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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오늘 하루의 정찰로도 비행선을 띄워야 하는 이유가 더 분명해졌습니다.”
최경석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거리정찰활동이나 대규모폭격을 수행하는 데는 회전날틀보다 이 비행선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니 앞으로 활약을 기대해도 좋을 걸세. 더구나 차 비서관 자네가 청국과 맺은 조약의 영토를 전부 수복하고 나면 넓어진 영토방어를 위해서는 비행기가 개발된 후에라도 비행선의 활용도는 당분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확신하네.”
장병일 소장이 마무리 짓듯 말했다.
“어쨌든 이번 전쟁에서 웅비비행선이 대활약을 하게 되면 앞으로 각국에서도 비행선제작에 열을 올릴 것은 분명하겠습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 같은 정도의 비행선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내연기관개발과 같은 여러 기술들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제작이 그렇게 쉽지 많은 않을 것이야.”
“그렇다면 수출요청이 들어올 수도 있겠습니다.”
“나중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거기까지는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비행선은 압록강하류 신의주방면에서 시작한 정찰이 압록강을 따라 북상하며 계속되었다. 일본군방어선은 일본군이 주둔해있는 안동지역을 벗어나고도 한 참 동안 더 이어져 있었고 산악지형이 나오면서 끝을 맺었다.
그렇게 압록강을 둘러본 웅비1호는 곧 기수를 돌려 해주로 귀환했다.
비행선개발은 한반도 수복 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던 신문사의 정보망에 곧바로 포착된다.
하지만 국정홍보처는 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비행선개발은 나라를 뒤흔들 대단한 뉴스였으나 국정홍보처는 각 신문사에 국가기밀을 이유로 적극적인 보도통제를 요청했다. 각 신문사에서는 당연히 이 보도통제요청을 수용했고 그러면서 개발소식은 곧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비행선은 이날부터 매일 시험비행을 하며 기체점검을 실시했고 일주일간의 점검을 끝내고는 3척 모두 실전에 배치되었다. 이때부터 만주상공은 대한제국의 하늘이 되었다.
5월에 접어들면서 대한제국은 북진준비를 위해 용산의 국방성에 삼군합동지휘본부가 설치되었다.
삼군합동지휘본부는 일본주차군사령부건물에 터를 잡았다. 대한제국이 이렇게 주작대로에 있는 원수부건물이 아닌 용산에 지휘본부를 설치한 것은 당연히 기밀유지 때문이었다.
경복궁 앞 주작대로일대는 금년 초부터 시작된 공사로 인해 완전히 공사판으로 되어 있어서 비밀유지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랬기에 한반도수복 후 대한제국동향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주한외교사절들의 시선을 완전히 차단시킬 수 있는 용산에 지휘본부가 터를 잡은 것이다.
용산은 이미 일대가 일본군이 설치한 철조망이 그대로 둘러쳐져 있었다. 국방성과 각 군 본부 건물의 건설은 지하벙커 등의 특수목적의 군사시설물도 같이 지어져야 했기에 공병대가 담당하고 있어서 외부인이 월담하지 않으면 내부 상황을 염탐할 방도가 전혀 없었다.
만주에 전화의 불길이 본격적으로 점화되기 직전인 5월 25일 총리대신 박충식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용산의 합동지휘본부에서 개최했다.
국민의례를 마치자 합동지휘본부총참모장 송의식 장군은 가장 먼저 수십 명의 전군 주요지휘관들에게 만주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의 양군 대치상황으로는 봉천과 하얼빈의 중간인 길림성 장춘일대가 양군최초 격전지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육군대신 강명철이 의문을 제기했다.
“본래는 하얼빈인근이 양군최초격전지로 유력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는 총참모부에서 그렇게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상황변화가 파악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화면을 보십시오.”
송의식이 가리킨 곳은 대형모니터로 이미 영상을 비추고 있었다.
“지금 보시는 장면은 얼마 전부터 실전 배치된 웅비비행선이 러시아와 일본주둔지를 촬영한 화면입니다. 그 중 일본군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송의식의 말이 끝나자 화면은 바로 일본군이 주둔해 있는 봉천지역 일대가 보여 지기 시작했다.
화면은 봉천시내의 일본군총사령부와 봉천성 밖에 주둔해 있는 일본군 각 군사령부 그리고 그들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들이 비춰졌다.
한동안 일본군의 상황을 바라만 보고 있던 송의식이 지휘관들에게 질문했다.
“이 화면을 보고 뭐가 느껴지시는 것이 있습니까?”
“아니? 일본군이 수비대형을 훈련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한 사람은 국방대신 김종석이었다.
“바로 보셨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일본은 지금까지 무모할 정도의 공격일변도의 전투를 전개해왔었는데 어떻게 수비대형을 훈련하고 있는 것입니까?”
“다음 화면을 보시면 일본군이 왜 수비대형을 훈련하는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송의식의 말이 있자 화면은 다시 변해 다른 장면을 보여줬다.
그 장면을 보고 놀라서 입을 먼저 연 것은 박충식이었다.
“아니? 저건 교차사격진형이 아닌가?”
박충식의 의문에 송의식이 바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일본군이 지금 포진하고 있는 방식이 바로 기관총을 이용한 교차사격진형입니다.”
웅성웅성
송의식의 설명을 신군출신 지휘관들은 바로 알아들었으나 대한제국군출신 지휘관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송의식이 미리 준비된 대형도면을 펼치며 설명했다.
“이 교차사격전술은 십자포화전술이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 이 전술은 전방에서 집단으로 공격해 오는 강력한 적을 이 도면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배치된 진지에서 유효사거리가 긴 기관총을 전면배치하여 적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전술입니다.”
송의식의 설명에 대한제국군출신 지휘관 중에서 하날 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아! 저렇게 기관총이 배치된다면 기병들이 저 지역을 돌파할 때 엄청난 타격을 보겠습니다. 아니 제대로 돌파하지도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감탄한 사람은 시위연대 연대장으로 한성수복에 큰 공을 세워 장성진급과 함께 여단장에 임명된 이근형 소장이었다.
“잘 보셨습니다. 이런 배치방식은 기병에게는 가히 천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저러한 전술이 앞으로 계속 실전 배치된다면 이제 전장에서 기병의 존재감은 상실되고 말겠습니다.”
“맞습니다. 아직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당분간 기병의 수요는 계속되겠지만 이런 배치방식을 활용하여 교전을 하게 되면 전투에서는 더 이상 기병이 이전과 같은 압도적인 공격력을 보이지 못할 것입니다.”
일본군이라면 이를 갈던 육군대신 강명철도 교차사격전술을 보고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일본군에도 인재가 있었군요. 어떻게 예상하지도 못한 저런 교차사격전술을 연구해 낸 것을 보니 모두 무식한 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송의식이 그 말에 공감을 표시했다.
“일본군참모들은 일본군에서는 그래도 최고 엘리트라고 인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어쨌든 대단합니다.”
강명철의 감탄에 신군출신지휘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교차전술은 1차 대전부터 실전에 도입된 전술이라는 것을 신군출신지휘관들은 알고 있었기에 일본군의 노력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국방대신 김종석이 교차전술을 개발한 일본군의 상황을 추측하였다.
“이번 전투에서 일본이 패전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절박함과 기병이 강점인 러시아군에게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맞물려 교차사격전술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송의식도 그 말에 동조했다.
“바로 보셨습니다. 여러 절박한 상황들이 맞물려 일본군참모들이 저런 생각지도 않은 최선의 결과물을 생산한 것 같습니다.”
김종석이 고개를 끄덕이다 질문을 했다.
“저 배치진형을 보고 일본군이 하얼빈까지 진군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을 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저희 참모부에서는 공격일변도의 전술을 펼치던 일본군이 최초로 자신들이 매복하고 있는 지역으로 적을 끌어들여 섬멸하는 방식으로 전술을 변화한 이상 구태여 병력의 피로감을 높이면서까지 하얼빈으로 진군하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을 했던 것입니다.”
송의식의 설명에 김종석은 물론 강명철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주었다. 그러나 이근형 소장은 우려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총참모장님. 아군도 교차사격지역을 돌파하려면 막대한 인명피해를 보게 되는 것 아닙니까?”
“물론 아무 준비 없이 무모하게 정면 돌파한다면 그렇겠지만 우리 국군은 그에 대한 대비는 이미 해 놓았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근형 소장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걱정이 완전 가셔보이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송의식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저 교차사격은 전방지향전술이라 압도적인 속도를 앞세운 기병이나 밀집대형으로 돌진하는 보병에게는 치명타를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군은 앞으로 적과 교전을 하게 되면 먼저 공중폭격과 함께 사거리가 월등한 대포의 포격을 실시한 후 장갑차와 전차 등 기계화 부대를 앞장세워 돌격하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활지에서 적의 기관총과 우리 보병들이 직접 마주치는 상황은 크게 많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송의식의 상세한 설명이 있자 이근형을 비롯한 대한제국군출신지휘관들 표정이 그제야 풀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