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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화룡점정으로 영화나 드라마 내용도 진짜로 믿을 정도로 영상에 대해 전혀 무지한 황제에게 동영상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도록 유도했다.
이렇게 몇 개월에 걸친 치밀한 공작의 결과가 삼족오군이 한성에 입성한지 며칠 되지 않은 지금 칙명으로 나온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대신들과 관리들이 용산에서 폭사되거나 대대적인 숙정으로 대거 자리에서 물러나는 바람에 한반도 수복이 끝나면 곧바로 조각을 해야 하는 현실도 감안된 칙명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칙명은 황제가 거둬들이거나 황제를 등에 업고 권력을 쟁취하려는 자들이 나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지만 이것은 나중에 해결해야할 문제였다.
박충식이 대공의 작위와 원수계급에 오르고 총리대신이 되면서 조각의 전권을 위임받게 되자 정국주도권은 삼족오군에게로 완전히 넘어왔다.
이윽고 상선이 칙명낭독을 끝내고 그 칙명을 잘 말아들고는 옥좌를 내려와서 두 손으로 공손히 박충식에게 건네주었다.
박충식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송의식의 만류도 있었기에 아무 말하지 않고 두 손으로 칙명을 받았다.
칙명을 건넨 상선이 소리쳤다.
“다음으로 황제폐하께서 대공(大公)전하께 대한제국최고훈장인 ‘대훈위 금척대수장(大勳位金尺大綬章)’의 수여가 있겠습니다.”
상선의 말에 황제가 몸소 옥좌에서 일어나 계단을 내려갔다. 민영환이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 제지하려고 하다가 이미 박충식에게 여러 차례 파격을 행한 것이 생각하고는 그만 두었다.
‘아! 황상폐하께서 직접 훈장을 수여하시려나보구나? 이런 전례는 이전에는 없었는데 요즘의 황상께서는 그야말로 파격의 연속이구나.’
그런 생각은 의친왕도 했다.
‘부황께서 훈장을 수여하기 위해 옥좌를 내려오시다니 참으로 많이 바뀌셨구나. 그렇지 않아도 김종석 장군에게 서슴없이 악수를 하시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었는데 부황께서 저러시면 전에 같았으면 대신들이 전례에 없는 일이라 불가하다고 이 접견실이 난리 났었겠다.’
두 사람의 생각대로 조선과 대한제국은 군주가 다른 사람과 몸을 접촉하는 것을 아주 금기시했다.
더구나 황제가 신하에게 내관을 통하지 않고 무언가를 주고받는 것은 거의 특혜나 마찬가지였다.
황제가 휘장을 어깨를 둘러주고 훈장을 가슴에 걸어주며 당부했다.
“앞으로 대한제국을 잘 이끌어 주시오. 짐은 대공만 믿겠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폐하.”
다시 옥좌에 오른 황제는 장주현의 반민특위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황제는 숙정작업을 하며 절대 인정을 봐주지 말라는 말로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이어서 송의식의 평안도수복에 관한 자세한 정식보고를 받은 황제는 크게 기뻐했다,
보고를 마치고 석조전을 나온 박충식이 경운궁정문으로 걸어 나오면서 송의식 참모장에게 물었다.
“송 참모장.”
송의식이 정중하게 대답했다.
“예, 전하.”
박충식이 손사래를 쳤다.
“이사람, 전하는 무슨.”
“그렇지 않습니다. 황제께서 봉한 작위이고 이곳은 대한제국입니다. 앞으로 전하라는 호칭에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송 장군까지 그렇게 부르니 내가 듣기 민망하네.”
“아닙니다. 제가 먼저 솔선해야 다른 장병들도 따르지 않겠습니까?”
“음!~ 그건 그렇고. 그런데 왜 아까 접견실에서 나를 제지했나?”
“앞으로 우리는 대한제국사람들을 상대해야합니다. 당연히 전하께 황제가 내려준 대공의 작위는 우리에게 득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이 들어섭니다.”
“그래도 내가 대공이 되면 같이 넘어온 삼족오군장병들이 공을 세우면 작위를 내려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작위란 것이 내가 내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걱정이야.”
“당연히 앞으로는 그렇게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장병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모두에게 작위를 내려주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이참에 대한제국에도 작위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작위제도를 도입하자고?”
“그렇습니다. 지금은 제국주의시대이고 군국주의시대입니다. 공화정인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외국의 경우 작위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대한제국의 지도층인사들을 아우르며 가야합니다. 실리보다 명예를 중시하는 유학자가 대부분인 그들에게 황제가 내리는 작위는 대단히 유용한 전가의 보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송의식의 말에 박충식이 크게 공감했다.
“하긴 나라가 망해도 일본이 작위를 준다니 좋다고 받은 자들이 수백 명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나.”
“그렇습니다. 어차피 개혁을 하려면 토지개혁이 제일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때 작위제도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아마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그렇게 하지. 이보게. 장 중좌.”
“예, 전하.”
박충식은 장주현의 전하라는 대답에 미리 송의식을 말을 들어서인지 이번에는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이번에 일본인과 친일파 등에게 몰수한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정리되었나?”
“몰수한 재산이 너무 많아 정리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확실한 규모를 파악하려면 아마 다음 달 말 정도는 되어야 끝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몰수재산이 그렇게나 많아?”
“한성일대 거주하던 일본인과 탐관오리들과 친일파들의 몰수재산을 정리하고 있는 내관들의 말에 의하면 대충 잡아도 황실재산의 몇 배는 가볍게 넘는다고 합니다.”
삼족오군은 그나마 깨끗한 내관들을 이용해 몰수재산정리를 하고 있었다.
“하! 정말로 대단하군.”
“몰수한 재산을 살펴보던 중 예전 안동김씨 일파가 소유했던 재산의 많은 부분이 여흥민씨 집안으로 넘어갔었고 또 그 재산 중 상당부분이 다시 친일파 등에게로 넘어갔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계속 넘어가는 중에서도 또 다시 비리를 저지르면서 수많은 재산을 불려온 것으로 들어나고 있습니다.”
“참 대단한 자들이야. 아무튼 철저히 조사해서 모조리 찾아내도록 하게.”
“지금 한 푼이 아쉬운 우리입장에서는 몰수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 같아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그래. 주민들 피를 빨아 모은 재산을 우리가 다시 나라를 위해 아주 뜻 깊게 써주자고.”
후일 반민특위에서 압수한 일본인과 친일파 그리고 탐관오리들 재산은 대한제국전부를 돈으로 사고도 남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특히 친일파 중 수십 명의 만석꾼이 있을 정도로 이들이 소유했던 토지규모가 엄청나 경기·황해도는 절반이 훨씬 넘었고, 충청·전라지역은 토지의 거의 절반가까이 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동안 정부권력을 쥐고 있던 서인세력에 밀려났던 남인세력의 본고장인 경상도지역은 부산·동래지역을 제외하고는 친일파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러한 쏠림현상은 친일파나 탐관들 대부분이 그동안 권력을 쥐고 있었던 권문세가들이란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안동 김 씨에서 여흥 민 씨까지 100년 가까운 세도정치기간동안 권력의 테두리에서 온갖 권세를 누리던 권문세가들은 일본세력이 들어오자 곧바로 해바라기성향을 발휘하여 일제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이후 이들은 개인의 부귀영달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버리는 짓을 서슴없이 자행했던 것이다.
참으로 다행이었던 것은 이들이 뒷주머니로 돈을 빼돌릴 시간도 없이 삼족오군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랬기에 이들의 가진 재산을 어려움 없이 전부 몰수한 뒤 여의도수용소에 집단 수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몰수된 어마어마한 몰수재산은 이후 대한제국 경제성장에 아주 큰 공헌을 하게 된다.
다음날 함경도 원산과 성진의 수복작전은 별다른 인명피해 없이 무사히 끝날 수 있었다. 특히 일본군 1개 대대가 주둔하고 있던 원산전투에는 처음으로 투입된 장갑차와 K-9자주포의 대활약이 있었다.
K-6중기관총이 장착된 장갑차는 일본군이 보유한 호치키스기관총의 총탄으로는 거의 흠집도 나지 않는 무적이었다. 물론 흑표전차는 이보다 더한 무력을 갖고 있었지만 열악한 도로사정으로 무거운 전차는 투입되지 못했다. 하지만 장갑차만으로도 최강이었다. 거기다 같이 투입된 K-9자주포의 주포위력과 폭탄성능은 일본군이 건설해 놓은 진지들을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무력하게 만들어버렸다.
함경도지역이 수복된 날도 한성은 사방이 만세소리로 뒤덮였고 세 신문사가 발행한 호외는 한성의 지가를 한껏 올려놓았다.
박충식은 경운궁을 찾아 함경도의 승전을 알리면서 황제를 파안대소하게 만들었다. 계획대로 한반도 수복을 마쳤다는 것에 모처럼 가벼운 마음이 된 박충식은 경운궁을 나오면서 전날 황제에게서 하사받은 대공부를 찾기로 했다. 처음으로 찾는 저택방문은 위치를 알고 있는 의친왕과 차준혁이 동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