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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 회: 4권-21화 만주결전(滿洲決戰) --> (126/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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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식은 회의실 전면에 비춰지는 요동반도 끝의 대련과 그 옆의 여순 항에서 한창 수리중인 러시아함정들을 지휘봉으로 일일이 짚고는 입맛을 다셔가며 설명했다.

“보시는 대로 이 여순 항에는 지난 양국 간 해전으로 좌초된 러시아전함과 순양함이 얼마 전부터 일본에 의해 인양되어 수리 중에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아시다시피 대형전함을 한 척을 건조하거나 구입하는 데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갑니다. 저는 이번 북진 때 이점이 반드시 참조되어 이 함정들을 노획할 수 있도록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김종석은 송의식의 주장에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 참, 있는 사람이 더하네.”

강명철도 바로 거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보시오. 송 제독. 우리 육군의 상황이 어떤지 잘 알면서 지금 너무하는 거 아니요? 얼마 전 인천앞바다에 좌초되었던 러시아순양함도 인양해서 수리한다고 들었는데 부자해군은 조금 적당히 합시다.”

강명철의 농담 섞인 은근한 야유를 듣고도 송의식은 농담인 것을 알았기에 두 사람에서 웃어보이고는 자신의 주장을 다시 펼쳤다.

“제 주장이 꼭 해군의 이기주의만은 아닙니다. 지난 번 차 비서관의 만주협상 때를 상기해보면 전함은 때로는 영토와도 맞바꿀 정도의 아주 매력 있는 대상물입니다. 특히 건함건조기술력이 떨어져 직접 함정건조가 불가능한 나라일수록 그게 더 한 법이고 말입니다.”

강명철도 이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거만하다고 온 천지에 소문났던 원세개가 함대를 보유하고 싶어서 전함 몇 척에 혹해 경친왕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으니 더 말하면 뭐하겠소.” 

“바로 말씀하신대로 함정은 정말 귀중한 자산입니다.”

이 때 대한제국군출신 중 유일하게 군단장에 오른 5군단장 양성환 중장이 질문했다. 

“송 대신님. 전함을 노획하고 나서 만일 러시아가 소유권을 주장하면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전쟁에서 노획 물자를 돌려주는 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도 저건 일반물자가 아니라 전함 아닙니까.”

“그 문제는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일본도 그 문제를 걱정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전력을 다해 인양된 러시아전함을 수리해서 자국함대로 귀속시키려고 하는 중인 것입니다.”

이 말에 신군출신지휘관들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군출신들은 일본해군이 동해해전에서 노획한 함정은 물론 여순 항과 인천에서 좌초되었던 러시아전함을 모조리 인양해서 수리·개장한 뒤 일본함대에 귀속시켰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명철이 대화의 마무리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해군전력강화는 육군의 후방이 안전해지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번 북진 때 반드시 해군의 부탁을 들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해군을 대표해 육군대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해병대사령관 공진규가 송의식을 거들었다.

“우리 해병대도 육군과 보조를 맞춰 부대를 상륙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진규의 말에 강명철이 크게 웃었다.

“하하! 알겠습니다. 우리 한번 잘 해봅시다.”

강명철의 웃음으로 분위기가 아주 밝아졌다.

공군은 상황을 확인할 것도 없이 웅비비행선의 성공으로 모든 준비를 끝마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공군의 상황점검은 별도로 하지 않았다.

총리대신 박충식이 모두들 둘러보았다.

“이제 우리도 준비를 모두 마쳤고 러·일 양국도 결전준미를 마치고 병력을 기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대한제국군은 적들이 교전을 시작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난 후 양군의 피로도가 최 정점에 올라있을 때 압록강을 넘을 것이고 시기는 대략 장마가 끝나는 7월 말이나 8월 중순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각 군 지휘관들은 지금부터 남은 기간 동안 전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시기를 대한제국총리로써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전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번 북진에 우리 대한제국의 모든 명운이 걸려있으니 반드시 결사(決死 죽기를 각오하고 힘을 다함)의 각오로 이 결전에 임해야 함을 제장들께서는 반드시 명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날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 참석한 대한제국전군지휘관들의 대답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우렁찼다.

#만주결전(滿洲決戰)

5월 31일 예상대로 드디어 일본과 러시아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만주에서의 전쟁발발소식은 신문의 호외로 순식간에 한반도전역에 알려졌다.

결전이 벌어지자 전국은 비상경계령과 함께 전시동원령이 발효(發效)되었고 정부각부서도 비상체재로 돌입했다. 이러한 정부대응과는 달리 전국은 별다른 동요 없이 차분했고 주민들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생업에 그대로 종사했다. 이렇게 주민들 동요가 거의 없는 까닭은 정부에서 미리 주민들에게 충분히 고지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호들갑을 떤 것은 대한제국국민들이 아니라 한성에 주재하고 있는 각국외교관들이었다.

정동의 영국공사관에는 전쟁소식을 들은 공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모여든 공사들 중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이탈리아 공사 모나코였다.

“만주에서 전쟁이 벌어졌는데도 한성이 이상하게도 너무 조용합니다.”

영국공사 조던이 말을 받았다.

“대한제국정부가 주민장악을 확실하게 하고 있어서 별다른 동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번 전쟁이 끝나면 어느 나라가 승리하던 다음에는 대한제국을 바로 노린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인데 한성이 이렇게 조용해도 되는 것입니까?”

모나코의 계속되는 질문에 조던은 자신이 아는 만큼 설명을 해주었다.

“대한제국이 그동안 상당한 준비를 해 온 것으로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차분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프랑스공사 블랑시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난 번 본국에 무기도입요청을 해서 거부한 적이 있는데 병력은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무장상태는 별로 좋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공사 잘데른이 블랑시의 말을 거들었다.

“우리 독일에도 무기수입요청이 있었으나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정중히 거절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요청한 무기가 소총과 기관총이었는데 본관이 알기로 어느 나라도 대한제국에 무기를 판매한 나라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블랑시 공사각하의 말씀대로 대한제국 무장상태가 크게 좋지 않을 것입니다.”

이탈리아 공사 모나코가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무장이 형편없는 데도 이렇게 조용하다면 한국이 러시아를 믿고 태연한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만으로 이렇게 조용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잘데른의 대답에 블랑시가 나섰다.

“대한제국이 병력을 해산하기 전에 3만 명이 넘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 병력과 이번에 징병한 병력을 믿고 이렇게 차분한 가 봅니다.”

모나코가 블랑시의 말에 이의를 제기했다.

“병력이 아무리 많으면 뭐합니까? 무기가 없는 데 옛날처럼 칼로 싸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 때 조던이 다른 사람들의 논쟁을 제지하고 나섰다.

“하여튼 한국이 이토록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을 보니 뭔가가 있을 것입니다.”

“조던 공사께서는 뭔가 아시는 것이 있나봅니다.”

모나코의 물음에 조던이 손사래를 쳤다.

“무슨 말씀을 저도 어찌된 상황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조던공사가 손사래까지 치며 부인하자 오히려 그게 더 이상했다. 그러자 프랑스공사 블랑시가 은근한 목소리로 추궁했다.

“강하게 부정하시는 것을 보니 뭔가 수상합니다. 각하께서는 뭔가 우리 모르게 감추고 있는 것이 있나봅니다.”

블랑시의 추궁에 조던이 정색했다. 

“본관이 감추는 것이 없습니다.”

블랑시가 더 추궁을 하려다 괜히 감정이 상할 것 같아 그만 두고 말을 돌렸다.

“그거야 시간이 지나면 알 일이고 그나저나 미국이 대한제국을 단단히 벼르고 있으니 그게 더 관심이 갑니다.”

독일공사 잘데른이 블랑시에게 질문했다.

“아! 필리핀에 대규모 함대가 들어온 것을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미국이 16척이나 되는 전함을 파견한 것을 보니 지난 해 말 미일간의 밀약이 들통 나면서 공사와 자국민들이 억류되었다 강제 추방된 치욕을 되갚을 계획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잘데른의 상황분석을 블랑시도 동의했다.

“그러겠지요. 미국이 건국을 하고 한 번도 겪지 않은 공사의 추방을 그것도 아시아의 소국이라고 치부하던 한국에서 겪었으니 자존심 강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으로서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 때문에 당장 한국을 공격해 오지는 못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블랑시가 자신의 생각을 잘데른에게 설명했다.

“미국은 이번 만주전투에서 러시아가 승리할 것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구태여 전함들이 남미를 돌아 필리핀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전쟁에서 승리하면 미국이 한반도를 직접 공격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루즈벨트의 성격으로 봐서는 그렇게 하든지 아니면 지금같이 일본을 앞세우든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실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각하의 말씀을 들어보니 충분히 일리가 있는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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