여의도로 압송 하세요.”
압송하라는 말에 신재영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아니! 내가 왜 여의도로 가야 한단 말이오?”
이상재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크게 꾸짖었다.
“네 이놈. 나라의 배려로 일본유학까지 다녀와 육군부령이란 고위 장교로 있는 놈이 국가를 위한다는 미명으로 친일파 노릇을 하는 것이 정녕 죄가 아니란 말이냐. 거기다 판사로 있으면서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 거병을 한 의로운 의병들에게 가혹한 형량을 남발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 줄 모른단 말이냐!”
이상재의 호통에도 신재영은 뭐라고 또 변명을 하려고 하자 뒤에 있던 병사 한 명이 개머리판으로 그의 등짝을 내리쳤다.
퍽!
“으윽!”
신재영을 내리친 장병은 하사관이었다. 그는 안창호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폭력을 쓰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이렇게 후안무치한 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명령을 어겨 죄송합니다. 위원님,”
안창호는 명령을 어긴 하사관을 다독였다.
“아닙니다. 귀관이 아니라도 내가라도 저런 후안무치한자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징계를 받을 것을 걱정했던 하사관이 안창호의 말을 듣고는 안도하며 다시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하고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이 놈을 끌고 가라.”
정신을 잃은 신재영은 병사들에게 질질 끌려갔다.
그 모습을 보고 이상재가 고개를 흔들었다.
“어떻게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저런 자들이 설쳐 되도록 나라가 이토록 썩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번 기회에 모조리 발본색원될 것이니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후!~ 정말 치욕스러운 일이야.”
“철저하게 색출하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어.”
이상재와 안창호는 서로를 바라보며 결의를 다졌다. 이러한 일이 하루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지만 조사위원들은 누구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몇 개월 동안 특전부대원들이 은밀히 본토에 잠입해 철저하게 조사를 벌여서 친일파의 명단은 거의 완벽하게 만들어졌기에 반민특위의 활동은 거의 전광석화같이 진행되었다. 이렇게 되자 정부고위관료들이 거의 싹쓸이 되다시피 체포되었다.
지난 사흘 동안 인천과 한성일대에 있는 일본인들과 친일파들은 모조리 색출되어 여의도에 만들어지는 포로수용소로 속속 이송되었다.
물론 일부 인물들은 체포를 피해 도주를 할 수 있었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주변사람들에 의해 거의 대부분 체포되었다.
이렇게 한성에서 대대적인 색출이 진행되고 있을 때 그동안 마라도에 머물고 있던 황제가 귀경했다.
타! 타! 타! 타! 타!····
황제를 태운 회전날틀이 대한문 앞에 무사히 착륙했다. 그동안 마라도 함에 머물던 황제가 박충식 사령관과 함께 한성으로 귀환한 것은 한성이 수복된 지 사흘 후인 9월 26일이었다.
황제가 귀환하는 대한문 앞에는 삼족오군과 시위연대 병력이 도열해 있었고 황태자를 비롯한 대신들과 궁내부 직원들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이 행렬에 황실종친 상당수와 그동안 나라를 좌지우지했던 고위관리들 대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문광장주변에는 수십만의 한성주민들이 황제의 귀환을 보기 위해 몰려나와 있었다.
주민들은 하늘을 날아오는 신기한 회전날틀을 보기위해 목이 길게 늘여서 전부 하늘만 바라봤다. 그렇게 하늘을 날아온 회전날틀이 대한문 앞에 착륙하자 주민들의 고개도 따라서 착륙했다.
황제가 탄 회전날틀에는 황제를 비롯해 박충식 사령관과 의친왕 그리고 상선과 차준혁이 동승해 있었고 다른 회전날틀에 민영환과 양성환 그리고 김종석 등이 각각 분승해 있었다.
회전날틀의 착륙으로 잠시 바람이 휘몰아쳤고 바람이 잦아지자 황제가 상선의 부축을 받으며 날틀에서 내렸다.
이윽고 황제가 내리자 대기하고 있던 강명철 장군이 참모들과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갔다.
황제 앞에 도착한 강명철이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어서 오십시오. 폐하.”
황제가 강명철의 군례를 받고는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하기위해 손을 내밀었다. 황제의 이런 이례적인 모습도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악수를 하면서 황제가 강명철을 치하했다.
“그동안 전투를 치르느라 고생이 많았소. 장군.”
“저보다 모든 장병들이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짐은 경을 비롯한 장병들의 노고를 절대 잊지 않으리다.”
“감사합니다.”
황제와 인사를 마친 강명철이 이번에는 박충식에게 경례를 했다.
“충성. 어서 오십시오. 사령관님.”
“강 장군. 수고 많이 했네.”
“고맙습니다.”
거창한 공치사보다 박충식은 마음이 담긴 간단한 치사와 함께 그의 손을 굳게 잡았다. 강명철도 그런 박충식의 마음을 느끼며 감사의 목례를 했다.
인사를 마친 강명철이 미리 만들어 놓은 연단으로 황제일행을 인도했다.
황제가 연단위로 올라서자 제병지휘관을 맡은 강명철이 병력을 지휘했다.
“부대 차렷.”
“황제폐하께 대하여 받들어 총.”
“충!!!! 성!!!!”
만 명이 넘는 장병들이 절도 있는 동작과 함께 우렁찬 목소리로 황제에게 경례구호를 올렸다.
황제는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했던 대규모 병력의 군례를 받자 가슴이 먹먹해지며 울컥해졌다. 비록 황제를 위한 장악원의 주악은 없었지만 황제는 오늘의 이 자리가 그 어느 때보다 감동적이었다.
“충성.”
황제가 울먹이는 작은 목소리로 답례를 하자 강명철이 다시 부대를 지휘했다.
“세워~ 총.”
착! 착! 착!
제식동작에 맞춰 전 병력이 기계와 같이 절도 있게 소총을 다루자 그 모습을 구경하던 한성주민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며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강명철이 모두를 대표하여 황제에게 신고했다.
“신고합니다. 대한제국 삼족오군의 해병대, 특전부대 그리고 시위연대는 광무(光武)9년 9월 26일자로 한성수복 임무를 무사히 마쳤기에 이에 신고합니다.”
“황제폐하께 대하여 받들어 총.”
“충!!!! 성!!!!”
임무를 마쳤다고 인사하는 장병들의 두 번째 경례구호는 처음의 경례보다 훨씬 우렁찼다.
“부대 열중~ 쉬어.”
강명철이 부대를 쉬게 하자 황제가 연단 앞에 준비되어있던 마이크 앞으로 나갔다. 황제는 입을 열기 전에 감회어린 용안으로 도열해 있는 장병들을 천천히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장하도다. 대한제국의 국군이여. 정말 장하도다. 그대들이 있어 이렇게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었도다. 부디 이번 북진도 무사히 잘 끝내서 이 땅에서 일본군을 완전히 몰아내기를 짐은 충심으로 바라노라.”
황제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은 시위연대 장병들은 물론 한성주민들은 꿈인가 생신가 하는 표정들이었다. 시위연대 장병이야 군기가 바짝 들어있어 움직임조차 없었지만 일부주민들은 처음으로 듣는 황제의 목소리에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기까지 했다.
“부대 차렷,”
“충성 훈시 끝.”
황제의 간략한 치사가 끝나자 시종무관장인 육군부장 민영환이 앞으로 나섰다.
“김종석 장군은 연단으로 올라오시오.”
민영환의 말에 김종석 장군이 연단을 올라가 황제 앞에 서자 단상 밑에서 내관 한 명이 검 한 자루를 두 손으로 공손히 들고 올라왔다.
황제가 손수 검을 높이 들자 김종석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황제가 들고 있던 검을 김종석에게 하사하며 당부했다.
“잘 부탁하오.”
“반드시 승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대한제국최초로 황제가 전쟁에 나가는 장수에게 검(劍)을 하사한 것이다. 황제가 하사한 검에는 이순신 장군이 명언인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반드시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다.’란 뜻의 ‘必生卽死 必死卽生’의 글귀가 검 집에 새겨져 있었다.
황제에게 검을 하사받은 김종석 장군은 곧바로 연단을 내려와 도열해 있는 장병들 앞에 대기하고 있던 군용 지프에 올라탔다.
그러자 제병지휘관 강명철이 다시 지휘했다.
“부대 어깨 총”
“앞으로 가!”
척! 척! 척! 척!
황제에게 한성수복을 보고한 군은 그 자리에서 다시 북진을 위해 총사령관에 임명된 김종석 장군을 필두로 보무도 당당하게 행진은 시작한 것이다.
장병들의 늠름한 모습을 보자 주민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