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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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그동안 쌓은 공이 있는데 그냥은 무너지지 않으려고 할 것이란 것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일입니다.”

강명철 육군대신은 가소롭다는 반응이었다.

“병력도 없는 일본이 죽으려고 용을 쓰는 군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들로서는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거네.”

박충식이 김종석의 말에 동의했다.

“국방상의 말대로 일본이 선택할 길은 오로지 하나 밖이 없었어. 그나저나 오 부장, 일본이 미국과 접촉을 하고 있다는데 이유가 뭔지 알아냈는가?”

오창권 중정부장이 설명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미국과 접촉을 하고 있습니다만 전함도입문제를 마무리 지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흉계를 꾸미고 있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강명철이 눈에 불을 켰다.

“하여튼 오나가나 이토 히로부미가 문제입니다. 어떻게 루즈벨트 대통령을 구워삶았기에 생각지도 않은 전함을 6척이나 인도받을 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이때 차준혁이 나섰다.

“제 생각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미국에 간 것은 전함문제가 아니라 다른 이유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오창권이 질문을 했다.

“차 공사는 다른 첩보를 입수한 것이 있소?”

“귀국하기 전 영국공사 맥도날드를 잠깐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맥도날드가 미국공사에게서 일본이 지금 미국과 무기도입문제를 협상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무기도입?”

“그렇습니다.”

박충식이 의아해했다.

“전함에 이어 무기까지? 미국에 의존하기시작하면 앞으로 일본이 미국을 상대하기가 상당히 곤란해질 텐데 일본의 형편이 그 정도로 곤란한가?”

“시간이 있었으면 자체적으로 생산을 했겠지만 아마도 우리가 제시한 시간이 촉박해서 어쩔 수 없이 미국에 기대는 것 같습니다.”

강명철이 잘되었다는 얼굴을 했다.

“잘 되었다. 앞으로 우리 눈치 보랴 미국 눈치 보랴 정신이 없겠어. 어디 믿을 나라를 믿어야지 미국을 믿어.”

강명철의 미국에 대한 노골적인 비아냥거림에 소회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1905년 11월17일 대한제국정부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의 주한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체결한 불평등조약이 바로 을사늑약이다. 을사늑약 후 온 나라가 비탄에 잠겨있을 때 불과 며칠 만인 1905년 11월 25일 대한제국에서 가장 먼저 공관을 철수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그것도 철수전날 미국공사는 하야시 곤스케 공사와 축배까지 들고서는 주재국인 한국정부에는 단 한마디 말도 없어 매몰차게 한성을 떠났다. 배가 침몰하면 가장 먼저 도망치는 쥐와 같이 을사늑약이 채결되고 불과 8일 만에 미국은 가장먼저 한국을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미국이 완전히 개 무시해도 될 정도로 대한제국은 미국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나라였다.

이런 사실은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강명철의 반응에 모두 동조하고 나선 것이다.

차준혁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일본에게는 지금 미국이 구명줄이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

“흥! 구명줄이기는 하지 썩은 구명줄.”

강명철의 말이 강도가 점점 높아지자 박충식이 제지하고 나섰다.

“자자! 육군상도 이제 그만 진정하시게. 국방상.”

“예, 전하.”

“전쟁준비는 차질 없겠지?”

“그렇습니다. 해군과 공군은 계속해서 예행연습에 여념이 없고 육군과 해병대는 이미 상륙준비를 모두 끝마쳤습니다.”

“앞으로 결전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았으니 각 군은 준비태세 점검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중앙정보부는 차 공사의 첩보가 사실인지를 확인해보게.”

“알겠습니다.”

오창권의 대답을 듣자 박충식은 참석자들을 둘러보며 당부했다.

“우리 대한제국의 미래를 위해 이번 일본과의 결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왕 징계하겠다고 칼을 빼들은 만큼 이번 기회에 철저하게 눌러서 일본이 두 번 다시 우리 제국에 헛된 야욕을 부릴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함을 반드시 명심해 주기기를 바랍니다.”

“예, 전하.”

이날의 회의는 차준혁의 보고를 듣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이 났다. 하지만 일본과의 결전에 대한 결의를 다지는 회의였던 탓인지 돌아가는 회의참석자들의 안색은 평상시보다 훨씬 굳어있었다.

외무대신 이범진과 국방대신 김종석 그리고 중앙정보부장 오창권은 별도의 협의를 위해 차준혁과 회의실에 그대로 남았다.

“러시아공사는 요즘도 우리 공관을 찾아오는가?”

“아닙니다. 지난 1860년 북경조약 채결당시 공친왕에 대한 청국의 공식답변을 들은 후부터는 전혀 접촉을 해 오지 않고 있습니다.”

국방대신 김종석이 의외란 반응이었다.

“이상합니다. 분명이 강력한 대응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박충식이 김종석에게 질문했다.

“국방상. 러시아와의 접경상황은 어떤가?”

“웅비호가 시베리아중부까지 올라가 관측을 하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병력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차준혁이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를 보고했다.

“북경의 외교가에서 들리는 소문으로는 새로 러시아총리가 된 표트르 스톨리핀이 국민들을 다독이며 정국을 잘 이끌어 가고 있었는데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전했다는 소식에 또 다시 정국불안이 심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에 정통한 이범진이 의견을 피력했다.

“지금이 겨울이라 러시아가 아무 움직임도 없이 잠잠한 것뿐입니다. 러시아는 지금 피의 일요일로 시작된 정정불안이 이번전쟁의 패전으로 시위사태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분명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대규모 파병을 계획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범진의 예상에 중정의 오창권도 지지했다.

“외상 각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지금 러시아는 니콜라이2세가 국민들의 개혁열망을 무시하고 전제정권을 오히려 강화시켜 정정불안이 심화되는 양상입니다. 이런 난국을 근본적으로 타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권력을 국민들에게 이양해야 합니다만 러시아황제의 성향으로는 그것보다 아마 대규모전쟁을 일으켜서 국면전환 시도하려고 획책할 것입니다.” 

박충식도 두 사람의 정세분석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권력을 전혀 내려놓지 않으려는 욕심 많은 황제라서 계속적으로 국민들을 폭압하며 정정불안을 야기하는 것보다 국민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

차준혁이 외교문제를 거론했다.

“그렇다면 우리 제국은 영국은 물론 독일과의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시켜야겠습니다.”

“차 공사의 말이 옳네. 그렇지 않아도 비행선기술제휴문제로 체펠린백작과 독일군장교들이 입국해 있으니 김 국방상이 직접 나서서 교류협력증진방안을 모색해 보게.”

“알겠습니다.”

외무대신 이범진이 국제정세를 분석했다.

“지금의 국제정세는 프랑스는 코친차이나에 발이 묶여있고 독일은 산동 반도를 넘보기에도 정신이 없는 상황입니다. 거기에 영국 또한 자신들의 취득한 식민지를 경영하는데도 정신이 없고 우리 대한제국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러시아와 미국뿐이니 앞으로 우리 제국은 이 두 나라의 야욕만 견제하고 일본만 눌러버린다면 앞으로 상당기간은 우리 대한제국을 위협할 나라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듭니다.”

박충식을 비롯한 네 사람은 이범진의 정확한 국제정세파악에 모두들 크게 감탄했다.

나이가 가장 어린 차준혁이 먼저 찬사를 보냈다.

“정말 대단히 정확한 정세분석입니다. 감탄 했습니다.”

국방대신 김종석도 찬사를 보냈다.

“외상께서 이렇게 정확한 정세판단을 하고 계시니 우리 군은 그에 따른 대비만 충실히 하면 되겠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어차피 작금의 국제정세는 군사력에 의해 정립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 같은 외교관들이야 주어진 정황을 분석하는 것뿐입니다.”

이범진이 겸양했지만 박충식도 그를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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