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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소장. 자네의 기병대 활약이 이번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되었다.”
사토 소장이 자세를 더욱 바르게 하며 소리쳤다.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고맙네. 잘 부탁하네.”
노기에게 인사를 마치고 본부막사를 나온 사토 소장은 곧 자신의 여단본부로 돌아가 여단 전 병력의 소집을 명령했다. 이윽고 병력소집을 마쳤다는 여단참모장의 보고에 사토 소장은 바로 밖으로 나와 자신의 애마에 올라탔다.
“다른 기병대와 합류하기 위해 이동한다. 전원 속보로 출발하라.”
다그닥 다그닥
말을 속보로 오와 열을 맞추며 전진하는 것은 상당한 기마술이 필요한 기술이었지만 일본군2기병여단병력은 그동안 훈련성과를 보여주려는 듯 질서정연하게 진군했다. 2기병여단이 속보로 말을 몰아가자 일본군 각 사단의 기병연대가 집결지로 속속 합류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대기하고 있던 1기병여단과 마지막으로 합류한 일본군기병대는 이동상황을 숨기지도 않고 그대로 노출한 채 보병병력이 포진해 있는 전장을 서서히 이탈했다.
러시아군이 알 수 있도록 천천히 노골적으로 이동하는 일본군기병대의 움직임은 당연히 러시아군이 곧바로 알아챘다.
러시아극동군 총사령관 리네비치 대장은 일본군의 기병대의 움직임에 대한 참모의 보고를 받았다.
“총사령관각하. 일본군기병대가 보병전열에서 이탈해 별도로 기동하고 있습니다.”
참모가 지도를 보고 이동경로를 설명하자 총사령관 리네비치(Linievitch)가 질문을 했다.
“그래? 병력은 얼마나 되는가?”
“병력의 숫자로 추정한 결과 일본군의 전 기병대가 움직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리네비치 대장은 일본군이 지지부진한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기병병력을 모두 동원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흠! 일본이 전황변화를 위해 기병대를 움직였군. 그렇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자네는 바로 가서 기병집단군 사령관을 불러오게.”
얼마 후 총사령관막사로 기병집단군 사령관 파벨 폰 렌넨캄프(Rennenkamf) 소장이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각하.”
“어서 오게.”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일본군이 기병전력 전부를 우회 기동시키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네.”
그러면서 리네비치 대장은 탁자위에 놓인 지도를 보고 일본군의 이동경로를 표시하며 설명했다.
설명을 듣던 렌넨캄프 소장의 눈이 반짝 빛났다.
“병력이 이렇게 우회 기동하는 것을 보니 일본군이 지지부진한 전황을 타개하기위해 대대적인 기병작전을 전개할 태세군요.”
“본관도 그렇다고 판단이 되네. 어차피 이런 대치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일본이나 우리 중 누군가는 먼저 기병을 움직여야 했는데 이번에는 저들의 엉덩이가 우리보다 가벼웠어.”
렌넨캄프 소장이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우리로서는 바라던 바입니다.”
“자네의 기병군은 즉시 출전이 가능한가?”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즉시 기병집단군을 출격해서 일본기병대를 섬멸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각하.”
총사령관막사를 나온 렌넨캄프 소장은 서둘러 자신의 부대로 돌아갔다. 그가 자신의 막사로 들어서자 알렉산드르 삼소노프 제2기병사단장과 코사크 기병사단의 시모노프 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 기병대의 출전명령이 떨어졌소.”
성격이 급한 삼소노프 제2기병사단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본군이 먼저 기병대를 움직였습니까?”
“그렇소.”
시모노프 소장이 코웃음을 쳤다.
“흥! 일본군들이 죽을지도 모르고 제 무덤을 먼저 파고 있군.”
렌넨캄프 소장은 펼쳐져 있는 작전지도를 보고는 리네비치 총사령관이 가리킨 일본군의 이동경로를 설명했다.
코사크 기병사단장 시모노프가 의아해 했다.
“일본기병대 전 병력이 같이 움직였다는 말입니까?”
“그렇다고 들었소.”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이오?”
“기병병력을 통상적으로 좌·우군으로 나누지도 않고 전 병력을 함께 기동했다는 게 뭔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시모노프 소장의 의문에 2기병사단장 삼소노프 소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일본군이 대치국면을 타개하려고 보병이 즐겨 쓰는 무작정돌격을 기병대에게도 적용시키려는 가 봅니다.”
삼소노프 소장의 말에 기병집단군사령관 린넨캄프 장군이 흠칫했다.
“죽을 각오로 무작정 덤벼드는 일본보병의 돌격을 기병대에도 적용한다는 말이오?”
2기병사단장 삼소노프 소장이 린넨캄포 사령관의 놀라는 반응에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게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우리는 아직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러시아기병대입니다. 각하.”
린넨캄포 사령관도 삼소노프 소장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하긴 일본이 어떤 수를 써도 우리의 기마술은 본질적으로 따라오지 못하지. 기마술이 떨어지는 기병이 집단적으로 돌격해 오면 좋은 사냥감에 불과할 뿐이야.”
린넨캄포 사령관의 말에 이번에는 시모노프 코사크기병사단장도 따라서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한동안 웃음을 크게 웃은 린넨캄포 사령관이 두 명의 사단장과 참모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 어쨌든 일본기병대가 몰려온다니 우리도 서둘러 마중을 나가줍시다. 참모들은 다른 사단에도 이 사실을 전부전해주고 전 병력을 이동시키라고 전달들 하게.”
“알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사단장들은 자신들 부대로 돌아갔고 참모들은 예하사단에 사령관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서둘러 막사를 빠져나갔다.
러시아극동군의 기병대는 코사크기병사단 3개와 1개의 코사크기병여단 그리고 동시베리아총독부 산하부대였던 4개 기병사단과 1개의 용기병여단이 포진해 있을 정도로 대단한 규모였다.
러시아군지휘관들이 일본군기병대를 낮춰보기는 했으나 병력집결은 빠르게 진행해서 양군은 얼마 후 벌판을 사이에 두고 대치할 수 있었다.
일본군기병대의 총지휘를 맡은 사토 소장은 망원경으로 러시아기병의 동태를 살폈다.
“흠. 적의 병력이 아군의 서너 배는 되어 보이는 군.”
옆에서 같이 전방을 살펴보던 제1기병여단장인 나가지마 소장의 목소리가 위축되어 나왔다.
“아군과 적과의 병력차가 너무 많이 납니다.”
나가지마 소장이 병력차가 너무 나자 약간 기가 질린 목소리를 내자 사토 소장이 망원경을 내렸다.
같은 소장이고 여단장이지만 사토는 나가지마 소장보다 일본육사 선배였기에 편하게 말을 했다.
“나가지마 소장. 우리의 임무가 적을 섬멸하는 것이 아니라 매복지로 유인하는 것이니 최선을 다한다면 충분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나가지마 소장은 자신이 잠깐 보인 나약한 모습을 사토가 질책을 하지 않고 오히려 다독이자 고마움을 느끼며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지휘관으로서 나약한 모습을 보여 송구합니다.”
“아닐세. 솔직히 나도 두렵고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야. 하지만 어쩌겠나. 지금 이대로 전투가 계속 지지부진하게 이어진다면 포병에서 밀리기 시작한 아군이 결국은 버텨내지 못해.”
그러면서 사토 이치로 소장은 이를 악다물었다.
“나가지마 소장.”
“예, 각하.”
“군인이 전쟁터에서 나라를 위해 죽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있는가?”
나가지마는 사토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을 하고는 목청을 높였다.
“없습니다.”
“우리는 사무라이의 후예다 전장에서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자.”
나가지마 소장이 마치 초급장교와 같이 소리쳤다.
“조국을 위한 죽음을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사토는 나가지마 소장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 주고는 말머리를 뒤로 돌렸다.
히히힝!~
푸르륵~~~
사토 소장이 돌아서자 그의 앞에는 각 사단 기병연대 연대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기병연대장들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기에 모두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귀관들은 우리의 이번 전투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 죽을 각오가 아니라 죽기를 작정하고 이번 전투에 임해야 한다. 오늘을 위해 수십 번의 예행연습을 했으니 병력기동은 어떻게 전개하는지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한 마디만 명심하라.”
잠시 말을 끊은 사토 소장이 형형한 눈빛을 연대장들과 일일이 맞추었고 그의 눈빛을 받은 연대장들은 누구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이 군인으로서 가장 큰 영광이니 귀관들은 이 전투에 나와함께 죽자.”
그러자 연대장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조국에 영광된 죽음을 바치겠습니다.”
사토 소장은 연대장들의 외침에 울컥한 심정이 들어 잠시 말을 못하고 그들을 둘러봤다.
“고맙다. 모두 자신의 부대로 돌아가 부하들을 격려하라. 공격은 앞으로 이십분 후 깃발신호로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연대장들은 각자 말머리를 돌려 자신들의 부대로 돌아갔고 이후 각 연대는 연대장의 훈시에 따라 고함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