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2 회: 4권-27화 --> (132/268)

<-- 132 회: 4권-27화 -->

“만주를 버리고 연해주로 가자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어차피 패전한 병력을 갖고 하얼빈을 방어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오. 격전이 끝나면 일본도 남은 병력이 얼마 되지 않아 연해주까지 진격해 오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하오. 그러니 일단 블라디보스토크로 들어가 병력을 수습한 뒤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오.”

“패전해서 연해주로 들어가면 어차피 패장인 우리는 모두 끝장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동안 군인으로 수많은 격전을 치러온 분들이오. 패전을 하게 되면 지휘관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것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소? 그러니 이대로 앉아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 보다는 일본과 최후의 결전을 벌여 승패를 가름하는 것이 명예를 아는 군인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오.” 

리네비치를 비롯한 네 명의 군사령관들은 총독의 지적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비록 일본과의 이번 전쟁에서 뚜렷한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지만 모두가 최고지휘관인 대장에 오를 때까지 수많은 격전을 치렀고 또 수없이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긴 역전의 맹장들이었다. 

알렉세예프 총독은 그런 그들에게 일본과의 소극적인 전투는 극동군을 책임지고 있는 지휘관들로서는 해서는 안 될 전투라는 것을 쿠로파트킨의 예를 은근히 들어가면서 총공격만이 명예를 세울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리네비치 대장과 함께 결전을 반대하던 2군사령관 그리펜베르그 대장이 총독의 말을 듣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합시다. 싸웁시다. 구차하게 사는 것보다 명예롭게 죽는 것을 늘 고민해야 하는 것이 우리 군인의 숙명입니다. 나는 이번 최후의 결전에 내 목숨을 내 놓겠습니다.”

리네비치 총사령관도 더 이상은 반대하지 못했다.

“모든 사령관들의 의견이 결전을 결행하는 것으로 모인 것 같으니 본관도 더 이상은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러시아군최고지휘관들의 의견이 힘들게 모아졌다. 회의를 마치고 자신들이 지휘하는 부대로 돌아간 러시아사령관들은 사흘 동안의 부대점검을 마치고 일본군과 최후의 결전에 돌입했다.

일본군도 러시아군이 사흘 전부터 국지전을 벌이지 않고 병력을 추스르자 대대적인 공세가 있을 것을 미리 예상하고는 자신들도 그동안 전군을 결집시키며 러시아군의 대공세에 맞설 준비를 했다.

이윽고 사흘 후 아침이 밝아오자 양군은 남은 전 병력을 동원해 만주대평원에서 이번 전쟁의 마지막 승패를 가르기 위해 정면으로 격돌했다. 

이 전투는 일주일 넘게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계속되었고 사상자는 눈덩이 같이 엄청난 속도로 불어났다. 

지금까지 격돌은 며칠간 전투를 벌인 후 병력점검을 위해 잠시 소강국면에 접어드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러시아군이 죽기를 각오하고 덤벼들자 전투가 일주일 넘게 이어졌고 러시아군이 마치 자신들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계속해서 공격하자 당황한 일본군은 러시아군의 기세에 눌리며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일본군기병대가 또 다시 적진을 돌파할 결사대로 나섰다.

일본군기병대는 오야마 원수를 비롯한 지휘관들이 따라주는 정종을 한 잔씩 마시고는 혈서로 필승(必勝)이라고 쓴 흰 천으로 이마에 묶고는 말에 올랐다. 그 뒤로 노기 대장이 이끄는 3군 병력이 기병대를 따라 적진을 돌파하기 위해 집결했다.

사토 이치로 2기병여단장의 일본도가 하늘로 들려졌고 옆에 있던 기수가 노란 깃발을 하늘 높이 올렸다.

“진군하라.”

척! 척! 척! 척! 척!······

사토 소장의 지시를 받은 기병대가 천천히 대열을 유지하고 전진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사토 소장의 외침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병대 돌진하라!!”

순간적으로 빨간 깃발이 내려지고 기병대가 돌진을 감행했다.

두두두두두두···········

러시아군은 달려오는 일본군기병대에 맞서 모든 화력을 집중시키고 있었고 가장 먼저 포격이 먼저 시작되었다. 

쾅! 쾅! 쾅! 쾅!···········

달리는 기병에 대한 포격은 일정지역을 정해 융단처럼 쏘아대는 방식이었다. 일본기병대는 포격지역에서 상당수 인마가 날아갔지만 돌격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피해는 예상보다 적었다.

두두두두두두·······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타타타타탕····················

러시아군에서 기관총사격이 먼저 터져 나왔고 이어서 소총사격도 일제히 시작되었다. 조금 전보다 많은 인마가 죽어나갔지만 일본군 기병대는 결국 러시아군 방어선을 돌파하였다.

탕! 탕! 탕! 탕! 탕! 탕!··············

기병대가 돌파한 곳은 순간적으로 방어선이 둘로 잘리면서 러시아군도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러시아군은 그렇지만 마지막이란 각오로 총력으로 갈라진 방어선을 채워 넣으며 기병피해를 덮어 버렸다.

기병대가 앞서간 뒤로 노기 대장의 3군이 뒤따라서 돌진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구로키 다메모토 대장의 1군과 오쿠 야스가타 대장의 2군이 3군의 좌우에서 러시아군이 포진해 있는 전방을 향해 병력을 진군시키고 있었다.

온 벌판이 일본군으로 뒤덮였다.

벌써 3년간의 전쟁 동안 수없이 보아온 일본군의 대대적인 진군을 러시아군지휘관들은 차분하게 대처했다. 잠시 후 포격사거리까지 일본군이 들어오자 기다리고 있던 러시아군포병의 일제포격이 또 다시 온 벌판에 쏟아져 내렸다. 

쾅! 쾅! 쾅! 쾅! 쾅!·······

일본군은 쏟아져 내리는 포탄에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지만 모든 것을 감내하며 묵묵히 전진을 계속했다. 곧이어 러시아군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일본군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속보로 진군하라.”

“행진속도를 늦추지 마라.”

“전진하라.”

쾅! 쾅! 쾅! 쾅! 쾅!·······

타타타타타탕········· 탕! 탕! 탕!········

어느 순간 기관총과 소총도 불을 뿜기 시작했지만 무모하리만치 일본군지휘관들은 일본도를 빼들고 병력을 지휘했다. 수없이 쏟아지는 러시아군의 공세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일본군병사들은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지휘관들의 지시를 받으며 속보로 전진했다.

일본군이 러시아군과 거의 200여 미터거리까지 진군하자 오인포격을 우려한 러시아포병의 포격이 순간적으로 중지되었다.

포격이 멎음과 동시에 일본군지휘관이 일본도를 치켜들면서 소리쳤다.

“돌격하라.”

“돌격하라.”

“으아!~~~”

일본군은 이미 소총에 착검을 해 놓고 있어서 돌격명령과 함께 마치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발악을 하듯 엄청난 고함을 지르고 러시아군 참호로 그대로 돌진했다. 

일본군은 막부시대 만연해 있던 인명경시풍조경향을 그대로 이어받아 병사를 소모품 취급했다.  

이런 인명경시풍조경향은 ‘총격전은 돌격전의 보조다.’라는 사상으로 발전하면서 탄생한 것이 만세돌격으로 일본군의 만세돌격이 드디어 감행된 것이다.

“텐노 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

“반자이!!!(만세)”

“으아!!!!~~~~”

“텐노 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

일본군의 모든 장병들이 소리를 지르고 러시아군을 향해 달려 나갔다. 이렇게 벌판을 가로질러 엄청난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는 일본군은 러시아군이 보기에게는 악귀와도 같았다.

러시아병사들이 악귀와도 같은 일본군의 돌격에 위축되려는 것을 본 러시아지휘관들도 칼을 빼들고 병사들을 독려했다.

“사격하라.”

“사격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사격하라!!!”

탕 탕 탕 탕 탕·······

투! 투! 투! 투! 투!·····

러시아군은 돌격해오는 일본군을 향해 소총과 기관총 등 쓸 수 있는 모든 화력을 집중했다. 러시아군지휘관들은 단 한명의 일본군이라도 더 사살하기 위해 사격을 독려했고 러시아병사들도 미친 듯이 소총과 기관총을 쏘아댔다. 

그런 러시아군의 소총에도 백병전에 대비해 이미 착검이 되어 있었다.

조금 전의 포격에도 많은 병사들이 죽어나갔지만 이 마지막 돌격에서 일본군의 피해는 앞서의 포격피해를 뛰어넘을 정도로 엄청나게 발생했다.

순식간에 벌판은 피로 물들었다. 피를 본 일본군들은 물러서지 않고 더욱 강하게 돌진했다. 

“텐노 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

“텐노 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

어느 순간 일본군선두가 러시아군 참호로 뛰어들었다. 참호로 뛰어든 일본군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끝내 쏘지 않았던 총탄 한발을 러시아병사들에게 갈겼다,

탕! 퍽······

“으아!~”

일본군의 기세는 대단해서 러시아군최전방참호가 일본군에 의해 순식간에 도륙 났다. 그러면서 양군이 뒤엉키면서 드디어 백병전이 시작됐다. 백병전이 벌어지자 전황은 목숨을 내 걸고 돌격한 일본군에게 기울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러시아군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러시아군도 병력을 더욱 투입하자 모든 전장은 그야말로 총검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피의 백병전으로 온통 뒤덮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