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 회: 5권-10화 #공작(工作) -->
김혁은 이때까지 일반 병사들에게는 사격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속보로 다가오는 일본군 병사들을 보면서 김혁 중좌는 속으로 자신을 수없이 다스렸다.
‘조금만 더 와라. 조금만 더.’
일본군이 대한제국군과 거의 백 오십여 미터까지 전진하자 일본군지휘관이 다시 명령했다.
“돌격하라.”
“텐노 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
“반자이!~~~(만세!)”
“으아!~~~~”
드디어 일본군의 만세돌격이 시작되었다.
그때였다. 김혁이 있는 힘껏 소리쳤다.
“사격개시.”
탕! 탕! 탕! 탕!··········
투투투투투투!·····
적이 돌격을 감행할 때까지 K-3경기관총을 믿고 부대원들의 사격을 제지하고 있던 김혁 중좌는 일본군지휘관의 돌격명령과 동시에 사격명령을 내린 것이다.
탕! 탕! 탕! 탕!·····
투투투투투투!·····
또다시 수없이 많은 일본군들이 쓰러졌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총탄세례를 받으면서도 일본군의 상당한 숫자가 악착같이 총탄의 화망을 뚫어냈다.
“백병전에 대비하라!!!”
김혁 중좌의 명령에 32대대의 소총사격이 일시에 정지되었고 김혁 중좌도 엎드려쏴 자세를 하고 있었던 몸을 바로 일어날 수 있게 자세를 가다듬다가 일본군이 가까이 다가오자 소리쳤다.
“기관총 사격중지. 부대 돌진하라.”
돌격명령을 내린 김혁 중좌가 가장 먼저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러자 32대대 모든 장병들도 일제히 몸을 일으켜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으아!!~~”
“죽어라. 이놈들!!~~”
김혁은 전방으로 달리다가 돌격해 오던 일본군이 총을 드는 것을 보고는 바로 몸을 앞으로 굴렀다.
탕!
일본군의 마지막 남은 총탄은 김혁의 앞구르기로 무용지물이 되었고 총을 쏜 일본군은 반동으로 잠깐 몸을 움찔 하는 사이 김혁의 몸이 날아갈 듯 뛰어 오르며 개머리판으로 일본군의 머리를 그대로 돌려 쳤다.
퍽!~
헬멧도 쓰지 않은 일본군은 김혁 중좌의 개머리판공격에 머리가 순간적으로 터져나갔다.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돌려 친 김혁은 그 반동을 이용하여 몸을 돌리면서 대검을 일본군의 복부에 찔러 박았다.
푹!~
정확히 일본군의 복부를 찌르자 엄청난 힘이 팔에 쏠렸다. 김혁은 발을 들어 일본군을 차면서 팔을 비틀어 대검을 빼냈다. 김혁 중좌는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연결된 동작으로 연결하면서 일본군을 단 숨에 쓰러트렸다.
“후!~”
일본군을 단 번에 쓰러트린 김혁은 참았던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다음 상대를 찾았다. 그러자 바로 앞으로 다가오는 일본군이 눈에 들어왔고 김혁은 몸을 바로 움직였다.
그때 김혁에 의해 자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일본군이 피를 흘리지 않다가 김혁이 그의 몸을 넘으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분수같이 피를 뿜어냈다.
푸악!~~~
뿜어진 피는 김혁을 그대로 덮쳤다.
‘젠장.’
피를 뒤집어쓴 김혁이 속으로 욕을 하면서 전방에 다가오는 일본군을 무시무시한 눈길로 노려봤다.
‘움찔’
무엇이든 죽일 기세로 달려오던 일본군이 피를 뒤집어쓴 김혁 중좌의 악귀와도 같은 눈빛을 정면에서 보자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되었다.
휘익~ 퍽!!!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김혁은 다시 몸을 날려 조금 전과 같이 일본군의 머리통을 개머리판으로 날려버렸다. 이번의 일본군은 장전된 총탄을 쏘지도 못하고 김혁이 몸을 날리며 타격한 개머리판의 충격에 두개골이 그대로 깨져나갔다.
후드득
‘울컥.’
김혁은 터져 버린 뇌수의 파편이 몸에 튀자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구역질이 치밀었으나 김혁은 그것에 개의치 않고 바로 다음 상대를 찾았다.
이때부터 김혁은 악귀가 되었다.
눈앞에 일본군의 노란색군복만 보이면 닥치는 대로 찌르고, 베고, 때리면서 그들의 머리를, 복부를, 다리를, 아니면 얼굴을 사정없이 으스러트렸다. 그렇게 악마와도 같이 전장을 휘젓던 김혁은 어느 순간 무언가의 충격을 받고는 정신을 잃어 버렸다.
#공작(工作)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김혁은 잃었던 정신을 수습하며 정신을 차리자 온 몸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으윽”
“정신이 돌아오십니까?”
누군가가 자신에게 안부를 물어오자 김혁은 억지로 눈을 뜨고는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흰색가운을 입은 군의관이 서 있었다.
“으윽!”
김혁이 고통을 느끼면서도 몸을 일으키려했지만 군의관은 황급히 그를 제지했다.
“지금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어떻게 된 건가?”
“일본군과 백병전 도중에 쓰러지셨습니다.”
김혁은 누워서 자신의 몸을 돌아보자 온 몸이 붕대로 뒤덮여져 있었다.
“내가 누워 있은 지 얼마나 되었나.”
“이틀 되셨습니다.”
“여기가 어딘가?”
“이곳은 일본군주둔지에 마련된 임시야전병원입니다.”
그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막사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군은 어떻게 되었나?”
“전멸시켰습니다.”
“전멸?”
“끝까지 항전하다가 항복한 적군이 몇 백 명 되지 않았으니 전멸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면서 전투상황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32대대의 분전에 일본군결사대가 전멸되었습니다만 일본군이 그래도 항복을 하지 않고 다시 결사대를 조직해 돌파를 감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보병병력을 뒤로 물리고 천마와 흑표전차가 나서서 일본군을 완전히 쓸어버렸습니다. 적군의 수장이었던 구로키 대장은 최후까지 항전하다 비세를 통감하고는 부하들에게 항복을 지시하고 자신은 권총으로 자살하면서 전투가 끝이 났습니다.”
“아군의 피해는 상황은 얼마나 되는가?”
“32대대의 피해가 가장 커서 100여명이 전사자와 15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다른 부대는 전부 합해서 200여 명 정도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후!~”
김혁은 자신의 대대병력 중 25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는 말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많은 사상자가 났다는 말을 듣고 무거워진 마음에 입을 열지 않자 군의관이 김혁의 활약을 알려줬다.
“백병전에서 대활약을 펼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신 활약을 하셨습니다.”
군의관이 감탄하며 말을 하자 김혁은 그제야 이틀 전 백병전의 상황이 머릿속에서 어렴풋이 하나하나 편린처럼 떠올랐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분전을 했지만 일본군의 만세돌격은 정말 대단했었다.
그 자신이 생각해도 엄청난 적군을 상대했지만 김혁은 마치 악귀와도 같이 적병을 상대한 자신이 결코 자랑스럽지가 않았다.
“내가 조금 더 침착했더라면 이렇게 많은 사상자를 내지 않았을 텐데 부하들의 생명을 책임져야할 지휘관으로서 너무 어리석을 짓을 했어.”
군의관이 무슨 소리냐고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그 당시 32대대와 백병전을 치룬 일본군의 숫자가 천여 명에 가까웠는데 대대장님의 분전으로 그나마 적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군단장님께서 직접 대대장님을 칭찬하셨을 정도입니다. 지금 병사들 사이에서 대대장님을 뭐라고 부르는 줄 아십니까?”
“뭐라고 하는가?”
“백병전의 영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군의관의 이런 칭찬을 받았지만 그는 죽은 장병들을 생각하며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군의관이 그런 김혁의 표정을 보고는 말을 더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지나고 김혁의 입이 다시 열렸다.
“잠깐 밖을 나가볼 수 있겠나.”
군의관이 처음에는 난색을 하다가 그의 무거운 표정을 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위생병을 불렀다.
“위생병!”
위생병이 다가오자 군의관이 직접 위생병과 같이 김혁을 부축해 아주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전투가 벌어진지 이틀의 시간이 지나서인지 격전의 흔적들이 많이 가셔있었으며 일본군주둔지에는 어느새 대한제국군의 막사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펼쳐져 있었다.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던 김혁이 물었다.
“연해주 공략은 어떻게 되었지?”
“어제 아침 일찍 러시아군 포로들 중 지휘관들을 대동하고 연해주로 출발했습니다. 포로들을 앞세운 진격이라 아마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 일찍 블라디보스토크에 입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북진의 마무리만 남았겠군.”
“연해주만 접수하게 되면 북진의 1차 계획이 끝이 납니다.”
군의관의 부연설명에 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대대병사들 부상병동은 어디인가?”
“저곳입니다.”
군의관이 가리킨 곳은 자신이 병사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나를 부축해서 그리로 대려다 주게.”
군의관은 김혁의 말에 난감했으나 그의 의지가 무엇인지를 알았기에 위생병과 함께 더욱 조심해 부축하며 그를 병사로 안내했다.
이날 김혁은 150여 명의 부상자들을 일일이 위로 한 후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러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의 병상을 병사들의 병사로 옮겨 줄 것을 요구했다. 그때부터 김혁은 자신의 부상이 회복될 때까지 부상당한 병사들과 같은 병동에서 똑같이 생활하며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