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회: 5권-20화 -->
“국방상, 러시아와 일본의 종전협상이 끝이 났으니 러시아가 분명 만주에 대한 기득권을 되찾기 위해 움직일 텐데 그전에 러시아의 침략야욕을 분쇄시킬 공작을 미리 마련해 둬야 하지 않겠나?”
“그렇지 않아도 공군에 미리 그에 대한 공작을 지시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공작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고 박충식은 역시하는 표정을 하며 칭찬했다.
“아!~ 역시 국방상이야. 그럼 언제부터 시작할 계획인가?”
“이제 각 군단도 주둔지에 자리를 잡은 것 같으니 곧 시작을 할 생각입니다. 공작이 시작될 때 전하께 별도로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박충식은 김종석의 말을 들으며 아주 흡족해했다.
이 무렵 대한제국군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만저우리까지 1군단이 진군해있었다. 러시아와의 국경도시인 만저우리 또한 하얼빈처럼 동청철도부설과 함께 러시아가 개발한 도시로 황무지에 세워진 작은 국경도시에 불과했으나 도시전체가 러시아풍의 건물로 뒤덮여 있었다.
대한제국 1군단의 만저우리진출은 러시아군이 동청철도를 방어하고 있던 방어부대조차 일본과의 최후의 혈전에 모두 투입시킨 바람에 1군단은 그저 기차를 타고 북상한 것 밖에는 한일이 없을 정도로 무사통과였다.
대한제국군은 훈춘전투에서 일본군을 전멸시키면서 러시아군에게 정식으로 항복을 받아(물론 대외적으로는 비밀에 붙였지만) 연해주로 입성을 하자마자 아주 빠르게 육군의 모든 부대를 재편했다.
가장먼저 연해주에는 5군단을 그대로 주둔시키고 친위군단은 한성일대방어를 담당하기 위해 귀국했다. 그리고 1군단은 만저우리에, 2군단은 하얼빈에 자리를 잡았으며, 3군단은 요동에 그리고 특전군단은 평양에 각각 자리를 잡았다.
10만 명의 예비 병력이 충원되어 부대를 사단편제로 부대를 재편해도 되었지만 대한제국군은 그렇게 하지 않고 기존 여단의 대대편재를 2배 이상 늘이는 것으로 과도기적 체재를 고수했다. 이는 경력과 경험이 부족한 간부들에게 군사교육과 더불어 실전경험을 더 축적시킨 후 능력에 따라 진급을 시키면서 2~3년 후 자연스럽게 사단으로 재편하면서 각 군단도 7개 군사령부체재로 변환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전군단은 강명철의 특별지시로 평양에 터를 잡으면서 곧바로 특전사령부로 개편되었다.
그러면서 예하부대도 현재의 5개 여단을 사단재편을 염두에 두지 않고 처음부터 10개 특전여단으로 편성하여 병력도 여기에 맞춰 충원시켰다.
해군도 함대를 재편되었다.
먼저 대양함대가 주축인 1함대는 제주에 2함대는 동해, 3함대는 해주에 둥지를 틀었으며 이번에 새로 편성한 5함대와 7함대는 각각 요동반도 여순 항과 해삼위(海蔘威 블라디보스토크)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는 각 함대의 기함은 전부 대양함대에서 차출된 함정으로 배정했다. 그러면서 일본과 러시아군에게 노획한 함정들을 각 함대에 고르게 배정하고는 순차적으로 전면개장을 추진하기로 했다.
노획한 전함을 전면개장 하는 이유는 전함을 비롯한 각 함정들이 해전에서 크게 쓸모가 없는 주포에 비해 사거리 짧은 부포들이 쓸데없이 많이 장착되었기 때문이었다.
해군은 이러한 부포를 모두 제거한 후 주포일색으로의 전면개장을 추진할 예정이었다. 이와 더불어 선박의 엔진도 차츰 상용화되고 있는 증기터빈엔진으로 전면개조를 하기로 결정하고는 영국과 협상을 벌일 적당한 기회를 찾고 있었으며 이러한 전함의 전면개장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진행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육군의 병력배치와 해군의 이러한 함대재편과 전면개장은 모든 계획이 먼저 입안되어 있었기 때문에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연해주입성과 더불어 아주 신속하게 병력재편이 이뤄진 덕분에 겨울이 되기 전인 10월 하순에 접어들자 각 군단은 모두 자신들의 주둔지에 안착할 수 있었고 곧바로 영구주둔시설물과 병영건설에 들어갔다.
김종석이 박충식에게 보고를 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해주에서 웅비비행선 3척이 차례로 이륙해서는 북상을 시작했다. 비행선의 북상은 공군에 의해 바로 총리부로 보고되었다.
“웅비선 3척이 해주를 이륙해 북상을 시작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총리비서실장 이현호가 보고를 하고 있을 때 국방상 김종석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하. 국방대신님의 전화입니다.”
“연결하게.”
신군이 도래하고 바뀐 것 중의 하나가 전화의 획기적인 보급이었다. 본래는 1910년 7,000여 대도 보급되지 않았던 전화가 신군이 도래하고 불과 2년여 만에 수만 대의 전화가 보급되어 있었다.
“전하. 김종석입니다.”
“아! 국방상.”
“공군에서 보고 받으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웅비선이 이륙했다는 보고를 받았네.”
“전에 말씀드린 대로 러시아에 대한 공작을 시작하겠습니다.”
“외부에 노출되지는 않겠지?”
“물론입니다. 만일 노출이 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몇 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정도로 철저하게 작업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공군에 연락해서 무운을 빌어주고 철저하게 작전을 시행하도록 당부해주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박충식은 전면 벽에 걸린 세계전도 중에서 시베리아가 눈에 들어왔다.
‘차곡하게 단계적으로 진행해 갈 것이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차곡하게 진행해서 너희들이 깨달을 쯤엔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며 박충식은 시베리아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않았다.
해주에서 이륙한 웅비비행선은 1·3·4호선으로 이들은 이륙을 한 후 나란히 북상했다. 계속 북상한 3척의 비행선은 다음날 봉천에 도착 했고 다시 동청철도를 따라 북상을 시작한지 이틀 만에 만저우리상공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북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동안 더 북상을 한 웅비는 동청철도와 시베리아철도의 분기점인 치타에 도착해서 각각 분산되었다.
분산된 웅비 중 2척은 시베리아철도를 따로 좌우로 갈라졌으며 나머지 1척은 지나온 동청철도를 따라 거꾸로 남하를 시작했다.
웅비1호의 강운형 대위는 치타에서 철길을 따라 남하하다 미리 봐둔 곳에 도착해 비행선을 상공에 정지했다.
“사무장, 투하 준비되었나?”
“예. 기장님 지시만 내려주시면 됩니다.”
“부기장 투하지점 확인하게.”
이도선 중위가 장비를 조작해 투하위치를 맞추었다.
“됐습니다.”
“폭탄 창 개방”
“개방했습니다.”
“투하.”
강운형의 지시가 있자 사무장은 레버를 당겨 폭탄 한 발을 투하했다. 이렇게 투하된 폭탄은 정확히 목표한 철교에 떨어졌다.
콰앙!~
폭격을 맞은 철교는 포탄의 폭발과 함께 발생한 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교각이 그대로 허물어 내렸다.
“위치조정 100미터 전방”
강운형 대위의 지시로 이도선 중위가 비행선을 조종하여 100미터를 나갔다.
“위치 확인.”
이도선의 외침과 동시에 강운형이 다시 지시했다.
“폭탄 투하.”
또다시 한 발의 포탄이 투하되었고 그 포탄도 여지없이 철교를 강타하며 교각을 허물었다. 200여 미터의 철교가 두 곳에 폭격을 받아 교각까지 무너져 내리자 철교는 바로 고철이 되어버렸다.
강운형은 이렇게 동청철도를 따라 내려오며 철교와 터널 또는 철도 옆에 있는 험준한 계곡을 무너트리면서 치타에서 만저우리까지 구간을 쉽게 복구하지 못하도록 파괴시켰다.
나머지 2척의 웅비호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치타에서 동서로 철길을 따라가면서 지형지물을 숙지한 후 다시 되돌아오면서 웅비1호와 같은 방식으로 시베리아철도 중 계곡과 협곡 등 복구하기 어려운 지점만을 골라 철저히 파괴시켰으며 특히 서쪽으로 간 웅비는 시베리아철도의 가장 험난한 지형인 바이칼의 철길을 완전히 무너트렸다.
이러한 폭격은 이후 몇 번 더 시행되면서 철도파괴는 서쪽으로는 옴스크 인근까지 실시되었으며 동쪽으로는 하바롭스크 근방까지 파괴시켰다. 폭격은 복구하려면 적어도 몇 년의 시간이 걸릴 정도로 복구하기 힘든 곳만 골라서 철저히 파괴시켜서 러시아의 동방진출에 발목을 꽉 잡아버렸다.
러시아는 일본과의 종전협상에서 거액의 전쟁배상금을 물어주어야 했으나 대부분 영국과 미국의 장기국채를 인수하여 상환하는 조건이라 실제 일본에게 지급된 전쟁배상금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더구나 자신들이 그토록 원하던 만주지역이권을 그대로 보전할 수 있던 것에 만족하고 협상이 끝나자 서둘러 극동경영을 준비했다.
그동안 일본군에게 패하며 연락두절이 되고 있는 연해주와 극동군상황이 걱정되기는 했으나 이는 새로 병력을 파견하면 수습될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 인원 편성을 서둘렀다.
그러나 이러한 때 시베리아횡단철도노선이 원인불명으로 파괴되었다는 소식은 러시아를 경악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11월에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것은 기차가 아니면 불가능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연해주문제는 내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러시아는 한 겨울임에도 기차노선이 파괴된 원인을 찾기 위해 대규모 조사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폭탄에 의해 폭발된 것을 제외하고는 누구의 짓인지 전혀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나 철도를 복구하면서 주변을 수색을 하던 몇 년 후 폭탄파편 발견되었으며 그 파편에서 일본 글씨를 확인되면서 파괴의 범인으로 일본이 지목되자 양국은 극렬한 외교전을 벌였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연해주가 대한제국의 품으로 온전히 들어온 후라서 양국의 외교전에 대한제국은 그저 뒤에서 바람잡이만 했을 뿐이었다.
물론 입을 가리고 웃었던 것은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