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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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렇지 않아도 송상을 비롯한 몇 개 상단에서 민간은행설립신청서류를 우리 재무부에 제출해서 지금 검토 중에 있습니다.”

이 당시 한반도에는 일본제일은행을 비롯한 제 18은행과 50은행 등의 일본은행이 전국의 조계지를 중심으로 지점을 설치운영하고 있었고 민간자본으로 출자한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과 한성은행(漢城銀行)이 설립되어 있었다. 

하지만 중앙은행역할을 하고 있던 일본제일은행은 물론이고 일본민간은행과 두 곳의 민간은행은 친일파 숙정작업 때 대부분의 은행 주요관계자들이 연루되어 체포되었었기에 한반도수복 후 처음에는 거의 폐쇄상태였다.

은행폐쇄는 일본의 계속된 수탈로 가뜩이나 열악해진 경제상황에 자칫 큰 주름살이 될 수 있는 문제였기에 재무상 이상재는 서둘러 군부의 지원을 받아 은행 업무를 재개시켰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대한제국중앙은행인 제국은행설립과 더불어 새로운 민간은행 설립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었기에 정부에서는 민간은행설립을 경제정책역점사업 중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박충식은 재무성에 제출한 서류를 들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보다 많은 분이 신청을 했군요.”

“그렇습니다. 이전과 달리 철저한 금산분리정책시행으로 신청자가 적을 것을 걱정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송상을 비롯한 경향각지의 상단들과 자본가들이 은행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박충식이 넘기던 은행설립신청서류 중 한 곳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분 혹시 아십니까? 은행장이 될 사람이 특이하게도 중추원 의관출신입니다.”

박충식이 내민 서류는 한일은행(韓一銀行)설립에 관한 서류였고 은행장으로 조병택(趙秉澤)이란 인물이 적혀 있었다. 

이상재가 고개를 갸웃하다 이름을 기억해 냈다.

“아! 이분 칙임관(勅任官)으로 종2품 중추원의관을 지내신 분으로 저와는 약간의 안면이 있는 분입니다.”

“초기자본금이 15만원이면 상당한 금액인데 중추원 의관인 사람이 이 많은 자본금을 충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상재가 서류를 훑어보며 설명했다.

“조병택씨 본인도 본래재산이 많지만 여기 같이 참여한 30명의 발기인들 대부분이 자산가들이라 자본금확충은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한일은행(韓一銀行)설립에 전하께서 유독 관심을 보이시는 다른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다른 서류는 대부분 송상 등 상인들이 신청을 했지만 이 서류만 특이하게 관리출신이 신청을 한 것이라 관심이 간 것뿐입니다.”

“전하께서 관심을 가지신 서류이니 신경 써서 챙겨보겠습니다.”

재무상 이상재가 배려하는 말을 하자 박충식이 딱 잘라 거절했다.

“아!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이고 알더라도 원칙대로 진행하셔야합니다. 이런 일일수록 절대 예외는 없습니다.”

“예, 전하.” 

1906년 1원은 지금의 가치로 25,000원정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절대평가가치 일뿐 지금의 도지사격이었던 관찰사 월급은 40원이고 군수는 고작 28원이었다. 관찰사의 월급 40원을 25,000원으로 환산하면 1,000,000원의 가치가 되나 이는 지금의 급여체계로 봐서는 1/10정도에 불과한 금액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상대적 가치로 환산한다면 1원은 25,000원이 아닌 250,000원 정도로 평가는 것이 지금의 물가사정과 급여체계에 비췄을 때 적정한 평가라 할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 화폐개혁 때 교환된 백동화는 2500만원으로 지금의 절대가치로는 6250억 원이지만 상대가치로는 그 열배인 6조2500억 원이다.

대한제국의 경제가 아무리 규모가 작다고 하더라도 이정도 밖에 화폐교환을 못했다는 것은 일본이 갖은 방법을 동원하며 얼마나 철저하게 민족자본을 억누르려 했었는지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대한제국경제를 무너트렸던 메가타 다네타로는 월급으로 800엔(1엔≒1원)과 관사유지비 100엔 그리고 활동비 300엔 등 총 1200엔(지금시대 상대가치로 3억 원)이나 되는 엄청나게 많은 월급을 대한제국으로부터 지급받았다. 거기에 일본출장을 할 때는 교통비는 물론 실비까지 별도로 지급받았다고 하니 메가타 다네타로는 그야말로 엄청난 월급을 받으면서 대한제국을 말아먹었던 것이다. 

이 메가타는 3년간의 한국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해서는 한국경제를 일본경제에 철저하게 귀속시켰다는 뛰어난 공적을 이유로 남작의 작위까지 받아 귀족으로 봉작(封爵)까지 된다. 그야말로 일본으로서는 백만 대군과도 같은 만고의 충신(忠臣)이고 대한제국으로서는 나라를 망하게 한 간적(奸賊)중 최고 간적이 바로 메가타 다네타로인 것이다.

총리부회의가 열리고 있는 이날 차준혁은 오전부터 비행선업무로 해주로 출장을 나와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는 지난 8개월 동안 밤낮없이 노력한 끝에 드디어 비행선개발을 끝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비행선시운전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헬륨가스를 주입하고 있었고 차준혁이 도착했을 때는 가스주입의 막바지에 놓여있었다.

차준혁이 비행선을 둘러보며 그 크기에 감탄했다.

“이야~~ 비행선크기가 상당합니다.”

차준혁이 놀랄 정도로 비행선은 길이만도 70미터에 이르렀으며 좌우로 4개의 엔진이 달려있었다. 

비행선의 설계와 제작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던 최경석 공군대신이 설명해주었다.

“비행선이 이 정도는 그리 큰 규모는 아니야. 독일의 체펠린백작의 설계방식인 철골을 조립해서 서로 연결하는 경식(硬式)구조방식을 전용해서 제작했기 때문에 규모를 더 크게 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 형편에 맞지 않아 오히려 작게 만든 것이라네.”

“그렇습니까?”

“기록에 의하면 체펠린사가 제작해 대서양정기노선에 취항시켰던 비행선은 길이만 해도 240여 미터였다고 하더군.”

“이야!~ 240미터라면 축구장 2개보다 긴 길이가 아닙니까? 비행선규모가 대단했었나봅니다.”

“대단했겠지. 기록에 의하면 체펠린비행선으로 20일 넘게 착륙도 하지 않고 세계 일주를 했다고 해.” 

“예~, 그렇게 긴 시간동안 무착륙 세계 일주를 하려면 많은 화물을 실어야 했을 테니 크기가 그 정도는 되어야했겠습니다.” 

“우리도 시간만 충분하고 수요만 있다면 비행선을 대형으로 제작할 수 있겠지만 만주수복작전에 당장 투입하기에는 저 정도 규모로 해서 생산대수를 늘리는 것이 훨씬 유용할 것으로 판단해서 크기를 조정한 것이라네.”

“그러셨군요.”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앞에는 같은 크기의 비행선 3척이 나란히 가스를 주입받고 있었다.

“저 정도 크기면 공중에서 어느 기간 동안 체공할 수 있고 속도는 얼마나 납니까?”

“확실한 체공시간은 시험비행을 해 봐야 알겠지만 엔진연료만 있다면 만주일대와 동시베리아정도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것이야. 그리고 속도는 좌우에 부착된 4대의 엔진을 전부 가동한다면 시속 200km는 충분히 넘을 수 있을 것이네.”

“무한정 떠 있을 수는 없나봅니다.”

차준혁의 질문에 최경석이 웃으며 설명했다.

“당연하지. 가스가 주입되어있는 기체실의 외피가 이중구조고 철저한 밀식을 했다고는 하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유실되는 가스는 어쩔 수 없어. 물론 싣고 있는 여유분가스로 압력이 떨어질 때마다 수시로 보충은 하겠지만 그것도 분명 한계가 있어서 무한정 떠 있을 수는 없어.”

차준혁은 그래도 비행선이 대단해 보였다.

“설명해 주신대로만 되어도 이번 북진에서 대 활약이 기대가됩니다.”

“이번 시험비행이 성공을 거두고 원자재수급만 원활하다면 동일규격으로 분기별로 3척씩의 비행선이 제작될 수 있을 수 있어서 앞으로 비행선의 활약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야.”

“분기별 3척이면 매월 1척의 비행선이 제작 되는 것입니까?”

최경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3척을 동시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매월이 아닌 분기별 생산을 할 수밖에 없어.”

두 사람이 이런 대화를 주고받고 있을 때 국방과학연구소장 정병일이 다가왔다.

“무슨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계시기에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신 겁니까?”

최경석이 정병일의 물음에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비행선의 재원에 대해 차비서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네. 근데 무슨 일로 우리를 불렀어?”

“항공연구부에서 가스주입과 엔진연료주입을 끝마쳤다는 신호가 들어왔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던 최경석이 반색했다.

“아! 그래. 그럼 시승해야겠군. 차비서관도 동승할 텐가?”

차준혁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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