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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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마 총참모장이 다시 노기 대장을 설득했다.

“적군이 정면격돌을 해주기만 한다면야 각하의 말씀대로 만세돌격을 감행해 적을 섬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이 지금까지와 같이 적당히 후퇴와 공격을 되풀이하면서 대적하려든다면 시간은 아무래도 적의 편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투는 분명 장기전에 돌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다마 대장이 그동안 러시아군의 행태를 들어가며 설명하자 노기 대장도 더 이상은 반박하지 못했다.

처음 러시아극동군총사령관이었던 알렉세이 쿠로파트킨 대장은 그가 참모장으로 출전했던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에서 당시 러시아군사령관이었던 스코벨레프 장군의 지적한 대로 추진력이 없었다. 그랬기에 아무리 훌륭한 계획을 수립하더라도 이를 끝까지 밀어 붙이는 결정력이 부족한 참모 형 지휘관이었다. 

이런 성격의 크로파트킨 대장이 극동군총사령관이었었던 탓에 만주에서 일본과 치른 많은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승기를 잡아놓고도 이상하게 총공세가 아닌 퇴각명령을 내려서 승기를 번번이 놓쳤다.

이 결과로 러시아군은 막대한 군수물자를 쏟아 붓고도 대부분 전투에서 늘 어정쩡하게 패전 아닌 패전만 되풀이했다. 러시아군의 이러한 이상한 후퇴전술은 일본군에게도 막대한 군수물자 소비를 초래했다. 하지만 봉천까지 일본군이 계속 진군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번에 양군 최후의 전투만 남겨 놓게 만들었던 것이다.

고다마 총참모장의 설득은 계속되었다.

“만일 충분한 전투준비를 갖추지 않고 장기전으로 돌입할 경우 여유가 없는 우리 대일본제국군으로서는 엄청난 위험부담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가 1년여의 봉천주둔기간 중 러시아와의 크고 작은 교전에서 거의 5천여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것도 러시아기병대의 치고 빠지는 전술에 의한 피해란 점을 상기해주셨으면 합니다.”

고다마 대장에게서 이 말까지 듣자 노기 대장도 더 이상 강력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없었다. 

그것은 양군이 대치한 1년 동안 여순과 봉천의 기차보급로를 러시아군기병대가 수시로 기습하는 바람에 일본군은 상당한 인명피해를 보고 있었다.

거기다 러시아극동군이 전투 중 또 다시 병력을 퇴각시키는 전술을 들고 나온다면 일본군은 싫어도 어쩔 수없이 장기전으로 돌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노기 대장이 총참모장 고마다에게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했다.

“이번에는 양군이 벌판에서 전투를 치를 공산이 아주 높소. 이렇게 평원에서 전투를 치르게 되면 보병이 주력인 아군으로서는 적의 기병대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가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수립해 놓고 있는 것이오?”

고다마 대장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번 전투는 종전의 전투와는 전혀 다른 전략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좋소, 총참모장의 계획을 듣고 싶소.”

노기의 말에 고마다 대장은 지난 몇 개월 동안 총참모부의 참모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없이 도상연습을 한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파악한 적군의 기관총은 총 겨우 60여정에 불과하며 우리 대일본제국이 보유한 기관총은 총 256정이나 됩니다. 우리 참모부는 적군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보유하고 있는 이 기관총에 대해 그동안의 전투배치방식을 전면 수정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마다 총참모장은 준비한 작전지도를 펼치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러일전쟁 당시의 보병전술은 800~1000미터 앞에서 완만한 도보로 적에게 접근한 후 200~300미터까지는 다시 빠르게 약진한다. 그 후 소총사격으로 서서히 압박하며 전진하다 100미터 내외에서 착검과 동시에 돌격하는 방식으로 이때 병력이동과 총공세는 전부 밀집대형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이는 기관총이 발달하지 않은 탓에 아직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병력운용방식으로 러시아나 일본 양군 모두 이러한 밀집대형방식으로 병력을 운용하고 있었다.

그나마 일본은 독일의 영향으로 참호구축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러시아는 전투에서 자체방어용 참호구축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으며 위장의 의미와 지형의 이용 등도 아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기관총을 운용한다면 러시아군의 강점인 기병대를 완전 무력화시킬 수 있어 본 군의 최대장점인 만세돌격이 아주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쉬운 것은 적의 기병대를 우리가 포진한 곳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우리군의 기병대가 일종의 미끼역할을 하여 적을 유인하는 방법 밖에 없어서 아군기병의 상당한 피해를 예상된다는 것입니다.”

고마다 대장의 긴 설명을 눈도 돌리지 않고 듣던 노기 대장은 그의 설명이 끝나자 크게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치하했다.

“군의 병력운용에 있어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총참모장이 조금 전 설명한 대로 기관총을 적극 운용해 적의 기병대를 일소하자는 것은 대단히 획기적인 작전수립이라 생각하오. 이런 방식으로 기관총이 운용된다면 앞으로의 전투에서 기병대는 큰 힘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 분명하고 이는 우리 군의 취약한 기병 전력을 크게 보완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오. 총참모부가 좋은 작전계획을 수립하느라 고생 많이 했소.”

노기 대장의 극찬에 고다마 대장의 허리가 깊게 굽혀졌다.

“감사합니다. 각하.”

4군사령관 노즈 미치즈라(野津道貫) 대장도 고마다의 전략을 칭찬하고 나섰다.

“총참모부가 정말 좋은 작전을 수립했습니다. 사거리가 길고 분당 발사속도가 엄청난 기관총을 전면에 배치해 기병대를 상대하는 전술이라니 야! 이거 정말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입니다.”

노즈 대장에 이어 다른 지휘관들도 새로운 작전에 대해서 치하하고 나섰다. 이곳저곳에서 칭찬하는 소리가 들리자 작전계획을 입안한 고다마 대장은 한껏 고무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고다마의 작전계획은 1차 대전 당시 적의 돌격 때 아주 큰 효력을 발휘했던 교차사격과 거의 흡사한 방식이었다. 고마다의 계획은 기관총을 교차배치 하는 획기적인 방식으로 기동력을 앞세우고 돌격해 오는 러시아기병대를 상대하자는 것이었다.

일본군은 이날 회의에서 고다마의 획기적인 작전계획을 전격채택 함과 동시에 러시아와의 결전시기를 5월 하순이후로 결정했다.

획기적인 전술의 채택과 결전시기가 정해지자 크게 흡족해진 노기 대장이 고다마 대장에게 이번에는 대한제국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조선반도에 대한 상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오?”

순간 회의장의 분위기가 싸해졌고 질문을 받은 고다마 대장의 안색도 순간적으로 붉어졌다.

“송구한 말씀이나 조선으로 내려 보낸 밀정이 하나도 돌아오지 않고 있어서 상황파악이 전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군이 완벽한 방어선을 구축했단 말이오?”

“지금으로선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기 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압록강의 길이가 무려 800km나 되는데 그 길이를 단순 간에 철망을 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병사가 도대체 얼마나 많기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오? 더구나 지금은 압록강이 전부 얼어붙어 있어서 어느 곳에서라도 도강이 가능할 텐데, 고다마 대장은 압록강을 완전히 방어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저도 그것이 이상해서 압록강군의 지원을 받아 그동안 많은 밀정을 남파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압록강을 넘어가기만 하면 생사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압록강군사령관인 가와무라 중장도 고다마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소관의 휘하에 있는 부대가 밀정안내를 맡고 있는데 밀정을 안내하던 병사들조차 압록강을 넘은 후 단 한명도 귀환하지 않고 있습니다.”

노기 대장은 더욱 의문을 표시했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침투를 야간에 할 것인데 어떻게 넘어가는 족족 연락두절이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조선에 밤을 낮같이 볼 수 있는 눈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게 이상합니다. 조선쪽을 살펴봐도 분명 강변에는 초소도 별로 관측되지 않아서 저희도 그 점을 아주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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