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9 회: 3권-19화 --> (89/268)

<-- 89 회: 3권-19화 -->

황제가 하사한 저택은 경복궁과 창덕궁의 거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집안을 들어선 박충식은 그 규모에 우선 놀랐다.

“하!~ 무슨 집이 이렇게 넓은 거야?”

놀라는 박충식을 보고 의친왕이 황제가 하사한 저택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이집은 본래 판사를 지낸 민영주(閔泳柱)의 집으로 청일전쟁 이후 적몰된 저택입니다.”

박충식이 집을 둘러보며 의아해 했다.

“그런데 이 집은 99칸이 더 되는 것 같은 데 내가 잘못 본 것이오?”

“아닙니다. 제대로 보셨습니다.”

“99칸 이상의 집을 지으면 황실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해 강력한 처벌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일개 신하가 이런 거대한 저택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이오?”  

“이 집에 대해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사실 일화라기보다 황후를 등에 업은 민씨세도가 황권을 무시할 정도로 대단했었다는 역설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의친왕이 설명을 시작했다.

1880년대 말 어느 날, 고종은 조회를 마치고 물러가려는 민영주(閔泳柱)를 불러들였다. 

“네가 요즘 대궐을 짓고 있다고 하던데 사실이더냐?” 

본래 조선의 법도로는 그 누구라도 99칸 이상의 집을 지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고종의 귀에 민영주가 100칸이 훨씬 넘는 대저택을 짓는다는 소문이 들려온 것이다. 민영주가 처조카뻘이라 억지로 급제를 시켜 벼슬을 주긴 했지만 평소 망나니 소리를 들을 만큼 그의 행실이 나빠 늘 못마땅하게 여기던 터였다. 

왕(당시는 조선시대였다)의 질책에 민영주는 낯을 붉히며 변명했다. 

“신이 짓는 것은 대궐이 아니오라 절이옵니다.” 

비록 중죄는 지었지만 고종은 재치 있는 대답이라 생각하고 더는 추궁하지 않고 그를 돌려보냈다.

물론 이렇게 돌려보낸 까닭은 그의 변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경고를 했으니 알아서 적당히 집을 짓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몇 달 뒤 고종은 다시 민영주을 불러 물었다. 

“그래, 짓는다고 하던 절은 다 지었느냐?” 

“네.” 

말하는 투가 집의 규모를 줄이지 않은 듯해서 고종이 일부러 비꼬며 물었다.

“절에 어느 부처님을 모셨느냐?” 

“세상 사람이 저더러 금부처라 하옵니다.” 

민영주가 뚱뚱한 풍채에 워낙 돈을 밝혀 붙은 별명이 부처였던 것이다.

민영주의 재치 있는 대답에 고종은 그만 기가차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민영주가 이 터에 처음 지은 집은 375칸 규모일 정도로 대단한 규모였다.

하지만 정작 민영주는 이 집에서 몇 년 살지 못했다.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정권이 바뀌자 고종은 내각에 지시해 이 집을 적몰해 10년간 일본에 망명하다 귀국한 철종의 사위 박영효에게 하사한다. 

그러나 명성황후 시해와 관련된 박영효는 아관파천 후 일본으로 도주하자 이 저택은 다시 황실에 귀속되고 말았다.

그 후 내각보좌관이던 일본인 츠네야 모리노리(恒屋盛服)가 한동안 이 집에서 살았다. 그러던 1899년 츠네야가 일본으로 귀국하자 이 집은 또 다시 황실이 관리했고 1902년까지 궁내부 산하에 설치되었던 서북철도국의 청사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1904년 비록 일본인이었지만 황제가 크게 신임하고 있던 가토 마스오(加藤增雄)가 고문정치를 위해 궁내부고문이 되어 입국하자 그의 관사로 내주었던 것이다. 그러다 지난 23일 용산폭격에서 가토 마스오가 폭사하자 다시 빈 집이 되었던 것이다.

의친왕의 설명을 들은 박충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으로 많은 사연이 많이 있는 저택이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황명에 의해 과인이 모셔야할 대공전하십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말씀을 낮추십시오.”

“하하 그건 차차 그렇게 하면 되지 않겠소? 그 문제는 너무 채근하지 마시오.”

웃으며 대답하는 박충식에게 의친왕도 더 강권하지 않고 웃음으로 화답했다.

저택을 둘러보던 차준혁이 의친왕의 설명을 듣다 뭔가를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박충식에게 물었다.

“대공 전하. 이집이 이전세상에서 어떻게 불렸는지 기억나지 않습니까?”

박충식이 곰곰이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자 차준혁에게 되물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데 자네는 알아  냈는가 보네.”

“이집이 서울에서 민간주택으로 제일 크고 아름답다고 소문났던 윤보선대통령의 사저입니다.”

“아! 그래?”

“예, 제가 어릴 적 부모님들과 함께 이 저택을 구경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크고 집 구조도 전혀 달라서 저도 의친왕 전하께서 박영효의 집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못 알아 봤을 것입니다.”

그랬다. 황제가 하사한 저택은 바로 지금의 안국동에 있는 윤보선사저였던 것이다. 

본래 역사에서는 통감부 재정고문 주도로 대한제국황실재산정리를 하던 1909년 일제는 황실제산을 황제의 제가도 받지 않고 임의로 민간에 매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황실소유였던 이 저택을 장안의 대부호였던 김용달이 사들였다. 김용달은 저택에 딸려 있던 토지일부를 정리한 후 대대적으로 수리하여 180칸 규모로 재 단장하여 ‘장안 제일의 저택’으로 꾸몄다. 

그러나 돈을 물 쓰듯 한다는 말을 듣던 김용달은 1917년 결국 파산해 이 집은 한성은행으로 넘어갔고 그 후 남작이었던 조동윤이 한성은행으로부터 이 집을 인수하였다. 하지만 조동윤은 이 집을 지은 민영주와 개축한 김용달 모두 망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부랴부랴 다시 헐값에 매물로 내놓았다.

마(魔)가 낀 집을 산 탓에 자기도 망할지 모른다고 걱정한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 것을 1918년 윤치소가 큰아들 윤보선의 명의로 사들였고 그것이 지금의 안국동윤보선사저다.

박충식도 이전시대에 윤보선사저를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규모가 아주 크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전에 이 집이 크고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네.”

저택 안을 한 참 구경하던 박충식이 혀를 찼다.

“정말 넓고 크군. 마치 이건 궁궐이야 궁궐. 이러니 황제께서 적몰할 만도 하지.”

차준혁도 개인의 집이 너무 큰 것에 동의했다.

“일개 판사가 지위에 있는 자가 국왕을 무시하고 이정도 저택을 지을 정도였다면 그 당시 민씨세도가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모조리 상인과 백성들 등쳐먹어 만든 재산이었겠지. 안동김씨 세도정치 때보다 민씨 세력이 세도를 부릴 때는 조선의 경제규모는 훨씬 더 커졌을 것 아니겠어. 그러니 세도를 부리던 자들이 빼돌린 돈도 당연히 커졌을 것이란 것은 불문가지라고 봐야겠지.” 

“반민특위에서 그러한 점을 감안해 철저히 조사하고 있으니 아마도 좋은 결실이 있을 것입니다.”

“하여튼 불법으로 조성된 재산은 이 기회에 모조리 환수 조치해야 해. 지금 아니면 앞으로 우리 민족에게는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찾아오기 힘들어.” 

의친왕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본래 우리나라에서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약간의 금전과 물품을 주고받는 것은 미풍양속같이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까지 모조리 조사해 낸다면 아마 대한제국관리 중 남아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니 선별할 필요는 있습니다.”

하지만 차준혁이 반대의견을 펼쳤다.

“상납과 인사치레는 엄연히 다릅니다. 물론 그 경과는 참작되겠지만 주민들을 수탈한 것을 윗사람에게 인사했다고 하면 그게 인사로 봐야합니까? 아니면 상납으로 봐야합니까?”

“끄응!~”

차준혁의 질문에 의친왕은 반박을 못하고 신음만 내뱉었다.

“그게 지금 대한제국의 현실입니다. 탐관오리들은 자신들이 윗사람에게 인사한 것을 미풍양속이라 하나 지역주민들을 수탈해서 상납한 것이라 하면 이는 절대 용서받지 못할 짓입니다. 더구나 전하께서도 아시는 일이지만 평안도수령 중 이번 전쟁으로 일제가 강제 징집한 인부들 일당조차도 수탈한 자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수탈한 돈으로 벼슬을 더 높이려고 정권을 잡고 있던 친일파들 집에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후!~”

의친왕은 차준혁의 말에 모든 지방관들이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얼마 전까지 황제조차도 관리들에게 벼슬을 내릴 때 일정한 금전을 인사치레로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충식이 답답한 분위기를 털어냈다.

“자. 그 일은 반민특위에 전적으로 맡겨 놨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말게. 조사위원들이 알아서 철저하게 잘 조사할 것이야.”

“알겠습니다.”

“일단 황제께서 내려주신 집이니 잘 활용해야겠지. 차비서.”

“예, 전하.”

“자네 주시경선생과 신채호선생을 만났던 일은 어떻게 되었나?”

“그렇지 않아도 두 분께서 국어학회와 국사학회를 만드는데 적극 참여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국어학회와 국사학회를 여기다 설립하겠다고 두 분께 말씀드리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