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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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반드시 이겨서 돌아오라!”

“대한제국 만세.”

“대한제국군 만세.”

“와!~~~”

한성주민들에게 지난 23일 특전부대가 한성을 공략할 때 하늘을 휘저으며 날아다니던 회전날틀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그저 두렵기만 한 기물이었다.

처음 회전날틀을 봤던 주민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은 사람도 많았고 두려움에 울부짖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정도로 무서운 존재였다. 그런 주민들에게 용산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들이 회전날틀의 폭격에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모조리 몰살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반가움보다 두려움이 아직은 더 먼저였었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도 잠깐이었다. 

시위연대의 도움을 받은 특전부대가 한성 안에 있던 일본군들을 모조리 색출하고 반항하는 자들은 용서 없이 사살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본 주민들은 꿈이 현실이 된 것에 차츰 환호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친일파를 비롯해 친러파 등 외세를 등에 업고 권세를 누리거나 누리려던 자들과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던 탐관오리들은 물론 친일군인들까지 모조리 잡아들이자 한성은 며칠 동안 완전히 축제 판으로 변해버렸다.

이때부터 망해가는 대한제국을 돕기 위해 하늘에서 엄청난 무력을 가진 신군(神軍)이 내려왔다는 소문이 주민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했고 이후부터 삼족오군은 신군이란 이름을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소문은 흑표전차를 비롯해 K-9자주포와 K-10탄약운반차, 수륙양용장갑차와 군용트럭 등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신무기들이 마포나루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자 소문은 점점 사실로 굳어져갔다.

더구나 황제가 승전 보고를 받고 다시 또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 북진출정 하는 모습은 일본의 수탈에 늘 기가 죽어있던 한성주민들에게는 감동을 넘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주민들은 출정하는 장병들에게 목이 터져라 환호를 보냈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만세를 불렀다. 

주민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한성을 나온 병력은 서대문정거장에서 둘로 나뉘어졌다. 해병대와 특전부대 1개 대대가 먼저 경인선기차를 타고 인천으로 출발했다.

해병대가 출발하자 뒤이어 미르부대와 시위연대는 김종석 장군의 지휘로 흑표전차를 비롯한 기계화 부대를 선두로 경의선을 따라 북상을 시작했다.

용산역에 산처럼 쌓여있던 일본군보급물자는 일본군들을 몰아내려는 미르부대의 보급을 위해 요긴하게 쓰이며 경의선기차를 이용해 미르부대 뒤를 따라 북상을 시작했다.

한성탈환 불과 삼일 만에 신속히 병력을 수습한 대한제국군이 이렇게 다시 북진을 시작한 것이다. 

한강이북에 주둔 중인 일본군들이 한성수복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이렇듯 신속하게 북진을 했지만 한성을 탈출한 대표적 친일장교로 육군무관학교교관 겸 학도대장인 보병참령 권태한(權泰翰)의 밀고로 일본군에게 먼저 노출되었다.

지난 23일 권태한은 육군무관학교접수 때 재빨리 몸을 피해 지인의 집에 숨어있다 역시 지인의 도움으로 한성을 어렵사리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한성을 빠져나온 권태한은 이미 특전부대에 의해 장악된 임진강을 건너지 못하고 다른 친일장교들이 사살되는 것을 보고는 멀리 철원을 돌아야만 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한성을 탈출했던 권태한은 이후 거의 유리걸식을 한끝에 사흘 만에야 평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양주재 일본병참사령부사령관 공병대좌 도키오 젠사부로(時尾善三郞)는 거지꼴이 되어 평양에 도착한 권태한의 밀고에 기가 차다는 반응을 했다.

“뭐라고! 한성이 적도(賊徒)들에 의해 점령을 당했다고!”

“그렇습니다. 사흘 전 무장한 적도들이 난입해 한성을 점령해 버렸습니다.”

도키오 대좌는 거만한 자세로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용산 주차군사령부에는 대일본제국육군 정규연대병력이 주둔하고 있는데 적도들이 한성을 점령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설사 적도들이 한성을 일시지간 점령했을지는 몰라도 귀관이 이곳에 오는 사이 용산에 주둔해 있는 연대병력이면 충분히 한성을 다시 탈환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도성에서 급히 몸을 빼나오느라 그것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지금 낙관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확실한 소문은 아니지만 용산도 적도들이 점령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도키오 대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되물었다.

“무엇이라고? 용산이 점령되었다니 그럼 용산사령부까지 적도들에게 넘어갔다는 말인가?”

“·····”

“귀관은 이 조선반도에 우리 대일본제국육군의 정규연대병력을 이길 수 있는 적도들이 있다고 보는가?”

도키오의 거듭되는 질책에 권태한은 몸을 사렸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문에 흔들리는 이유는 뭔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권태한은 도키오 대좌가 너무도 거만한 자세로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하늘을 날아다닌 회전날틀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만일 곳이 곳대로 말을 했다가 도키오 대좌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다며 자신을 몰아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권태한의 이렇게 꼬리를 말고 있을 때 도키오 대좌가 부관을 불렀다.

“그렇지 않아도 용산사령부에 보고할 사안이 있었는데 확인해 보면 알겠지. 부관!!”

도키오 대좌가 부관을 부르자 권태한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적도들이 한성을 일시 점령했다고 하더라도 전신선이 온전히 보존 되어있지는 않을 것이니 확인을 하실 때 되도록 무선으로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도키오 대좌가 아차 하는 표정이었지만 거만하기 짝이 없는 그는 권태한의 건의를 못들은 척했다. 

“부관!”

두 번의 호출에 부관이 안으로 황급히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이번 달 보급물자 수급은 끝 마쳤나?”

“그렇지 않아도 어제 용산에서 올라와야할 보급수송기차가 아직 당도하지 않고 있어서 마침 각하께 보고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용산역에 확인은 해 봤는가?”

“계속 통신을 시도했지만 유·무선 모두 연락두절입니다.”

도키오 대좌의 안색이 처음으로 심각해졌다.

“귀관은 지금 즉시 용산 주차군사령부로 전문을 보내 상황을 알아보고 다음 달 보급물자 수급계획에 대한 일정도 문의하도록 하라.”

“무선전문으로 말입니까?”

“우선 전신으로 교신을 시도해보고 여의치 않을 경우 무선전문을 보내도록 조치하라.”

“알겠습니다.”

권태한은 도키오 대좌가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주지 않는 것이 느껴지자 고생하며 올라온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러워져 일순 허탈해졌다.

‘내가 뭐 하러 죽을 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와서 이런 괄시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권태한은 일본육사를 졸업한 이래 친일을 하는 것에 대해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10년을 살아왔다. 그런 그였기에 회의가 찾아왔지만 일순간생각으로 치부하며 권태한은 다시 용기를 냈다.

“사령관각하. 용암포에 있는 사단사령부로 보고를 드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 그 문제는 우리 대일본제국군 내부문제이니 귀관이 간섭할 일이 아니네.”

자신의 제안을 단칼에 묵살하자 권태한은 이번에는 정말 맥이 풀렸다. 그런 권태한을 보고 조금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도키오 대좌의 목소리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귀관이 여기까지 달려와 본관에게 보고를 한 점은 높이 살 일이네. 이곳으로 오는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테니 일단 나가서 뭐 좀 들고서 몸을 추스르게.”

도키오는 그러면서 다른 장교를 불러서 권태한을 보살피라 지시했다. 일본장교를 따라 사령관의 방을 나선 권태한은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비참하고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울컥한 심정에 고개를 들자 파란 가을 하늘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제기랄 날씨한 번 더럽게 좋군.’

권태한이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신세한탄을 하던 때가 9월27일 오후였다.

이날 저녁 용암포에 있던 일본군12사단사령부는 발칵 뒤집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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