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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처음부터 일본이 해상수송에 필요한 선박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던 세창양행의 칼 볼터가 주도권을 쥐고 시작되었다. 일본의 약점을 미리 알고 있던 칼 볼터는 처음부터 엄청난 상선임대금액을 제시했다.
협상시간이 길었다면 충분히 임대금액을 낮출 수도 있었지만 물자수송에 대해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있던 며칠간의 협상에도 별로 임대조건을 낮추지 못했다. 일본은 칼 볼터가 제시한 불리한 임대조건을 어쩔 수 없이 대부분 수용하면서 세창양행은 일본과의 임대협상에서 큰 수익을 거두게 되었다.
임대협상을 채결한 날 저녁 칼 볼터는 상해독일영사관에서 의친왕으로 분장하고 상해를 다시 방문한 차준혁을 초대하여 성대한 만찬이 열었다.
만찬도중 일본과 협상내용을 설명한 칼 볼터가 의친왕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전하께서 주신 고급정보로 이번에 본사가 큰 수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본사를 대표하여 정식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정도면 임대조건이 괜찮은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근래 드물게 저희 세창양행이 큰 수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과인의 정보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세창양행에 도움을 주시면 그 은혜 반드시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칼 볼터는 뇌물을 주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시했으나 차준혁이 우회적으로 거절했다.
“세창양행이 앞으로 대한제국에서 정당하게 사업을 하고 또한 호혜평등을 지켜가면서 교역을 한다면 과인은 오늘처럼 도와드릴 일이 많을 것입니다.”
노련한 상인인 칼 볼터는 바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전하의 기대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세창양행의 활약을 앞으로 기대해 보겠습니다.”
세창양행은 독일인 하인리히 마이어가 중국에 설립한 마이어상사의 한국지사로 하인리히 마이어와 칼 볼터가 공동대표로 있는 무역회사다.
세창양행의 최고히트상품은 독일산바늘로 대한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회사다.
하지만 본격적인 부의 축적은 대한제국 외교고문이었던 묄렌도르프가 독일차관으로 추진했던 경제개발을 대행하면서부터였다. 이후 2척의 기선을 도입하여 기선운항사업을 하는 등 대한제국정부를 상대로 여러 사업을 대행하면서 경제를 잘 모르던 한국정부 관리를 교묘한 방법으로 상대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
이렇게 부정한 방법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던 세창양행은 신군이 한반도로 진군하면서 그동안 진행되던 불합리한 사업들이 모조리 중지 또는 정리되거나 정상화되면서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사업에 큰 어려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세창양행은 대한제국유일의 독일회사였기에 이번에 독일에서 수입한 공작기계 등의 물자수송을 위탁받아 상당한 수익을 남길 수 있었다.
세창양행은 이러한 수송은 한시적이고 한반도에서 그동안 땅 짚고 헤엄치며 벌이던 사업은 끝났다는 것을 누구보다 빨리 인식했다. 그랬기에 세창양행은 사업의 새로운 활로를 발 빠르게 모색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상해영사인 바이페르트의 소개로 의친왕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의친왕을 소개받자마자 고급정보를 얻어 일본과의 상선임대계약에서 큰 수익을 거둔 칼 볼터는 어떻게 하든 의친왕과 좋은 인연을 유지하고 싶었다.
“저희들이 앞으로 어떻게 사업을 해 나가야할지 걱정입니다. 전하께서 좋은 고견이 있으시면 알려주십시오.”
칼 볼터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차준혁이 물었다.
“칼 볼터 사장께서 인천인근에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20여 년간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부를 축적한 칼 볼터는 인천인근에 서양인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대규모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상당한 소작수익도 거두고 있었다.
갑자기 토지문제를 꺼내자 칼 볼터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독일분이라 특별히 알려드리려고 하는데 비밀을 엄수해 주시겠지요?”
칼 볼터가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물론입니다. 당연히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차준혁이 설명을 시작했다.
“한국의 토지는 본래 모두가 국가소유였으나 수백 년에 걸쳐 여러 이유로 차츰 개인이 토지를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나라가 혼란해지면서 그 틈에 토지가 권문세가와 지방의 호족들은 집중되어 지금은 농사짓는 농민 대부분이 소작농인 형편입니다. 그동안 가혹한 소작료와 탐관오리들의 등살에 농사지은 것을 대부분 털리면서 농민들은 대한제국 최대의 국가불만세력이 되었습니다.”
칼 볼터는 물론 한국에 오래 근무했던 바이페르트 독일영사도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대한제국은 대대적인 경제개발정책을 시작했습니다. 이 경제개발정책을 잘 진행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국민의 절대 다수인 농민들의 민심을 다스릴 필요성이 아주 중요하게 대두된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제국에서는 내년에 전국적으로 토지개혁이 실시할 것입니다.”
앞의 설명을 충분히 했기에 칼 볼터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됩니까?”
“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이 토지를 소유하는 경자유전원칙으로 진행될 겁니다.”
“그럼 정부가 무상몰수해서 무상분배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하면 엄청난 국가적 혼란이 있을 수 있어 정부가 현금과 국채를 발행해 지주들이 소유한 토지를 매입한 후 일정규모로 농민들에게 유상분배하려고 합니다.”
“국채를 발행한다면 이율은 어느 정도 됩니까?”
“없습니다.”
칼 볼터의 눈이 커졌다.
“예? 없다고요?”
“그렇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데로 한국의 토지는 본래 국가소유였습니다. 그동안 지주들은 국가소유 토지를 이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만으로도 정부는 충분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렇기에 토지매입국채에 이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체상환기간은 얼마나 됩니까?”
“10년 균등상환방식이고 이 방식은 토지를 유상 분배받게 되는 농민들도 동일한 방식이 적용됩니다.”
“상황이 그렇다면 토지가격이 폭락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칼 사장께 비밀을 지키라는 부탁을 한 것입니다. 본국정부는 단지 지주와 농민들의 중개역할 만 할 뿐 어떠한 이익도 추구하지 않습니다.”
“토지개혁을 하려면 토지조사부터 선행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얼마 전 전국의 지방관들이 모조리 교체되면서 토지조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차준혁의 설명대로 대한제국은 황제의 칙명으로 전국의 수령대부분이 새로운 인물로 교체되었다.
이와 동시에 그동안 수탈과 학정으로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던 탐관과 오리들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비리조사가 시작되면서 전국적으로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칼 볼터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하!~ 제가 소유한 토지가 상당한데 그 많은 토지를 한꺼번에 매각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정부에서 수용하면 아무래도 보상금이 적게 책정될 것이고 거기다 10년 균등분할 받아야 하니 본인이 직접 처리 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앞으로 정부에서는 외국인의 토지소유도 외교적이거나 특별허가 상황을 제외하고는 엄격히 제한할 예정으로 알고 있으니 미리 정리하는 것을 좋을 것입니다.”
칼 볼터의 눈이 아주 커졌다.
“예? 그렇게 되면 외국인들의 반발이 아주 심할 것인데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지금 대한제국에서 외국인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은 일본인이 대부분이고 칼 사장님 같은 분은 아주 예외의 경우라 외국인토소유금지의 시행에는 별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차준혁이 토지개혁문제를 크게 걱정하지 않고 말을 하는 까닭은 친일파의 숙정과 탐관오리의 대대적인 비리조사로 이미 엄청난 면적의 토지를 몰수 해두고 있어서 추후 국가가 수용할 토지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대한제국토지정책은 경자유전원칙같이 투기나 재산축적의 대상물이 아닌 철저한 공적개념으로 운영될 것이니 칼 사장께서는 이점 참조하기 바랍니다.”
“예, 전하.”
칼 볼터가 소유한 토지를 어떻게 정리할지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바이페르트 영사가 차준혁에게 질문했다.
“이번에 북경에 일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청국의 실권자인 경친왕(慶親王)과 직례총독인 위안스카이(遠世凱)를 만날 일이 있습니다.”
차준혁의 대답에 칼 볼터가 끼어들었다.
“공식적인 방문이십니까?”
“되도록 조용히 다녀왔으면 하는데 북경에 있던 본국공사가 일본의 농간으로 귀국하는 바람에 두 사람에게 선을 대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들이 선을 대어 볼까요?”
차준혁이 반색했다.
“가능하겠습니까?”
“우리 세창양행본사가 천진에 있는 마이어상사입니다. 그 마이어상사에서 청국황실에서 쓰이는 서양물품을 독점납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관장하는 경친왕과는 상당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경친왕과 면담을 주선하는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긴밀한 관계라··· 아!”
차준혁은 경친왕과 긴밀한 관계라는 뜻이 뇌물을 바친다는 말이란 것을 이내 알아챘다.
청국의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수석군기대신(首席軍機大臣) 경친왕(慶親王)혁광(奕劻)은 건륭제 당시 최고의 탐관이었던 화신(和珅)보다 더한 만청제일의 탐관으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다.
1894년 경친왕에 봉해진 혁광은 의화단사건을 수습의 결과물인 신축조약(辛丑條約)채결의 전권대신으로 활약하면서 청국의 정치전면에 등장했고 이어서 1903년 총리격인 수석군기대신이 되면서 청국조정을 완전히 장악한다.
정권을 장악한 경친왕은 원세개의 지원 아래 이후 10년 간 청국국정을 전횡하면서 아들과 측근을 동원해 매관매직 등으로 국정을 완전 농단하면서 청국의 마지막을 가장 추악하게 장식한 주역이다.
그의 탐욕은 외국계은행 한 곳에만 맡겨진 예금이 200만 냥에 이를 정도로 그야말로 탐욕의 극치를 달렸다.
이 때 원세개는 1901년 이홍장이 죽으면서 그의 직책이었던 직례총독(直隷總督)과 북양대신을 그대로 물려받아 청국군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청국은 청일전쟁 패배 후 천진과 북경중간에 대규모 군영을 설치하고 독일식 군제를 도입해 신식군대인 신건육군(新建陸軍)을 대대적으로 양성한다.
이 신건육군의 중추가 바로 이홍장이 만들었던 북양육군이다. 원세개는 이홍장에게서 관직을 물려받았고 신식군대를 양성하는 기회를 이용해 신건육군을 사병같이 완전히 장악하면서 하나의 독립된 군벌로 성장하게 된다.
1900년 일어난 의화단사건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청조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버리는 사건이었다.
부청멸양(扶淸滅洋)의 기치로 봉기한 의화단은 서태후에 의해 의군으로 불리며 서양각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북경으로 불러들인다. 북경에 들어온 의화단은 관군과 합동해 서양공사관을 습격하나 오히려 8국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격파되고 만다.
이로 인한 신축조약(辛丑條約)이 채결되었고 무려 4억5천만 냥이란 막대한 배상금은 물론 주모자처벌과 사죄사절(謝罪使節)파견, 각국공사관구역의 재설정과 열국(列國)군의 중국주둔허용 등 청국으로선 그야말로 굴욕적인 조약을 맺으며 대륙의 반 식민지화를 더 한층 심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서태후는 의화단사건으로 서안까지 피난을 다녀온 후 이화원에 칩거하면서 천은4만 냥의 한 끼 식대와 1년에 북양함대를 만들고도 남을 정도를 엄청난 비용을 물 쓰듯 쓰면서 더욱 더 사치와 향락에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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