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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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혁의 냉랭한 목소리에도 배정자의 목소리는 더욱 간드러졌다.

“전하. 저는 전하를 뵈러 온 것이 아니라 조선이 무역상사를 연다기에 호의로 이곳을 방문한 것입니다. 이점을 알아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차준혁이 다시 나서서 더 강한 어조로 말하려고 할 때 홍기훈이 차준혁을 제지하며 나섰다.

“전하. 그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홍기훈은 배정자에게 말을 건넸다.

“무슨 일로 이곳을 방문했는지 모르나 오늘은 이만 돌아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귀하께서는 누구십니까?”

“난 이곳을 관리하는 홍기훈입니다.”

“아! 홍지점장님이시군요.”

“관리자가 지점장이고 내가 홍가란 것을 알고 있는 것을 보니 일본의 정보력이 대단하군요.”

“호호! 그 정도야 조금만 신경 쓰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배정자는 그러면서 발을 뺄 기회를 잡은 탓에 한 발 물러섰다. 그렇지 않았다면 차준혁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를 일이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대화를 나눌 분위기가 아니니 이만 물러가 다음에 다시 날을 정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한 배정자는 차준혁과 홍기훈에게 날아갈 듯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히프를 일부러 씰룩이는 걸음으로 걸어가 마차에 오르는 배정자를 보고 홍기훈이 고개를 저었다.

“귀양에서 도망친 도망자신분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대담하게 방문할 수 있는지 정말 대단한 여자입니다.”

“일본이 절대 지지 않는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기 때문에 저렇게 기고만장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 상해지점이 우리 공사의 최고 거점이 될 것인데 앞으로 직원들 보안에 신경 쓰셔야 되겠습니다.”

홍기훈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정부에서는 조금 있다 새로 창설할 중앙정보부요원들을 보내준다고는 하는데 지금 당장이 걱정입니다.”

“그렇다면 급한 데로 황제께서 운용하던 비밀첩보조직인 익문사(益聞社)요원들을 활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익문사가 황제의 비밀첩보조직이었습니까?”

“익문사(益聞社)가 대외적으로는 통신사를 가장하고 있지만 황제의 정보조직으로 국내는 물론 러시아·일본과 이곳 상해와 북경, 천진 등 청국에도 몇 명의 요원이 주재하고 있습니다.”

“상해는 몇 명이 상주하고 있습니까?”

“2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렇지 않아도 이곳 사정에 어두워 애를 먹고 있었는데 익문사 요원들이 지원해준다면 보안은 물론 여러 가지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럼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본의 압박이 심해지던 1902년 황제에 의해 설립된 익문사는 매일 사보를 발간하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통신사를 가장한 황제직속 첩보조직이었다.

총 61명으로 구성된 요원들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주재하며 정보수집활동을 했었으며 이번에 새로 발족하는 중앙정보부에 통합될 예정이었다.

일본조계일본군주둔지로 돌아온 배정자는 주둔군사령관 마쓰시마 대좌와 독대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예, 조선의 무역공사에 인사차 방문해보니 의친왕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배정자는 의친왕과의 만남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마쓰시마가 심각하게 입을 열었다.

“의친왕이 지난 5월 상해에 왔을 때는 우리에게 아주 우호적이었는데 사다꼬 양에게 그렇게 노골적으로 적대할 줄은 의외입니다. 아마 조선반도가 러시아로 넘어가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배정자는 의친왕이 자신에게 불친절하게 된 문제는 뒤로하고 의친왕에 대해 밀정으로서의 의혹을 크게 느꼈다.

“의친왕이 상해에 온 것은 아마도 뭔가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뭔가가 있다니요?”

“조선의 왕족들은 국왕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도성 밖 여행조차도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그런 처지의 의친왕이 장사를 하겠다는 공사설립 따위를 가지고 상해를 직접방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잠시 더 생각하던 배정자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분명합니다. 반드시 그를 직접 움직일 만한 무언가 큰 일이 있습니다.”

배정자의 확신에 마쓰시마 대좌가 동조했다.  “흠!~ 그렇다면 뭔가 따른 속셈이 있다는 말인데. 혹 조선이 지난번 본국의 간섭으로 각국에서 철수한 외교관문제를 가지고 서양각국과 교섭하려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는 한성에서도 충분히 교섭할 수 있는 것이라 그 일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조선이 다른 흉계를 꾸미고 있는 것이 아닌지가 염려됩니다. 조선이 이곳에서 서양제국과 흉계를 꾸민다면 대일본제국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의친왕도 분명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단 의친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하라고 지시해 놓겠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조사를 해보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고맙습니다. 각하.”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배정자는 차준혁이 상해로 온 이유를 찾아내느라 하루 종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정오가 되자 대한무역공사에는 차준혁의 예상대로 칼 볼터의 방문이 있었다. 홍기훈은 칼 볼터를 맞아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나 신약문제 만큼은 앞으로 있을 각국과의 거래관계를 들어 먼저 소개하는 것에 난색을 표명했다. 하지만 공개발표가 끝이 난후 구매에 있어서는 세창양행에 특혜를 주겠다는 말을 하자 칼 볼터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깨끗이 물러섰다. 

차준혁도 이런 거래문제는 직접 개입을 하지 않고 홍기훈의 배려를 기대한다는 말을 하는 정도로 칼 볼터를 거들었을 뿐이다.

얼마 후 칼 볼터는 자신의 말에 대한 약속을 지켰다. 그는 천진의 마이어상사에 특별 부탁하여 경친왕과 원세개의 만남을 곧바로 성사시켜 주었던 것이다. 

칼 볼터의 연락을 받은 차준혁은 일본이 자신을 감시하는 것을 직감하고는 행선지를 알지 못하게 이날 밤 바로 상해를 출발했다. 아직은 중국대륙의 육상교통이 원활하지 않아 차준혁은 경호원과 비서실직원 등 몇 명의 일행과 함께 증기선을 타고 며칠 동안 북상한 끝에 천진 항에 도착했다.

천진에 도착한 차준혁은 마이어상사의 대표 하인리히 마이어의 환대를 받으며 천진에서 하루를 묵은 후 다음날 오전 기차를 타고 출발하여 늦은 오후에 북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10월 하순의 북경날씨는 바람부터 역시 매서웠다. 

차가운 대륙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역을 나서자 본국에서 미리 연락을 받은 북경공사관직원이 몇 명의 사람을 대동한 채 차준혁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원로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저는 외무성 판임관(判任官 대한제국 하급관리 7~9급을 지칭하는 명칭) 오장경입니다.”

차준혁은 손을 내밀어 오장경과 악수를 나눴다.

“이역만리에서 혼자 고생이 많으십니다.”

청국생활이 오래된 역관출신 오장경은 악수가 어색하지 않았으나 의친왕의 공대에 허리가 더욱 굽혀졌다.

“아닙니다. 외국에 나와 있는 외교관으로 맡은바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어서 황상폐하께 불충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게 어디 귀관의 잘못입니까? 곧 좋은 시절이 돌아올 테니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황공하옵니다.”

오장경과 인사를 나눈 차준혁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자 시선을 받은 사람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익문사 북경주재 선임통신원 정화영입니다. 그리고 여기 옆에는 같이 근무하는 주명석 통신원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차준혁은 상해를 출발하기 전 만일을 위해 북경에 주재하는 익문사 통신원들을 미리 불러놓았다.

두 사람의 통신원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눈 차준혁은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올랐다.

북경에 있는 대한제국공사관은 일본의 외교 간섭으로 공사 등 주요 외교관들은 이미 철수한 상태로 통역을 담당하던 하급관리 오장경만이 상주하며 두 곳의 공관을 관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북경에는 예전부터 북경북문인 안정문 밖의 고려영(高麗營)을 비롯해 남문인 정양문 밖의 고려영 등 코리아타운과 같은 한국인집단거주지역이 북경성 밖에 몇 곳이 있었다. 한국인집단거주지역이 북경성 밖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청국이 외국인들의 북경성안에서 머무는 날짜를 1년에 46일로 철저히 제한했기 때문이었다.

본래 조선에서 온 사신들이 정식으로 묶던 곳은 회동관(會同館)이었으나 1860년 북경조약에 의해 폐지된 후 조선은 2곳의 공관을 별도로 마련했다. 

중국의 외교는 청나라말기까지 자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조공국(朝貢國)으로 취급하는 외교였었다.

이는 서양도 예외가 아니어서 서양의 강력한 항의를 계속해서 받았으나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1860년 북경조약이 체결되면서 서양은 종래와 같은 청국의 외교자세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때에 이르러 회동관도 폐지하게된 것이다.

그렇게 되자 조선은 북경성남문인 정양문 좌측 외국공관들이 밀집한 동교민항 쪽에 있던 회동남관(會同南館)을 청국으로부터 인수하여 북경주재공관으로 삼았다. 이 회동남관은 정전과 후전은 물론 72채의 객사가 딸려있는 상당한 규모였다.

조선은 본래부터 자금성출입을 편하게 하기 위해 자금성동문인 경문 밖에 대불사(大佛寺)와 마주하고 있는 곳에 사신이 머물던 별도의 관사가 있었고 청국에서는 예전부터 이곳을 조선관(朝鮮館) 또는 고려관(高麗館)이라 불렀었다.

이 두 곳의 공관 중 정사(正使)를 비롯한 사신들이 주로 묵었던 곳이 자금성을 드나들기 쉬웠던 대불사 앞에 있던 고려관이고 사신을 따라온 상인들이 후시무역을 위해 묵었던 곳은 동교민항에 있던 회동남관이었다.

북경주재대한제국의 정식공사관은 동교민항에 있는 제1공관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그곳은 일본공사관과 일본군병영이 바로 근처에 있었기에 차준혁은 대한제국 제2공관인 대불사 앞에 있던 관사를 거처로 정했다.

오장경은 차준혁을 제2공관에서 정사가 머물던 가장 큰 방으로 안내하였다. 차준혁이 방안으로 들어서자 정사가 머물던 방답게 실내에는 회의용 탁자가 놓여있었고 침실로 사용되는 별도의 방이 딸려있었다.

“모두 앉으시지요.”

차준혁이 의자에 앉으며 사람들이 앉기를 권했다.

그러나 관리들이라고 하나 워낙 신분차이가 난 오장경 등 세 명은 차준혁이 권하는 자리를 바로 앉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엉덩이 한 쪽만 걸치듯 앉았다.

“편하게 앉으세요.”

그런 모습을 본 차준혁이 다시 권하자 그제야 세 사람은 바로 앉으며 자세를 공손히 했다.

“북경외교가에서 우리 대한제국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지난 한 달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북경외교가는 물론 청국정부가 완전히 발칵 뒤집혀졌습니다.”

정화영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북경외교가는 물론 청국정부에 대한 설명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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