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6 회: 6권-1화 열도폭격(列島爆擊) --> (176/268)

<-- 176 회: 6권-1화 열도폭격(列島爆擊) -->

대한제국의 선전포고는 바로 일본에도 알려졌다.

히로시마에 세 번째 대본영을 설치한 일본은 한성에서 날아온 선전포고에 격한 반응을 보였다.

메이지일왕이 두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조선이 400년이나 지난 문록·경장의 역까지 들먹이며 우리 대일본제국을 우롱하다니 정말 참을 수가 없구나.”

이토 히로부미도 잔뜩 열이 난 얼굴이었다.

“조선이 우리 대일본제국을 얼마나 얕잡아보고 있기에 이따위 말도 안 되는 선전포고를 하는지 너무도 치욕스럽습니다.”

육군참모총장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반응 또한 다르지 않았으며 이까지 갈았다.

“뿌드득, 조선이 한두 번 작은 승리를 거뒀다고 우리 대일본제국의 황군을 얕잡아 보니 만일 저들이 본토에 한 발자국이라도 발을 내 딛는 순간 바로 지옥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해군군령부총장 이토 스케유키 대장의 반응 또한 다른 사람과 똑 같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은 조선의 군사력을 전혀 알 수 없어 당했지만 이제는 우리도 철저한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번에 미국이 제공한 6척의 전함이 비록 연식이 조금 된 전함이지만 강력한 무장을 갖추고 있사옵니다. 저희 해군은 이 6척의 전함을 최대한 활용하여 어떠한 일이 있어도 조선이 현해탄(玄海灘 대한해협을 부르는 일본식이름)을 넘지 못하도록 사수하겠습니다.”

해군의 결의에 야마가타 원수가 모처럼 동조했다.

“해군이 결사항전을 결의한 것은 대단한 의기(義氣)입니다. 우리 육군도 해군과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우리 대일본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제철소를 목숨으로 사수하도록 하겠습니다.”

모처럼 동조하는 육군의 야마가타 원수에게 해군의 이토 대장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각하.”

모처럼 육군과 해군의 마음이 맞는 것을 보고 이토 히로부미는 흐뭇해했지만 메이지일왕의 안색은 그래도 펴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선이 우리 대일본제국에 행한 이 치욕은 짐은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으니 경들은 조선에 대한 선제공격에 대해서도 논의를 한 번 해 보시오.”

총리대신 사이온지 긴모치는 선제공격 운운하는 일왕의 말에 놀라 황급히 제지했다.

“폐하, 조선이 비록 오만불손하지만 선전포고에 어떤 말을 하든지 전혀 마음에 둘 일이 아닙니다. 선전포고에 뭔 말을 못하겠습니까? 더구나 조선이 이정도로 강경하게 나오는 것은 분명 상당한 준비를 했다는 반증이니 우리 대일본제국은 저들의 행동으로 봐가며 대응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총리는 그럼 우리 제국이 나약하게 수비만 해야 한다는 말이오?”

“절대 그렇지 않사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들이 먼저 걸어온 도발인데 그것을 무시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기에 이런 말씀을 올리는 것입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중재하고 나섰다.

“폐하, 총리대신이라고 조선을 박살내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총리의 말대로 공격보다는 수비를 하며 기회를 엿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야마가타 원수도 거들고 나섰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본토를 비우고 조선을 선제공격할 때 저들의 주공이 부산에서 현해탄을 건너는 것이 아니라 연해주에서 우리바다인 일본해를 건너 본토를 침공한다면 우리 제국은 그야말로 무방비상태에서 적을 맞아야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지금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기회를 도모하여 반격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입니다.”

일본을 이끌어 가고 있는 중심축인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원수가 공격이 아닌 방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메이지일왕은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후~ 유신이후 쌓아 놓은 수십 년의 적공(積功)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앉아서 적의 처분만 겨우 바라고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구나. 어떻게 우리 대일본제국이 어떻게 이런 처지가 되었을까.”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허리를 숙였다.

“황송하옵니다. 폐하.”

일왕의 한숨으로 격했던 반응이 잠시 진정되었다.

대한제국의 선전포고에 임진왜란을 거론하며 책임을 묻겠다는 말에 이들이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전부 이유가 있었다. 일본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쓰마 번과 조슈 번 출신들이다.

이 두 번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침공해 악명을 날렸고 수많은 도공과 포로 그리고 엄청난 문화재를 약탈해갔던 일본군장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사쓰마번 번주)와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 조슈번 번주)가 영주였던 지역이다.

본래 양 번은 대대로 적대적이었으나 막부말기 극적으로 손을 잡은 후 막부를 타도하고 일왕을 옹립한 주축세력으로 메이지유신의 중심세력이 된다.

더구나 정한론(征韓論)의 태두였던 요시다 쇼인(吉田 松陰 조슈번)과 정한론의 대표자였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사쓰마번)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어전회의참석자 대부분은 정한론을 신봉하는 자들이었고 거기에 총리대신인 사이온지 긴모치를 제외한 대부분이 이 양 번 출신들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한제국이 선전포고에 왜란을 거론하며 책임을 묻겠다고 하자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왕의 탄식으로 어전회의가 침울하게 가라앉자 야마가타 아리토모 원수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를 밝게 했다.

“폐하, 너무 상심 마십시오. 천만 다행으로 우리 제국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십만 명의 육군이 이미 무장을 마쳤습니다. 해군도 6척의 전함을 보유하고 있어서 전력으로는 어느 함대와 견줘도 절대 뒤지지 않으니 반드시 조선을 물리치고 대륙으로 다시 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몇 사람이 나서서 군사력에 대해 말을 하며 기분을 달래자 메이지일왕이 어느 정도 풀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선이 비행선을 보유하고 있다는데 그에 대한 대비는 철저히 하고 있는 것이오?”

야마가타 원수가 대답했다.

“이번에 미국에서 들여온 맥심기관총으로 대공사격을 준비하고 있어서 만주에서와 같이 무방비로  폭격을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야마가타 원수의 말대로 이제 비행선의 정채를 알고 있는 일본은 주요 군사시설물에 미국에서 제공한 맥심기관총으로 대공사격을 할 수 있도록 대비해 놓고 있었다.

이토 군령부총장도 가만있지 않았다.

“우리 해군도 각 전함에 대공사격을 할 수 있게 기관총을 장착해서 적의 폭격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두 지휘관의 설명을 듣자 메이지일왕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우리 대일본제국은 그동안 가미카제의 도움으로 적군이 우리 땅을 밟은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소. 경들을 이러한 영광스런 역사를 내 대에서 끊기는 오명을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오.”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자신의 결의를 보였다.

 “만일 이번에도 조선에게 패한다면 신이 할복하겠습니다.”

하지만 메이지일왕이 냉정하게 말을 잘랐다.

“지난번에도 짐이 말을 했듯이 할복은 절대 용납하지 않소. 할복은 사무라이의 결기가 아니라 자신이 잘못한 것을 노력해서 바로 잡지 않고 회피하기 위한 비굴한행동이란 것을 분명히 알아주시오.”

야마가타는 지난번 만주에서의 패배와 북해도 병력이 몰살되자 할복을 하려고 일왕에게 청원했으나 비겁하게 도피하지 말라는 일왕의 강력한 경고를 받는 바람에 좌절되었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또 사무라이의 결의를 보이려고 했으나 일왕은 그런 야마가타를 공개적으로 질책을 했던 것이다.

메이지일왕이 참석자들을 둘러보고 다짐을 받듯 강력하게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할복은 짐에게는 불충이고 개인에게는 책임회피에 불과한 짓이니 짐은 할복을 절대 윤허하지 않을 것이니 경들은 이점을 분명히 알아두시오.”

“예, 폐하.”

메이지일왕은 최고 원로인 야마가타를 질책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그에를 위로했다.

“참모총장.”

“예, 폐하.”

“경이 할복하겠다는 본뜻을 짐이 모르지 않소. 하지만 짐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경을 잃고 싶지 않소. 경은 우리 대일본제국의 원로이며 지주이고 짐이 가장 믿고 아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반드시 유념해주기 바라오.”

야마가타는 왕이 자신을 특별히 위로하자 감격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은 폐하의 하해와 같은 황은을 갚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번 전쟁에 승리해 그 영광을 폐하께 바치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폐하.”

이렇게 결의를 다진 야마가타는 깊게 허리 숙였다. 그 모습을 보고 회의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토 히로부미가 선창했다.

“반드시 승리해 그 영광을 폐하께 바치겠습니다.”

그러면서 허리를 숙여 절을 하자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반드시 승리해 그 영광을 폐하께 바치겠습니다.”

메이지일왕은 자신에게 충성맹세를 하듯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절을 하자 비로소 굳은 표정을 풀고는 흐뭇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