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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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이 만주에서 일본군을 이겼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대한제국이 연해주와 만주를 수복한 것 아닙니까?”

“아!~”

설마 했던 폰 슈파이어 공사는 순간적으로 탄성을 터트리며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렇다면 요하에서 누구도 강을 넘지 못하게 하고 있는 병력이 귀국병력이란 말씀입니까?”

“맞습니다. 만주와 연해주 일대는 본국병력 수십 만 명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예? 만주 일대에 수십만 명이나 병력이 주둔해 있다고요?”

“정확한 병력 숫자는 군사기밀이라 알려드릴 수는 없지만 그 정도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어떻게 군사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귀국에서 그렇게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폰 슈파이어가 외교관신분도 망각한 채 대한제국을 대놓고 무시하자 차준혁은 대범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하! 군사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일본군을 전멸시키고 귀국병력에게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겠습니까?”

항복이라는 말에 폰 슈파이어가 아주 놀랐다.

“예? 우리 러시아군 병력이 귀국에 항복을 했다는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본관은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

“러시아군이 일본에게는 항복해도 되고 우리 대한제국에는 항복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까?”

“·····”

폰 슈파이어는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때 서류를 가지러 나갔던 이위종이 한 묶음의 서류를 가지고 들어와 원탁에 올려놓았고 대화는 이위종의 통역으로 다시 러시아어로 진행되었다.

차준혁이 그 중 한 서류뭉치를 들어올렸다.

“이 서류가 공사께서 믿을 수 없다고 말을 한 러시아군의 항복청원서입니다.”

“·····”

폰 슈파이어는 설마 하는 생각에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서류를 펼치자 분명 러시아군을 대표한 제1시베리아 군단 군단장 슈타겔베르크 중장의 날인이 되어 있는 항복청원서였다.

폰 슈파이어 공사는 억지를 부렸다.

“슈타겔베르크 중장은 일개 군단장일 뿐이라 이런 항복청원서를 작성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 뒷장을 읽어보십시오.”

폰 슈파이어는 바로 뒷장을 살펴봤고 문서를 읽던 그의 몸과 함께 목소리까지 심하게 떨렸다.

“이, 이, 이럴 수가.”

차준혁은 격하게 반응하는 폰 슈파이어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제, 슈타겔베르크 중장이 러시아군을 대표해야 하는 이유를 아셨습니까?”

차준혁의 냉정한 질문에 폰 슈파이어 공사는 몸을 가볍게 떨면서 문서를 거듭해서 읽었다. 그가 읽고 있는 문서는 슈타겔베르크 중장이 쓴 전황보고서와 함께 대한제국에서 찍은 정식으로 항복을 청원하며 국기를 건네는 등의 증거사진들이 수십 장 포함되어 있었다.

폰 슈파이어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후!~ 정말 우리 극동군이 이 정도의 병력만을 남기고 전멸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그동안 일본과 벌어진 전황에 대해서는 알고 계실 텐데요.”  

“마지막 전황보고 때 사오만 명 정도가 남아 있었다고 보고해왔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일본과의 최후의 결전에서 러시아군이 일본군의 대공세를 견디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폰 슈파이어 공사는 차준혁이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탁에 팔을 걸치고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 이럴 수가~ 수십만 명이 참전한 전쟁에서 겨우 일만도 안 되는 장병들만이 살아남다니.”

잠시 그렇게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폰 슈파이어가 냉정을 되찾고는 몸을 바로 했다.

“항복청원은 사실이라고 해도 다른 증거자료를 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이위종은 서류를 하나하나 설명하며 건네주었다. 백두산정계비를 비롯한 역사적증거물에서는 묵묵히 서류를 읽던 폰 슈파이어 공사는 청국을 대표한 경친왕이 그것을 확인한다고 정확히 날인한 서류를 보자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버렸다. 

경친왕은 1860년 러시아와 채결한 영토협상조약은 당시 청국대표인 공친왕의 확실치 않은 국경개념 때문에 발생난 일로 연해주는 본래 대한제국의 영토이니 청국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것을 확인하는 문서였다.

폰 슈파이어는 허탈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동안 삼십만의 극동군을 믿고 북경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포로문제를 걱정할 처지가 된 것이다.

한동안 충격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던 폰 슈파이어가 어렵게 입이 열렸다.

“포로들을 송환시켜주십시오.”

그러나 차준혁은 냉정했다.

“그냥은 절대 불가합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 러시아가 귀국과 전쟁을 치룬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귀국에서는 자국영토를 강점하려는 나라를 그냥 둡니까?”

“연해주문제는 청국이 먼저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연해주문제만 있다고 보십니까?”

폰 슈파이어는 울컥했다.

“그럼 또 뭐가 있다는 말입니까?”

“지난번 귀국이 일본과 만주문제를 가지고 협상을 할 때 우리영토인 한반도를 북위39도를 경계로  강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폰 슈파이어는 차준혁의 말에 또 한 번 놀랬다.

“아니? 그것을 어떻게 아는 것입니까?”

폰 슈파이어의 놀란 외침은 차준혁의 말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귀국은 귀국영토를 타국이 강점하겠다는 야욕을 그대로 넘어갑니까?”

이번에는 폰 슈파이어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귀국은 우리 대러시아와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입니까?”

“귀국은 선전포고도 하지 않고 이미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있었고 또 한반도까지도 넘보고 있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들어난 마당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전쟁 운운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 그건.”

“만일 귀국이 일본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과연 한반도를 그대로 두었을까요?”

차준혁의 날카로운 질책에 폰 슈파이어 공사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

“우리 대한제국은 일본이나 러시아나 똑 같이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고 했던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전쟁 운운하는 것은 귀국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입니다. 우리 대한제국은 귀국이 벌써부터 우리 대한제국에게 선전포고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쟁을 치루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폰 슈파이어 공사가 계속해서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자 차준혁은 냉정하게 입장을 정리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돌아가셔서 어떤 것이 양국의 국익을 위하는 것인지 판단해 보시고 다시 방문하십시오. 포로들 문제는 그 후에 다시 논의해도 늦지 않습니다.”

차준혁의 축객(逐客 손님을 내쫓음)하겠다는 말을 듣자 폰 슈파이어 공사는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차준혁과 대충 인사를 하고 공관을 나서는 그의 손에는 조금 전 자신이 본 서류의 부본들이 들려있었고 그의 어깨는 올 때와 달리 푹 쳐져 있었다.  

북경정가에서 시작된 대한제국폭풍은 곧바로 전 세계를 강타했고 각국은 이때부터 대한제국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이 폭풍에 가장 놀랐던 것은 당연히 일본이었다. 

대한제국이 수십만의 육군을 보유하고 있었고 러시아군의 항복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만주의 일본군까지 전멸시키면서 만주와 연해주를 장악했다는 소식은 일본을 완전히 공황상태로 만들었다.

그동안 일본정부는 러시아에게 항복을 받은 것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장병들의 수많은 희생을 덮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음에도 별다른 대가도 없는 승전소식은 열도 곳곳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소리로 들썩였다. 그러자 흔들리는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 일왕까지 나서며 수습에 전력을 기울였고 이러한 일본정부의 노력이 결실이 보여 민심이 수습단계에 들어갈 즈음 북경에서 날아온 소식은 일본열도를 그대로 강타했다. 

만주와 연해주를 대한제국에게 빼앗기고 모든 병력마저 전멸 당했다는 소식은 일본전역을 소요사태로 뒤덮어 버렸다. 일본정부는 이러한 소요사태를 맞아 계엄령을 선포한 뒤 헌병대와 군대를 동원해 무자비 할 정도로 초강경 진압을 했다. 

이 때문에 1907년 1·2월의 일본열도는 헌병대에 의한 강제진압당하는 일본국민들의 고통소리로 가득 찰 정도였다. 

그래도 이렇게 억지로라도 정국이 수습되어 가고 있을 때 북경에서 날아온 또 한 장의 문서는 충격을 넘어 일본정부를 경악에 빠지게 만들었다.

동경에 있는 고쇼(御所 일왕의 거처)는 본래 에도 성으로 에도막부시대 쇼군의 거처이면서 정무를 보던 곳이다. 메이지일왕이 거주하는 곳은 메이지궁전으로 불리며 이전에 거주하던 궁전이 화재로 소실 된 후 새로 지어진 건물로 궁전건물의 외양은 일본식으로 지었고 내부는 서양방식인 화양절충(和洋折衷)방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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