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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퍼벅!
쉬익~
앞서 황궁을 가로지를 때는 이상이 없었는데 다시 가로지르자 어디에 숨겨져 있었는지 맥심기관총이 또다시 대공사격을 감행했고 이번에는 조종실에서도 가스가 새어나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압력이 급강하했다.
박용철 중사가 엄청나게 소리쳤다.
“아아!~ 기장님 큰일 났습니다. 기체가 너무 빨리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박용철이 이렇게 외치지 않아도 강운형 대위는 이미 계기판게이지의 눈금이 전부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큰일 났군. 얼마나 버틸 수 있겠나.”
“확실한 것은 계산을 해봐야겠지만 20분도 남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 소리에 강운형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동경만은 전체가 기뢰로 뒤덮여 있어서 잠수함이 내항으로 들어오기는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특급군사기밀사항인 웅비비행선을 동경한복판에 불시착시킬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었다.
강운형은 결단을 내려야했다. 잠깐 생각한 강운형이 이도선과 박용철에게 지시했다.
“그 시간이면 비행선을 가지고 동경만까지 나갈 수 없다. 그러니 두 사람은 낙하산으로 탈출해라.”
그러자 이도선 중위가 되물었다.
“기장님은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강운형이 굳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우리 기체를 일본에 보여줄 수는 없으니 남은 폭탄을 이용해 일본왕궁에 폭파시키고 비행선도 같이 폭파시킬 생각이다.”
“그럼 비행선과 함께 자폭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모두 탈 출 할 수는 없는 일이라서 어쩔 수가 없어.”
“안됩니다. 같이 탈출하십시다.”
“난, 이 비행선의 기장이야. 끝까지 남아야할 의무가 있어. 그러니 너희 두 사람은 빨리 탈출해라.”
이도선 중위가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
“기장님 혼자 두고 내리는 것은 저 혼자 탈출하는 것은 싫습니다. 그리고 탈출해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고문을 받느니 차라리 이 비행선과 함께 죽겠습니다.”
박용철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동조했다.
“저도 이 중위님 말씀대로 고문을 받는 것보다 이 비행선과 같이 죽겠습니다.”
“이~ 이~····”
강운형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다툴 시간도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었다.
강운형은 즉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고맙다. 그리로 미안하다. 내가 괜히 욕심을 부려 너희들을 죽음으로 내 몰았구나.”
“아닙니다. 기장님의 판단은 정확했고 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맞습니다. 기장님의 최고의 지휘관이십니다.”
두 명의 부하들의 격려를 받자 강운형은 울컥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여기는 웅비1호. 고선지 나와라.”
“아! 여기는 고선지다. 우리는 동경만 외항에 대기 중에 있다.”
“미안합니다. 우리는 고선지로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고선지 함장 김필규 상좌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뭐라고! 무슨 일이야.”
“대공사격에 피격되어 비행선운항이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그럼 기체는 폭파시키고 빨리 탈출해.”
“아닙니다. 우리는 이 기체와 함께 산화하겠습니다.”
그러자 김필규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이봐! 강 대위. 그러면 안 돼. 일단 살고 나서 후일을 다시 도모하자고.”
“아닙니다. 탈출해서 일본군의 포로가 되느니 저희들은 일본왕궁을 폭파시키고 함께 죽겠습니다. 기다리시는데 가지 못해 죄송합니다.”
김필규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그러지 말고 빨리 탈출해!~~ 뚝.”
김필규의 탈출하라는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렸으나 강운형은 고선지와의 교신을 강제 종료했다. 강운형은 차마 자신의 죽음을 홍선영에게 알릴 수가 없어서 아예 통신선까지 뽑아버렸다.
이렇게 하는 강운형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도선과 박용철의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때부터 강운형은 단 일초도 아까웠다.
“박 중사. 얼마 남았나.”
“10분 정도입니다.”
“그럼 기체의 자폭장치를 가동시켜라. 카운터다운은 1분이다.”
“알겠습니다.”
웅비호는 불시착했을 때 적에게 기체가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폭시설이 되어 있었다.
박용철이 황급히 일어나 이곳저곳에 있는 장치들을 손보기 시작했다. 강운형은 그사이 일본왕궁을 선회하면서 남아 있는 폭탄 대부분을 투하해 왕궁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남은 시간을 알뜰히 보내던 강운형의 귀로 박용철 중사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운터를 시작합니다. 60초”
카운터가 시작되자 강운형은 왕궁에서 가장 큰 건물인 메이지궁전 상공에 기체를 고정시켰다.
“50초”
“기체실의 기체(氣體)를 빼라.”
강운형의 지시에 박용철은 헬륨가스를 빼는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가스가 빠져나가며 비행선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퍽퍽퍽퍽····
이때 또 다시 총탄이 날아와서 기체에 박혔다.
그러나 강운형은 그 소리에 무심했다.
“이놈들이 우리를 도와주는군.”
이도선 중위가 객쩍은 농담을 했다.
“생각보다 조금 빨리 죽겠는데요.”
“후후!”
강운형도 영혼 없이 웃었다.
“40초.”
강운형이 먼저 인사를 했다.
“두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 정말 행복했었다. 그동안 고마웠다.”
그러자 이도선 중위도 인사를 했다.
“기장님을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박용철 중사가 뒤를 이었다.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지옥에서 뵙겠습니다.”
“그래, 우리가 그동안 많은 사람을 죽였으니 분명히 지옥으로 가겠지.”
그렇게 말하는 강운형의 눈에서 또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렀고 기체는 점점 기울어졌다.
숫자를 세는 박용철 중사의 목소리가 점점 심하게 떨렸다.
“20,19,18····”
강운형은 이빨을 악다물고 기체를 메이지궁전을 향하게 하고는 엔진을 최고로 가속했다. 그러자 갑자기 빠른 속도로 웅비1호가 메이지궁전에 내리 꽂혔다. 순간 강운형의 뇌리에 밝게 웃는 홍선영의 얼굴이 너무도 생생하게 나타났다.
‘선영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
“10·9·8·7·6····”
꽈광!!! 꽈앙!~~화아악~~~~
미처 박용철의 카운터가 끝나기 전에 웅비1호는 메이지궁전에 그대로 꽂히면서 화물칸에 남아있던 폭탄이 먼저 터졌고 이어서 기체가 대폭발을 했다.
강운형은 갑자기 몸이 녹을 정도의 엄청난 열기가 전신을 뒤덮자 그대로 정신을 잃었고 이것이 강운형의 마지막이었다.
웅비1호가 산화한 매이지궁전은 목조건물인 탓에 이 폭발로 완전히 전소되었다.
하지만 메이지일왕은 이때 히로시마대본영에 내려가 있어서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웅비1호의 산화는 고선지의 선장 김필규를 통해 곧바로 본국으로 알려졌다. 소식을 들은 공군대신 최경석은 탁자를 내리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멍청한 자식들. 비상탈출해서 고생 좀하면 될 것을 무엇 때문에 스스로 죽어 죽기를.”
이때 최경석은 비행기개발문제로 해주에 상주하고 있었다. 웅비1호의 자폭소식을 듣고 놀라서 달려온 정병일국방과학연구소장이 눈물까지 흘리는 그를 위로해주었다.
“아마도 포로가 되었을 때 고문 받을 것을 걱정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잠시만 견디면 되잖아.”
“일본군의 고문이 인간으로서는 정말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어서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이전부터 포로로 잡히느니 아예 죽는 게 낮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무리 고문을 당해도 죽는 것 보다는 살아있는 게 낳잖아. 어차피 이 전쟁은 오래가지 않을 텐데 말이야.”
“아닙니다. 이전시대 일본군의 지독한 고문에 살아도 산 것이 아닐 정도로 심하게 몸이 망가진 애국지사들이 부지기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대로 산화하는 것이 오히려 세 사람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좋은 곳으로 가도록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십시오.”
최경석은 장병일의 위로대로 고통스런 고문을 받는 것보다 산화한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홍선영 대위를 떠 올리자 한숨이 먼저 나왔다.“후!~ 홍 대위가 정말 큰일이로군. 이번 가을에 결혼한다고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이걸 어떡하면 좋지.”
최경석이 이렇게 큰 걱정을 하였지만 다음날 폭격을 마치고 해주로 귀환한 홍선영 대위는 의외로 담담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미 모든 사람들이 강운형과의 결혼을 알고 있었기에 홍선영의 담담함 모습을 더욱 가슴아파했다.
많은 격려가 있었고 위로가 있었지만 홍선영은 의연하게 대처했다. 그리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항상 손을 배에 대고 몸가짐을 무척 조심스러워했으며 그녀의 뱃속에는 강운형 대위의 유복자가 잉태되어 있었다.
강운형 대위가 지난 휴가 때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고는 너무도 기뻐하면서 그 자리에서 청혼을 했던 것이다. 그녀는 강운형의 청혼을 흔쾌히 받아줬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며칠을 보냈던 두 사람은 그것이 영원한 이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의 결실을 보듬고 있었기에 강운형의 죽음을 아주 의연하게 대처했으며 임신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숨기고는 일정대로 다음 폭격 때 또다시 웅비2호를 몰고 일본으로 출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