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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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도발을 기다린다고?”

“연해주가 아무리 우리 고토라고 해도 러시아는 영토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폭격으로 철도수송이 당분간 어렵다고 해도 저들은 연해주를 되찾기 위해  반드시 도발을 해 올 것입니다.”

“그럴 테지.”

“그때 아예 러시아를 시베리아에서 몰아내면 어떻겠습니까?”

박충식이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러시아를 시베리아에서 몰아내자고?”

“그렇습니다. 만일 러시아가 이대로 주저앉으면 어쩔 수 없지만 러시아가 우리 대한제국을 얕보고 도발해 온다면 그때를 기회로 삼아 아예 러시아를 결단을 내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방어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명피해가 상당히 발생할 텐데.”

“꼭 그렇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러시아군이 침공해 온다면 시베리아와 접경지역인 1군단이 주둔해 있는 만저우리 쪽일 공산이 큽니다.”

박충식의 고개가 바로 끄덕여졌다.

“그렇겠지. 다른 곳은 험준한 산맥이 가로막혀 있어서 넘어오기가 쉽지 않겠지.”

“만저우리가 있는 곳이 바로 대초원지대입니다.”

“그런데?”

그 때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계속 듣고 있던 중정부장 오창권이 나섰다.

“아! 초원이라면 전차와 장갑차를 이용하면 되겠습니다.”

박충식도 오창권의 말을 듣자 바로 감을 잡았다.

“맞아. 초원에서는 전차와 장갑차면 가히 무적이나 다름없어.”

“맞습니다.”

박충식이 두 말하지 않고 승낙했다.

“알겠네. 자네가 말한 의견을 국방성과 심도 있게 논의해 보겠네.” 

“감사합니다.”

차준혁이 이렇게 박충식과의 비밀회동을 회상하고 있을 때 이준과 이위종, 이상설 세 사람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이 들어오는 기척에 차준혁이 회상에서 깨어나서는 반갑게 세 사람을 맞이했다.

“아! 어서들 들어오십시오.”

차준혁의 집무실에는 부임하기 전 일부러 오장경에게 부탁해서 설치해 놓은 커다란 원탁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리로 앉으십시오.”

차준혁이 자신보다 이십 년 가까이 연상인 총영사 이준을 깍듯하게 예우했다.

자리에 앉은 이준이 웃으며 질문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하십니까?”

“북경에 오기 전 대공 전하를 독대할 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차준혁이 그날에 나누었던 대화내용을 세 사람에게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끝나자 이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일본과는 완전히 척을 지겠다는 것이군요.”

“그거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우리 제국과 일본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나 다름없으니 두 나라 중 한 나라가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이번에는 영사 이상설이 질문했다.

“다른 나라들과 맺은 불평등조약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우선 일본부터 정리를 하고 난 다음에 외교관이 한성에 주재하지 않는 러시아와 미국도 협상으로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나라는 크게 무리 없이 우리가 원하는 데로 조약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서양열국에게 최혜국 대우를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래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북경에 온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총영사 이준이 나섰다.

“우리가 이곳에 왔으니 일본공사가 가장 먼저 달려오겠군요.”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이준이 걱정스런 얼굴을 했다.

“북경주재 일본공사가 하야시 곤스케라고 들었는데 그자는 한성에 있을 때 대면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만만치 않은 자입니다.”

“부임하기 전 의친왕 전하를 뵈러 갔을 때 조심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이제 칼자루를 쥔 편은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입니다.”

이 말을 듣자 세 사람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한 가득 찼다. 분위기가 좋아진 탓인지 가만히 앉아 있던 이위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국은 어떻게 대처하실 계획이십니까?” 

“한성에서 외교관과 자국민들이 추방됐기 때문에 우리가 북경에서 본격적으로 외교활동을 하면 미국은 절대 그냥 있지 않을 것이란 것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총영사 이준이 강경발언을 했다.

“제 생각에는 지금 미국이 일본을 전폭적으로 후원하고 있으니 미일양국을 동일하게 보고 대응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위종은 20살의 나이답지 않게 미국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그렇게 해야겠지만 미국은 일본과는 전혀 다른 나라이니 각별하고 조심스럽게 상대해야 할 것입니다.”

“이 참서관은 의외로 소심한 구석이 있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미국을 직접경험하지 않았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입니다만 미국을 일본같이 낮춰보면 절대 안 됩니다.”

차준혁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미국도 분명 경계를 해야겠지만 일단 그들이 나오는 상황을 보고 상대하기로 하고 지금은 일본과 러시아외교에 주력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다음날 차준혁이 청국 외무부를 방문했다.

이 무렵 청국도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개혁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청말신정(淸末新政)이라고 부르는 이 개혁은 서태후의 주도 하에 진행되고 있었다. 청국은 1901년 신축조약을 채결하며 외국군의 북경주둔과 같은 치욕을 당하자 서태후는 그동안 막아왔던 정치개혁을 단행한다.

그 결과 1901년 4월, 중앙업무기구인 독판정무처(督辦政務處)를 설치하고 필요 없는 관청과 관원을 없애겠다는 무술변법노선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6부 체제를 폐지하고 외무부(外務部), 상부(商部), 학부(學部), 순경부(巡警部), 우전부(郵電部) 등의 정부기구를 신설하면서 신정을 실시한다. 

이 후 1905년 11월 서태후는 다섯 명의 대신들에게 서양의 정치 제도를 답사하고 오도록 각각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으로 파견한다.

파견된 대신들은 각국의 다양한 시설을 둘러보는 것은 물론 파견국의 각종 정치제도도 시찰한다. 시찰단은 1906년 귀국 후 국가가 부강해지기 위하여 헌법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보고를 올렸으며 그 결과로 1906년 드디어 예비입헌을 통한 정치개혁을 대대적으로 실시하였다.

청조는 예비헌법인 흠정헌법대강을 반포한 후 9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입헌군주제를 실시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군대도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했다. 

1901년 무과를 폐지한 청국은 1903년 각 성에서 실시하던 자체 군사훈련을 금지시키고 중앙 연병처(練兵處)에 일원화시켜 군대를 통제했다. 특히 원세개의 북양군(北洋軍)을 개편하여 1905년 육군을 신설하고는 군관교육도 체계적으로 초급·중급·고급과정을 거치는 교육과정을 마련한다. 거기에 징병제를 실시해 50만 명의 정규군 편성을 계획한다.

하지만 해군은 대한제국과의 조약으로 획득한 북양함대가 유일할 정도로 아직은 미미했다.

이렇듯 외적으로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서태후의 사치는 더욱 심해져갔으며 경친왕과 같은 탐관이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있었고 원세개는 군대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완전히 썩어 있었다. 

그야말로 겉으로만 개혁이고 말뿐인 개혁이었다.

청국외교부를 방문해 외교대신에게 신임장을 제출한 차준혁이 공관에 돌아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하야시 곤스케 주청공사가 통역과 함께 공관을 찾아왔다. 

차준혁은 비록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던 인물이었으나 내심을 숨기고 그를 정중하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하야시 곤스케는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만 까딱하며 차준혁의 인사를 받았다.

“그대가 이번에 주청공사로 부임한 사람이오?”

“차준혁이라고 합니다.”

차준혁이 정중하게 나오자 하야시 곤스케는 그것이 주눅 들었다고 오인하며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본국과 귀국은 지난 1904년 8월 22일 채결한 일한협정에 의해 외교에 관한 중요업무일체를 본국에서 파견한 외교고문의 의견에 따라 시행하기로 협정을 맺었소. 그런데 본관은 어떠한 통보도 받지 않았는데 귀하가 갑자기 주청공사로 부임하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차준혁은 허락받지도 않고 왜 청국에 왔냐는 하야시의 말을 들으며 속이 부글부글 끓었으나 꾹 참고 준비한 공문을 그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요?”

“읽어보시오.”

처음에 정중한 말투와 달리 차준혁이 반 공대를 하자 하야시의 눈썹이 꿈틀했으나 묵묵히 공문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하야시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와락

하야시가 공문을 움켜쥐고는 차준혁을 노려봤다.

“이것이 귀국이 본국에게 보내는 정식공문이오?”

“그렇소.”

쾅!

하야시 곤스케가 원탁을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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