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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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광산을 비롯한 국내광산에서 채굴하는 은으로 대부분 충당하고 있고 부족분은 상해의 대한무역공사가 서양제국과의 교역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물품대금으로 대환하고 있어 지불에는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일부 지주들이 은이 시중에 너무 많이 풀려 은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고는 있습니다.” 

박충식이 강하게 나갔다.

“정부채권을 받지 않겠다고 해서 지급하는 은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불만을 나타내는 자들은 이도저도 못하겠다는 자들이니 이는 정부정책에 반기를 드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자들은 정식 경고를 먼저 하고 그래도 계속 불평불만을 나타내면 바로 법대로 처결하도록 조치하십시오.”

“그대로 시행하겠습니다.”

“징병에 따른 농번기 인력수급차질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지금 현역입영판정을 받은 자원들도 선별 입대시키는 바람에 대체복무자들이 너무 많아서 인력수급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군복무를 하고 나면 공직 진출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이점 때문에 대체복무보다 현역입영을 하겠다는 민원을 계속 제기하고 있어서 이를 처리하느라 일선부서에서 골머리를 썩을 지경입니다. 국방성에서는 이 민원해결에 협조를 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민영환의 제안에 김종석이 대답했다.

“지금은 전쟁을 앞둔 국가재정문제로 그들을 전부 입영시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재정이 확충되는 대로 입영탈락자를 대상으로 재 입영신청을 받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민영환이 고개를 갸웃했다.

“적과의 전쟁을 앞두고 있는 마당입니다. 병력은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전 같은 구식전투일 경우 죽창만 들려서라도 전장에 내보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일반병사에게도 전부 소총 등의 개인화기를 지급해야 합니다. 더구나 병력을 유지하는 것 만해도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데 우리 제국은 아직 국가예산이 충분하지 못해 최대한 국력에 맞는 효율적인 병력운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일본이 러시아와 맞서겠다고 쓸데없이 병력만 무지막지하게 징병하면서 지금 전비문제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을 반면교사로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민영환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본관이 거기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아닙니다. 각자의 전문분야가 있으니 내무상께서는 염두에 두지 마십시오.”

1기 내각이 들어서고 총리인 박충식이 가장 강조한 것은 내각각부서의 철저한 전문성확립이었다.

이를 위해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시절 한 달에도 수시로 고위관리들의 자리가 바뀌던 인사를 철저히 배격했다. 각 성의 대신들에게 적어도 몇 년간 직위를 보장해주면서 전문성을 확보할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은 물론 부서를 철저히 장악을 할 수 있도록 인사문제를 비롯한 많은 독립적 권한을 부여해주었다. 

이랬기에 문관출신으로 병조판서를 거쳤던 민영환이었지만 이제 국방성은 군 출신이 맡아야 하는 완전한 전문부서로 인식하게 되었다. 민영환 자신 또한 내무행정을 담당하기 위해 신군이 넘겨준 행정관련 전문서적을 공부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밤을 새우고 있었다.

박충식은 두 사람의 대화를 흐뭇한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다 이번에는 이상재에게 질문을 했다.

“재무상.”

“예, 전하.”

“통화개혁과 은행설립 그리고 도량형도입 상황은 진척이 어떻습니까?”

이상재가 준비한 서류를 넘기며 설명했다.

“통화개혁은 지난해 일본이 추진하는 방식 그대로 시행하고 있어 큰 문제는 없지만 시중에서는 일본이 시행한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일본화폐로 교환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의견들이 크게 설왕설래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절 대한제국의 통화정책 실패가 결국 국가의 경제난으로 이어졌습니다. 일본의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통화개혁이 시행되었지만 경제도약을 위해서 통화개혁은 반드시 시행해야할 국가시책입니다. 교환되는 화폐가 비록 일본제일은행권이기는 하나 수복을 하기 전 이미 교환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경제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일단은 모든 교환을 마치고 난 후 새로 설립하게 되는 대한제국은행권으로 다시 교환해 주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니 걱정 마시고 그대로 밀어붙여 주십시오. 그리고 경제 안정을 위해서는 화폐교환을 최대한 빨리 마치는 것이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더욱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대한제국은 한반도를 수복한 후 일본이 추진하던 통화개혁을 그대로 진행했다. 그것은 통화개혁이 실시되고 3개월 후 한반도가 수복되었기에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신정부는 대한제국 현 상황에서는 화폐개혁을 그대로 실시하는 것이 경제에 도움이 되었기에 일본이 추진한 일이기는 하나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단지 교환방식을 완전히 교정하여 국내자본을 몰락하게 만들려던 일본의 방식을 배재하고 모든 백동화를 상태에 관계없이 전부 1:1로 교환해 주었다.

거기에 본래 일본이 거의 헐값으로 교환해주거나 보관 상태에 따라 아예 교환을 해주지 않기로 했던 상평통보를 비롯한 엽전도 전부 시세대로 교환해주자 각 지방 토호와 지주들이 보관해온 엽전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엽전이 쏟아져 나온 까닭은 정부가 시행한 강력한 화폐개혁도 큰 몫을 했지만 금년이 지난 뒤에는 엽전을 화폐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불법화폐유통범죄로 형사 처벌한다는 정부포고령 때문이었다. 

거기에 일본제일은행권의 보유량이 부족하여 엽전의 교환을 전부 은(銀)으로 정량교환해준 것이 화폐개혁성공의 결정적 작용을 했다. 토호나 지주들이 보관해왔던 엽전들은 화폐의 의미보다 재물의 의미가 더 컸던 탓에 은과의 교환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광속에 썩히고 있던 엽전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렇게 교환된 엽전 중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엽전을 재외하고는 전량이 해주로 보내져 총탄의 재료로 녹여졌다.

신군의 입성 후 이러한 정상적인 화폐개혁에 희비가 교차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다름 아닌 종로상인들이었다. 

일본대장성 주세국장(지금의 국세청장)출신의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가 대한제국 탁지부(지금의 재경부)고문으로 부임하면서 추진한 화폐개혁은 철저하게 식민지정책을 위한 것이었다.

일본은 화폐개혁으로 민족자본을 붕괴시켜 경제식민지를 먼저 이루고자 했다. 본래역사에서는 메가타 다네타로가 탁지부고문으로 근무한 3년간 일본의 야욕은 완전한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경제는 완전히 껍질만 남은 채 일본경제에 철저한 종속관계로 떨어진다. 

어떻게 보면 대한제국침략의 진짜 원흉은 이토 히로부미가 아니라 대한제국의 경제적 목줄을 죄어버린 메가타 다네타로가 제일의 원흉이었다. 

이 메카타가 무너트리려한 민족자본의 대표적 자본이 바로 종로상인들이었다. 금난전권으로 대표되는 육의전부터 시작된 종로상인들의 정보력은 대단해서 화폐개혁 때 백동화가 상중하로 편차교환 된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했다.

종로상인들은 기존의 화폐가 편차교환이 되면 자신들의 자산가치가 크게 하락할 것을 우려해 자신들이 보유한 자산으로 화폐개혁직전 한성일대 토지를 무차별 매입했다. 이들이 이렇게 단기간에 농지와 상업용지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토지를 매입하는 바람에 한성일대의 지가가 폭등할 정도였다.

하지만 한반도가 수복되며 상황이 완전 반전된다.

화폐교환은 일제와 전혀 다르게 정상적인 교환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북진을 위해 모든 것이 전시체재로 전환되면서 경제가 급격하게 활성화되자 종로상인들은 곧바로 유동성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던 차에 토지개혁에 대한 정보까지 입수하자 이들은 어쩔 수없이 매입했던 토지매각을 서두르게 되자 이번에는 지가가 대폭락했다.

이러한 지가대폭락으로 파산하는 상인들이 속출했지만 정부는 파산하는 상인들에게 일체의 혜택을 베풀지 않았다. 파산한 상인들 대부분이 정경유착으로 구정권과 결탁했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구정권아래서 권력과 결탁하며 온갖 혜택을 누리던 상인들이 상당수 물갈이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신흥 상인들이 대거 새로 등장했다.

박충식이 다시 재무상 이상재에게 질문했다.

“대한제국은행권은 언제부터 발행할 수 있습니까?”

“독일에서 들여온 화폐제작기계가 시험가동하고 있고 화폐발행에 필요한 원료수급도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으니 늦어도 9월 이전에는 제국화폐를 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일반은행설립도 서둘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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