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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일본군총사령관 오야마 이와오 원수는 60이 넘은 나이이고 좀체 화를 내지 않는 진중한 성격이었으나 총참모장 고다마 겐타로(兒玉源太郞) 대장의 보고를 듣자마자 불같이 화를 냈다.
“뭐라고! 여순 항과 압록강이 적의 수중에 넘어갔다고? 그것도 5일 전에?”
“그렇습니다. 각하.”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되었기에 5일이 지난 이제야 보고를 해온 것인가?”
고다마 대장이 침중한 말투로 대답했다.
“보고도 하지 못할 정도로 두 곳의 상황이 심각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야마 원수는 총참모장 고다마 대장의 심각한 말투에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바로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누가 감히 우리 영토를 침범해 왔다는 말인가?”
“그게 너무 허무맹랑한 소리라서···”
침착함을 되찾은 오야마 원수가 말꼬리를 내리는 고다마 대장에게 평상시 목소리로 독촉했다.
“총참모장은 무슨 말인지 걱정 말고 보고하게.”
메이지육군3걸로 불리던 총참모장 고다마 대장은 자기 자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설명했다.
“조선이 요동반도와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침공을 해 왔다고 합니다.”
오야마 원수는 또 다시 화를 벌컥 내며 이번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뭐라고? 조선이라고!!”
“그렇습니다. 각하.”
오야마 원수는 어이가 없었다.
“귀관은 이 보고가 정확하다고 보는가?”
“소관도 도저히 믿을 수는 없지만 두 곳에서 동시에 같은 보고가 들어왔으니 무시하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러시아를 의심할 수는 없는 입장이 아닙니까?”
오야마가 있을 수 없다는 듯 손까지 저었다.
“말도 되지 않는다. 적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약해빠진 조선이 우리를 공략할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여순 항은 함대 외에는 공략할 수 없는 곳이 아닌가.”
오야마 원수는 고마다 대장이 보고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이 두 곳을 공격해왔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고 아니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일본군이 이렇게 5일 만에 전황에 대한 것을 알게 된 것은 대한제국총참모부가 일본군지휘부를 조급하게 만들려는 심리작전의 일환이었다. 여순 항과 압록강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기 전 미리 전파교란을 실시해 일본군의 무선교신을 무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러시아군을 계속 뒤쫓고 있던 일본군본진은 전투상황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두 곳을 점령한 대한제국군은 회전날틀과 대양함대 등 신무기 같은 것들은 쏙 빼버리고 단지 대한제국이 공격을 해서 점령했다는 것만을 알 수 있도록 정보를 비틀어 일본군의 귀에 들어가게 만들었던 것이다.
오야마 원수의 이마는 잔뜩 찌푸려졌지만 이제는 병력도 얼마 남지 않았고 두 곳의 거리도 너무 멀어 지금으로선 마땅히 어떠한 대응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한동안 서성이며 골머리를 앓던 오야마가 입을 열었다.
“대한제국인지 국적불상(國籍不詳 어느 나라인지 자세하지 않다.)의 적국인지 모르겠지만 압록강방면과 요동반도가 적에게 공격을 받았다면 요양과 봉천이 위험하겠네.”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전투가 벌어진지 벌써 5일이 지났다면 봉천은 아직 모르겠지만 수비 병력이 별로 없는 요양은 적의 수중에 넘어갔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오야마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이제 막바지 인데. 이제 조금만 더 러시아를 밀어붙이면 완전히 항복을 받아낼 수 있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적에게 뒤통수를 맞게 되다니 정말로 안타깝구나.”
그러면서 아주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나저나 정말 큰일이로군. 여기까지 왔는데 봉천을 방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군병력을 뒤로 빼 돌려야 한다는 말인가.”
오야마 원수의 독백에 고다마 대장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건 절대 안 되는 말씀입니다.”
갑자기 강력하게 반대하는 고다마의 말투에 독백을 하며 고심하던 오야마가 깜짝 놀랐다.
“응?”
고다마 대장이 자신의 실수를 바로 사과했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각하.”
“아니네. 총참모장이 본관의 말에 이렇게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은 이유가 있겠지. 말해보게.”
“그렇습니다. 지금 아군병력을 돌려 봉천으로 회군하는 것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실익이 전혀 없습니다. 어차피 여기까지 밀고 왔으니 더욱 더 총력을 기울여 러시아군을 최대한 빠른 시간에 항복시키고 연해주로 들어가야 합니다. 북해도의 대기 병력을 생각하십시오. 각하.”
그제야 오야마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그렇지. 본관이 너무 놀라 그것을 잠시 잊고 있었어.”
하지만 오야마의 안색이 바로 어두워졌다. 그 모습을 본 고다마 대장이 그의 안색을 살폈다.
“뭔가 문제가 있으십니까?”
“국적불상의 적군에게 함대가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만일 여순 항을 공략한 함대가 조선반도를 돌아 북해도와 연해주 앞바다를 장악한다면 이는 큰일이 아닌가?”
“그것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요동반도를 공략한지 얼마 안 된 적의 함대가 지금 당장 여순 항에서 함대를 빼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적함대가 하나 더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겠나?”
이 지적에는 고다마 대장도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생각하던 고다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만일 적에게 다른 함대가 있을 것을 가정한다면 대본영에 지금의 상황을 보고하고 본토에서 기동할 수 있는 연안방어선은 물론이고 수뢰정 등 모든 전투함정을 북해도로 집결시켜 병력수송선을 방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야마가 힘들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후!~ 그 정도 규모의 작은 함정들은 숫자만 많지 함대를 방어하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네.”
“지금의 우리로선 어떤 수단을 강구하더라도 북해도병력을 반드시 대륙으로 불러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우리 대일본제국이 국운을 걸고 추진해온 만주공략이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큽니다. 만일 그러게 되면 우리를 믿고 있는 조국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오야마 원수도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 작년에 연합함대가 실종되고부터 이상하게 계속해서 일이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종내는 이런 일까지 벌어지는구나.”
오야마의 한숨을 듣고 있던 고다마가 마음속 한 곳에 머물고 있던 의혹을 조금 내비쳤다.
“그런데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이 실제로 조선이 벌인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은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야마의 고개가 자동으로 흔들어졌다.
“그게 불가능 하다는 것은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전까지는 소관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번 일을 당하고 나니 우리가 조선을 너무 경시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대일본제국지휘관으로서 그런 의문을 갖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조선을 철저하게 무력하게 만든 것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네. 더구나 함대라니, 이건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네.”
“소관도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지만 뭔가 모를 불길함이 가시지를 않습니다. 더구나 작년에 이토 후작각하의 영애인 이토 사다코 양이 대본영에서 진술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그때 대본영에서 대한제국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으니 그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말게.”
오야마 원수는 고다마 대장의 의혹에 입으로 동조는 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은 고다마 대장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오야마 원수는 애써 대한제국을 이상할 정도로 무시했다. 이러한 대한제국 경시 풍조는 오야마 원수뿐이 아니라 대본영의 태도 또한 다르지 않을 정도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어느 때부터인지 대한제국에 대해 상대적 우월감을 갖고 있었다.
“귀관은 지금즉시 대본영에 여순 항과 압록강에 대한 보고를 보내고 북해도 방어에 대한 자네의 의견도 같이 보고를 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전 군에 명령을 하달해 러시아군을 밤낮 가리지 말고 더욱 더 강력하게 무조건 밀어붙이라고 하게. 우리에게는 이제 돌아갈 곳도 없어.”
“예, 각하.”
고다마 대장이 인사를 마치고 서둘러 막사를 나가자 오야마의 시선은 연길과 훈춘일대가 표시된 작전지도에 돌려졌다.
“연길과 훈춘지역에서 이번전투를 끝낸다. 그래야만 우라지오스토쿠(ウラジオストク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병력을 다시 추스를 수 있다.”
그러면서 지도에서 한반도를 노려봤다.
“두고 봐라. 조선군이든 누구든 만주만 정리되면 재도 남기지 않고 철저히 밟아주마.”
이렇게 말을 하는 오야마의 눈에서는 마치 쇠라도 녹일 것 같은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4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