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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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대장의 예견대로 메이지일왕은 당연히 대노했고 곧바로 어전회의가 소집되었다. 일본육군참모본부도 해군군령부와 같이 대본영 옆의 민간건물을 징발해 사용하고 있었기에 일왕이 소집한 어전회의는 바로 열릴 수 있었다.

일본의 어전회의는 경악과 침통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전함에 대해 어전회의참석자들은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며칠의 시간이 흐르면서 절망으로 바뀌었고 절망은 곧 엄청난 성토로 바뀌었고 그 성토의 한복판에 해군을 총괄 지휘하는 이토 해군대장이 있었다.  

6척의 전함이 실종되고 사흘이 지난 날밤이었다.

이토 스케유키 대장은 지난 사흘이 그의 평생 중에 그 어느 때보다 길고 힘든 악몽의 시간이었다.

그동안 이토 대장은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물만 먹고 버텼으나 돌아온 것은 절망뿐이었다.

드르륵

이토 대장은 몇 시간동안 고치고 또 고쳐서 쓴 일왕에게 보내는 글을 마무리하고는 곱게 접어 봉투에 넣었다. 그러고는 책상의 서랍을 열고 그 안에 있는 권총을 꺼내 책상위로 올려놓았다. 

권총을 내려다보던 이토는 만감이 교차되었다.

10년 전 연합함대사령장관으로 참전한 청일전쟁에서 상대도 안 되는 열악한 해군전력으로 아시아 최강이었던 청국의 북양함대를 박살내며 황해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자신이었다. 그 후 승승장구하였으며 러일전쟁 때 동해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까지가 천국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는 모든 것이 최악이었다. 이토 대장은 악몽같이 보내온 시간을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후~ 어쩔 수 없다. 이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때다.’

그렇게 마음을 굳힌 이토 대장은 책상위에 놓인 권총을 집어 들고는 한동안 권총을 바라보다가 마음을 굳히고는 총구를 입으로 가져갔다.

탕!

대본영군령부총장 이토 해군대장의 자살은 대본영지휘관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특히 할복을 절대 하지 말라는 특명까지 내렸던 메이지일왕은 대노하여 자살한 이토 대장을 명령불복종과 항명으로 처벌을 하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이토 히로부미가 군의 사기저하를 우려하며 말리고 원로인 야마가타 아리토모 원수가 육군이 결사항전으로 열도를 지켜내겠다고 나서서 설득한 끝에 메이지일왕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토 해군대장의 자살은 그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두 달 간의 폭격으로 가뜩이나 엉망진창이던 일본의 결전분위기를 최악으로 떨어뜨렸다.

더구나 이토 해군대장의 자살은 6척의 전함이 증발되었다는 소문과 함께 삽시간에 온 열도로 퍼지면서 민심마저 흉흉해질 정도로 일본국민들에게도 충격으로 전해졌다.

이토 히로부미는 야마가타 원수와 사이온지 총리와 긴급회동을 가지며 한숨이 먼저 터져 나왔다.

“후!~ 정말 큰일입니다. 가뜩이나 조선의 계속된 폭격으로 결전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는데 이런 일까지 벌어졌으니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참으로 걱정입니다.”

야마가타 원수도 침중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어차피 본토결전까지 각오하고 있었으니 그에 대비해 철저한 대비를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오.”

“우리 제국에 해군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어떻게 조선을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야마가타 원수도 상황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아직도 조선에 진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바다에서야 조선이 우리 대일본제국을 조금 압박할 수 있었겠지만 육지에서 정면으로 격돌한다면 절대 우리 제국육군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본관은 확신하오이다.”

하지만 사이온지 총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각하의 말씀은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이제는 만일의 경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이라니 그럼 우리 황군이 허약해 빠진 해군같이 조선에 지기라도 한다는 말이오?”

야마가타가 정색을 하자 사이온지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조선의 군세가 수십만 명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황군은 십만의 병력에 그것도 야하타 제철소일대를 방어하기 위해 절반의 병력이 집중되어 있는 마당이라서 열도방어를 걱정을 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야마가타 원수는 강력하게 반박했다.

“이미 전국의 주요 항구에는 기뢰가 부설되어 있어서 조선의 함대가 상륙할 수가 없소이다. 지금 황군의 병력이 조선군에 비해 숫자가 조금 적기는 하나 전국의 경찰병력까지 총 동원되어 있으니 이를 잘 활용하면 본토방어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야마가타 원수의 주장에 이토 히로부미가 제동을 걸었다.

“다른 항구는 각하의 말씀이 맞더라도 가장 중요한 동경만은 미국과의 정기연락선과 수송선 때문에 동경 항의 일부지역만 기뢰가 부설되어 있을 뿐입니다. 본관은 그게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야마가타는 이토의 지적에 입을 다물었다.

일본은 대한제국과의 결전에 대비해 일본의 주요 항구에 기뢰들로 바다를 온통 뒤덮어 놓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동경만만은 일본의 목숨 줄과도 같은 미국을 왕래하는 정기여객선과 역시 미국의 각종화물선의 원만한 항해를 위해 기뢰를 부설해 놓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입을 열지 못하던 야마가타가 설명했다.

“동경만은 어쩔 수 없이 기뢰를 부설하지 못했지만 그 대신 1개 정규사단과 대규모 경찰병력이 지키고 있어 적의 쉽게 상륙하지 못할 것이오.” 

이토 히로부미는 고개를 저었다.

“후!~ 각하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가 되나 문제는 우리 제국이 열도라는데 있습니다. 만일 조선이 대규모 함대를 동원해 바다를 봉쇄한다면 우리 열도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이온지 총리가 바로 거들었다.

“지난 2달간의 폭격으로 우리가 그동안 일궈놓은 공업기반시설들이 거의 무너진 상태라 만일 조선의 함대가 열도를 봉쇄라도 한다면 우리 제국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우리 대일본제국이 이등국인 조선에 항복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이오?”

이토 히로부미가 펄쩍 뛰었다.

“조선에 항복이라니요. 말도 되지 않는 소리입니다. 우리 대일본제국이 어떻게 조선에 항복을 한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후작께서는 어떤 생각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오?”

“이대로 계속 조선이 폭격을 해온다면 우리 제국은 고사하고 말 수도 있습니다. 본관의 생각에는 더 이상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조선과 종전협상이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되어서 드렸던 말씀입니다.”

야마가타가 이토 히로부미의 말을 듣고 총리인 사이온지를 바라보자 그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제야 야마가타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후!~ 본관도 작금의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종전을 거론하는 순간 우리 열도는 침몰하고 만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두 사람은 야마가타가 의외의 말을 하자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야마가타가 처음으로 자신의 속내를 밝혔다.

“본관도 두 분의 생각같이 적당한 피해를 감수하고 종전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선은 절대 우리와 종전을 하지 않을 것이란 결론뿐이오. 그동안 우리 제국이 자신들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공작을 한 것을 알고 있는 조선이 여기까지 와서 종전을 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겠소?”

이토 히로부미도 알고 있었다며 기가 빠진 듯 힘없이 말을 내뱉었다.

“각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협상을 했을 것이면 지난 3월에 했었어야지 지금은 우리제국이나 조선이나 너무 멀리 와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한 종전협상에 대한 생각을 지우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총리에게 질문했다. 

“총리, 벌써 7월에 접어드는데 농사는 어떻게 되고 있소?”

이토 히로부미의 질문에 사이온지 총리가 갑갑한 표정을 지었다.

“도시 노동자들을 농촌으로 보내 일손을 돕는 일이 예상보다 크게 부진합니다. 더구나 금년은 폭격으로 제대로 벼농사를 짓지 못한 곳이 많아서 올 겨울을 어떻게 넘길지가 참으로 걱정입니다.”

“불령(佛領) 코친지나에서의 양곡수입 협상은 여전히 진척이 없소?”

“프랑스가 대한제국의 눈치를 보느라 협상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아마 제대로 된 협상은 전쟁이 끝나야 시작될 것 같습니다.”

야마가타가 손을 불끈 쥐며 이를 악물었다.

“칙쇼. 우리 제국이 조금 어려워졌기로 서니 이제는 프랑스까지 우리를 얕보고 있다니 참으로 치욕스럽구나.”

이토 히로부미의 입에서 탄식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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