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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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권을 갖고 북양신군을 육성하고 있던 원세개는 서태후에게 함대의 필요성을 누차 역설하면서 예산배정을 수없이 요구했으나 사치에 바쁜 서태후는 이런 요구를 번번이 묵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원세개가 사진에 찍힌 구축함을 보자 탐을 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고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이란 것을 대한제국에서는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차준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원 총독께도 좋은 선물을 준비하도록 본국과 협의해 보겠습니다.”

차준혁의 긍정정인 말에 원세개의 입이 귀밑에 걸렸다.

“아!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하하! 원 총독께서는 대한제국과 많은 인연이 있는 분인데 이번협상만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면 과인이 적극 나서서 반드시 좋은 선물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원세개는 두 손을 마주잡고 연방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경친왕부를 찾아 올 때와는 달리 대한제국공관으로 돌아가는 차준혁의 발걸음은 더할 수 없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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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비서관, 정말 수고 많았다.”

박충식은 차준혁이 가져온 청국과의 협상조약의 원문을 몇 번이고 읽어보면서 아주 흡족해 했다.

“배정자 때문에 조금 신경이 쓰이기는 했습니다만 시간이 조금 걸렸을 뿐 협상을 하는 데는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앞에 앉아 있던 육군대신 강명철이 호탕하게 웃으며 칭찬했다.

“하하하! 차 비사관이 이렇게 대단할 활약을 보일 줄 누가 알았겠나. 참으로 수고 많았어. 내가 술 한 잔 거하게 사겠네.”

“감사합니다. 근데 저 술 잘 못하는데요.”

“이보라우. 사내가 술을 못하는 게 말이 돼? 잔말 말고 오늘 저녁 당장 한잔하자우.”

흥분하자 강명철은 다시 특유의 사투리가 튀어 나왔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함께 웃었다.

“하하하하!”

한 참을 웃던 박충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폐하께 보고 드리러 가야겠네. 이 사실을 아시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차 비서관 자네도 나와 같이 동행하세.”

“예, 전하.”

11월 중순의 한성은 늦가을 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이 공사현장이었다. 

건설부의 주도로 시작된 한성개발계획 중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이 바로 대규모 하수관거공사였다. 하수구가 없었던 한성은 여름이 되면 항상 악취가 진동을 했다. 더구나 위생개념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환경이라 도성이었음에도 전염병이 수시로 발발하던 한성이라 주민생활개선을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바로 하수정비 사업이었다. 

이에 따라 한성곳곳에 있던 작은 하천들은 대부분 복개가 진행되었고 광화문 앞의 대로에는 대형 하수관거 공사를 위해 땅이 온통 파헤쳐 있었다.

이 하수관거를 중심으로 작은 하수구공사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상황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 한성의 도로는 전부 파헤쳐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정부에서는 하수관거 공사가 끝날 때까지 당분간 전차도 운행을 중지시키고 있었다. 

 광화문 앞 육조거리는 주작대로(朱雀大路)로 새롭게 명명되며 대대적인 공공기관건설도 시작되었다.

주작대로에는 보래 도로 옆으로 길게 행랑이 늘어서있어서 정부각부서가 외부와 차단되어 있었다.

이 행랑을 전부 허물어내어 정부청사를 개방하고 시야도 확보하면서 전면도로도 최대한 확대시켰다.

그러면서 후일 문화재가 될 기존건물들은 최대한 원형을 보존시키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기존건물 뒤편으로 정부의 각부서청사가 5층으로 일괄 설계되어 동시에 건설되고 있었다.

건설부는 이러한 공사를 위해 한성의 유휴인력을 일당을 지급하며 전부 동원하였고 병역대체복무자들도 대거 투입시켰다. 

박충식이 탄 마차는 이 같은 공사현장을 조심스럽게 피해서 경운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운궁 수옥헌(漱玉軒 지금의 중명전)은 보고를 받은 황제의 파안대소로 지붕이 들썩일 정도였다.

“아하하하! 정말 통쾌하구나. 차 비서관 장하도다. 정말 장해.”

“황공하옵니다. 폐하.”

“하하하! 짐이 평생 이렇게 통쾌한 일은 평생에 처음이로다. 청국이 우리 대한제국에게 만주의 주권을 넘겨줄 수 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이게 다 폐하의 홍복입니다.”

박충식이 황제를 떠받들자 황제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오. 이 모든 것이 제국의 모두신료들이 합심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오. 정말 고생들 많이 했소.”

그러자 접견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허리가 일제히 굽혀졌다.

“황은이 망극합니다.”

황제는 이전의 나약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동안 계속된 영상물시청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크게 달라져 있었고 수시로 국정홍보처에서 올라오는 자료를 보면서 한반도가 격변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황제는 이전과 달리 몸짓 하나하나에서 힘이 넘쳐났다.

“짐은 차 비서관이 어떻게 경친왕과 담판을 지어 조약을 채결할 수 있었는지 듣고 싶구나.”

“그럼 신이 상세한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차준혁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첫날 원세개와 나누었던 은밀한 대화와는 달리 만주할양조약은 쉽사리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비록 러시아가 10년 가까이 강점하고 있다고는 하나 자신들의 본향인 만주를 정식으로 넘겨주는 것을 또 다른 문제였다. 더구나 경친왕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외세가 강제로 빼앗아가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덜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였다.

이렇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 없었던 경친왕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으나 차준혁은 여기서 협상력을 발휘했다. 

경친왕에게 협상의 명분을 세워주기 위해 한민족뿐이 아니라 만주족이 성지로 삼고 있는 백두산일대를 개발하지 않고 지금과 같이 보존하기로 한 것과 봉천의 황궁과 두 곳의 청 황제 황릉도 보존시켜주겠다고 설득하면서 어렵사리 경친왕의 결심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더 문제가 된 것은 청국이 처한 서양제국에게 반식민지와도 같은 국가적 상황이었다. 

더구나 만주를 놓고 격돌하고 있는 일본과 러시아는 청국조정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기에 경친왕은 물론 원세개도 운신의 폭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약을 채결할 수 있었던 것은 차준혁의 끈질긴 노력과 더불어 군사력 증강을 원하는 원세개가 적극적으로 협상에 개입한 것과 경친왕의 끝을 모르는 탐욕스런 성품 때문이었다. 

차준혁이 상당기간 동안 끈질긴 노력으로 영토협정이 정식으로 채결되었으나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토협정의 대외적인공표는 대한제국이 러·일 양국에 승리하고 난 후로 미뤄졌으며 그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는 전부 대한제국이 책임지도록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라도 경친왕과 원세개는 자신들의 정치적인 책임을 끝까지 덜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대한제국이 충분히 감내할 조건이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할양받을 지역을 만리장성을 경계로 하자고 요구했으나 경친왕과 원세개가 자국의 방위를 이유로 강력히 반대하는 바람에 요하가 국경경계가 되어 요녕성이 절반으로 나뉜 것이었다. 그러나 북쪽국경경계를 서요하강 이북지역 전부를 할양받아 내몽골지역의 절반가량과 몽골지역의 상당부분을 얻어낸 것은 망외의 소득이었다.

그리고 협상을 주도한 경친왕과 원세개가 단지 몇 척의 배를 받고 만주를 넘겨줬다는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청일전쟁 때 빼앗긴 대만을 청국에 다시 돌려주기로 하면서 그들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다.

황제가 차준혁의 협상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다시 한 번 더 크게 치하했다.

“정말 고생했구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차비서관이 총칼을 든 백만 대군 보다 더 큰일을 해냈어.”

“과찬이십니다. 만주를 우리 제국이 정식으로 접수하려면 일본과 러시아를 물리쳐야 하는 정말로 힘든 일이 남아 있습니다.”

황제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런데 경친왕이 정말 뇌물을 좋아하는 것이 확실한 가보구나.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서슴없이 요구할 수 있단 말이더냐.”

“만청제일의 탐관이란 소문대로 경친왕의 탐욕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저도 그 정도로 막대한 양의 뇌물을 요구할지는 몰랐습니다.”

그때 황제 옆에 있던 의친왕이 거들었다.

“재물은 아무리 많아도 삼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지만 나라의 영토는 우리 후손들이 대대손손 터를 닦고 살 터전인데 재물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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