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5 회: 5권-35화 5권끝 --> (175/268)

<-- 175 회: 5권-35화 5권끝 -->

조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블랑시가 다시 참견을 하려다 다른 공사들의 눈총을 받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조던의 설명은 다시 이어졌다.

“일본이 한국에 패한 결정적원인은 한국의 군사력이 일본을 압도한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일본연합함대의 괴멸과 순식간에 한반도를 장악한 것 그리고 만주수복과 마지막에 북해도 병력의 수장까지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가미한 정세분석을 하자 공사들의 안색이 크게 굳어졌다.

설명이 끝나자 블랑시의 한숨이 바로 나왔다.

“후!~ 그동안 일어난 전체적인 상황을 차분히 분석하면 바로 알 수 있었던 것을 우리가 너무 대한제국을 약하게만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블랑시의 탄식에 잘데른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맞아 우리 독일제국도 너무 간과한 게 많았어. 이거 단순히 비행선기술도입과 적당한 군사교류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본국과 협의해 뭔가 별도의 대책을 강구해야겠어.’

잘데른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국공사 조던을 제외한 다른 공사들도 조던의 말을 되새기며 앞으로의 대책을 강구하느라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각자의 생각에 잠긴 공사들을 보며 조던은 한국이 영국에 먼저 접근해 온 것을 아주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이날 공관으로 돌아간 각국 공사들은 자신들의 본국에 긴급전문을 보내느라 밤늦도록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이날 각국공사들의 회동결과는 며칠 후 나타났다.

독일공사 잘데른이 외무대신 이범진을 방문했다.

“어서 오십시오. 공사.”

“외상각하, 그간 잘 계셨습니까?”

“하하! 보시는 데로입니다.”

이범진이 말대로 전쟁을 앞둔 터라 외무성 또한 전시체재로 개편되어 외곽경비는 물론 복도까지도 병력이 삼엄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간단히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사를 마치고 외무대신 이범진이 방문의도를 질문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본관에게 면담신청을 하신 것입니까?”

“다름이 아니라 본국과 귀국사이에 군사교류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 찾아뵈었습니다.”

“그거야 지금 귀국의 체펠린 백작이 입국해서 비행선건조기술을 전수받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 독일제국은 귀국과 보다 긴밀한 군사교류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말씀입니까?”

“우리 독일제국은 귀국과 정식으로 군사교류협정을 채결하고 싶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독일이 먼저 군사교류협정을 채결하자고 나온 것은 의외였으나 이범진은 난처했다. 지금 독일과 군사협정을 채결하면 독일과 불편한 관계인 영국과의 관계가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을 하던 이범진이 잘데른에게 양해를 구했다.

“귀국이 우리 대한제국을 높게 평가해 주셔서 한 나라의 외교를 책임진 외상으로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공사각하의 요청은 이번 전쟁을 마치고 난 후 정식으로 논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잘데른은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범진이 여운을 남겼다.

“본국은 지금 귀국의 호의로 제철소건설은 물론 엄청난 공작기계들을 수입해 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입되는 각종 공작기계들은 지금 우리 대한제국의 국가발전에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범진은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우리 대한제국은 어려울 때 도와준 귀국을 절대 잊지 않습니다. 단지 지금은 외국과 전쟁 중이라 즉답을 드리지 못해서 그렇지 전쟁이 끝나면 귀국의 제의를 본관이 책임지고 성사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잘데른의 얼굴이 아주 밝아졌다.

“정말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이번 일본과의 전쟁이 끝이 나면 본관은 총리전하께 주청을 드려서라도 반드시 귀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물론 군사문제는 국방성(國防省)과도 상의해야겠지만 국방상(國防相)께서도 절대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관은 확신합니다.”

잘데른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본관은 귀국이 먼저 이런 제안을 해 주신 것에 아주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범진이 독일의 군사교류협정 요청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북경에서 차준혁이 맥도날드 영국공사와 채결한 전함전조기술도입 때문이었다. 

대한제국은 그동안 세계최고인 영국의 전함건조기술을 도입하기위한 기회를 엿보다 이번에 차준혁의 협상으로 드디어 성사를 볼 수 있었다. 

이 결과로 건조기술도입은 물론 협상에 더 중점을 두고 있던 증기터빈엔진제작기술도 함께 도입할 수 있었다. 지난 1884년 영국의 찰스 파슨스에 의해 발명되어 이십여 년의 수정보완을 거친 증기터빈엔진은 이때에 이르러 화력발전소는 물론 각종 전함에도 장착할 수 있도록 실용화되어 있었다. 

이 엔진은 획기적인 열효율로 화력발전의 연료효율을 높여 연료절감은 물론이고 선박의 속도를 30노트 이상 높일 수 있었다. 

물론 대양함대에 장착된 훨씬 발전된 증기터빈엔진으로도 기술습득은 가능했으나 대양함대에 장착된 엔진은 각종 전자장비와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전자기술이 발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반쪽 기술을 습득하는데 불과했다. 그랬기에 대한제국은 전함건조나 증기터빈엔진의 원천기술 확보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다 차준혁의 협상 덕분에 드디어 건함기술 확보가 실현된 것이다.

이전시대 한국이 수출을 하면 뒤에서 웃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절대 발생하지 않도록 대한제국은 각종원천기술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독일과 군사교류협정에 대한 내락을 주고받은 며칠 후 이번에는 프랑스공사 블랑시가 외무성을 방문해 상호불가침협정채결 요청해 왔고 이어서 다른 나라 공사들도 잇따라 외무성을 방문해 교류협력방안을 요청했지만 모든 문제는 일본과의 전쟁이 끝나고 다시 논의하기로 전부 보류를 시켰다.

이렇게 북경은 물론 한성에서도 각국 외교관들의 치열한 외교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대한제국이 제시한 3월말이 지났다.

1907년 4월1일 용산의 국방성기자실에는 내외신기자 백여 명이 모여 들었다.

10시가 되자 국방대신 김종석이 몇 명의 장성들을 대동하고 기자실로 들어오자 플래시가 동시에 터졌다.

펑! 펑! 펑!········

연단에 선 김종석은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라고 잠시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기자들에게 잠시 시간을 준 국방대신 김종석는 굳은 표정으로 좌중을 한 번 둘러본 후 입을 열었다.

“우리 대한제국은 1907년 4월1일 정오를 기점으로 일본에 대해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합니다.”  

펑! 펑! 펑!········

“일본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 대한제국에 수없이 많은 피해를 입혔지만 단 한 번의 사과도 없었고 오히려 식민지로 만들려는 만행을 자행했습니다. 이에 우리 대한제국은 일본에게 사죄와 함께 그에 합당한 배상을 요구했으나 어처구니없게도 전쟁불사라는 답변을 해 왔습니다.”

김종석은 여기까지 말하며 잠시 말을 끊었다가 더욱 강한어조로 말을 이었다.

“일본은 지난 1592년부터 8년간에 걸쳐 우리나라를 침략해 수백만 명의 인명피해를 입히고 엄청난 문화유산을 강탈해 간 적이 있습니다. 우리 대한제국은 이번기회에 이에 대한 책임도 반드시 물을 것을 분명히 밝히는 바입니다.”

웅성웅성

김종석이 임진왜란에 대한 책임까지 들먹이자 외신기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있었다. 그 중 외신기자 한 명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청했으나 김종석은 손을 들어 제지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일본이 이번에 우리 대한제국의 제안을 뿌리치고 전쟁을 택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것임을 거듭 천명하는 바입니다.”

김종석은 이렇게 말을 한 후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고 그대로 기자실을 빠져나갔다.

김종석이 나가자 외신기자들은 대한제국이 별도의 방에 마련해 놓은 무선 통신기를 선점하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출입문을 향해 뛰쳐나갔다.

                                                                                        (5권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