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0 회: 6권-5화 흔들리는 열도(列島) --> (180/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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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궁전을 포함해 일본왕궁이 전소된 것은 일본국민에게는 무엇보다도 큰 충격이었다. 일본국민들은 몇 십 년 전부터 일왕은 살아있는 신이라고 숭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곳도 아니고 왕궁이 폭격을 받아 전소되었다는 사실은 그동안의 일왕의 신격화가 한순간에 무너진 결과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처소도 지키지 못하는 일왕은 이제 일본국민들에게 더 이상 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웅비의 폭격은 웅비1호의 산화 이후에도 계속되어 일본각지의 영주들의 성은 물론이고 히로시마 대본영건물도 폭격에 전소시켰다. 물론 일왕과 각료들은 방공호로 대피를 하여 모두 무사했지만 그들이 방공호를 나왔을 때 폭격에 완전히 무너져 불타고 있는 히로시마 성과 화마가 뒤덮인 대본영건물은 일본의 끝을 알려주듯 일왕과 그의 추종세력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한 달간의 2차 폭격으로 열도의 주요 시설들을 잿더미로 만든 6월 하순 드디어 대한제국해군이 함대를 기동을 시작했다.

대한제국해군함대는 해삼위(海參崴 블라디보스토크의 본래 지명)의 7함대와 동해의 2함대, 그리고 제주의 1함대 등 3개 함대가 열도를 공격하기 위해 같은 날 동시에 각 각 모항을 떠났다.

제주도에는 아직도 많은 숫자의 일본연합함대출신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처음에 수용된 포로들 중 절반 이상은 본토의 공사현장으로 이송되었고 남은 수천 명의 포로들은 아직도 그대로 수용되어 제주도의 각종공사현장에 계속 동원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이 수용되었던 러시아군포로는 일반 수병의 경우 상당수가 대한제국국적을 취득하고 대한제국해군에 정식으로 편입되었고 나머지는 연해주가 수복된 후 전부 연해주로 이송되었다.

대한제국은 만주를 수복한 후 앞으로 외국국적의 과학자와 같은 고급인력이 대한제국에 쉽게 정착할 수 있도록 유연한 이주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외국인들 중 일정요건만 갖추면 대한제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했으나 일본인들에게는 당분간 대한제국국적취득절차를 적용시키지 않고 있었다. 

제주도의 일본군포로들은 계급에 관계없이 전부 공사현장에 투입되고 있었다. 하지만 사령장관이었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과 참모장 가토 해군소장 그리고 도고 제독을 시종하고 있는 정자전법을 기초했었던 참모인 아키야마 중좌 등 3명은 이러한 강제노동에서 제외되는 특전을 받고 있었다.

이 3명에게는 금년부터 아침저녁 점호만 정확히 받으면 제주도를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까지도 주어졌다. 그랬기에 이들 3명은 시간만 나면 수용소 밖으로 돌아다녔으며 오늘은 일본군포로들의 피와 땀으로 2년 만에 현대식항구로 변신시킨 제주항방파제에서 1함대가 출항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키야마 중좌가 걱정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제독각하, 한국이 우리 일본을 정벌하러 간다고 하더니 저렇게 전 함대가 출항을 하는 것을 보니 그 말이 정말 사실인가 봅니다.”

사토 해군소장도 잔뜩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출항하는 1함대를 바라보았다.

“지금 본토에는 저 함대를 막을 전함이 없을 텐데 큰일입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1함대를 바라보고 있던 도고 제독이 입을 열었다.

“며칠 전 한국의 1함대사령관과 만찬을 할 때 김성태 제독이 우리 일본제국이 미국에게서 이번에 6척의 대형전함을 원조를 받았다고 하더군. 그것도 상당한 무장을 갖춘 전함으로 말이야.”

무장을 잘 갖춘 전함이란 말을 들었지만 사토 해군소장은 마라도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일본전함이 아무리 무장을 잘 갖추고 있다고 해도 한국해군이 보유한 저 마라도항공모함 한 척이면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마라도는 언제부터 항공모함으로 불리고 있었고 그 출발은 일본군포로들의 입에서부터였다. 도고 제독은 사토 소장의 말을 듣자 속이 답답한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 아무래도 그렇겠지.”

아키야마 중좌가 걱정스럽게 다시 말했다.

“한국해군이 우리 연합함대처럼 6척의 전함들도 항복을 받아내는 작전을 벌여 또 다시 노획하려고 하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사토 해군소장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씁쓸해 했다.

“한국해군은 분명 그러고도 남을 거야.”

“그렇게 되면 또 다시 한국해군 좋은 일만 시키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렇다고 본국이 영토방위에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잖아.”

이 세 사람은 물론 제주도의 일본군포로들 대부분은 열도에 있는 일본인들과 달리 대한제국을 조선이라 비하하지 않고 꼬박꼬박 한국이라고 정확히 지칭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들이 그동안 한국군사력을 눈으로 직접보고 몸으로도 경험했기 때문에 이전같이 대한제국을 감히 조선이라고 비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절망적인 대화를 듣고 있던 도고 제독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비록 패전을 했지만 이번에는 대본영이 정말 잘 싸워주어야 할 텐데 걱정이구나.”

사토 참모장이 그 말을 거들었다.

“맞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우리도 언젠가는 돌아가야겠지.”

도고 제독은 이렇게 맞장구치면서 일본이 있는 방향인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사토 소장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지만 도고 제독은 대한제국이 자신을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함대까지도 구경하도록 제재하지 않는 것은 살아서는 제주도를 빠져나갈 수 없다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사토 소장의 말을 듣자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신이 살던 언덕으로 돌린다는 뜻으로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같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동쪽으로 돌아간 것이다.

아련한 눈빛으로 바다를 바라보던 도고 제독은 진심을 담고 한마디 했다.

“정말 우리 대일본제국이 승리해서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좋겠구나.”

이렇게 말을 하는 도고 헤이하치로는 100척의 일본연합함대를 한 몸에 품고 거친 바다를 호령하던 해군제독이 아니라 피곤하고 지쳐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60살의 작고 초라한 늙은이의 모습만 투영되고 있었다.

제주항을 출항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 1함대 사령관 김성태 제독은 참모장 홍종관에게 확인했다.

“적 함대의 위치가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시모노세키 전방 50km 해상입니다.”

“이놈들이 야하타 제철소를 사수하려고 아주 목숨을 걸고 있구나.”

“그것도 그렇지만 우리의 육상병력상륙도 염두에 둔 방어태세 같습니다.”

김성태가 코웃음 쳤다. 

“그동안 우리가 전력을 숨기려고 조심한 것을 모르고 겨우 눈먼 전함 6척으로 열도를 방어하겠다고 나서다니 정말 가소롭기 그지없군.”

홍종관 상좌가 레이더에 포착된 일본전함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미국에서 제공한 전함이 무장이 잘 갖춰진 전함이라고 하는데 그냥 침몰시키려고 하니까 너무 아쉽습니다.”

“왜? 지난번처럼 나포라도 했으면 좋겠어?”

“당연히 그러면 좋지 않겠습니까? 저 전함 1척을 건조하는데 얼마나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데 그걸 그냥 격침시키려고 하니 아까워서 말입니다.”

“나도 그러면 좋겠지만 국방성에서 격침을 시키라고 하니 어쩔 수 없지 않겠나.”

“이번이 아마도 일본전함을 나포할 거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제독님, 적과 교전을 하려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 국방성에 다시 한 번 더 나포계획을 올려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홍종관의 건의를 받자 김성태 제독도 갈등했다.

그런 김성태를 보며 홍종관이 거듭 건의했다.

“본래 우리 해군의 계획은 적함을 최대한 나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웅비1호가 격추되면서 계획이 수정된 것이라 지금 이 마라도에는 특전사병력이 그대로 승선해 있습니다. 국방성에서 승인만 내려주면 별다른 준비 없이 바로 나포작전을 감행할 수 있으니 귀찮으시더라도 제독님께서 국방성에 다시 한 번 더 건의 드려보십시오.”

하지만 김성태는 이미 국방대신 김종석과 해군대신 송의식에게 몇 차례 건의를 했던 사안이라 선뜻 홍종관의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김성태가 지시를 내렸다.

“자네는 가서 윤석기 장군을 모셔오게.”

홍종관은 김성태의 지시를 받자 바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한성수복당시 특전3대대장이었던 윤석기는 특전사가 군단으로 확대되면서 거듭 승진하여 3여단장이 되었다. 평양에 있던 그의 여단이 적함을 나포하기 위한 공격부대로 선정되자 자신이 직접 2개 대대를 이끌고 제주도로 내려와 있었다. 

하지만 3여단은 처음에 세웠던 작전계획이 웅비호의 산화로 취소되자 제주도에 남아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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