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회: 5권-15화 -->
두 사람이 황궁으로 가기위해 방을 나서자 박연수가 방충식에게 물었다.
“일본군 포로들은 어디로 끌고 옵니까?”
“연해주는 러시아군 포로들이 있으니 인력문제는 당분간 그것으로 해결하라고 했고 일본군포로들은 전부 원산으로 이송하라고 지시를 내려놓았네.”
그 말을 들은 박연수가 벌떡 일어났다.
“그렇습니까? 그럼 저도 이만 나가봐야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박충식이 웃으며 박연수를 손을 들어 배웅하고 난 후 자신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창가로 발길을 돌렸다.
지금 박충식의 집무실이 있는 곳은 총리부신청사 3층이었다.
광화문 앞 주작대로에는 1년 가까운 공기를 마치고 5층으로 통일한 정부청사건물들이 도로 양 옆으로 위풍당당하게 좍 늘어서 있었다. 주작대로 지하의 하수관거공사는 이미 끝나 있었고 그 위에 아스팔트로 포장한 넓은 도로가 개통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도로의 양 옆에는 가로수까지 이식되어 있었고 넓은 인도까지 조성되어 있었다.
이전에 있었던 긴 행랑은 철거되어 사방이 탁 트여 보였으며 신청사와 인도사이에는 이전의 각부전각들이 터를 잡고 있어서 주변 경관 또한 아주 아름다웠다.
불과 1년 사이 주작대로는 이렇게 눈을 의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변해 있었다. 이런 주작대로에 의친왕과 차준혁이 함께 탄 차와 박연수를 태운 자동차가 차례로 총리부신청사를 빠져 나가 도로를 주행하는 것이 내려다 보였다.
‘이제 한 고비는 넘긴 셈이고 이게 시작이다. 지금 겨우 나라의 형틀이 만들어 졌으니 앞으로 많이 단련시켜야할 것이야. 그래야 더욱 단단해지고 강해져서 어느 나라도 감히 넘보지 못하는 제국이 되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한 동안 아래를 내려다보던 박충식은 몸을 돌려 인터폰을 눌렀다.
“예, 비서실장입니다.”
“잠깐 들어오게.”
곧바로 비서실장 이현호가 방으로 들어왔다.
“오늘 저녁 중정부장에게 은밀히 만나자고 전해주게.”
“은밀히 말입니까?”
“그래, 장소는 안가(安家)면 더 좋겠지? 그리고 차 비서관도 같이 부르고.”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이현호가 방을 나가자 박충식은 비로소 소파에 피곤한 몸을 축 늘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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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혁의 승전 보고를 받은 황제는 석조전이 떠나갈 듯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한동안 가가대소한 황제는 감회에 찬 소회를 밝혔다.
“짐이 오랜 시절동안 일본에게 참을 수 없는 굴욕을 받았었는데 오늘에 이르러서야 그동안의 굴욕을 비로소 모두 씻어 내는구나.”
그러면서 다시 또 용안이 파안이 될 정도로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석조전접견실에는 황제의 최측근인 내무대신 민영환을 비롯해 감사원장 최익현도 입궐해 있었다.
그 두 사람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황제와 함께 파안대소했다.
“하하하하!”
이전 같았으면 황제 앞에 웃는 것조차도 조심해야 할 정도로 황실예법이 아주 까다로웠지만 신군이 도래하고부터 많은 것들이 간소화되면서 군신 간의 관계까지도 이렇듯 편하게 변해갔다.
법도에는 누구보다도 까다롭고 보수적인 감사원장 최익현도 비록 단발은 하지 않았지만 근대화된 형태로 새로 재정된 관리복장을 스스럼없이 착용할 정도로 스스로가 많이 변해 있었다.
“폐하, 우리 국군이 이번 북진에 정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이러한 군을 위해 폐하께서 황은이 담긴 하사품이라도 내려주셨으면 하옵니다.”
최익현이 주청을 하자 황제가 바로 승낙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공(公)은 짐이 무엇을 내려주었으면 좋겠소?”
최익현은 황제가 내장원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켰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이러한 최익현의 난처한 입장을 의친왕이 풀어줬다.
“아바마마 소자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오! 의친왕이 좋은 의견이 있는가보구나.”
의친왕은 건설대신이 2함대에 약속한 것을 설명해주자 황제는 다시 또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건설대신이 아주 난처하겠구나.”
“그렇사옵니다. 이러한 때 아바마마께서 어주(御酒)를 하사해 주시면 건설대신의 난처한 입장도 해결해 줄 수 있고 2함대 때문에 다른 장병들이 황은에 입게 되어 모든 장병들이 아바마마께 감읍할 것이옵니다.”
“오! 그거 참 좋은 생각이로구나. 여봐라, 상선.”
“예 폐하.”
“내장원에 일러 장병들에게 어주를 하사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
“예, 폐하.”
황제가 기분 좋게 상선에게 지시를 내리자 내무상 민영환이 건의했다.
“폐하, 이제 만주도 우리 대한제국의 품에 들어왔고 간악한 일본도 제압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날을 잡아 국군을 위한 환영행사를 거행하는 것이 좋지 않겠사옵니까?”
황제가 민영환의 건의에 반색했다.
“오! 그거 참으로 좋은 생각이오. 경은 지체하지 말고 바로 그 안건을 대공에게 전해 의견을 수렴해 보도록 하시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차준혁은 처음 황궁에 들어 왔을 때 대한제국대신들이 보통사람들은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상한 미사여구를 붙여가면서 자신들의 지식을 과시하듯 황제에게 전언하던 모습을 보았었다. 그 때와 달리 1년이 지난 지금은 황제를 비롯한 사람들의 말투가 평어채로 확연히 바뀐 것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1년 만에 말투를 비롯해 모든 것이 바뀌었구나. 정말 힘은 들었지만 오늘 이분들을 보니 분명 의미 있는 1년이었던 것은 분명하구나.’
차준혁이 이렇게 혼자 생각에 잠겼을 때 황제가 그를 불렀다.
“이보게. 차 비서관.”
“예, 폐하.”
“이번에 2함대가 노획한 물자가 아주 많다고 하던데 얼마나 되는가?”
차준혁이 총리가 건네준 서류를 보며 설명했다.
“이번에 노획한 물자는 총기류는 10만 정의 신형소총과 200문 기관총 그리고 막대한 양의 총탄이 노획되었습니다. 그리고 신품의 일본군겨울군복 10만 착과 동일한 수량의 방한복을 비롯해 20만착의 가죽군화도 함께 노획되었습니다.”
의친왕이 먼저 감탄했다.
“아! 정말 대단한 노획물이로구나.”
“거기에 만주일본군까지 6개월 동안 먹일 식량도 함께 노획하였으니 상당한 물량입니다.”
그러면서 일본도를 비롯해 세부적인 군수물자까지 일일이 열거하자 황제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최준혁의 설명이 끝나자 병조판서 출신인 내무상 민영환이 황제에게 먼저 허리를 숙였다.
“폐하. 이정도 군수물자라면 군대를 새로 편성해도 될 정도입니다.”
“허허. 내무상의 말대로 정말 군대를 새로 만들어도 되겠어.”
황제가 상상이상으로 많이 노획된 군수물자에 놀랐는지 헛웃음까지 지었다.
그때 최익현 원장이 질문했다.
“포로들은 어떻게 처리할 예정인가?”
“연해주는 러시아포로들이 있어 당분간 인력은 큰 어려움이 없어서 일본군포로는 일단 원산에 전부 수용한 후 광산이나 각 건설현장으로 분산 배치할 예정입니다.”
“이번에 노획한 일본군의 피복도 전부 국방색을 물을 들여 장병들에게 보급할 것인가?”
“아직 그것까지는 확인하지 않았습니다만 전례에 비춰 그렇게 조치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군이 입고 있는 군복의 재질이 우리 한복 보다는 훨씬 좋겠지?”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포로가 된 일본군들이 입고 있는 군복도 전부 압수를 하게.”
최익현의 느닷없는 말에 차준혁이 놀라서 되물었다.
“그러면 그들은 뭐를 입힙니까?”
“그들에게는 우리국민들이 입던 허름한 한복을 수거해 죄수복을 만들어 입히도록 하는 게 어떻겠나?”
“아! 그게.~”
차준혁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잠시 머뭇거리자 최익현은 단호했다.
“내가 알기로 일본군복이 한복보다 아주 질긴 것으로 알고 있네. 그러니 일본군복을 압수해 물을 들여 우리 노동자들에게 입히고 일본군들에게는 그들이 입던 헌옷가지를 입히도록 하면 조금이라도 우리 백성들이 편하지 않겠나.”
차준혁은 최익현의 의견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런 생각까지 하시다니 대단하시다. 정말 일본이라면 이를 가는 양반이시네.’
“일단 그 문제는 건설대신님께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잘 말해주게. 그렇지 않다면 내가 직접 건설대신께 말을 드려보겠네.”
최익현이 이렇게 강하게 나오자 차준혁이 황급히 말을 정정했다.
“아닙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제야 최익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차 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