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회: 4권-20화 -->
송의식은 그런 대한제국군출신 지휘관들의 모습을 바라 본 후 적기(適期)에 비행선을 개발한 공군의 공을 치하했다.
“이번에 일본군의 전술변경을 이렇게 일찍 발견해서 대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비행선개발을 적기에 성공시킨 공군의 공입니다.”
짝! 짝! 짝! 짝!·······
송의식이 이렇게 추켜세우자 회의실은 곧 박수로 뒤덮였고 최경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에게 목례하는 것으로 감사의 인사를 대신했다.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이번에는 박충식이 나섰다.
“양군의 교전이 언제부터 개시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가?”
“그것도 화면을 보시면 바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송의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이 다시 다른 장면을 비춰졌고 그 화면에는 일본군의 병력이동 장면이 화면에 길게 이어져 나왔다.
“보시다시피 일본군은 어제부터 병력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일본군의 이러한 병력기동은 분명 러시아군수뇌부에게도 보고되었을 것이니 러시아도 오늘 내일 중에 본격적으로 병력이동을 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 상태라면 앞으로 이달이 가기 전 장춘일대에서 양군이 최초로 교전을 하겠군.”
“그렇습니다. 저희 총참모부의 예상도 개전 시기를 5월31~6월5일사이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박충식이 이번에는 국방대신 김종석에게 질문했다.
“국방상, 각 군의 준비태세는 문제없겠지?”
“육군상황이 조금 미진한 것을 걱정입니다.”
대한제국은 본래 대한제국군재소집과 함께 실시된 징병으로 상당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본래계획은 1차로 20만의 병력을 확보하는 것이었으나 실제는 10만 명을 확보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이렇게 계획보다 병력이 적게 확보된 이유는 개인화기개발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연화약은 국방과학연구소 안대형 수석이 이끄는 화약개발부의 활약으로 이미 개발을 완료했다.
그 덕분에 총탄과 포탄 등은 원료공급이 충분하게 이뤄지고 있어서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가 있었으나 개인화기개발에 필요한 제강기술이 전혀 없었던 대한제국으로는 개인화기개발이 계속 늦어지면서 병력확충에 걸림돌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독일은 물론 대한제국과 별로 가깝지 않던 프랑스에게까지 소총판매를 타진했으나 일본의 눈치를 보던 양국의 거절로 수입이 무산되면서 병력증강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었다. 소총수입협상을 하는 중에도 국방과학연구소에서는 개인화기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철을 다룰 수 있는 기술자가 절대 부족하여 지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최고의 장인들인 군기시장인들이 전부 독일연수를 떠난 마당이라 한성일대에는 변변한 장인들조차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동안 전국 각지를 수소문해서 나름대로 기술이 있다는 장인 100여 명을 끌어 모으고 독일에서 프레스기계 등 공작기계를 수입하고 소총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기술숙련도는 초기단계를 겨우 면한 정도에 불과했다.
“우리가 국제상황을 너무 간과해서 벌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지.”
박충식의 자책하는 말에 송의식이 고개를 숙였다.
“총참모부가 그러한 상황을 미리 예상 못해 송구합니다.”
“아니야. 그만큼 대한제국의 위상이 저들에게는 일본에 비해 크게 미치지 못한 탓을 해야지.”
육군대신 강명철이 두 사람을 위로하며 나섰다.
“두 분 너무 크게 염려하지 마십시오. 1차 배치된 10만 명의 병력은 구대한제국군 출신병력과 전투경험이 있는 활빈당이나 의병 출신 등이 자원입대한 병력이라 사기나 전투력에서는 최상의 병력입니다. 더구나 소총지급이 늦어져 모의소총으로 훈련을 받고 있지만 개마고원일대에서 지금도 훈련에 여념이 없는 10만 병력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병력은 개인화기만 지급되면 그 즉시 상시전력화 할 수 있는 병력입니다.”
대한제국군출신 이근형 소장이 강명철 육군대신의 말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그렇습니다. 전방에 배치된 10만 병력은 지금 당장 러시아나 일본과 정면대결을 하더라도 절대 밀리지 않을 강군입니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세계최강의 친위군단과 특전군단이 있지 않습니까?”
이근형 소장이 이 말을 하자 회의에 참석한 지휘관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 차올랐다.
신군이 육군병력을 편성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사단이상의 대규모부대를 지휘해본 경험이 있는 지휘관의 절대부재였다. 구대한제국군에서는 연대를 직접 지휘해본 정령(正領 대령계급)이상의 지휘관들이 상당수 있었으나 대부분 친일파로 변절되었거나 권력과 결탁하여 승진한 자들로 숙군작업 때 예편되거나 친일죄수로 죄 값을 치루고 있었다.
전쟁은 지휘관의 능력과 경험이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되기 때문에 경험 있는 지휘관부재는 대한제국육군의 최대문제점이었다. 그래서 고육지책 끝에 나온 전략이 병력을 사단으로 편성하지 않고 여단으로 편성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신군과 구대한제국군 중에는 영관급 간부들이 많아서 몇 개월의 고급간부교육을 마치고 승진을 시킨 끝에 그나마 여단장과 대대장 등에 선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급간부교육은 누가누구를 가리키는 방식이 아니라 이전시대 교육을 받았던 경험자의 주도로 상호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간부들의 지휘능력 상승을 위해서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신군은 물론 대한제국군의 하사관과 사병 중 자원자들과 우수자원을 선발하여 단기간 초급간부교육을 실시한 후 각자의 경력에 맞게 하사관에서 중위까지 임관시켜서 일선부대지휘관으로 배치했다.
이렇게 해서 편성된 육군은 최고위부대로 군단을 두고 그 군단예하에 5개 여단씩을 배치했다.
이와는 별도로 신군출신들이 주축이 된 친위군단과 특전군단이 특별 편성되어 육군은 4개 보병군단과 특전·친위군단 등 6개 군단체재로 편성했다.
이근형 소장의 자부심대로 친위군단의 무력은 최강이었다. 다른 군단과 달리 친위군단은 기계화여단이 배치되어 있었다. 15대의 흑표전차와 K-9자주포 그리고 트럭을 개조해 사방을 철판으로 막아 신의주에서 노획한 호치키스기관총을 장착해 천마라는 이름이 붙여진 100대의 신형천마장갑차를 보유한 기계화여단은 이 시대에는 천하무적이었다.
강명철 육군대신이 송의식을 보며 부럽다는 듯 질문했다.
“해군은 별 문제 없이 편성을 마쳤지요?”
해군대신을 겸직하고 있던 송의식 총참모장이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행히 우리 해군은 노획한 함정의 수리를 모두 끝내 별 문제없이 3개 함대를 편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북진에는 해군의 지원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데 해군이라도 편성을 마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육군의 어려움과 달리 송의식의 설명대로 해군은 노획한 전함으로 큰 무리 없이 함대편성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제주에서부터 미리 징병을 했던 해군은 전국적인 징병 때 해안지역 병력자원 중 조각배라도 승선 경험이 있는 지원자들을 해군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경력자는 예상외로 많아 필요한 병력보다 지원자가 많아서 오히려 병력을 선별할 정도였다.
거기에 해군에서 더 다행이었던 것은 양무함 초대함장인 신순성(1878)과 같이 양무함과 광제함의 승선경험이 있던 승조원을 찾아낸 것이다.
이 두 척의 함정은 러일전쟁 초기 일본이 함정을 강제징발해가면서 승조원전원을 강제 하선시켰다.
대부분 인천인근에 거주하는 이들은 징병과 함께 전원 해군에 선발되었다. 대한제국국민 중 거의 유일하게 증기기관선을 운용한 경험이 있는 승조원들은 해군으로서는 예상 밖의 소중한 자원이었다.
일본이 대한제국해군을 아예 해체해버렸던 탓에 이들 승조원은 일반선원이라 육군과 달리 친일파를 찾아볼 수 없었던 것도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이 승조원들은 대양해군장병들의 살뜰한 보살핌으로 무사히 해상교육을 마치고 거의 전원이 하사관으로 임명되어 실전 배치되면서 경력자를 많이 필요로 하는 해군의 숨통을 크게 틔워 놓았다.
차준혁이 청국과의 협상의 대가로 7척의 함정을 청국에게 넘겨줘야 했지만 순수한 전투함정은 4척만을 인도한 탓에 노획했던 함정은 15,000톤 급의 전함 4척 등 14척의 전투함정과 20여척의 지원함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해군은 이 함정들과 지원함 그리고 대양함대함정을 분산 배치하여 3개함대로 재편했던 것이다.
동해해전이 끝난 지 1년이 지나가고 있어서 일본연합함대 기함인 미카사를 비롯해 상당히 많은 피해를 입었던 러시아전함들도 그동안 모두 보수를 끝마치고 전부 실전에 배치되어 있었다.
여기에 20대의 수륙양용장갑차와 10척의 고속침투함정을 보유한 2개 여단의 해병대가 뒤를 받쳐 주고 있어서 해군의 어깨는 한껏 올라가 있었다.
이로 인해 한반도 인근 바다는 말 그대로 대한제국해군의 바다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해상상황을 아직은 비밀로 하고 있어서 외국이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