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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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각하의 도움을 받을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본관이 도움을 줄 일이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맥도날드는 무슨 말인지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경청하겠습니다.”

“우리 대한제국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아시아에서 러시아를 완전히 몰아낼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맥도날드는 처음 이 말에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귀국이 연해주를 점령했으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러시아가 만주북쪽에 계속 똬리를 틀고 있는 한 언젠가는 또 다시 만주를 넘보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맥도날드 공사가 대답대신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흠!~”

“언젠가는 터질 폭탄을 옆에 두고 살수는 없는 일이기에 우리 대한제국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러시아를 아시아에서 몰아내려는 것이고 그것이 영국의 국익과도 부합된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입장에서는 만일 차준혁의 말대로만 된다면 여왕의 왕관에 박힌 보석 같은 인도와 빨대 꽂힌 꿀통과도 같은 중국에 대한 이권을 힘 하나 안들이고 오롯이 지켜낼 수 있었다. 더구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지켜낼 수 있다는 사실에 맥도날드는 구미가 확 당겼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던 대한제국이 시베리아까지 진출하게 되면 국력이 너무 커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다면 러시아를 시베리아에서 아예 몰아내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비록 동토의 땅이지만 그 넓은 시베리아를 본국이 전부 어떻게 할 수는 없고 우리는 단지 만주와 몽골이북의 시베리아에서 러시아를 몰아낼 계획입니다.”

그러자 맥도날드도 그 정도는 인정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본관이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맥도날드가 이렇게 나오자 차준혁은 한결 편해졌다.

“우선 본국과 귀국사이에 채결된 불평등조약을 상호 호혜평등에 입각하여 다시 채결해 주십시오.”

맥도날드는 대한제국의 군사력이 일본을 누를 정도라면 충분히 요구할 문제였기에 바로 대답했다.

“본국에 요청해 좋은 대답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청국에서 본국이 서양각국과 채결한 불평등조약의 개정협상을 할 때 공사께서 후원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이 말에도 맥도날드는 바로 승낙했다.

“그 정도는 본관이 충분히 도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차준혁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우리 대한제국이 이번에 일본을 직접징계하려고 하는데 지금같이 대영제국이 절대 중립을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맥도날드의 눈이 커졌다.

“일본과 전쟁을 하려는 것입니까?”

“전쟁은 이미 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대한제국은 앞으로 일본이 절대 도발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눌러놓으려고 합니다.”

“귀국에서 일본본토를 공격하겠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지금 일본을 미국이 계속 지원해 주고 있는 것은 아십니까?”

맥도날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체적인 것은 모르지만 상당한 규모의 차관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귀국이 일본과 동맹을 파기하고 중립을 지켜주었지만 미국은 계속해서 막대한 차관을 일본에 제공해 지금까지 전쟁을 수행하도록 뒤를 받쳐주고 있습니다. 거기다 일본의 전직 수상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의 종전협상과는 별도로 미국을 극비로 방문하고 있습니다.”

맥도날드는 대한제국이 이토 히로부미의 방미까지 알고 있자 감탄했다.

“대한제국의 정보력이 거기까지 미쳤을 줄은 몰랐습니다. 맞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미국방문은 우리도 알고 있는 사안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이토가 미국을 방문한 것이 아무래도 함정문제를 협상하기 위한 것도 알고 계시겠습니다.”

“극비협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전함 문제란 것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그러자 차준혁이 이토 히로부미가 미국의 해군공창을 연이어 방문한 사실을 설명하자 맥도날드는 감탄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미국이 일본에 함정을 판매하는 것을 우리 대영제국이 막아달라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맥도날드 공사가 의아해했다.

“그럼?”

“일본이 미국에서 아무리 많은 함정을 도입해도 우리 대한제국은 충분히 막아낼 자신이 있으니 그 점은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미국 그 자체입니다. 지난 번 미일양국이 밀약을 맺은 것처럼 미국은 아직도 우리 대한제국을 필리핀과 맞바꾸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선전포고를 한 것과 다름없지만 우리는 일본과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확전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일본본토를 직접 공격할 때 미국도 대영제국처럼 중립하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미국이 대규모 함대를 제공해도 정말 막을 자신이 있습니까?”

“우리 대한제국해군은 러시아발트함대를 이긴 일본연합함대를 전멸시켰습니다. 미국이 아무리 많은 전함을 일본에 지원해도 충분히 막아낼 자신이 있습니다.”

맥도날드는 너무도 당당하게 함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말하자 대한제국해군력이 그렇게 대단한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지만 정확한 군사력을 더 이상 묻지 못하고 꾹 참았다. 

맥도날드는 그러나 미국문제는 난색을 표시했다.

“미국이 본국과 전통적인 우방인 것은 사실이나 지난번 미일양국의 밀약문제로 양국관계가 상당히 악화되어 있어서 본국의 중재가 제대로 먹힐 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귀국의 의도는 충분히 알았으니 본국에 상신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각하.”

“그런데 귀국에서 제공하겠다는 군항(軍港)은 어디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차준혁이 가져온 지도를 탁자위에 펼쳤다.

“이것은 일본지도가 아닙니까?”

“바로 보셨습니다. 바로 일본지도입니다.”

맥도날드 공사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왜? 이 일본지도를 본관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까?”

“우리 대한제국이 이번에 일본본토를 공략해 그들의 항복을 받아 낸 후 이 섬을 본국의 해군군사기지로 만들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도를 짚은 것이 일본본토 앞 동해바다 쪽에 있는 섬인 오키 제도(隠岐諸島)였다. 시마네 현에 속한 오키 제도는 이전시대 일본이 독도에 대한 야욕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지로 많은 자위대 병력을 파견하여 거의 요새화 시켰던 섬이다.

위치를 보자 맥도날드가 큰 관심을 나타냈다.

“호오! 위치가 상당히 좋습니다.”

“잘 보셨습니다. 동해에 있는 이 섬에 해군기지를 만들어 놓으면 본국은 일본에 대한 감시를 용이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귀국은 북방에 대해 충분한 감시망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맥도날드는 대한제국이 러시아를 시베리아에서 몰아내면 구태여 영국이 북방에 대한감시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으나 그것은 나중의 문제였다.

“이렇게 제안하는 것을 보니 귀국은 일본을 무조건 이긴다고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양의 말에 억울해서 복수를 위해 이를 갈며 속을 썩인다는 절치부심(切齒腐心)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 대한제국은 그동안 일본에 당한 것을 되갚아주기 위해 얼마나 절치부심(切齒腐心)했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본국의 근대화에 계속 방해를 하며 수없는 수탈을 자행하고 더구나 황궁에 자객을 난입시켜 국모까지 시해한 일본은 우리 대한제국을 그냥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자신의 질문에 정확한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차준혁이 눈을 빛내며 설명하는 말을 듣자 맥도날드 공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대한제국이 일본공략을 성공한 후 이 섬을 조차(租借 타국의 땅을 유상 또는 무상으로 빌리는 행위) 또는 영구할양을 받아 해군기지로 만들 것인데 이때 양국이 공동 사용하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한제국은 본래 군항으로 개발한 거문도를 영국에 제공할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일본본토 공격계획을 세우면서 이전시대 독도문제로 말대 안 되는 억지주장을 하던 일본을 떠 올렸다. 그래서 거문도가 아니라 시마네 현에 소속된 오키 제도를 조차 또는 할양을 받아서 영국과 공유할 계획을 함께 수립해 두었던 것이다.

이렇게 영국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국가 간 약속도 있었지만 미국과 혹시 전쟁을 치루더라도 영국이 미국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복선도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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