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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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공사께서는 이 접견을 마치고 별도로 시간을 내 주셨으면 합니다.”

“본 공사와 단독면담을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각국공사가 있는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단독면담을 하자는 말에 조던은 예우 받는 기분이 들어 흡족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공사들과의 접견은 공사들이 외국인의 이동을 제한하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이후에는 나름대로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각국공사들이 돌아가고 박충식은 조던 영국공사와 단독면담을 가졌다. 면담을 시작하자마자 박충식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귀국이 지금 일본에 국채매입의 형태로 전비를 대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역을 통해 박충식의 말을 들은 조던은 크게 놀랐다. 일본의 전비를 지원한 것은 서양외교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한국정부가 알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영국뿐이 아니라 미국이 이번 러일전쟁의 일본전비 중 8억 엔의 일본국채로 매입했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조던은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트릴 정도로 크게 놀랐다. 전비를 국채로 매입하고 있다는 정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나 이렇게 규모까지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

“·······”

조던은 너무도 놀라 대답도 못하고 놀란 얼굴로 박충식을 바라봤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조던은 자신이 어이없게도 상대방의 얼굴을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보는 외교적 결례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조던이 바로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본 공사가 전하께 결례를 범했습니다.”

박충식은 거만하게 굴던 조던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실책을 사과하자 역시 외교관은 다르다고 느끼며 대답했다.

“생각지도 않은 말을 들어서 그렇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이런 고급정보를 입수하시는 것입니까?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하! 정보출처를 말씀해 달라는 것은 너무 지나친 말씀입니다. 그것보다 과인이 공사를 따로 부른 이유가 있으니 그 문제를 상의하시지요.”

박충식이 자신의 질문을 피하며 본론으로 들어가자 조던도 더 이상은 묻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본 공사를 별도로 보자고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귀국정부가 더 이상 일본에 전비를 대주지 않기를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그건 제가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귀국이 일본을 지원하는 이유는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러시아 남진을 우리가 막겠습니다.”

하지만 조던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귀국의 군사력으로 러시아의 남진을 막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귀국 정부관리 중 러시아를 등에 업고 정권을 쥐려고 하는 친러파 인사들이 많지 않습니까?”

“이전까지는 그 말씀이 맞을지 몰라도 지금 대한제국에 친러파관리는 결단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조던은 박충식이 확신에 찬 말을 하자 그동안 대대적인 숙정이 있었다는 것을 노련한 외교관답게 바로 눈치 챘다. 

박충식의 말은 계속되었다.

“더구나 우리가 확보한 정보로는 귀국도 더 이상 일본을 지원하기를 꺼려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조던 영국공사는 쉽게 일본을 막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거기에 자국의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박충식에게 대화에서 차츰 밀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근거도 없이 갑자기 대한제국이 이런 자신감을 보이는 것입니까?”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닙니다. 우리는 충분한 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 공사가 믿을 수 있도록 그 힘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지금 당장은 곤란합니다만 이번 한반도수복을 단숨에 끝마칠 수 있었다는 것으로 공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그건 러시아와 합작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아닙니까?”

조던의 의문에 박충식이 웃음을 지었다.

“하하! 누가 우리와 러시아가 합작했다고 합니까?”

“그럼 아니란 말씀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러시아는 우리 대한제국영토를 강점하고 있는데 어떻게 러시아와 합작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러시아는 일본과 같이 앞으로 우리가 물리칠 적이지 합작 상대는 아닙니다.”

조던이 놀란 얼굴을 했다.

“러시아가 대한제국영토를 강점하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박충식은 그러면서 조던에게 백두산정계비를 근거로 한 백두산과 송화강 그리고 흑룡강 동쪽까지가 간도로 표시된 지도 한 점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자 조던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두산정계비를 기준으로 청국과 영토협상을 마쳤기 때문에 지금 러시아의 영토인 연해주는 본래 한국영토라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북경조약으로 인해 러시아가 강점하고 있는 연해주지방은 명백한 대한제국영토입니다.”

“흠!~”

조던은 간도문제로 한국과 청국이 대립하고 있었던 것은 알고 있었으나 연해주까지 한국의 영토로 표시된 지도는 처음 보았다. 

“지금 일본도 수십 만 명의 병력을 투입하고도 만주에서 러시아극동군에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귀국의 군사력으로 어떻게 러시아를 상대한단 말입니까?”

“일본은 아마도 지금 한반도에 일어난 상황이 러시아군에 의한 것이란 오판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일본은 영국과 미국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전비조달이 어려워 만주병력을 더 이상 보강하는 것은 물론 유지하기조차 힘이 든 상황입니다.”

“우리 영국도 그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도 자국 내부사정으로 만주로 병력을 증파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일본이 군대를 나눠 한반도를 재침하는 장기전을 택하기보다 보유하고 있는 전력을 집중해 러시아극동군이  주둔하고 있는 하얼빈을 먼저 도모하여 이번 전쟁을 단번에 종료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박충식의 설명을 들은 조던이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지금의 전력만으로 러시아를 상대해야 하는 일본으로선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러시아도 보급이 문제가 있으나 아직 이십만이 넘는 정예 병력이 사할린에 주둔하고 있어 절대 일본에 뒤지지 않는 전력입니다. 만일 양국이 격돌한다면 이번에는 어느 누가 끝장날 때까지 혈전을 벌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양국 중 어느 나라가 이기더라도 엄청난 병력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조던은 박충식의 설명에 점점 빠져 들었다.

“아마도 그 전투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고 양국 간 전투가 끝날 때쯤이면 우리 대한제국은 일본을 상대할 수 있는 충분한 병력확충을 마쳐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에 조던이 처음 부정적이던 생각이 상당히 바뀌면서 점점 우호적으로 변해갔다.

“우리 영국이 일본에 전비지원만 해주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한제국이 귀국정부에 바라는 것은 아시아에서 일본만이 러시아의 남진을 막아낼 수 있다는 편견을 갖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한제국이 러시아도 상대하겠다는 것입니까?”

박충식이 에둘러 설명했다.

“연해주는 본국의 영토란 말을 이미 드렸지 않습니까? 그리고 만주는 우리 민족의 고토이기도 합니다.” 

처음 듣는 말에 조던이 의아해 했다.

“예? 만주는 청국의 영토 아닙니까?”

“청국을 세운 만주족은 본래 여진족으로 바로 우리 민족의 한 갈래입니다.”

박충식은 그러면서 만주의 한민족역사를 비교적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조던은 설명을 들을수록 한국의 입장이 너무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에 들자 과연 이 설명이 사실인지 의문이 갈 정도였다.

“총리께서 말씀하시는 역사가 정말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는 우리의 역사서뿐 아니라 중국의 사서에도 분명히 기록된 사실입니다.”

조던은 다른 것은 둘째 치고 한반도가 일본의 손에서 벗어난 지금, 일본의 처지가 상당히 어렵게 되었고 만주에 있는 병력이 일본이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병력이란 것과 러시아의 상황 등을 고려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느라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정리를 마쳤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귀국의 제안이 우리 영국으로서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귀국의 정확한 군사력을 알 수 없어 확신이 서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믿으십시오. 우리 대한제국은 불과 열흘도 되지 않은 시간에 한반도를 완전 수복하였습니다. 그것도 일본 정규사단병력을 도륙내고 말입니다.”

이렇게까지 확신에 찬 말을 듣자 조던의 고개가 드디어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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