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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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권이 부끄러운 표정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미국에 대한 허상을 벗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주게.”

“예?”

“북방영토는 일차적인 문제가 해결되어 이제 수성에 들어가야겠지만 해양영토는 지금부터 시작한다는 점을 명심하게.”

오창권이 어리둥절했다.

“해양영토요?”

그러자 박충식은 이때부터 자신의 구상을 한동안 설명해주었다. 그의 구상을 들은 오창권은 크게 공감하면서 결의를 다졌다.

“알겠습니다. 전하의 구상이 반드시 이뤄질 수 있도록 우리 중정이 초석이 되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부탁하네.”

그러면서 박충식은 차준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차 비서관.”

“예, 전하.”

“지금까지 차 비서관이 잘해주어서 정말 고마웠네. 그러나 지금부터 차 비서관이 해야 할 일이 이전보다 훨씬 중요해질 것이니 조금 더 열심히 해주었으면 하네.”

“하명하십시오.”

“자네는 지금부터 북방영토 수성에 관한 임무를 맡아 주어야겠네.”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박충식은 이때부터 차준혁에게 자신의 생각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한동안 그의 설명을 들은 차준혁도 오창권 같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해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수고해주게.”

차준혁이 앉은 자세로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예, 전하.”

“자, 내가 두 사람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으니 술 한 잔 했으면 좋겠는데 오 부장 어떻게 준비 되겠나?”

“그렇지 않아도 저녁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그러면서 오창권 부장이 잠시 밖에 나갔다 돌아오자 그 뒤를 따라 음식상이 같이 들어왔다.

            **************

며칠이 지나도 출정한 병력과 교신이 되지 않자 대본영은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대본영은 긴급회의를 개최했다. 3년간에 걸친 히로시마생활로 몸과 마음이 모두지친 일왕이 병이 나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바람에 야마가타 참모총장이 주재하고 있었다. 

북해도를 출발한 수송함대의 통신두절로 인해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언성이 아주 높아졌다.

“며칠 동안 수송함대가 연락이 되지 않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

“병력수송을 책임진 해군에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쾅! 쾅! 쾅!

야마가타 원수가 탁자까지 내리쳤지만 화를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서성거렸다. 

평상시의 야마가타 원수였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고 있었으나 누구도 그를 말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토 스케유키 대장을 불렀다.

“이토 군령부총장.”

이토 스케유키 해군대장은 마치 자신이 죄인이 된 듯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다 야마가타가 부르자 몸을 바로 했다.

“예, 각하.”

“도대체 해군에서 수송계획을 어떻게 세웠기에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오. 해군의 참모들은 모두 손을 놓고 있는 것이오?”

이토 대장은 비록 자신보다 선배이고 일본육군의 지주와도 같은 야마가타 원수라고 하지만 해군을 대표하는 자신을 공개석상에서 대놓고 질책하자 치욕감에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무런 반발도 하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묵묵부답했다.

“······”

야마가타 원수가 이토 해군대장을 마치 심문하듯 추궁하자 회의장 분위기는 순간적으로 싸늘해졌고 특히 해군장성들의 안색이 모두 붉게 변했다.

회의장이 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되자 분위기를 반전하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가 서둘러 나섰다.

“이토 대장, 출정한 수송함대가 아예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오?”

그러자 이토 해군대장이 한 숨과 함께 설명했다.

“후!~~ 며칠 전부터 수송함대가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어 오리무중입니다.”

“전혀 말이오?”

“그렇습니다. 만주에서 육군이 연락두절된 것처럼 북해도를 출발한 수송함대도 갑자기 연락두절 되어 버렸습니다.”

이토 해군대장이 의도적으로 육군을 걸고 넘어가자 이번에는 육군출신 장성들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하지만 육군 장성들은 야마가타 원수가 노골적으로 해군의 수장인 이토 해군대장에게 먼저 치욕을 준 것을 직접 보았기에 아무도 반발하지 않았다.

“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소?”

“그렇지 않아도 긴급하게 수송함대의 항로를 추적하는 함정을 파견시켰습니다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 함정도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국정불상의 적이 우리 함대를 공격했다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소?”

“소관도 그럴 가능성 때문에 서둘러 다시 함정을 파견했지만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함정들이 수뢰정 보다 작은 소형이라 확인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고 있습니다.”

“아니! 해군에서 그런 소형함정을 파견할 정도로 함정이 부족하다는 말이오?”

이토 히로부미의 추궁에 이토 대장이 얼굴이 벌게지며 몸 둘 바를 몰라 하면서 대답했다.

“이번 병력수송의 호위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함정들을 전부 동원시키는 바람에 지금 당장은 곤란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열도인 우리 일본에 상황을 확인할 함정조차 제대로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소.”

“후!~ 그만큼 이번 병력수송에 저희 해군이 전력을 기울였는데 결과가 이러니 후작각하께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이토 해군대장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사죄의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질책보다 는 그를 격려했다.

“아니오. 아직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지금은 조그만 희망의 끈이라도 놓지 맙시다.”

그렇게 이토 히로부미가 회의장에 모인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고 있을 때 해군정복을 입은 장교 한 명이 들어와 이토 스케유키 대장에게 다가가 경례를 하고는 한 장의 전문을 건네주었다.

전문을 건네받은 이토 해군대장이 전문을 읽다 안색이 돌연 창백해지면서 손까지 떨었다.

회의장의 모든 사람들이 이토 대장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그의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는 모두의 안색이 그와 함께 절망적으로 변해갔다.

침착하기로 소문난 이토 히로부미의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했다. 

“이토 대장 어떤 전문인가.”

이토 히로부미가 질문을 했지만 이토 스케유키 대장의 입이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야마가타 아리모토 원수가 다시 질문을 했다.

“이토 대장 무슨 전문이오.”

이토 스케유키 대장은 입이 말랐는지 마른 침을 삼키고는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북해도와 연해주 중간 해상에 엄청난 부유물들과 시신들이 떠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것들을 수거 해보니···”

이토 스케유키 대장은 마지막말을 하지 못해 잠시 말을 끊었다 힘들여 다시 이었다.

“전부 이번에 파병한 아군의 시신과 물건들이라고 합니다.”

이토 대장의 안색을 보고 모두 짐작은 했으나 직접 그의 입에서 말을 듣게 되자 회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경악에 물들었다.

서있던 야마가타는 이토의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노래지며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렸으나 다행히도 탁자를 잡고서 무너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털썩!!한동안 회의장은 침묵에 휩싸였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침묵이 회의장을 감돌았지만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고 또 누구도 먼저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무거운 침묵을 깬 것은 안이 아니라 밖이었다. 갑자기 일왕을 보좌하는 시종이 회의실 문을 열고서 소리친 것이다.

“천황폐하께서 드십니다.”

후다닥

일왕의 입장을 알리는 시종의 소리가 들리자마자 회의장에 있던 인사들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일왕이 들어서자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고 일왕이 자신의 옥좌에 가서 앉자 모두들 자세를 바로 하고 자리에 앉았다.

메이지일왕은 바로 이토 대장부터 찾았다.

“이토 군령부총장.”

“예, 폐하.”

“이번에 연해주로 보낸 병력이 전멸했다는 소식이 사실이오?”

“그 그게·······”

이토 스케유키 해군대장이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자 이토 히로부미가 일어서서 변명을 하려고 했으나 일왕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짐은 이토 대장에게 직접 듣고 싶으니 후작은 잠시 앉아 있으시오.”

일왕이 이렇게 말을 하니 이토 히로부미도 더 이상 변병을 못하고 허리를 숙이며 자리에 앉았다.

“이토 대장, 짐은 사실이 듣고 싶소.”

일왕이 거듭 지시를 하자 이토 해군대장도 전문의 내용을 사실대로 보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일왕은 먼저 보고를 받고 달려왔지만 이토 대장에게서 같은 말을 다시 듣게 되자 입을 열지 못했다.

잠시 후 메이지일왕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전문의 내용대로라면 아군이 전멸한 것이 사실이겠군.”

일왕이 이렇게 독백을 해도 그 말을 반박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회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는 지난번 연합함대가 교신이 끊긴 후 끝내 찾지 못해 결국 전부 전멸 처리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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