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회: 5권-1화 연해주(沿海州) -->
신의주합동지휘본부에서 송의식 참모장이 박충식에게 일본군에 대한 동향보고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군의 예상대로 일본군지휘부가 요동반도와 안동에 대한 보고를 받고도 병력을 돌리지 않고 더욱 더 전력을 기울이며 러시아군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습니다.”
박충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예상한대로 일본군은 무조건 돌진해야만 하는 외통수에 걸려들었어.”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봉천으로 회군하는 것이 앞으로 나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은 일본군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저렇게 밀어 붙이는 것이 마지막 결전을 치러야 하는 우리로선 좋은 일 아닌가.”
“맞습니다. 다행히 계획대로 상황이 제대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큰일이 날 뻔 했어. 일본이 북해도에 대규모병력을 대기하고 있을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전혀 예상 밖의 일이야.”
“일본군이 연해주까지 넘볼 수 있다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한 저희 총참모본부의 불찰입니다.”
“일을 벌이다보면 종종 놓치는 것도 있는 법이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말게. 그것보다 일본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군. 분명히 전비가 고갈되고도 남았을 텐데 그동안 계속해서 군수물자를 조달하고 또 이렇게 많은 병력을 어떻게 동원할 수 있는지 말이야.”
“제 생각에는 아마도 다른 나라가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나라가 지원을 하고 있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의 국력으로 절대 지금까지 전쟁을 끌어 오지 못했을 뿐더러 이번에 북해도에 집결시킨 병력도 무장을 시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의외의 말이었지만 박충식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잠시 생각했다.
“가능성이 있는 추측이네. 흠!~ 영국은 일본이 너무 커지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 번 우리가 벌인 밀약작전 때문에 영일동맹까지 파기하며 완전히 틀어졌으니 영국은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미국이 일본의 뒤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크겠군?”
“제 생각도 미국으로 추측됩니다. 지난 번 한성수복 때 공사를 포함한 외교관과 자국민들이 한반도에서 추방된 것을 미국의 생리상 그대로 덮고 넘어가진 않을 것이란 생각은 늘 하고 있었습니다.”
“하긴 미국의 자존심에 그냥 넘기고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 더구나 친일파인 루즈벨트 대통령이 종전협상에 실패해 노벨상이 날아갔으니 개인적인 입장에서도 그냥 절대 눈감고 있지는 않을 것이야.”
“그렇습니다. 더구나 미국에는 일본이 그동안 많은 공을 들이고 있어서 미국정가에 친일파들이 상당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긴 일본이 최초 수교한 나라가 미국이니 그럴 만도 하겠지. 어쨌든 미국이 일본을 지원하고 있다면 지금까지의 상황이 충분히 설명이 되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미국의 움직임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는 말이 되겠군.”
“미·일 양국이 밀약을 맺은 대로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인정하고 있으니 외교관이 추방되어도 미국이 지금 가만히 있는 것으로 봐야합니다. 더구나 미국이 일본을 은밀히 지원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면 아마도 미국은 군사적 움직임도 함께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박충식이 바로 동의했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아주 다분해. 그렇다면 미국이 강점하고 있는 필리핀이 도발의 거점으로 가장 유력하겠군.”
“바로 보셨습니다. 2함대가 북해도방면으로 진출했으니 그쪽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니 지금부터는 필리핀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한지 겨우 몇 년 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얼마나 됐는가?”
송의식이 옆에 있던 자료를 뒤져 그 중 필리핀에 대한 것을 찾아낸 후 자료를 들춰보며 설명했다.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을 양도받은 것이 1898년 이니까 8년 되었습니다.”
“필리핀의 독립운동이 상당히 치열했었다고 알고 있는데 아닌가?”
“맞습니다. 아시아최초의 공화국대통령이었던 에밀리오 아귀날도(EMILIO AGUINALDO)가 미국의 배신으로 독립이 좌절된 1899년부터 1902년 7월까지 독립전쟁을 벌였었지만 백만 명이 넘는 엄청난 인명피해와 함께 대통령인 아귀날도가 체포돼 미국에 항복하면서 독립항전이 끝났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일부 세력이 남아서 게릴라전을 계속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송의식이 자료를 보며 설명했고 설명을 들을 박충식이 한마디 했다.
“알겠네.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나오는지 예의주시해야겠고 필리핀의 미군동태도 잊지 말고 챙기도록 하게.”
송의식은 박충식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챘다.
“철저하게 감시하면서 별도의 조치를 마련하겠습니다.”
흡족한 대답을 들은 박충식이 주제를 바꿨다.
“벌써 9월 초인데 온성에서 주둔하고 있는 장병들 대기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있어서 군기가 흐트러질까 걱정이야.”
“육군은 대기기간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더 할 수 있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며칠 전부터 요동정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장병들이 알고 있으니 군기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활시위를 너무 오래 당겨 놓으면 활자체가 상할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 자네가 보기에는 양국 간의 전투가 언제쯤 마무리 될 거 같은가?”
“지금 상태로는 늦어도 열흘 정도면 승패가 결판이 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충식이 송의식의 대답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면 문제없이 기다릴 수 있겠지만 더 늦어지면 우리가 양국 간의 전투에 직접 뛰어들어서라도 결판을 낼 생각도 해야 해. 너무 시간이 지나면 겨울에 전투를 벌여야하는 곤란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그렇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때 총참모부 소속장교가 전문을 송의식에게 건네자 전문을 받아든 송의식의 얼굴이 환해졌다.
“좋은 소식입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웅비4·5·6호가 시험비행을 성공리에 마치고 실전배치명령을 기다린다는 공군의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박충식이 반색했다.
“참으로 잘 되었구나. 최경석 공군대신이 고생 많이 했겠어.”
“제가 알기로 비행선제작과 비행기개발 때문에 한성에 올라오지도 않고 해주에서 거의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일본과 러시아가 전쟁을 벌인지가 벌써 3개월이나 지났구나.”
“최경석 공군대신께서 계획보다 보름이나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씀도 함께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이 정도 늦은 게 무슨 큰 문제라고 어쨌든 적절한 시기에 비행선 3척을 확보할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네. 총참모부는 비행선배치계획을 수립해서 보고 하도록 하게.”
“최대한 빨리 배치계획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송의식의 대답대로 총참모부는 다음날 바로 비행선배치계획을 수립해 박충식에게 보고했다.
총참모부는 웅비비행선을 러·일 양군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훈춘방면과 일본군 지원 병력이 대기하고 있는 북해도 감시, 그리고 북진병력이 있는 요동과 평안도북부에 1척씩을 배정했다. 그리고 서남해안과 동남해안방면에 각각 1척씩을 나머지 1척은 제주일대와 멀리는 필리핀까지 오가는 해상정찰에 각각 비행선을 투입했다.
그러면서 총참모부는 해주 1곳에 있던 비행선선착장을 신의주와 제주 등 2곳에도 추가로 건설하도록 건의했고 이러한 건의는 즉각 받아들여졌다.
송의식의 예상대로 양군의 전투는 10일이 지나지 않아 훈춘을 지나 연해주 초입에 들어선 지점에서 러시아군의 전격적인 항복으로 드디어 끝이 났다.
100일이 넘는 긴 기간 동안 벌어진 전투는 엄청난 병력이 격돌한 보기 드문 전투기도 했지만 단일 전투로는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전투였다.
만주일본군 총사령관 오야마 원수는 극동총독 알렉세예프와 극동군총사령관 리네비치 대장의 항복 청원을 받아들인 후 러시아군이 무장해제하는 것을 한동안 직접 지휘한 후 자신의 지휘막사로 돌아 왔다. 막사로 돌아온 오야마 원수는 1·2·3·4군 사령관이 배석한 자리에서 총참모장 고다마 대장의 보고를 듣고는 남아있는 병력이 생각보다 적다는 것에 놀라 재차 확인을 했다.
“남아있는 병력이 전부 얼마라고 했나?”
“전군을 합해도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이 3만이 채 안됩니다.”
총사령관 오야마 원수는 허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