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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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지휘관들은 본국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어서 어렵다고 말하는 일왕의 봉칙명령에 죄송스러워 누구도 먼저 몸을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일왕에게 특별한 충성을 보이고 있는 노기 마레스케 3군사령관은 일왕의 고심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오야마 원수가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자 모두 자리에 앉읍시다.”

총사령관이 권하자 그제야 지휘관들이 몸을 풀고는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잠시 눈물을 흘렸던 3군 사령관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 대장이 무거운 표정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본국 사정이 크게 어려운 가 봅니다.”

그러자 참모장 고다마 대장이 설명했다.

“고리의 이자를 주겠다고 발행한 전시국채가 전혀 매각되지 않는 바람에 지금 전국적으로 헌금모금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총·포탄을 만들기 위해 놋숟가락까지도 헌납하라는 대본영의 지시로 열도가 격통중이라고 합니다.”

노기 대장이 고다마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렇게 많은 전시물자가 소모되리라고는 대본영의 참모진은 물론 우리 지휘관 중 그 누구도 생각지도 못했으니 지금의 어려움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소.”

노기 대장의 말에 모든 지휘관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3군사령관 노기 마레스케 대장은 여순203고지 전투에서 5만이 넘는 사상자를 낸 후 한 때 지휘권을 넘기면서 잠시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러다 봉천전투에서 본래대로 3군의 지휘권을 다시 맡아 유격전을 담당하면서 러시아군 퇴각에 결정적 기여를 하면서 승리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 후 노기 대장은 이전과 같이 ‘해군의 도고, 육군의 노기’란 말을 들었을 때처럼 최고지휘관의 위상을 다시 찾았다.

“폐하의 봉칙명령에 러시아와의 결전에 대한 하명이 있었는데 드디어 러시아와의 결전을 최종승인하신 겁니까?”

노기의 물음에 오야마가 바로 시인했다.

“그렇소. 폐하의 봉칙명령과 함께 대본영의 대육령(大陸令 대본영의 육군에 대한 명령)이 하달되었소.”

그러면서 고개를 돌리자 총참모장 고다마 대장이 다른 서류 한 장을 들었다.

“총사령관각하의 말씀대로 러시아군과 최후의 총력전을 거행하라는 대본영 총참모장각하의 대육령도 봉칙명령과 함께 하달되었습니다.”

“개전 시기는 언제로 명시되었나?”

“개전 시기는 이 명령이 하달되고 난 후 일체의 전권을 오야마 총사령관각하께 위임한다고 적시되어 있습니다.”

총참모장의 설명이 있자 참석한 지휘관들은 그제야 이번 회의가 마지막 결전을 논의하기위한 회의란 것을 알게 되었다.

노기 대장이 바로 오야마 원수에게 물었다.

“총사령관각하, 결전날짜를 언제쯤 결정하실 계획이십니까?”

“이번 결전에 모든 것을 쏟아 부으려면 아무래도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오. 그러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겠소?”

“지난 몇 개월 동안 충분히 휴식도 취하며 훈련에 힘을 쏟았으니 언제라도 전투가 가능합니다. 개전 시기가 너무 늦어지면 그동안 벼린 전투력이 하락할 수도 있으니 가능한 빨리 날을 잡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원군인 압록강군사령관 가와무라 카게아키(川村景明) 중장이 입을 열었다.

“이전의 전투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안타깝게도 아군이 보유한 야포가 러시아군보다 사정거리가 짧아 실전운용에 상당한 문제가 있습니다. 다행히도 저희 중포여단이 보유하고 있는 280미리 유탄구포(臼砲)가 그나마 위력을 발휘해 지금까지 전투에서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주는 날이 풀리면 한 달 가까이 땅이 질어서 구포의 기동은 물론 야포기동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전군의 기동력에 막대한 차질이 예상되니 이점을 개전시기 결정에 참고해 주실 것을 건의 드립니다.”

노기 대장이 총참모장 고마다 대장에게 질문했다.

“고다마 총참모장, 이곳 봉천과 하얼빈지역의 땅이 굳어지는 가장 빠른 때가 언제인가?”

“5월 초부터 중순까지는 모든 지역이 진창이라고 보시면 거의 정확할 것입니다.”

“총사령관 각하의 말씀과 가와무라 중장의 말을 종합한다면 개전 시기는 빨라야 5월 하순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본관의 예상이 맞는가?” 

“그렇습니다.”

고다마 대장의 대답에 노기 대장이 오야마 원수에게 다시 질문했다.

“각하, 두 달 후인 5월 하순이라면 개전시기가 너무 늦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번 전투는 러시아군도 총력을 기울일 것은 분명할 텐데 자칫 서두르다 대사를 그르칠 수도 있소. 본관은 철저한 준비를 한 후 전투에 임하는 것이 확실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소.”

“우리가 불리하면 적에게도 불리한 법입니다. 땅이 질면 저들의 강점인 기병대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장점도 있다는 것을 유념해 주십시오.”

“하지만 우리도 2군과 3군의 기병여단과 각 사단 기병연대가 전력에서 열외가 되지 않겠소? 이는 가뜩이나 부족한 우리 황군의 병력운용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되오.”

이렇게 까지 말을 했어도 노기 대장은 계속해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우리 기병대는 군에 들어와서 기마술을 배우고 있지만 러시아크기병대는 어릴 때부터 기마술을 배워 탁월한 기마전술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에는 카자크 백인기병대가 100여개가 넘는 것은 물론이고 또 다른 기병인 코사크기병대도 6개 사단과 2개 기병여단으로 기병집단군을 편재하고 있을 정도로 러시아군에 있어서 기병이 차지하는 전력은 아주 높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땅이 질면 아군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코사크기병대는 백러시아계통의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민족으로 구성된 기병대로 용병과 같이 돈을 받고 러시아군의 각종 전투에 참전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카자크기병대는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종족 출신들로 구성된 이슬람문화권의 군대로 시베리아개발에 결정적 역할을 한 병력이었다. 

이 카자크기병대는 처음 시베리아개발을 할 때부터 러시아에 의해 동원되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시작한 이들의 동진은 최종적으로 우수리 강 연안까지 진출했을 정도로 러시아 시베리아확장의 최선봉이었다.

아무르카자크와 우수리카자크로 대표되는 이들은 그동안의 전공(戰功)으로 그들이 거주하는 일정지역에서 절대적인 자치권을 부여받았다. 이들은 평시에는 국경수비를 전담하며 세금을 면제받았으며 전시에는 100인으로 편재된 백인기병대를 구성하여 전투에 참전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일본의 기병대는 군에 입대한 후 처음으로 기마술을 배운 탓에 러시아기병대와는 기병전력 면에서는 비교조차 곤란할 정도였다.   

예전부터 일본의 기병은 존재하고 있었지만 나라가 섬인 지리적 성향 탓에 본래부터 기병에 대한 전술개념이 아주 낮았다. 전투를 벌어지면 기병이 말을 타고 이동을 한 후 말에서 내려 전투를 벌일 정도로 기병운용은 단지 이동수단으로서의 효용가치를 지니고 있을 정도였다. 

이런 전통은 근대화이후에도 계속해서 내려왔기 때문에 일본제국군의 기병은 러시아군에 비해 전투력이 크게 뒤지고 있었다. 

노기 대장의 계속된 강력한 주장에 오야마 원수가 다시 설득했다.

“물론 저들이 기병대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나고 병력도 월등 한 것은 사실이나 문제는 가용병력이오. 우리는 봉천전투에 투입된 25만의 병력 중 7만5천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소. 그 중 부상자의 상당수가 다시 재배치되었다고는 하나 지금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최대 병력은 18만에 불과하오. 노기 대장도 알다시피 우리는 본국사정으로 더 이상의 병력보강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병력이 만주에서 가용할 수 있는 마지막 병력이라는 것을 유념해 주시오.”

“하지만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러시아도 사상자와 도망병을 포함하여 9만 여명이 열외병력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보면 적의 병력은 20만을 약간 넘을 정도일 뿐입니다. 저들도 더 이상의 병력보강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보유한 병력만으로도 목숨을 걸고 결전에 임한다면 충분히 적을 격멸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노기가 다시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주장하자 오야마는 더 이상 반론을 제기 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략수립에 대한 전권을 쥐고 있던 총참모장 고마다 대장이 노기 대장을 설득하고 나섰다.

“물론 노기 대장각하의 말씀은 단기전의 경우에는 충분히 제고해 볼 가치가 있는 작전입니다. 하지만 양군이 정면으로 맞붙을 이번 전투는 분명히 짧은 시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란 것이 총참모부의 판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대일본제국의 최고 전략인 만세돌격으로 적을 공격한다면 분명히 적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무찌를 수 있을 것이라고 본관은 확신하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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