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회: 6권-12화 -->
“하!~ 우리 제국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구나.”
야마가타가 마음을 정한 듯 눈에 힘을 주었다.
“두 분도 이제 아시겠지만 우리 대일본제국으로서는 어차피 본토결전이 아니면 다른 방책이나 대안이 없소. 그러니 모두 일심 단결하여 우리 황군의 승리를 기원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각하.”
이토 히로부미는 결국 결전이란 결말에 도달한 회동을 마치고 나오며 가슴이 답답했다. 야마가타 원수의 말대로 기호지세인 일본의 상황을 생각하자 눈앞이 캄캄하고 몸이 흔들려 발걸음을 제대로 딛지 못했다. 결국 마차 문을 잡고 한 동안 서있는 그의 눈에 무너진 히로시마 성이 들어왔다.
‘정말 방법이 없는 것인가. 유신이후 수많은 고비를 넘긴 우리 대일본제국이 겨우 여기서 주저앉아야 하는가. 아!~~ 동양의 여러 나라를 복속시켜 동양제일의 일등국가가 된 뒤 서양제국을 뛰어넘겠다는 나의 꿈도 여기서 접어야하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며 이토 히로부미는 폐허가 된 히로시마 성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런 그의 어깨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일본과 같이 떨어지는 낙조가 힘없이 내려앉았다.
이토 해군대장이 자살한지 며칠이 지나서 동경 만에 드디어 대한제국함대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대한제국은 이 때 5개의 함대가 있었고 그중 가장 강력한 무장을 갖춘 함대가 1함대와 2함대였다.
동경 만에 등장한 함대는 일본의 나포함정을 가장 많이 보유한 제2함대였다.
대한제국함대가 동경만으로 들어서자 동경은 물론 주변 도시가 발칵 뒤집혀졌다. 그러다 그 함대가 대한제국함대란 것을 알게 되자 두 달동안의 폭격에 시달렸던 일본인들은 엄청난 공포심을 나타내며 모든 것을 팽개치고는 너나 할 것 없이 서둘러 도시를 탈출했다.
제2함대사령관 공성기 제독은 아무런 저항 없이 동경만을 통과한 것에 안도하면서 함대가 만에 완전히 들어서자 망원경으로 동경을 둘러보았다.
“허!~ 벌써들 피난들 가느라고 정신들이 없네.”
“우리로서는 되도록 민간인들이 없는 것이 좋지요.”
“그건 그래.”
조기순 참모장과 이런 말을 주고받던 공성기 제독은 동경이 의외로 깨끗한 것을 보고는 놀라워했다.
“동경이 의외로 깨끗하네? 항공촬영에서 본 것과는 달리 여기서 봐서는 파괴된 곳이 별로 보이지가 않잖아.”
조기순 상좌가 부연설명을 했었다.
“왕궁을 비롯한 주요 시설물들이 도심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아마도 해안에서는 폭격된 지역이 잘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공성기는 함대참모장 조기순 상좌의 설명에 그럴 수 있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요코하마방면을 둘러봤다. 요코하마는 방금 전 지나온 군항인 요코스카와는 극명하게 대비될 정도였다.
“이야!~, 요코하마에는 외국인거류지역이 많고 미국과의 정기연락선기항지라서 오폭위험 때문에 폭격을 거의하지 않았다더니 다른 곳에 비해 도시가 정말 깨끗하구나.”
“피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라도 동경근처에 요코하마 한 곳 정도는 도시가 파괴되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는 하지. 잘 못하면 우리가 피난민뒤치다꺼리를 해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공성기 제독은 그렇게 말하면서 망원경을 내리고는 참모장 조기순 상좌에게 지시했다.
“우리는 계획대로 동경부터 함포사격을 시작한다. 지금부터 정확히 30분 후 우리 함대 모든 함정은 일제히 동격에 대한 함포사격을 실시하도록 참모장은 각 함에 지시하게.”
지시를 마친 공성기 대좌는 조기순 상좌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웅비비행선이 보내온 화면으로 동경을 세밀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2함대가 동경만으로 진출한 것과 거의 같은 시각 제1함대는 히로시마만 입구까지 진출해 있었다.
김성태 제독이 송골매가 전송해오는 화면을 보고 히로시마만의 주변상황을 살펴보다 혀를 내둘렀다.
“역시 기뢰를 엄청나게 깔아 놓았구나. 저거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야?”
옆에 있던 홍종만 상좌도 질린 목소리를 냈다.
“정말 많이 깔려있습니다. 이거 나중에 기뢰를 제거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겠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상륙을 저지할 계획으로 저렇게 무모할 정도로 기뢰를 부설했겠지.”
“뒷일도 생각하지도 않고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기뢰를 부설해 놓은 것을 보니 일본이 다급하긴 했나봅니다.”
“히로시마만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도 1전대의 함포사거리가 충분히 포격이 가능하니 기뢰가 아무리 깔려있어도 전혀 걱정할 필요는 없어.”
홍종만 참모장이 웃음을 지었다.
“나중에 우리가 이곳으로 상륙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저자들이 어떤 얼굴을 할지 정말 궁금합니다.”
“하하! 홍 참모장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 전쟁은 이겨야겠네?”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 저 때문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이겨야죠.”
두 사람이 작전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내기 위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통신장교가 2함대가 동경에 대한 함포사격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려왔다. 2함대의 상황을 보고받은 김성태 제독이 바로 지시를 내렸다.
“자!, 그렇다면 우리 1함대도 함포사격을 시작하도록 홍 참모장은 1전대와 2전대에 지시하게.”
“예, 제독님.”
마라도는 이때 함정의 대외적인 노출을 우려해 다른 함정과 같이 세토내해(瀨戶內海)로 들어가 있지 않고 시코쿠의 먼 바다에 머물면서 함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세토내해는 일본의 혼슈와 시코쿠 그리고 규슈사이에 3천개의 섬이 있는 좁고 긴 해협을 말한다. 1함대는 작전을 위해 함대를 1·2전대로 나누어 각각 다른 목표를 설정해 두고 있었다.
충무공이순신 함과 동급으로 2020년 취역한 을파소 함의 함장 민태수 상좌는 김성태 제독의 지시를 받고는 서둘러 각 함에 함포사격준비를 지시했다.
1함대에는 을파소 함과 자매함이 있었으니 그 함정이 바로 명림답부 함이었다. 이 두 자매함 중 1함대의 1전대를 이끌고 있는 것이 을파소 함의 민태수 상좌였다.
명림답부 함의 함장 박주천 상좌는 을파소 함의 함장 민태수 상좌와는 해사동기였다.
“민 함장, 1전대사령관이 된 기념으로 초탄은 우리에게 양보하게.”
박주천의 부탁에 민태수는 흔쾌히 들어주었다.
“좋아. 초탄은 명림답부에게 양보하겠어.”
“고맙다.”
민태수가 초탄을 박주천에게 양보한 것은 동기였음에도 진급이 항상 빨랐던 미안함이 작용했다.
대한제국함대가 히로시마만 입구까지 접근한 것을 알게 된 히로시마는 난리가 났다. 메이지일왕을 시종하는 시종장관이 황급히 어전으로 들어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폐하, 조선함대가 세토내해까지 접근해 왔다고 합니다.”
시종장관이 전하는 소리에 메이지일왕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벌써 조선의 함대가 히로시마 코앞에까지 접근해 왔다고?”
“그렇사옵니다.”
“수많은 관측소가 뭐하고 있었기에 조선함대의 내해 접근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말인가?”
일본은 일왕이 있는 히로시마를 보호하기 위해 인근 육지 곳곳에 관측망루를 설치해 놓고 있었다.
“아직 소장은 거기까지는 모르옵니다.”
시종장관으로부터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해 화가 난 메이지일왕은 숨도 쉬지 않고 바로 명령을 했다.
“시종장관은 빨리 가서 야마가타 원수와 군령부총장 직무대행인 이케다 소장을 부르라.”
“그보다 먼저 위험하오니 빨리 대피소로 피신하셔야 하옵니다.”
“걱정마라 히로시마만 입구에 기뢰가 부설되어 있어서 히로시마만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니 어서 가서 두 사람을 불러오라.”
시종장관은 더욱 일왕을 계속 설득했다.
“폐하의 옥체는 곧 우리 제국이옵니다. 대피소로 피신하셔서 두 사람을 접견하셔도 늦지 않사옵니다. 그러니 일단 옥체를 피하시옵소서.”
시종장관이 계속 설득을 하자 피하지 않겠다고 버티던 일왕은 어쩔 수없이 옥좌에서 일어나 임시왕궁을 나섰다. 일왕이 왕궁을 나서 막 대피소로 들어가려고 할 때 야마가타를 비롯한 일본군의 지휘부가 황급히 달려와 허리를 숙였다.
“폐하.”
메이지 일왕은 육군과 해군의 지휘관들을 강하게 질책했다.
“시코쿠와 규슈의 관측소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조선의 함대가 세토내해까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오?”
이토 대장의 자살로 공석이 된 군령부총장의 직무대리를 맡고 있던 이케다 소장이 허리를 숙였다.
“조선함대가 우리가 설치해 놓은 관측소에 들키지 않도록 철저한 등화관제를 실시한 뒤 접근을 해온 듯하옵니다.”
그러자 야마가타 원수가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