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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징병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3년간 정부공사 등에 투입되어 대체복무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나이로 25세가 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25세 이상 45세 미만의 국민들은 제2국민 역으로 편입되어 국방의 의무가 아닌 노동의 의무를 져야합니다. 제2국민 역은 정부공사 및 공익현장에 매년 2개월 이상 총 36개월을 국가에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것으로 병역의 의무를 마치는 것으로 할 계획입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중 노동력제공보다 스스로 자원입대하려는 사람들도 나올 것인데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30세까지는 자원입대를 받아줄 계획이고 30세 이상이 자원하는 경우에는 의무경찰로 배치하여 역시 3년간 복무하게 됩니다.”
“만일 입대를 기피하는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김종석은 여기서 말이 아주 단호해졌다.
“병역기피자들은 철저히 수색 체포하여 군법에 따라 법정최고형을 받고 군 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형기를 마치고나와도 다시 군복무를 해야 하며 이러한 병역기피자들은 앞으로 어떠한 공직에도 절대 진출하지 못하도록 법률로 아예 제도화할 것입니다.”
황제가 김종석의 단호한 설명을 거들고 나섰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징병제도는 황실이 먼저 솔선수범할 것이오. 그동안 황실은 국민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별로 없었소. 그래서 이것을 속죄하는 차원에서 이번에 종친부에 속한 황족 중 입대연령이 되는 자들은 단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제1차 징병에 가장 먼저 자원하라는 칙명을 종친부에 이미 내려놓았소이다.”
웅성웅성
생각지도 않았던 황제의 발언에 대신들이 놀라서 웅성거렸다. 그런 대신들을 손을 들어 제지한 황제가 또다시 폭탄발언을 했다.
“그리고 이번 징병에 의친왕이 자원하여 입대할 것이오.”
황제의 말에 회의실에 폭탄이 떨어진 듯 모든 참석자들이 깜짝 놀랐다. 박충식을 비롯한 삼족오군출신 대신들도 의친왕의 일은 금시초문이었기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궁내부대신 한규설은 얼마나 놀랐는지 황제에게 되묻는 무례까지 범했다.
“의친왕 전하께서 자원하여 군에 입대하신다는 말씀이 정말이십니까?”
하지만 황제는 한규설의 무례를 질책하지 않고 선선히 대답해주었다.
“그렇소. 의친왕이 국민의 모범이 되겠다고 스스로 자원한다고 하오. 그리고 앞으로 황실은 국민들보다 먼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할 것이오. 황족도 국민의 한 사람이니 앞으로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징병검사를 받고 입대할 것이고 만일 병역을 기피하는 황족이 나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황족에서 퇴출시키고 그 후손은 모조리 폐족 하라는 칙명도 이미 종친부에 내려놓았소.”
쿵!~
황족들이 먼저 병역을 진다는 황제의 발언은 가히 폭탄선언이었다. 더구나 병역 기피자는 황족에서 퇴출시키고 그 후손들도 벼슬을 할 수 없도록 아예 폐족까지 시킨다는 말에 참석자들은 너무도 경악해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평생유학을 공부해온 대신들에게 폐족과 가문에서의 퇴출은 사형선고보다 더한 형벌로 차라리 죽는 것이 오히려 가벼운 벌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무서운 벌을 주겠다는 황명을 이미 황족에게 내렸다고 하자 누구도 징병제에 반대할 수 없었다.
거기에 28살이고 비록 명예직이기는 하나 대한제국육군부장인 의친왕이 자원입대한다는 말은 가히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못을 박는 말이 황태자의 입에서 나왔다.
“과인도 나이가 되었다면 이번 입영에 자원했을 것인데 나이가 서른이 넘어 자원할 수 없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웠소.”
“황태자전하!!”
궁내부대신 한규설이 황태자의 말에 울컥한 심정을 토해내듯 입을 열었으나 뒷말을 잇지 못했다.
최익현을 비롯한 대한제국출신 대신들은 황제에 이어 황태자의 경악할 만한 말을 듣자 이제는 벌어진 입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국민들에게 가끔씩 비리문제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황실이 가장 힘든 병역을 자원한다는 것은 국민들 앞에 정말로 당당해 지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보통사람은 가기 싫어하는 군대를 늦은 나이에 자원까지 하며 입대하겠다는 의친왕의 자세는 충격 그 이상이었다.
황제가 이렇게 종친부에 극약처방에 가까운 칙명을 내린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마라도 함에서 본 영상에서 황족들 때문이었다. 이들은 황족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특권은 누리고 있다가 나라가 망하자 일본에서 내린 작위를 누구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서는 호의호식하면서 친일행각을 일삼은 황족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황제의 폭탄발언으로 더 이상의 회의는 진행되지 못하고 1기내각의 최초의 어전회의가 끝이 났다.
이날의 어전회의 내용은 다음날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다른 것은 모든 국민들이 환호했으나 징병제도만은 의견이 분분했었다.
하지만 황족들이 먼저 입대신청을 하고 병역을 기피하면 황족에서 퇴출과 함께 멸문보다 무서운 폐족이 되고 의친왕이 늦은 나이에 자원입대하겠다고 나섰다는 소식은 전국을 그대로 강타하면서 양반들의 반발을 단숨에 무마시켰다. 대한제국에서 가장 지체 높은 양반이 황제이고 가장 좋은 집안이 황족이다. 그런 황제의 아들과 황족이 먼저 나라를 위해 국방의 의무를 하겠다는데 양반이라고 징집에 반대하겠다는 것은 황제보다 자신이 더 귀하다는 곧 역모를 하겠다는 말과 다름없었기에 어느 누구도 반대하겠다고 나서지 못했다.
의친왕의 자원입대 소식은 온 나라를 강타했다.
그동안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기로 각지에서 활동하던 활빈당을 비롯한 의병들과 일반 양민은 물론 나름대로 국가관이 있던 양반출신들이 자원입대하겠다며 한성을 비롯한 도청소재지에 마련되고 있는 훈련소로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수옥헌 어전회의가 있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각지로 몰려든 자원입대자들 문제로 총리가 주재하는 주무부서대신회의가 별도로 열릴 정도였다.
“정말, 대단한 호응입니다.”
“정말. 이렇게 자원입대자들이 몰려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황제폐하의 칙명이 온 나라에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대신들이 저마다 입을 열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자원입대상황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대신들의 우후죽순 같은 말들이 끝이 날 무렵 박충식이 국방대신 김종석에게 물었다.
“국방상(國防相).”
“예, 대공 전하.”
“자원입대자가 이렇게 갑자기 몰려들면 지금 있는 훈련소시설이 감당해 낼 수 있겠소?”
“그렇지 않아도 일제와 친일파수탈이 가장 극심했던 전라지역과 민족의식이 뚜렷한 경상지역 그리고 이번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에 의해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평안도지역에 자원입대자가 엄청나게 몰려서 별도로 대책수립을 지시해 놓고 있습니다.”
내무대신 민영환이 질문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자원자들이 모인 것이오?”
“이 추세대로라면 이달이 가기 전에 지원자들이 10만 명이 훨씬 넘을 것 같습니다.”
“하!~ 그렇게나 많은 숫자가 자원했소?”
“11월부터 징병을 실시하려고 아직 징병검사장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는데 큰일입니다.”
박충식이 재무대신 이상재를 불렀다.
“재무상(財務相)”
“예, 전하.”
“지원자들을 모두 받아들이면 군량은 감당할 수 있겠소?”
“다행히 이번 추수에 수확한 곡식을 일본에 하나도 빼앗기지 않아서 1년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재의 말에 육군대신 강명철이 거들었다.
“지금 일본군의 군수물자 중 군량미를 노획한 양도 상당량이라 군량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구나 이번에 획득한 일본군군수물자 중 소총이 7만 정이 넘어 육군의 무장은 어느 정도 충당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강명철의 말에 이상재가 거들었다.
일본인과 친일파들에게서 압수한 재산도 엄청나니 필요하면 중국에서 양곡을 사들이면 문제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상재의 말이 끝나자 총참모장을 겸직하고 있는 해군대신 송의식이 나섰다.
“자원한 병력을 해군에게도 최대한 배정해주셨으면 합니다. 해군에 추가 징집된 병력이 없어 러시아함대에서 획득한 함정들과 미카사 함이 수리를 마친 채 해상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총리대신 박충식이 선을 그었다.
“해군의 상황도 시급한 것은 알지만 일단 가장 중요한 육군병력부터 편성을 마쳐야하니 이번에는 해군이 양보하게.”
“지원자는 일반 징병입영자보다 훨씬 강한 정신력과 투철한 국가관이 있어 전력에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제고해주십시오.”
해군출신이기는 하지만 박충식은 급선무인 육군병력확보 때문에 해군의 건의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육군보강이 더 시급하니 해군이 양보하게.”
송의식은 아쉬웠으나 그도 육군이 급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급한 대로 양무함과 광제함의 함장을 비롯해 강화해군학교출신 사관들과 승조원들 그리고 지난 1895년 조선수군이 폐지 될 때 복무했던 조선수군출신들이라도 별도로 모집할 수 있도록 국방성에서 특별히 영을 내려주십시오. 외국에서 우리의 상황을 알기 전에 빨리 해군을 정비해야하기에 한시가 급합니다.”
송의식의 이 말에는 박충식도 동의했다.
“자네 심정 충분히 이해하니 그건 내가 바로 조치해 주겠네.”
“감사합니다.”
박충식은 화학지원대대장이었던 국방과학연구소장 정병일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