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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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 많은 러시아전함들이 그동안 어디에 숨어있었기에 그동안 우리가 전혀 몰랐단 말인가?”

참모장 이시이 대좌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게 이상합니다. 러시아태평양함대와 발트함대가 모두 우리에게 무너지고 북해함대는 영국의 견제로 북해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러시아가 어디서 저렇게 많은 함정을 동원할 수 있는지 소장도 의문이 듭니다.”

“혹 타국함대는 아니겠지?”

“그렇지 않아도 교신을 시도했지만 저 함대에서 전혀 답변이 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탐선을 띄워 저 함대가 정말 러시아함대인지부터 먼저 확인해보라.”

“알겠습니다.”

참모장 이시이 대좌가 망루를 내려가 포구로 뛰어 갔다. 잠시 후 포구에서 작은 배 한 척이 시꺼먼 연기를 내 뿜으며 바다로 나갔다. 

일본군의 이러한 움직임은 송골매에 의해 빠짐없이 포착되어 마라도로 전송되었다.

1함대참모장 홍종관 상좌가 화면을 살폈다.

“제독님, 배를 띄워 우리 정체를 파악하려는 것을 보니 그래도 일본군12사단장이 무능한 자는 아닌 가 봅니다.” 

“일본군장교들이 내가 최고이고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선민의식(選民意識)이 너무 강해서 그렇지 지금일본의 최고 엘리트계층은 당연히 군대라고 봐야해. 더구나 사단장정도 되려면 당연히 저 정도는 움직여야겠지.”

“정탐선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적의 정탐선이 가까이 다가오더라도 2함대 함정들은 포격거리까지 무시하고 그대로 항진한다.”

“알겠습니다.”

김성태 제독의 지시가 있자 김충선 함을 비롯해 여여문 함과 김성인 함 등 5척의 2함대 전함들이 함포유효사거리인 8km를 지나 해안에서 7km가 되는 거리까지 다가갔다.

이노우에 사단장이 망원경으로 다가오는 2함대를 바라보다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니? 저 전함들 마스트에 이상한 깃발이 걸려 있잖아? 참모장 저게 어느 나라 국기인가?”

1·2함대는 마스트에는 당연히 태극기가 걸려있었다. 이노우에의 물음에 자세히 관측하던 이시이 대좌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 각하! 저것은 바로 조선의 국기입니다.”

“뭐라고? 조선의 국기라고?”

“그렇습니다. 저것은 분명 조선국기입니다.”

이노우에가 망원경으로 마스트를 유심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조선의 국기야. 그런데 러시아국기가 아니라 조선의 국기가 어떻게 저 전함에 걸려 있는 것이지?”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혹시 러시아 놈들이 우리를 교란시키려고 하는 건 아닌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러시아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흠~ 그렇기는 하지만 이상한 일이로군. 그렇다고 대한제국에 전함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정말 이상하네. 뭐 때문에 러시아가 저런 짓을 벌이는 것이지?”

이노우에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한제국함대란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이시이 대좌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각하. 저거 보이는 저 함정 생긴 것이 꼭 우리 연합함대소속의 아사히(朝日) 전함과 같지 않습니까?”

“그래?”

참모장의 지적에 이노우에 소장은 망원경의 초점을 김충선 함에 맞췄다. 그러자 김충선 함의 전경이 그대로 들어왔고 이노우에 사단장은 자세하게 살펴봤다.

“그러고 보니 정말 아사히 전함 같아 보이네?”

이노우에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무렵 이시이 대좌는 어리석게도 여기에 초를 쳤다.

“아마도 영국의 같은 조선소에서 만든 함정 같아 보입니다.”

“아! 아사히 전함이 영국에서 건조된 것이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아니라 조선이 영국전함을 수입했다는 말인가?”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조선의 함대구입을 철저히 막고 있지 않습니까? 더구나 영국은 우리의 동맹국입니다.”

“그러게. 정말 이상한 일이군.”

두 사람이 이렇게 말을 주고받는 사이 2함대 소속전함들은 포격사거리까지 도착한 후 함정들의 정렬을 마쳤다. 그러고는 함포포신을 해안방향으로 서서히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망원경으로 관측하던 이시이 대좌가 소리쳤다.

“앗. 각하. 함대함포가 우리 쪽으로 조준을 하고 있습니다.”

이노우에 중장도 그것을 확인하고는 급하게 지시했다.

“적의 포격이다. 함포공격에 대비하는 비상종을 타종하고 우리 해안포는 대응 포격하도록 하라.”

땡땡! 땡땡! 땡땡! 땡땡!·······

일본군진지에서 적이 공격을 한다는 신호의 비상종이 타종되었다. 그것이 신호가 된 것같이 비상종소리와 거의 동시에 2함대전함 5척의 함포가 일제히 포격을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용암포해상을 가득 메울 정도의 시꺼먼 포연과 함께 함포사격이 시작되자 참모장 이시이 대좌가 이노우에 사단장에게 급하게 건의했다.

“각하! 지금 망루에 있는 것은 위험하니 방공호로 대피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세.”

이노우에 사단장은 참모장과 함께 황급히 망루를 내려갔고 이시이의 예측대로 그들이 방공호로 들어가기 전 관측망루는 2함대 포격에 그대로 적중되면서 산산조각 나버렸다.

쾅! 쾅! 쾅! 쾅!······

2함대의 함포사격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시모세화약이 장약된 포탄은 러시아가 1903년 용암포 해안에 만들어 놓은 석탄과 식량을 저장하는 100여 칸이 넘는 창고는 물론 그 뒤에 진주한 일본군이 지어 놓은 크고 작은 건축물들도 무참히 박살내며 사방을 온통 불바다를 만들었다. 

2함대 전함은 수동으로 사격을 통제하지만 송골매가 전송하는 용암포상황을 마라도 함 상황실에서 전해 들으며 포격지점을 적절히 조절해 함포사격을 했다. 이렇게 포격지점을 조절하며 마치 정밀 포격하듯 쏘아대는 2함대 함포는 일본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쾅! 쾅! 쾅! 쾅!······

콰앙! 우수수

대양함대 함포사격이 이노우에가 피해있는 방공호를 정확히 타격하자 지붕에 쌓아 놓은 흙무더기가 무너져 내리며 이노우에 사단장은 졸지에 먼지를 뒤집어썼다.

먼지를 온통 뒤집어쓰자 화가 난 이노우에가 참모장을 독촉했다.

“우리 해안포는 왜 대응사격을 하지 않는 것인가? 빨리 대응사격을 하라고 하라.”

일본군의 해안포는 러시아군에 맞서 진지를 구축했기 때문에 일본전함으로 구성된 2함대 함포사거리에는 미치지 못했다. 

“적함의 위치가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해안포사거리보다 조금 먼 곳에 위치해 있어 해안포대응사격이 효과가 없습니다.”

참모장의 말에 이노우에 사단장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이런 젠장. 우리가 보유한 해안포사거리 보다 먼 거리에서 쏴댄다면 러시아함대에 대한 정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잖아. 그렇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그러면서 이노우에는 대책을 강구하라며 이시이 대좌를 닦달했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는 것은 이노우에도 알고 있었다.

쾅! 쾅! 쾅! 쾅!······

2함대 함포사격이 수십 분 동안 계속되자 용암포일본군부대는 일부 해안포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초토화되고 있었다. 예하부대에서 보낸 전령들이 보고하는 피해상황을 정리하던 참모장 이시이 대좌가 심각한 어조로 이노우에 사단장에게 건의했다.

“각하. 함포사격 피해가 너무 큽니다. 이렇게 적의 함포사격을 계속 받는다면 아군전력이 회복불능에 빠질 수 있습니다. 뭔가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대책을 강구한단 말인가?”

“지금처럼 적이 계속 함포사격을 해온다면 적군이 상륙하기도 전에 우리 병력이 먼저 견뎌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2선으로 후퇴해서 병력을 재집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노우에 소장도 계속 피해상황을 보고 받고 있었기에 지금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2선이라면 어디까지 병력을 물리란 말인가?”

“적의 함포사격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는 병력을 물리는 것이 좋겠습니다만 소장의 생각으로는 신의주로 아예 퇴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신의주에 있는 병력은 전투력이 거의 없는 보급부대인데 전투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정 안되면 조선인인부들을 방패로 삼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노우에는 참모장의 제안에 귀가 솔깃했다. 그러면서 입에서 거침없이 욕이 튀어나왔다.

“이런 젠장. 아무리 해군이 없기로 서니 우리 위대한 황군이 이렇듯 무력하게 무너질 줄이야.” 

“저희들이 입안한 용암포방어계획은 해군이 해상방어를 해 줄 것을 감안하여 마련되었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일단 병력을 신의주로 물려서 병력을 재편한 뒤 만주와 평양에 병력지원을 요청하시는 것이 최선이라 판단됩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병력손실이 너무 큽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각하.”

이시이 대좌의 거듭된 건의에 이노우에 사단장이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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