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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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분위기가 흐르자 경친왕이 깊은 한 숨을 내쉬면서 침묵을 깼다.

“후!~ 의친왕이 만주에 대해 묻는 것을 보니 뭔가 좋은 방도가 있는 것이오?”

경친왕의 질문에 차준혁은 원세개에게 목례를 했다.

“먼저 솔직히 대답해주신 원 총독께 감사드리오.”

“별 말씀을 대한제국과 우리 대청제국은 서로 순망치한(脣亡齒寒 한쪽이 어려워지면 다른 쪽도 덩달아 어려워진다는 뜻)이나 다름없는데 숨길일이 무에 있겠소.”

“순망치한이라 좋은 말씀입니다.”

차준혁은 그러면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 후 경친왕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대한제국이 일본을 한반도에서 몰아낸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거야 러시아가 도와줘서 그렇게 된 것이잖소.”

차준혁이 경친왕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경친왕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웃음은 무엇이오? 설마 대한제국스스로 일본은 몰아냈다고 억지주장을 하려는 것이오?”

“우리 스스로 일본을 몰아냈다는 말이 왜 억지주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의 군사력이야 불과 몇 만 명에 불과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또 그 병력조차도 지난 봄 대부분 해산되었다고 들었소. 그런데 무슨 군사력이 있어서 일본군을 몰아냈다고 하는 것이오?”

“전하께서는 우리 대한제국이 눈에 보이는 병력만이 전부라고 확신하십니까?”

차준혁이 자신만만하게 되묻자 경친왕은 슬며시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한국에 또 다른 군사력이 있다는 말이오?”

“청국에서 만주지역에 많은 밀정을 파견한 것으로 아는데 지난 몇 개월 동안 러시아병력이 이동한 적이 있었습니까?”

차준혁의 물음에 이번에는 원세개가 대답했다.

“러시아와 일본 양국 모두 별다른 병력이동은 파악되지 않고 있소.”

“러시아군이 우리를 도와준 적이 결코 없었으니 병력이동이 없는 것은 당연하오이다.”

이번에는 원세개가 불신이 가득한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정녕 한국스스로 일본군을 몰아냈다는 말이오?”

차준혁이 원세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원 총독께서는 지난 5월 하순 동해에서 러시아와 일본해군이 벌인 해전에 대해서 알고 있소?”

원세개는 차준혁이 웃으며 묻자 뭔가 등으로 스멀거리며 기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이 처음에는 연합함대가 실종된 것을 쉬쉬했었으나 몇 달이 흐른 지금 연합함대실종은 거의 모든 나라가 알고 있는 비밀 아닌 비밀이 되어 있었다.

“그때 일본연합함대가 러시아발트함대를 괴멸시키면서 항복을 받았다고 알고 있소.”

“그렇다면 러시아발트함대를 전멸시킨 일본연합함대는 어떻게 되었을 것 같소?”

원세개는 등에서 스멀거리던 느낌이 온 몸으로 퍼지면서 소름이 돋았고 목소리가 떨렸다.

“그렇다면 일본연합함대가 실종된 것에 귀국이 개입했다는 말이오?”

“그렇다면 원 총독께서 믿겠소?”

원세개가 불안한 느낌을 부인하려고 탁자를 내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시오?”

“한국에 전함이 어디 있다고 일본연합함대를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이오.”

“그럼 연합함대가 어디로 갔을 것 같소? 지금 일본은 러시아와 종전협상까지 결렬되어 국가적으로 아주 어려운 상황인데 아직까지도 연합함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이상하지 않소?”

“그건····”

원세개가 대답을 못하자 차준혁이 다시 몰아붙였다.

“지금까지 연합함대의 행적이 오리무중인 것을 보면 연합함대가 누군가에 의해 공격을 받아 전멸되거나 항복 했다는 것인데 원 총독은 그게 어느 나라 같소? 발트함대와 태평양함대가 전멸한 러시아는 아닐 것이고 그럼 영국이나 미국? 아니면 프랑스? 아니면 독일?”

“·····”

차준혁이 놀리듯 물어도 원세개는 얼굴만 붉힌 체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분명 연합함대가 어느 나라에겐가 공격을 당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으나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어느 나라인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원세개가 당황해 하는 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보던 차준혁이 이번에는 경친왕에게 질문을 했다.

“전하께 보여줄 것이 있는데 한 번 보시겠습니까?”

“과인에게 보여줄 것이 무엇이오?”

“사진과 서류인데 보여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오.”

경친왕의 말이 끝나자 오장경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 서류뭉치를 가져왔다. 차준혁이 서류 중에서 수십여 장의 사진을 꺼내 경친왕에게 건넸다.

“이게 무엇이요?”

“그것은 우리가 나포한 러시아발트함대와 일본연합함대함정의 사진입니다.” 

원세개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엇이라고!!”

소리친 원세개는 황급히 경친왕에게 다가갔고 경친왕은 사진을 원세개에게 건네주었다.

“이~ 이~ 이럴 수가.”

원세개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넘기며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차준혁이 가져온 사진은 연합함대와 러시아함대 중 전함과 순양함은 제외하고 구축함들만 찍혀있는 사진들이었다.

“이제 연합함대가 어떻게 되었는지 믿겠소?”

원세개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그러고는 조금 전처럼 반 공대를 하지 않고 말을 높이며 물었다.

“정말 대한제국에서 일본연합함대를 물리쳤다는 말입니까?”

원세개가 말을 높이자 차준혁도 바로 말을 높여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원 총독께서는 믿으셔도 됩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각 구축함의 재원들이 적힌 서류들을 원세개에게 건네주었다. 황급히 서류를 넘겨받은 원세개가 서류를 넘기며 놀라고 감탄하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아!~ 아!~. 이럴 수가~”

경친왕도 서류를 넘기며 경악하긴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서류를 넘기던 원세개가 고개를 들었다.

“이 서류는 모두 사실인 것은 분명하지만 본관의 솔직한 심정은 한국의 군사력을 아직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차준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과인은 아직 본론을 꺼내 놓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우리 대한제국의 군사력을 두고 그런 말씀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차준혁의 지적에 원세개는 조금 전과 달리 고개까지 숙이며 사과했다. 

“본관이 너무 흥분해 실수를 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통역을 하던 오장경의 어깨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나라가 힘이 있는 것이 좋기는 좋구나. 우리나라에 있을 때 무소불위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황상폐하의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기고만장해 하던 원세개의 고개가 이렇게 힘없이 숙여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며 차준혁을 바라보자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오장경은 고맙다는 뜻으로 허리를 숙이며 목례를 했다. 오장경이 왜 인사를 하는지 짐작한 차준혁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 사이 자리에 앉은 원세개가 서류와 사진을 다시 한 번 훑어보고는 조금 전과 달리 아주 신중한태도로 차준혁에게 질문했다.

“귀국이 경친왕전하께 제안하고자 하는 것을 듣고 싶습니다.”

원세개의 질문을 듣고 경친왕을 바라보자 경친왕도 말을 하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숨을 고른 차준혁이 충격적인 제안을 했다.

“만주를 우리 대한제국에 넘겨주십시오.”

“뭐요???”

“이런 미친 자가 있나!!”

두 사람은 제안을 듣자마자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하지만 차준혁은 냉정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경친왕이 살기까지 품은 채 차준혁을 노려보며 반말로 물었다.

“의친왕,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차준혁이 너무도 차분하게 대답하자 경친왕이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밖에 대고 뭐라고 소리치려하자 원세개가 황급히 나서며 제지했다.

“전하. 잠시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의친왕께서 저렇게 말도 안 되는 말을 할 때는 뭔가 생각하는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선 그 말을 들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경친왕은 원세개에게 버럭 화를 냈다.“만주를 넘겨달라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데 무슨 말을 듣겠다는 거요”

“말도 안 되는 일을 갖고 의친왕께서 일부러 북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 전하께서 잠시만 노여움을 거두시고 말을 한 이유라도 들어보시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만일 이유가 합당하지 않다면 그때 조치를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동안 원세게에게 엄청난 뇌물을 받아 왔던 경친왕은 원세개가 계속해서 만류를 하자 잠시 분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씩씩대다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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