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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송선단이 드디어 쓰가루해협을 모두 빠져 나갔어.”
이렇게 중얼거린 웅비4호 기장 이평진 대위가 사무장 이준희 중사에게 확인했다.
“이 중사, 모든 상황이 전송되고 있지?”
“물론입니다. 영상전송에 아무 이상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일본본토로 내려간다.”
옆에 있던 부기장 윤석환 중위가 의아했다.
“일본수송선단을 따라가지 않습니까?”
“그건 연해주에 있는 웅비1호가 담당하게 될 거야. 북해도에서의 우리임무는 여기가 끝이고 다음임무인 일본본토 정찰에 들어가는 거다.”
기장의 지시에 윤석환 중위가 신이 났다.
“어떻게 운항하실 것입니까?”
“일본본토의 동부해안을 따라 내려가면서 세토내해를 거쳐 시모노세키까지 내려 간 후 제주도에서 재보급을 받고 다시 북상한다.”
“규슈와 시코쿠는 놔둡니까?”
“그건 이미 다른 비행선이 촬영을 마쳤다고 하니 우리는 본토만 돌면 임무 완수야.”
윤석환 중위가 바로 아쉬워했다.
“에이, 아쉬운데요. 이참에 일본은 샅샅이 훑었으면 좋겠는데.”
“아마 이번 북해도병력만 정리하면 일본 담당이 우리가 될 공산이 커. 그러니 너무 아쉬워하지 마.”
윤석환 중위가 반색했다.
“아! 그렇습니까?”
윤석환 중위가 자신의 말에 일희일비하는 것을 보자 이평진 대위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하하! 참. 윤 중위, 애들 같이 지금 뭐하는 거야.”
이평진의 말에 윤석환도 무안한지 말을 돌렸다.
“아닙니다. 지금 바로 남진하는 겁니까?”
“그래.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일본 해안을 따라 내려가자.”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기수를 남쪽으로 선회합니다.”
윤석환 중위는 잠시 어수선한 분위기를 보였으나 아주 침착하게 조종간을 조종하여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다. 잠시 후 며칠간 북해도 상공에서 정지비행하고 있었던 웅비4호는 부드럽게 일본본토의 해안을 따라 운항을 시작했다.
호위함대의 기함인 전함 사츠마에는 데라우치 육군대장을 비롯해 북해도병력최고지휘관들 대부분이 데라우치 대장의 지시로 승선해 있었다.
북해도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데라우치 대장이 지휘관회의를 주재하다 만주일본군과 계속 교신이 되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고는 이마를 찌푸렸다.
“아직도 만주황군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냉혹한 성격인 데라우치 대장에게 말을 실수할까봐 보고를 한 참모는 물론이고 육군지휘관 중에서 아무도 선뜻 대답을 못하자 호위함대사령장관 사이토 중장이 나서서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교신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데라우치 대장은 사이토 중장이 나서서 대답하자 육군지휘관들을 무서운 눈길로 한 번씩 노려본 후 사이토 중장에게 다시 확인했다.
“기함에 있는 무선전신기가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지금까지 대본영은 물론 교신기가 설치된 각 함정들과 교신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데라우치가 곤혹스런 표정을 했다.
“이상한 일이군. 지금 정도면 만주황군이 연해주의 우라지오스토쿠에 입성을 하고도 충분히 남을 날짜인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교신이 전혀 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뭐지?”
“편하게 생각하십시오. 러시아군의 항복까지 받았는데 더 이상 무슨 문제가 생기기야 하겠습니까?”
사이토 중장의 위로에도 데라우치 대장의 이마에 걸린 내천 자는 펴지지 않았다.
“연합함대도 승전보를 보내 온 후 실종된 것을 모르나?”
“········”
데라우치 대장의 말에 사이토 중장은 순간적으로 입이 붙어 버렸다. 그런 사이토를 보고 데라우치는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했다.
“우라지오스토쿠에 도착하려면 앞으로 얼마나 걸리겠나?”
“병력을 수송하기 때문에 함정들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 바다가 잠잠하더라도 5일은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해주게.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
“속도를 높이면 수송선에 타고 있는 장병들이 심한 멀미로 아주 고생을 하게 됩니다만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연해주는 아군이 이미 점거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당분간 조금 힘들게 배를 타더라도 육지에 내린 뒤 며칠 쉬며 기력을 회복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아무래도 바다는 위험해.”
데라우치가 연합함대를 거론했기 때문에 사이토는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바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말씀대로 항속을 최대한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제독.”
데라우치 대장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이 나오자 사이토 제독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함대참모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참모장은 각 함정에 연락해 항속을 최대한 높이도록 하게. 단, 작은 함정이 뒤처지지 않도록 속도는 반드시 조절하라는 주의를 꼭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이전시대 일제강점기 통감을 거쳐 초대총독에 부임을 할 때 부임사로 ‘조선인은 일본제국 통치에 복종하든지 죽든지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말을 할 정도로 데라우치 대장은 아주 냉혹한 성격의 소유자로 소문나 있었다.
그런 그가 사이토 제독에게 고맙다고 인사까지 한 이유는 그의 장남인 데라우치 히사이치(寺内 寿一)가 이번 러일전쟁에 참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다는 말을 듣는 데라우치였지만 자기 자식에게 만큼은 여느 아버지와 다르지 않은 부정(父情)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사령장관의 지시를 받은 호위함대 참모장이 부하들에게 지시해 무선과 깃발과 발광신호를 총동원하여 사령장관의 지시사항을 모든 함정에 전달했다.
그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선단의 함정들은 후미에서 하얀 포말이 일어날 정도로 점차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런 일본수송선단의 상황은 웅비1호에 의해 바로 포착되었다.
“저것들이 갑자기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웅비1호 부기장 이도선 중위가 순항하던 일본함정들이 속도를 높이자 기장에게 바로 보고했다. 기장인 강운형 대위도 수송함대의 상황을 보고는 의아해했다.
“정말 그러네. 그런데 무슨 일이 생겼나? 왜 갑자기 속도를 높이는 것이지?”
“전파교란으로 며칠 동안 무선교신이 되지 않아서 불안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연해주에 도착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어. 일단 2함대에 상황보고부터하자.”
강운형은 무전기를 들어 지금까지의 상황을 2함대에 보고했다.
이번에 정식으로 제독으로 승진한 2함대사령관 공성기 제독은 강운형 대위가 보고한 내용을 참모장 조기순 상좌에게서 보고 받았다.
“일본군이 항속을 올리며 서두르고 있는 것을 보니 연해주와 교신이 되지 않아서 불안한 생각이 들었나보구나.”
“그것이 아니면 수송 병력의 전투력을 저하시키면서까지 일부러 속도를 높일 이유가 없습니다.”
조기순 상좌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던 공성기 제독은 앉은 자세로 너무 오랫동안 모니터를 들여다 본 탓에 몸이 결리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일본군이 속도를 높여 항해하고 있으니 우리가 그것을 적절히 활용하면 되겠어.”
“어떻게 말입니까?”
“저 정도 속도로 한 이틀 정도 달리면 육군출신들은 배 멀미에 거의 녹초가 되지 않겠어?”
조기순 상좌도 이 말에 동의했다.
“일본이 아무리 섬나라라고 해도 배를 타지 않았던 육군은 이틀이면 거의 초죽음 될 겁니다.”
“그러니 머리만 잡고 나머지는 항복을 유도하자.”
“항복을 말입니까?”
“그래 항복.”
“이번에 훈춘전투에서도 확인된 것처럼 일본군지휘관들은 병사들을 모두 죽이더라도 항복을 하지 않겠다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설득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보면 일본군최고지휘관들은 일반병사들과 같이 수송선에 승선하고 있지 않고 기함에 함께 있는 것이 분명해.”
그러면서 공성기는 한 장의 사진을 조기순에게 건네주었다. 그 사진은 웅비가 촬영한 장면 중 한 장면을 출력한 것으로 하코다테 항을 떠나기 전의 기함인 사츠마의 갑판 위의 모습이었다.
“이 사진은 출항 직전 호위함대 기함의 모습인데 자세히 보면 갑판위에 있는 자들 중 앞에 있는 자들 대부분이 일본육군 장성복장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네.”
조기순 상좌가 공 제독의 말을 듣고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앞에 선 자들 어깨의 계급장을 확인하고는 그들이 일본군장성들이란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