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회: 5권-26화 -->
정원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아이고!~~”
“아!~~~”
사살된 열 한명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부상자들이 흘린 피로 정원이 완전히 피로 물들었으며 신음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정성용은 그 장면을 보고도 표정조차 흐트러지지 않고 냉정하게 지시했다.
“장내를 정리하라.”
정성용의 지시가 있자 무관들을 비롯해 총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난 직원들이 서둘러 정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날이 밝자 외국공관에 총을 든 자들이 침입했다는 사실에 북경이 발칵 뒤집혀졌다. 외교가인 동교민항일대는 몇 년 전 의화단사건 때 공사관이 공격을 당해 독일공사가 살해되고 많은 인명피해가 났던 것을 상기하며 동교민항일대를 전면 차단했다.
그러고는 각국병력이 엄중경계를 서면서 청국인의 왕래를 금지시키면서 자신들의 공관에도 평상시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배치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외국공관에 대한 테러는 세계적인 특종이라 대한제국북경공관은 북경에 주재하는 외국특파원들로 북적거렸다.
펑! 펑! 펑!
특파원들은 사망한 자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은 물론 부상자들과 부상을 입지 않고 체포된 3명의 침입자들을 취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면서 특파원들은 침입자들이 일본군이란 사실과 공사를 납치하기 위해 침입했다는 말을 듣고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펑! 펑! 펑!
가뜩이나 대한제국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던 특파원들은 침입사건을 기회로 수많은 질문을 쏟아내었고 이들의 질문은 총영사 이준과 영사 이상설이 도맡아 답변해주었다.
이렇게 어수선한 시기에 차준혁은 기자들을 피해 참서관 이위종을 대동하고 영국공사관을 방문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청국주재 영국공사 맥도날드(McDonald)경은 50이 훨씬 넘고 체구도 우람했다. 차준혁과는 나이차이가 많이 났지만 각국을 대표하는 공사인 신분을 생각해 깍듯이 대했다.
맥도날드는 차준혁이 자리에 앉자마자 안부부터 물어왔다.
“새벽에 수십 명의 괴한들의 침입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다친 곳은 없습니까?”
“다행히 무사합니다.”
“그런데 일본군이 공관을 침입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소문이 벌써 각하께 들어갔군요. 그렇습니다. 저를 납치하려고 일본군이 습격했었습니다.”
맥도날드 공사의 안색이 아주 심각해졌다.
“몇 년 전에 일어났던 의화단사건에서 외교관들이 불상사를 입은 것은 폭도들이 난동이라지만 이렇게 정규 군인이 타국공관을 침범하다니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솔직히 본관도 일본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본국의 주재무관들이 용감히 싸워서 다행히 불상사를 막았지 그렇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등골이 다 오싹합니다.”
그러면서 조금 약한 표정을 보이자 맥도날드가 비록 대리공사로 부임했지만 아직은 어리구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위로했다.
“정말 큰일을 당할 뻔 했습니다.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각하.”
“그건 그렇고 대책을 강구해야지 다른 것도 아니고 타국공관을 무단침입하고 한 나라의 대표인 공사를 납치기도를 한 일본을 이대로 그냥 두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차준혁의 안색을 일부러 딱딱하게 굳혔다.
“일본은 전쟁을 벌이고 있던 중에도 러시아외교관은 한성에서 추방조치를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군 병력까지 투입해 납치기도를 한 것은 각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문명국가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각하께서는 일본을 제제할 좋은 방안이 있으십니까?”
다른 문제도 아니고 외교관에 대한 남치테러사건이었기에 맥도날도의 안색도 아주 경직되었다.
“일본을 제외한 각국 공사들을 초대해 일본에 무모한 행동에 대한 대책회의를 열어야겠습니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군대를 동원해 공관을 습격했다는 것은 각국의 공분을 사고도 남을 짓이니 거기서 어떤 합일점이 도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본국의 일에 각하께서 이렇게 신경을 써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차준혁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맥도날드 공사는 웃음을 지으며 반문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우리 대영제국과 대한제국은 일본과의 동맹이 파기된 후부터는 이미 같은 배를 탄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아! 그렇습니다.”
“하하하!” “하하하!”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한바탕 크게 웃자 분위기가 아주 부드러워졌다. 맥도날드 공사는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고 차준혁을 바라봤다.
“공사께서 본관을 방문하신 목적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 대한제국이 지난번 귀국과 약속했던 군항(軍港)제공에 대한 문제를 협의하러 왔습니다.”
맥도날드 공사는 깜짝 놀라며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던 몸을 바짝 세웠다.
“그렇다면 귀국이 만주에서 일본에게 승리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대한제국은 이번에 만주에서 일본을 전멸시키고 러시아군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맥도날드 공사는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양국 병력을 모조리 제압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일본이 북해도에서 연해주로 파병하려던 10만 명의 병력도 모조리 동해바다에 수장시켰습니다.”
맥도날드는 경악할 정도로 놀랐다.
“저,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본관이 뭐 하러 공사각하께 실언을 하겠습니까?”
맥도날드 공사의 입이 놀라서 다물어지지 않았다.
맥도날드는 만주의 일본군이 증발이 된 듯 본국과 일체의 교신이 되지 않고 있는 것과 북해도병력이 누군가에게 공격당해 전멸했다는 첩보를 이미 입수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벌인 당사자가 대한제국이란 말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그렇게 있던 맥도날드 공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후!~ 솔직히 믿을 수가 없군요.”
“그러실 줄 알고 증거자료들을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통역을 하던 이위종이 가져온 문서를 맥도날드 공사에게 건네주었다. 이위종이 건넨 것은 흑백사진으로 만주에서 일본군과 결전을 벌인 장면과 러시아군의 항복을 받는 장면 그리고 동해 북부에서 수송함대를 침몰시키는 장면 등의 흑백사진이 수십 장이나 되었다.
사진들을 보자 맥도날드는 차준혁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귀국의 군사력이 솔직히 얼마나 되십니까?”
“비밀을 지켜 주시겠습니까?”
“유니언 잭(Union Jack 영국국기의 별칭)의 명예를 걸고 맹세합니다.”
맥도날드 공사가 맹세까지 하자 차준혁은 육군병력은 조금 부풀리고 해군은 조금 줄여서 대답했다.
“우리 대한제국병력은 육군 사십만 명에 예비군 백만 명 그리고 해군 3개 함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예?”
맥도날드 공사의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차준혁은 그가 믿지 못하겠다는 말을 할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이위종에게 눈짓을 했고 이위종은 가져온 다른 문서를 맥도날드에게 건네주었다.
“공사 각하께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가져온 사진입니다.”
맥도날드가 서둘러 봉해진 봉투를 풀고서 안에 있는 사진들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진은 위치는 적혀있지 않았지만 각 군단사령부와 여단사령부와 함께 많은 병력이 도열한 모습이 찍혀 있었다. 육군의 모습을 넘기던 맥도날드는 각 함대의 전함이 찍힌 사진을 보자 얼굴까지 붉어질 정도로 크게 놀라워했다. 그렇게 함대 사진들을 넘기던 맥도날드는 낯익은 전함의 모습들을 발견했다.
“이 전함들은 일본이 우리에게서 구입해간 전함들 같습니다.”
“바로 보셨습니다. 지난번에 우리 해군에서 나포한 몇 척의 일본함정입니다.”
“아! 그렇군요. 한성에 주재하는 조던 공사의 말대로 정말 대한제국이 일본연합함대를 괴멸시켰군요.”
“맞습니다.”
“아!~”
맥도날드 공사는 그동안 군사력이 형편없다고 소문나있던 대한제국이 갑자기 엄청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내심 크게 당황했다.
한성에 주재하는 조던 공사에게 대한제국이 제시한 사안에 대한 것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설마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준혁이 증거로 사진까지 제시하고 더구나 그동안 실종되었다고 소문나있던 일본연합함대 함정들이 대한제국함대에 버젓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안은 한성에 있는 조던 공사에게 알려도 될 것을 구태여 본관에게 알려주는 의도가 뭡니까?”
차준혁은 맥도날드 공사가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순간적으로 진정하면서 날카롭게 질문해오자 역시 노련한 외교관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