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회: 5권-13화 -->
“맞습니다. 앞에 서 있는 삼십 여명의 인물들의 계급들이 전부 장성들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자들의 어깨 견장에 붉은 줄 3개가 있는 것을 보니 전부 영관급들입니다.”
“일본군장성들 가장 앞에 머리가 완전히 벗겨진 자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겠나?”
조기순 상좌가 다시 사진을 확인하다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이자는 육군대신 데라우치가 아닙니까?”
“그렇다네. 어깨의 계급을 봐도 별이 세 개 인 것이 분명히 냉정하고 잔혹하다고 소문난 데라우치 대장이 분명해.”
데라우치란 것을 확인하자 조두순 상좌의 입에서 바로 욕이 튀어나왔다.
“이 놈은 병참지원을 총괄하고 있는 육군대신인데 어떻게 수송선을 타게 된 것입니까?”
“육군대신이 최고지휘관이 되었다는 것은 일본이 이번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는 반증이겠지.”
“다른 것은 둘째치고라도 반드시 기함을 수장시켜야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이전시대 저 놈이 조선총독으로 있던 기간에 악랄한 무단통치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애국지사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아무리 우리가 이 시대에 왔더라도 그분들의 원혼을 위해서라도 저 놈 만큼은 반드시 동해바다 속에 수장시켜 버려야 합니다.”
“어쨌든 머리를 잡자는 것은 동의하는 거지?”
“물론입니다.”
“지금 일본수송선단의 호위함대의 무장은 기함을 제외하고는 연안방어를 할 정도 밖에는 되지 않으니 기함을 치고 난 후 나머지 선박들은 적당히 손을 보면서 항복을 유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
“그렇다면 수송병력 전부의 항복을 유도하자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가능하겠습니까?”
“지금 속도로 이틀 정도만 달리면 수송 병력은 죽고 싶을 정도로 배 멀미로 고생할 거야. 그때 머리를 수장시키고 난 후 항복을 유도하면 의외로 쉬울 수가 있어.”
“수송 병력이 10만 명이 훨씬 넘는다고 하던데 그 많은 병력을 포로로 잡아들이면 그들을 먹이는 것 만해도 장난이 아닐 겁니다. 적의 항복을 유도하면서 적당하게 인원수를 조정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조기순 상좌의 말에 공 제독이 웃으며 한 장의 전문을 보여줬다.
“이게 뭡니까?”
“자네가 조금 전 선교 밖을 둘러보러 나갔을 때 건설대신이 보내온 긴급전문이네.”
조기순 상좌는 도 제독이 웃으며 전문을 건네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설대신이 긴급전문을 왜 보냈지?”
그러면서 전문을 읽던 조기순 상좌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푸~ 하하하! 이게 정말 건설대신이 보낸 전문입니까?”
“하하하! 그렇다네.”
“하하하! 아니! 건설대신께서 급하긴 어지간히 급하셨나 봅니다. 이런 전문을 긴급으로 다 보내시고요.”
“나라전체가 공사판이니 오죽 사람이 많이 필요하겠나. 그러니 도와드려야 하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건설대신님의 전문을 모든 전함에 송부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두 사람이 이렇게 크게 웃는 까닭은 전문내용 때문이었다.
‘2함대 공성기 제독님 보십시오.
일본군을 무찌르기 위해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우리 건설성(建設省)도 삽을 총같이 들고 수없이 많은 땅을 파헤치느라 매일 밤을 새우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건설성에서는 노동력이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 이때 밥값만 들어가는 무임금노동력의 일본군포로가 있으면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일당도 들어가지 않아 국고도 절약되는 포로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귀국하면 개인사비로라도 술 한 잔 사겠으니 제발 잘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되도록 신체건강한 포로가 좋습니다. 반송이 되지 않는 포로들이니 건강에도 특별히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병단장 출신의 건설대신 박연수의 전문은 그대로 각 전함에 전달되었고 박연수의 전문은 각 함의 간부들을 한 바탕 크게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이 전문을 각 함정의 승조원들에게도 모두 회람시켜 전투를 앞둔 승조원들의 긴장감을 해소시키는데도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사이토 제독의 우려대로 수송 병력은 당일부터 배 멀미로 아주 고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데라우치 대장의 강력한 요청으로 속도를 줄이지 않고 같은 속도로 계속항진하자 병력수송선은 온통 토사물로 가득 차버렸다. 가뜩이나 좁은 수송선에 이렇게 환경이 엉망이 되자 출항한지 이틀의 시간이지나면서는 심한 배 멀미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병사들이 태반을 이룰 정도였다.
수송함정에서는 이런 상황을 속속 기함으로 보고해오자 보다 못한 사이토 제독이 데라우치 대장에게 간청했다.
“각하, 멀미로 쓰러진 병사들이 너무 많아 이렇게 계속 항진하다가는 육지로 병력을 내려놓기도 전에 줄초상부터 치루겠습니다. 아무래도 함대의 속도를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항속속도를 높아지면서 대형전함인 기함 사츠마까지 출렁이자 데라우치도 어김없이 배 멀미로 고생을 해서 얼굴이 누렇게 떠 있었다.
“이속도로 얼마나 더 가면 연해주인가?”
“내일 밤 늦게는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항진하기에는 병사들의 건강상태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데라우치의 고집은 요지부동이었다.
“이틀을 견뎠어. 이제 오늘하고 내일만 견디면 돼. 이틀 동안 힘은 들겠지만 배 멀미로 절대 죽지는 않아.”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심하게 구토를 계속하면 심한 탈수증세로 갑작스럽게 사람이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따위 약해빠진 놈들은 황군이 될 자격이 없어. 그런 신경 쓰지 말고 제독은 우리를 최대한 빨리 도착시키는 것만 신경을 쓰게.”
“후!~ 알겠습니다.”
사이토 제독은 데라우치의 막무가내를 말리지 못하고 한 숨만 내쉬었다.
어쩔 수 없이 수송선단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계속 항진했고 이렇게 몇 시간이 흐른 정오가 되었을 때였다.
땡! 땡! 땡! 땡!·······
기함 사츠마에서 갑자기 비상종이 타종되었다.
이때 사이토 제독은 멀미로 고생하던 데라우치 대장이 누워있는 의무실을 방문하고 있었다.
비상종이 타종되는 소리에 두 사람이 동시에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소린가?”
“아마도 관측병이 뭔가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소관이 잠이 나갔다 오겠습니다.”
사이토 제독은 그러면서 데라우치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당황한 표정으로 황급히 다시 돌아왔다.
“각하, 잠깐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이상한 것을 발견했는가?”
“적함대로 보이는 함정들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무엇이라고?”
데라우치 대장은 적 함대라는 말에 언제 아팠냐는 듯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바로 병상을 내려왔다.
“가보세.”
데라우치 대장이 사이토 제독을 따라 갑판에 올라갔을 때는 이미 육군지휘관들도 대부분 갑판으로 나와 있었다.
사이토와 데라우치가 그들의 가장 앞으로 나갔다.
“저쪽을 보십시오.”
데라우치는 사이토가 가리키는 수평선을 자세히 바라보자 과연 수평선 끝에 검은 연기가 십여 줄기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으로 보시면 더욱 정확히 관측되실 것입니다.”
사이토 제독은 참모가 가져다 준 망원경을 데라우치에게 건넸다. 데라우치가 망원경을 조절하여 수평선을 바라보자 과연 십여 척의 함정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나라 국적인가?”
“확인이 되지 않지만 우리 바다에 아무 연락도 없이 무단 침범한 것을 보니 적 함대가 분명합니다.”
데라우치 대장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사이토 제독이 우리바다라고 하는 말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어떤 자들인데 감히 우리바다에 무단으로 들어왔지? 혹 러시아함대인가?”
“러시아는 마지막 남아있던 흑해함대가 지난해 일어난 병사들의 선상반란으로 당분간 항행불능상태라서 러시아함대는 절대 아닙니다.”
“흠!~~”
잠시 신음성을 발하던 데라우치 대장이 질문했다.
“적 함대와의 거리는 얼마인가?”
“40km내외로 보입니다.”
“아직 한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은 있겠군.”
“그렇습니다.”
땡! 땡! 땡! 땡!·······
두 사람이 고심을 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전함의 뒤에서 비상종이 타종되었다.
“무슨 일인가?”
사이토 제독이 몸을 돌려 참모에게 묻자 참모는 황급히 종소리가 난 고물(배의 뒷부분)로 달려갔다.
잠시 후 달려갔던 참모가 다시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숨을 몰아쉬며 보고했다.
“각하, 선단 뒤로도 적함대가 나타났습니다.”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