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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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한성은 연일 축제 판이나 다름없어졌습니다. 저는 이러한 일이 성사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이 시대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일시적이고 앞으로 중요한 것은 그동안 피해의식에 휩싸여 있는 국민들의 민족자존감을 회복시키는 일입니다. 우리는 국민의식고취를 위한 국민계몽운동을 전국적으로 실시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지연이 물었다.

“이제 겨우 임진강이남지역만이 수복되었는데 벌써부터 국민계몽운동을 시작하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이러한 의식고취운동은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구국의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대한제국은 개항을 하고 난 후 수십 년간 청국에서 시작해 러시아와 일본 등 외세의 강력한 힘을 너무도 많이 경험했습니다. 지금 한성수복이 되어서 즐거워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주민들은 내심은 기연가미연가하면서 불안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지금은 일본을 몰아냈지만 혹시 일본이 다시 침략해서 지금보다 더 한 압박을 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황성신문 장지연사장이 나섰다.

“동감입니다. 솔직히 저 또한 그런 생각에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장지연의 말에 장주현도 동의했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국민들의 심성이 이렇게 나약하게 된 것이 모두 고위관리들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국제(國制)가 바뀌고 수없이 많은 내각이 세워졌지만 그 누구도 외세를 몰아내지 못하고 외세에 빌붙거나 외세에 끌려 다니기만 했습니다. 그 와중에 일본낭인들이 경복궁까지 난입해 국모까지 시해를 당하는 치욕을 당했지만 이때도 외세에 힘을 빌려 외세를 몰아내려고만 했지 민족의 자존과 자립을 시도한 지도자는 없는 것이 대한제국의 현실입니다. 그런 부끄러운 지도자들의 모습을 수십 년 보아온 일반국민들은 나약해졌을 것이고 제대로 된 민족자존감을 갖고 있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장주현의 통렬한 비판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더구나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철저한 계획아래 점령군처럼 무단을 진주한 일본군의 비호를 받으며 한성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한성의 경제권을 순식간에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본인들에게 일반국민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처음에는 저항을 했으나 총칼을 앞세운 일본에 눌려 차츰 기를 펴지 못하게 되었고 그저 고개 숙이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우리는 안 된다는 패배의식에 젖어 버렸습니다. 이런 자존감이 상실된 패배의식은 겉으로는 일본을 미워하면서도 일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으면 아주 고맙게 생각하는 어처구니없는 이중적 식민주의사고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 현재의 대한제국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힘들여서 신문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장님들은 지금까지 해 오신 것이 바로 제가 지적한 것들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지금까지 신문은 일제를 경계하고 비판하는 것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제는 국민을 깨우치는 국민의식고취와 같은 계몽운동도 선두에 서서 해 나가자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장주현의 긴 설명이 끝나자 박은식이 나섰다.

“여러분들께서 혹 평양과 용암포에 있는 일본군과 만주에 주둔한 일본군이 걱정이 되신다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수십만 명이나 되는 만주일본군이 쳐내려오면 어떻게 당해내려고 하십니까?”

장지연사장의 물음에 장주현 중좌가 나서서 확고한 어조로 대답했다.

“한반도수복은 며칠 내로 끝낼 수 있을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그럼 간도는 어떻게 됩니까?”

“간도는 만주방면에 주둔해 있는 일본군과 직접 맞닥트리고 있는 지역이라 저희들은 병력확충을 한 후 내년 상반기 경에 북진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요?”

“그렇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해산된 군 병력을 다시 소집해 철저히 훈련시키고 그동안 어렵게 의병운동을 하던 분들을 설득하고 또 다른 지원병도 받아 병력을 보충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그 많은 병력을 무장시키려면 막대한 자금이 들어갈 텐데 가능하겠습니까?”

“예, 우리가 보유한 자금으로 일부 충당할 것이고 부족한 것은 황제께서 내장원비자금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장지연이 놀라서 되물었다.

“예? 폐하께서 비자금을 내려 주신다고요? 그게 사실입니까?”

“제가 드리는 말씀은 모두 믿으셔도 됩니다. 지난  번에 있었던 독일유학생 파견과 제철소 도입도 다 황제께서 용단을 내려 주셔서 내장원자금을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장주현의 대답에 장지연사장이 수긍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럼 그것들이 다 삼족오군의 계획으로 진행된 일이군요.”

“그렇습니다. 더구나 지금 부산과 용산 그리고 평양과 신의주 등에는 막대한 일본군 군수물자가 쌓여 있습니다. 그 군수물자만 활용해도 충분히 일본과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제국신문 이종일 사장이 감탄했다.

“하! 적의 물자를 이용해 적을 물리친다. 참으로 좋은 생각이십니다.”

“지금 벌써 그런 일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예, 일본군이 수탈을 위해 한반도에 건설한 경인·경부선철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일본군소탕작전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군요.”

이종일이 거듭해서 감탄하다 자신들을 부른 목적을 상기하고는 장주현을 바라봤다.

“앞으로 우리들이 어떻게 도와주면 됩니까?”

“가장 먼저 하실 일은 최대한 빠른 전황보도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매일의 전황을 수시로 각 신문사에 넘겨드릴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자료를 이용해 호외나 정규발행을 통해 국민들에게 최대한 빨리 알려주시면 됩니다,”

“아니? 군사작전은 기밀사항인데 전황을 그렇게 수시로 알려주면 적에게 노출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당분간 외국공관을 잠정 폐쇄조치할 것이니 한반도소식이 외부로 나가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걱정 마시고 이곳 삼군부에 마련된 지휘본부상황실에 기자를 상주시켜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호외를 발행하실 수 있도록 인천과 한성수복에 관한 자료와 친일파 검거에 관한 자료들도 잠시 후부터 수시로 넘겨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인쇄용지가 부족하면 정부에서 보관된 용지를 먼저 내드릴 테니 필요한 신문사는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에 모든 사장들이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고맙습니다.”

“최선을 다해 신문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들의 인사에 장주현이 웃으며 화답했다.

“예, 우리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정론직필(正論直筆 바르게 밝히고 진실만을 쓴다)의 초심만 잃지 않으신다면 앞으로 사전검열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장주현의 끝말에 그동안 친일파내각과 일본군의 집중 견제로 검열까지 받으며 신문을 발행했던 세 명의 사장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주먹을 굳게 쥐었다. 

이날부터 제국신문을 비롯한 대한매일신문과 황성신문 세 곳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황을 알리는 호외가 발행되었다. 이 호외는 한성을 온통 만세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을 모두 다 알고 있던 차준혁이었지만 평양전투가 끝나자마자 거의 실시간으로 호외가 발행 된 것을 보고는 그 빠른 발행에 놀랐던 것이다.

호외를 사기위해 사람들이 북새통인 모습을 보며 차준혁이 의친왕에게 설명했다.

“정훈참모부가 정말 철저히 준비를 하고 있나봅니다.”

“그런가보네. 이렇게 빨리 호외가 나온걸 보니 정훈부도 그동안 붓으로 전쟁을 치루고 있었어.”

“아마도 매일 밤을 새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기는 전쟁을 보도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 말씀은 맞습니다.”

두 사람이 이렇게 말을 주고받은 사이 마차가 경운궁에 도착했다. 마차에 내린 두 사람은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는 경운궁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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