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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포병정위(砲兵正尉)로 대한제국군에서 무기와 화약을 생산관리 하던 군기창(軍器廠)소장출신의 안대형(安大亨)은 요즘 들어 정신이 없었다.
집안이 군기시 장인 출신이라 신분이 낮은 탓에 같이 임관한 동기들에 비해 진급이 한 참 늦어 다른 사람이 참령이나 정령이 될 나이에 겨우 정위로 머물러야했다. 그러면서 한직인 군기창소장에 오래 근무하고 있었으나 중인신분으로 품계가 정3품인 정위까지 승진 한 것에 그는 늘 만족해하면서 군복무에 충실했었다.
그런 그에게 한성수복은 새로운 세상의 도래였다.
황제의 칙명으로 독일연수생을 모집할 때도 그의 집안사람 중 나이 많은 사람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이 선발되었으나 그는 군인인 관계로 아예 제외되었다. 그러던 그가 한성수복과 함께 시작된 군의 대대적인 숙정작업 때 출신성분 때문에 능력에 비해 진급이 한 참 늦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단 번에 중좌로 특진되었다. 그러면서 해주에 설립된 국방과학연구소 화약제조부문 수석연구원이 되었다.
안대형의 능력을 높이 산 사람은 다름 아닌 국방과학연구소 정병일 소장이다. 정병일 소장은 군기창을 접수하는 자리에서 안대형과의 면담을 통해 그가 화약에 대해 탁월한 식견과 지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시모세화약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자 안대형은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단 번에 화약을 재현해 내고는 시모세화약이 가진 단점인 불완전성에 대한 문제까지도 지적해 내는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화약제조부분 수석연구원으로 선임한 것이다.
외부충격과 습기에 아주 약해 다루기 힘든 피크르산을 주원료로 한 시모세화약이 장약된 함포포탄은 지난 동해해전에서 러시아군이 전함에 칠해진 페인트 덕분에 소이탄과 같은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이미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불완전한 폭약이기도 했다.
해군은 이러한 함포포탄을 지난 마산수복 때 일본군이 마산 항에 건설해 놓은 화약고에서 엄청나게 많은 양을 노획할 수 있었다. 일본군이 이렇게 많은 양의 함포포탄을 마산에 쌓아 두었던 까닭은 이 시기 일본은 대한제국을 이미 식민지나 다름없기 생각하고 있었고 일본연합함대가 러시아함대를 대적하기 위한 함포사격연습장이 바로 진해만일대였기 때문이다.
일본연합함대는 몇 개월간 진해만에서 작은 무인도들을 포격지로 활용하여 수없이 많은 함포훈련을 실시했다. 이 덕분에 일본연합함대는 승조원의 포술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고 이렇게 향상된 전력으로 러시아와의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일본은 고문정치가 실시되면서 대한제국을 거의 자신들 손아귀에 들어온 것으로 단정하고 있었기에 거리낌 없이 한반도각지에 엄청난 군수물자를 쌓아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막대한 군수물자는 한반도가 수복되어 고스란히 대한제국 손에 넘어오면서 군사력증강에 결정적 도움이 되고 있었다.
일본이 한반도강점을 위해 벌이는 전쟁의 군수물자가 오히려 자신들 목줄을 죄는 명줄로 뒤바뀐 것이다. 특히 새로 보급되기 시작한 38식 소총은 만주에 주둔중인 일본군에게도 거의 보급되지 않은 최신형이었다.
신의주에서 5만정과 부산에서 2만정 등 총 7만정의 소총노획과 엄청난 양의 탄환은 대한제국군의 무장에 효자노릇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차준혁이 국정홍보처장 장주현과 함께 국방과학연구소가 있는 해주를 찾은 것은 봄이 얼마 남지 않은 2월 말이었고 장주현의 국정홍보촬영을 위한 공단방문길을 차준혁이 따라 나선 것이다.
이 들은 이번에 일본인포로들을 동원하여 경의선과 연결 개통시킨 철도를 이용해 해주에 도착했다.
열차를 내린 장주현이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하자 차준혁도 거기에 동조했다.
“기차를 타고 올 때도 그렇지만 해주가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상전벽해라더니 그곳이 바로 여기야. 여기. 이야!~ 세상에 어떻게 몇 개월 만에 이렇게 변할 수가 있지?”
“그러게 말입니다. 이야~ 자동차도 의외로 많이 보입니다.”
이들이 이런 감탄하는 말을 주고받을 정도로 해주일대는 완전히 공업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해주는 공단을 조성하면서 일본인포로를 투입하여 가장 먼저 경의선과 연결되는 철도를 부설했다.
그리고 공단 바로 인근에서 산출되는 양질의 석회석으로 시멘트공장도 건설해 정상 가동되고 있었다. 아직은 공장규모가 작아 비록 많은 양의 시멘트가 생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서 생산하는 시멘트는 아주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다.
생산된 시멘트는 일본군에게서 나포한 증기선을 이용하여 인천 등의 항만공사와 송림에 건설되고 있는 조선소와 제철소의 건설원자재로 투입되면서 해주만은 항상 수송선으로 북적였다.
거기에 얼마 전부터 서한만안주유전에서 원유가 산출되면서 경제개발은 물론 군의 전투력증강에 결정적 도움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대단위석유화학단지건설에는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해 우선 급한 대로 가솔린 등을 뽑아낼 수 있는 원유정제증류시설만 가동시키고 있었다.
미래의 지식을 활용해 시행하고 있는 국가개발 계획은 시행착오 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고 이러한 개발사업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고 있는 곳이 바로 군수공업단지가 건설되고 있는 해주일대였다.
그리고 제주도에 하선시켜 놓았던 승용차가 가장 먼저 상용화 된 곳도 한성이 아닌 해주였다.
해가 바뀌면서 정부에서는 황제에게 최고급승용차를 전용어차로 상신했고 황태자를 비롯한 의친왕과 일부 황족 그리고 총리를 비롯한 내각의 대신들에게도 각각 전용차가 지급되었다. 그러면서 전국의 공사 현장에도 군수용을 제외한 트럭이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시작했다.
승용차의 보급이 이렇게 많이 늦어진 까닭은 원료문제도 있었지만 운전기사의 부족 때문이었다.
이전시대에서야 운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이었지만 이 시대는 운전기사가 운전관이란 명칭으로 높여 지칭될 정도로 운전은 첨단기술이었다.
그랬기에 제주에 운전연수원이 설립되었으며 한성을 비롯한 전국각지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선발된 수천 명이 넘는 인원들이 몇 개월 동안 운전연수와 함께 자동차정비기술도 함께 교육받았다.
다행히 새해가 되면서 서한만의 안주유전에서 원유가 생산되자 정부에서는 2월이 되면서부터 황실과 내각대신들의 전용차는 물론 전국각지의 필요한 곳에 순차적으로 자동차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해주는 군수공업단지로 인해 물자운송과 인력수송에 자동차수요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서 정부에서는 원활한 군수물자생산을 위해 가장 많은 자동차를 배정했다. 그랬기에 다른 곳이었으면 마차를 이용해야 했으나 차준혁과 장주현 등은 역에서 떨어진 국방과학연구소가 있는 군수공업단지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연구소에 도착한 일행은 신분이 철저한 사람들이었으나 예외 없이 정문에서 철저한 검색을 거친 끝에 연구소영내로 들어설 수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장 장병일은 집무실에서 차준혁과 장주현 등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시게.”
화학지원대대장이었던 그를 전역하기 전까지 상사로 모셨던 차준혁은 장병일이 내미는 손을 반갑게 마주잡으며 인사했다.
“고생 많으십니다. 소장님.”
“하하 그렇게 보이나?”
장병일은 여기저기 구멍이 나고 누렇게 변색되어 본래의 색이 하얀색인지 분간하기도 힘든 실험복을 입고 있었다.
차준혁이 그런 그의 옷을 보고 웃으며 대답했다.
“예, 실험복이 이 정도니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충분히 알겠습니다.”
“아 이거.~”
장병일은 무안한 듯 실험복을 툭툭 털자 옆에 있던 홍보처장 장주현이 물었다.
“소장님께서 이렇게 낡은 실험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보급이 제대로 안 되고 있습니까?”
“그게 아니고 귀찮아서 그렇습니다.”
동년배의 두 사람은 서로 말을 높였다.
“귀찮으시다니요?”
“얼마 전부터 화학공업연구부서와 함께 석유화학제품에 대한 개발실험을 계속하고 있어서 실험복이 남아나지 않습니다.”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리고 바쁜데 찾아뵌 것은 이번에 우리 국정홍보처에서 군수공업단지를 대상으로 홍보물제작을 해야 하는데 제품개발에 대한 촬영을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방성에서 협조공문을 보내와서 준비는 하고 있지만 원천기술유출이 우려되는 촬영은 절대하지 말아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요. 우리가 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도 이 시대 사람에게는 획기적인 것이 하나 둘이 아니란 것은 저희도 잘 알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혹여 실수할 수도 있으니 귀찮으시더라도 촬영을 마치고 나면 반드시 저희들과 감수를 거쳐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