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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장에는 황제가 앉아 있는 정면에는 이미 커다란 화면이 설치되어 있었고 장주현의 말과 동시에 영상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우리 삼족오군은 지난 4월 중순······”
장주현은 참석자들에게 삼족오군이 이시대로 온 경과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경과보고는 제주수복을 거쳐 일본연합함대 격멸을 비롯해 4개 월여간의 혹독한 군사훈련과 한성수복을 비롯한 한반도수복작전까지 비교적 자세한설명과 함께 동영상이 동시 방영되자 장주현의 보고는 한편의 장편대서사시를 보듯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이미 대부분의 상황을 알고 있던 황제도 영상을 보고는 다시 또 감격한 표정이었다.
“···· 이상으로 그동안의 경과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짝짝짝!!········
누구라 할 것 없이 참석자들 모두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박수를 쳤고 대한제국출신 관리들 중 일부는 처음 보는 동영상에 감동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잠시 실내분위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린 장주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음으로 정부조직발표가 있겠습니다.”
순간적으로 실내가 조용해졌다.
“먼저 내각총리대신에 박충식 대공,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대법원장에 허위(許蔿)공, 앞으로 관리들의 비리를 감시할 최고책임기관인 감사원의 원장에 최익현(崔益鉉)공께서 임명되셨습니다.”
소개를 받은 세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앞으로 법원과 감사원은 내각에서 분리되어 완전히 독립된 조직으로 운영되며 그 수장은 각각 총리대신과 같은 예우를 받게 됩니다.”
이 말에 대한제국출신 대신들 사이에서 잠시 술렁였으나 장주현의 소개는 계속되었다.
“다음으로 내각의 각부대신에 임명된 분입니다. 호명된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내무대신 민영환(閔泳煥), 재무대신 이상재(李商在), 외무대신 이범진(李範晉), 문교대신 박은식(朴殷植, 보건대신 유길준(兪吉濬), 법무대신 조병세(趙秉世), 궁내대신 한규설(韓圭卨), 국방대신 김종석, 농무대신 공석, 상공대신 이종훈, 건설대신 박연수, 육군대신 강명철, 해군대신 송의식, 공군대신 최경석입니다.”
장주현이 예우차원에서 대한제국관리를 먼저 호명하고 뒤에 신군출신 대신을 호명했으며 농무대신은 적임자가 없어 당장은 공석으로 남겨뒀다.
대신발표의 뒤를 이어 차관인 부상(副相)의 소개가 있었다. 정부부서에 대한제국출신대신을 선임한 부서는 예외 없이 삼족오군 출신의 부상이 선임되어 실무를 총괄하도록 배치했다.
“다음으로 한시조직입니다. 반민족특별조사위원회로 위원장은 모두가 알고계신바대로 심순택 전 총리대신입니다.”
소개가 있자 심순택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홍보처장 장주현의 소개는 계속 이어졌다.
“지금부터 정부가 설립한 공사(公社)사장에 대한 발표가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말 없었던 최익현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청했다. 강직하기로 소문난 감사원장 최익현이 의사표시를 하려는 것만 으로도 실내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긴장되었다.
“말씀 하십시오.”
“공사가 뭐하는 조직이오?”
꿀꺽
장주현은 70이 넘은 최익현의 형형한 눈빛에 마른 침이 넘어갈 정도로 긴장한 자신이 우스웠다.
‘젠장. 눈빛만으로 주눅 들다니.’
장주현이 위축된 기분을 털어내려고 헛기침까지 하며 목을 풀었다.
“험! 험! 공사(公社)란 정부가 만든 회사입니다.”
최익현의 눈빛이 일순간 날카로워졌다.
“정부가 장사를 한다는 말이오?”
“일반적인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담배나 소금 그리고 인삼 등의 전매사업을 담당하는 담배인삼공사를 비롯해 사회간접자본과 같은 대규모 공사 중 민간이 수익을 내기 힘든 공사나 공익성이 많은 사업 또는 민간자본으로는 하기 힘든 대규모국가기간사업 등의 국책사업 같은 경우에 정부가 직접시행을 해서 국익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 공사입니다.”
“그렇다면 제철소나 조선소건설 같은 것을 공사가 전담한다는 말이구려.”
“바로 보셨습니다.”
최익현이 그제야 눈빛을 거두었다.
“정부발주공사를 통해 개인이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보다 국익을 위해 공사가 나서서 한다니 좋은 취지구려. 계속하시오.”
“예, 이번에 발족하는 공사는 담배인삼공사, 광업공사, 전력공사, 조선공사, 석유공사, 무역공사, 철도공사, 도로공사, 토지개발공사, 수자원공사 등입니다. 그리고 그 사장에는 ····.”
장주현에 의해 발표된 공사사장들은 전부 삼족오군 출신이 선임되었고 공사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던 대신들은 그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문교대신 한규설이 물어왔다.
“다른 것은 다 알겠는데 석유공사는 뭐하는 조직이오?”
“황제폐하의 어차(御車)인 자동차를 움직이는 원료가 석유란 것은 아실 것입니다. 그 석유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공사입니다.”
한규설이 의아해 했다.
“그 석유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 물목 아니오? 그런데 지금 공사를 만들 필요가 있소?”
“지금까지는 그렇지만 앞으로는 석유가 우리가 사용하는 원료의 주종을 이루게 됩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이 석유를 어느 나라가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국력이 좌우될 정도가 됩니다.”
이번에는 황제가 물었다.
“우리나라는 석유가 나지 않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많은 돈을 들여 외국에서 수입해야 한단 말이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대규모유전이 있습니다.”
“짐은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난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오?”
황제의 질문에 이번에는 박충식이 대답했다.
“본토에는 석유가 나지 않지만 만주일원에는 엄청난 석유가 매장되어 있고 또 평안도 앞바다인 서한만 안주일대에는 대규모해저유전이 있습니다.”
“서한만에 해저유전이 있소?”
“그렇습니다.”
“해저에 있는 것을 어떻게 캐낸다는 말이오?”
“우리에게는 해저를 탐사하고 유전을 개발할 장비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박충식의 설명과 동시에 화면에는 원유시추선이 비춰지자 실내가 잠시 웅성거렸다.
황제도 원유시추선을 보며 감탄사를 거듭하였다.
“하!~ 대단하구나. 무슨 배가 저렇게 크단 말인가. 저것이 정말 배가 맞소?”
“배에 해저를 뚫는 기계장치 등이 모두 내장되어 있어서 저렇게 보이는 것이지 배는 분명히 맞습니다.”
“도대체 배가 얼마나 큰 것이오?”
“무게가 4만 5천 톤으로 지난번에 보셨던 마라도 함의 2배 정도입니다.”
“대단하구나. 대단해.”
황제가 감탄하는 것과 같이 참석자들 모두가 화면을 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장주현은 실내가 조용해지도록 기다렸다 다시 회의를 진행했다.
“다음으로 작위제도 시행에 관한 건입니다. 그동안 우리 대한제국은 국가에 공을 세우고 작고하신 분에게는 사후에 공(公)을 추증하고, 생전에 계신 분들에게 군작(君爵)을 작위 했습니다. 그러나 서양각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5계급의 작위제도를 시행하여 국가에 공을 세운 자들을 예우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국인 일본도 명치유신이후 작위제도를 시행해 오고 있는 형편이고 우리나라도 전조(前朝)인 고려공민왕 때 작위제도를 시행한 전례가 있습니다.”
장주현의 설명에 참석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번에 국가에 공을 세운 분들을 예우하기 위해 우리 대한제국에서도 작위제도를 시행하도록 황제폐하께서 칙명을 내려주셨습니다.”
작위제도를 시행한 다는 말에 참석자들 중 누구도 반대를 하지 않고 황제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역시 명예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한사람도 없군.’
차준혁이 이런 생각을 할 때 장주현의 말은 계속되었다.
“작위는 공·후·백·자·남작과 경(卿)의 6단계로 정하며 세습되도록 하고 세습 때는 한 단계씩 작위를 낮춰 공작의 경우 6대에 이르러서는 평민이 되도록 했습니다. 또한 봉작되면 봉토는 없으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했으며·····”
장주현이 비교적 소상하게 작위제도를 설명하자 참석자들 모두는 그의 말에 집중하여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상으로 작위제도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다음은 반민특위에 대한 안건입니다. 이 안건은 심순택 위원장께서 직접 말씀하시겠습니다.”
장주현의 소개가 있자 심순택이 황제에게 목례를 하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지난 9월23일 설립된 반민특위는 그동안 친일파들과 친러파 등 외세영합무리들을 일제히 소탕했고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일본인들은 물론 탐관오리들도 모조리 체포하여 여의도수용소에 수감시켜 놓았습니다.”
심순택의 설명은 이전에 어전에서 하던 온갖 어려운 말을 붙여 실제의 내용을 알기 어려운 말투가 아닌 대화체로 간결하게 바뀌어 있었다. 이러한 간결한 말투 또한 허례허식을 없앤 것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