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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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일본군 기병대가 일제돌격을 위해 병력을 도열시키기 시작하자 맞은편의 러시아기병대도 병력을 도열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십분의 시간이 흐르자 사토 소장이 일본도를 빼들었다. 잘 벼린 일본도가 칼집에서 뽑아지자 섬뜩한 소리가 뒤따랐다.

촤악!

그와 함께 옆에 있던 기수가 빨간 깃발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어느 순간 사토 소장의 일본도가 전방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전군! 돌격하라!”

“와!~~~~~”

숨을 죽이고 빨간 깃발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던 일본군은 사토의 진격명령과 함께 깃발이 전방으로 힘차게 내려지자 있는 목청껏 소리치며 말의 옆구리에 박차를 가했다.

기병이 박차를 가한 말은 힘차게 땅을 차고 나갔고 곧이어 가속도가 붙자 진격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다. 사토 이치로 소장은 자신이 직접 선두에서 기병을 이끌었다.

두 두 두 두 두········

일본군기병대의 진격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러시아기병대도 전방으로 돌진했다.

그러자 수만 마리의 말발굽소리는 지축을 뒤흔들렸고 하늘을 가득하게 먼지가 피어났다.

두 두 두 두 두········

“이야 양군기병대가 마주 달리는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구나.”

의친왕이 지면에서 마주보고 달려드는 양군 모습에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옆에 있던 차준혁도 기병이 격돌하는 장면은 처음 보는 것이라 감탄사가 터지긴 마찬가지였다.

“싸우는 사람은 죽기를 각오하겠지만 여기서 내려다보니 기병의 격돌이 정말 장관입니다.”

“그러게 말이네. 구경하는 우리는 정말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장관이야.”

일본군의 진격은 전력으로 진격을 하고 있었지만 비교적 질서정연한 반면에 러시아군은 각 사단별로 진격을 했고 100명이 1개의 부대인 카자크기병대는 러시아군을 감싸며 부대끼리 무리지어 달렸다.

두두두두두두·········

이윽고 소총 사격가능거리까지 다가선 양군 기병대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소총사격을 했다.

탕! 탕! 탕! 탕!·················

순간 양군에서 수많은 인마가 쓰러졌고 그 모습은 마치 도미노가 넘어지듯 했다.

의친왕은 그 장면을 보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아!~”

무수한 인마가 소총사격으로 쓰러졌으나 양군기병대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돌진했다.

그러던 순간 양군의 선두가 딱 마주치는 느낌이 들더니 곧 양군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의친왕이 소리쳤다.

“어? 일본군 선두가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의친왕의 말대로 삽시간에 뒤엉킨 양군은 그대로 정면격돌을 하지 않고 마치 기세에 밀리는 듯 일본군기병대의 선두가 계속 진격을 못하고 한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돌아간 일본기병대 선두는 방향을 회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러시아기병대의 옆구리를 치고 나갔다. 

아래위로 엷은 푸른색 복장의 러시아기병대와 진한청색과 빨간색 바지의 일본기병대가 격돌을 하다 옆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물감이 섞이다 옆이 터진 형상이었다.

“일본기병대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저렇게 밀리는 것을 보니 역시 기병은 러시아가 아주 강하기는 강한가봐.” 

의친왕이 지상에서 전개되는 모습을 보며 평가를 하자 차준혁이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본군기동이 뭔가 의심스럽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일본군도 러시아기병이 자신들보다 강하고 병력도 몇 배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저렇게 무모하게 정면대결을 벌인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무작정 정면대결이야 일본군이 항상 쓰는 전법이잖아.”

“그건 보병의 경우이고 기병은 전력자체가 러시아에 뒤지기 때문에 아직까지 한 번도 오늘 같은 정면격돌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저렇게 격돌하자마자 밀릴 것을 뭐 하러 정면격돌을 시도했는지 참으로 이상합니다.”

“그거야. 전황타개를 하려고 했을 수도 있지 않겠어?”

“기병 육성이 얼마나 어려운지 형님전하께서도 잘 아시잖습니까. 일본군도 기병육성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 갈 텐데 저렇게 무모하게 기병을 날려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차준혁의 계속된 지적에 의친왕도 차츰 동의했다. 

“하긴 기병도 기병이지만 전마육성도 힘이 들고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지는 과인도 잘 알고 있지. 그렇게 보니 이상한 일이군. 일본이 뭔가 다른 수를 쓰려고 하는 건가?”

“일단 지켜보시지요. 아무래도 일본이 저렇게 쉽게 허물어지고 말을 작전을 무작정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말을 주고받는 동안 일본기병대는 격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기병대에 쫓기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쫓고 쫓기는 양군 사이는 기마술이 월등히 뛰어난 러시아에 일본군이 차츰 꼬리가 잡히면서 후미의 병력이 야금야금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사토 이치로 소장은 조금 전 격돌 때 다행히 부상 없이 러시아기병대를 해쳐 나올 수 있었다. 

그는 말을 달리면서도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 

‘많은 병사들이 죽어나가고 있겠구나. 하지만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사토 이치로 소장은 이를 악물고 말을 더욱 독려했다.

“하!~ 하!~”

그렇게 어느 정도를 달렸을까 드디어 구로키 다메모토(黑木爲楨) 대장이 이끄는 제1군이 매복해 있는 곳까지 후퇴할 수 있었다. 사토 소장은 일본군이 포진해 있는 중앙방면으로 말을 몰았다.

코사크기병사단장 시모노프 소장은 다른 사단장들이 병력의 후위에서 말을 몰고 있는 것과 달리 러시아기병대의 선두에서 직접 수십 명의 적군을 쏘거나 베어 죽이며 일본기병대를 쫓고 있었다.

계속해서 일본기병대의 꼬리를 잘라나가던 그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며 주변을 둘러봤을 때는 이미 일본군이 매복해 있는 지형으로 들어 온 상태였다.

시모노프 소장은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상하군. 갑자기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

하지만 병력의 선두에서 말을 몰고 있었기에 섣불리 말을 세우기 위해 고삐를 당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상한 기분이 드는 상태로 그대로 돌진해 들어갈 수도 없는 어정쩡한 기분이 들자 자연 속도가 늦춰졌고 그러자 그의 옆으로 빠르게 기병들이 지나갔다.

“시모노프 소장 무슨 일이 있소?”

누군가 부르는 소리고 고개를 돌리자 병력의 뒤에서 달려오던 2기병사단장 삼소노프가 벌써 따라잡았던 것이다. 두 사람은 시모노프와 같은 속도로 말을 달리며 대화를 나누기 위해 소리쳤다.

“삼소노프 장군 주변이 뭔가 이상하지 않소?”

“뭐가 말이오.”

“주변에 매복이 있는지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오.”

 시모노프의 말에 화들짝 놀란 삼소노프가 황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자 주변벌판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삼소노프가 다시 고개를 돌려 시모노프를 바라보고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할 때 시모노프 장군의 얼굴이 경악에 물든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시모노프 장군이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매복해 있던 일본군이 엄폐물을 걷고 내고 정체를 들어 낸 것이 눈에 띄었고 호치키스기관총도 눈에 들어왔다.

삼소노프 소장이 순간적으로 소리쳤다.

“기관총이다!!!!”

삼소노프가 소리치며 자신도 모르게 말고삐를 당기자 앞으로 나아가던 말이 당겨진 말고삐 때문에 갑자기 앞발을 높이 쳐들었다. 삼소노프 장군은 실수로 당긴 말고삐로 말이 흥분하자 다독이기 위해 손을 뻗으려할 때 기관총소리가 귀를 찢었다.

투! 투! 투! 투! 투!········

삼소노프 장군은 자신의 몸을 무언가가 관통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고 이것이 그의 최후였다.

투! 투! 투! 투! 투!········

퍽! 퍽! 퍽! 퍽! 퍽!········

양 옆을 일정한 간격과 기관총탄의 교차 각도를 감안해 배치된 일본군의 기관총은 깊게 파인 참호에서 총구만을 드러낸 채 마치 독안에든 쥐를 사냥하듯 러시아기병대에게 무차별적으로 총탄을 난사했다.

투! 투! 투! 투! 투!········

퍽! 퍽! 퍽! 퍽! 퍽!········

지난 여순203고지전투 때 러시아군의 맥심기관총 1정이 일본군 1개 대대를 순식간에 몰살시켰을 정도로 기관총은 일본군에게 5만 여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주범이었다. 마치 그때의 피해를 보복하듯 일본군의 호치키스기관총은 진형에 갇혀 도주로가 차단된 러시아기병대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투! 투! 투! 투! 투!········

퍽! 퍽! 퍽! 퍽! 퍽!········

무차별 기관총세례를 당한 러시아기병대는 마치 표적지가 넘어가듯 순식간에 쓰러져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기병대의 피해는 눈덩이 같이 불어나며 벌판을 온통 사람과 말의 시신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의친왕과 차준혁은 온 벌판이 삽시간에 시신으로 뒤덮이며 피로 물드는 참혹한 장면을 보면서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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