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회: 6권-14화 -->
“그렇기는 하지만·······.”
그러면서 박충식이 차준혁에게 질문했다.
“북경에서 미국이 우리 제국을 노골적으로 적대시 한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어떤가?”
“우리 대한제국이 몇 개월간 열도를 폭격하고 또 6척의 전함까지 삽시간에 나포한 것을 보고는 이전과 달리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강명철은 미국이 거론되자 또 쌍심지를 켰다.
“우리의 군세가 예상외로 대단하니 꼬리를 바짝 내리고 있는가 보군. 미 제국주의 놈들이 하는 짓이 다 그렇지. 아마도 불리하다고 판단이 되면 신의도 의리도 없는 놈들답게 일본도 헌신짝 버리듯 할 거야.”
“하지만 미국이 지금같이 바짝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직 미·일 양국을 동시에 상대하기 어려운 우리 국익에는 도움이 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차 공사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6척이나 10척이나 상대하는 것은 똑 같을 뿐이네. 만일 미국이 도발하면 이제는 나포고 뭐고 모조리 수장시켜버리면 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미국이 만일 도발하면 10척의 전함만으로 전쟁을 벌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더구나 필리핀에는 십만 이상의 미군이 주둔해 있습니다.”
강명철이 다시 반대의견을 말하려고 하자 박충식이 웃으며 진정시켰다.
“허허! 그만하게. 육군상은 미국만 나오면 너무 흥분해.”
성격이 급하기는 하지만 강명철도 이제는 주변을 충분히 둘러볼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서 있었다.
강명철이 바로 박충식에게 바로 고개를 숙였다.
“제가 급한 성격을 제대로 참지 못하고 번번이 전하께 결례를 범합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강명철이 사과를 하자 박충식이 크게 웃었다.
“하하! 사람도 참. 그렇다고 사과까지 할 필요는 없네. 육군상이 화를 내는 이유를 여기 있는 모두가 다 공감하고 있어.”
“흥분을 안 하려고 하다가도 미국이 하는 짓을 보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남의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려는 일본에게 밀약까지 맺으면서 온갖 지원을 다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그게 힘없는 나라의 설움 아니겠나. 애초부터 우리 대한제국이 힘이 있었다면 미국은 절대 지금과 같이 나오지는 않았을 거네.”
“하긴 일본의 농간에 놀아났던 못난 조상 탓을 해야지. 미국을 탓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강명철이 씁쓸한 표정을 짓자 차준혁이 나서서 위로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이제 우리 대한제국은 이전과 달리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가 되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국익을 위해서는 미국과 언젠가는 정면으로 일전을 결해야 할 때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강명철이 바로 공감했다.
“그래, 차 공사 말대로 언젠가는 미국과 결전을 벌여야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일본과의 전쟁이 급선무이고 말이야.”
“맞습니다. 미국문제는 당분간 중정에 맡겨 놓는 것이 최선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박충식이 오창권에게 질문을 했다.
“필리핀공작은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가?”
“우리 원의 요원이 아귀날도를 만났는데 몇 년 전에 있었던 독립전쟁 때 미국이 너무 잔혹하게 진압을 하는 바람에 다시 독립전쟁에 뛰어드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는 보고를 해왔습니다.”
송의식이 나서서 보충설명을 했다.
“아마도 우리 대한제국의 힘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럼 필리핀의 다른 독립운동세력과 접촉을 시도해 본 적은 없는가?”
“그렇지 않아도 아귀날도가 끝까지 나서지 않을 것을 예상해 다른 독립무장단체를 접촉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미국이 이번 일본과의 전쟁에서 개입하지 못하도록 필리핀에서의 공작이 선행되었으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 아쉽군.”
송의식 참모본부장이 냉정하게 분석했다.
“무기를 지원해 준다고 해도 나서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은 우리 대한제국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긴 우리의 지원을 믿고 대대적으로 봉기했다가 우리가 지원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 안할 수가 없겠지.”
“그렇습니다. 지난번의 독립전쟁 때 미국의 잔인한 진압으로 백만 명이상이나 희생되었는데 또다시 그런 참혹한 일을 되풀이 당하게 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강명철이 두 손을 불끈 쥐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우리 대한제국의 힘을 필리핀이 몰라서 일어난 일입니다. 만일 일본이 지원을 해준다고 했다면 우리와 달리 분명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을 것입니다.”
강명철의 말에 모든 사람이 공감했고 박충식은 결심을 굳혔다.
“결국 상륙작전을 감행해서라도 이번에 일본에게 확실한 항복을 받아내야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상륙에 필요한 모든 준비는 되어 있으니 전하의 결심만이 남아 있습니다.”
“알겠네. 저들이 끝까지 버티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상륙작전을 감행하세.”
박충식이 결심을 굳히자 이후의 일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대한제국이 수복할 당시 연해주에는 러시아인은 20여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국인이주민이 10만 명이 훨씬 넘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이주민들 덕분에 본래역사에서는 을사늑약이후 독립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계속 늘어나는 한국인이주민들 때문에 위협을 느낀 스탈린에 의해 한겨울에 두 주먹만 들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하는 참변을 겪게도 된다. 연해주수복을 한 대한제국은 10만이 넘는 이주민들 덕분에 연해주를 아주 쉽게 평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여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문제였다.
대한제국은 이들 러시아인들에게 귀화 후 정착과 그렇지 않으면 러시아로의 국외이주 할 것을 통보했다. 수십 년간 터를 잡고 살아온 러시아인들은 당연히 반발했고 이때 대활약을 한 사람이 바로 최재형(崔在亨 1858)이었다.
최재형은 연해주 최고의 한국인 상인이었다.
어려서 연해주로 들어갔던 최재형은 갖은 고생을 하며 기반을 잡았으며 러시아군에게 군납업을 하면서 거부가 되었다. 러시아어에도 아주 능통했던 최재형은 도헌(都憲 군수)에까지 선출될 정도로 연해주에서는 명망가이자 대부호였다.
본래역사에서는 을사늑약이후에 전 재산을 내놓고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안중근의사에게도 군자금을 대줄 정도로 연해주지역 독립운동의 대부역할을 했다.
이런 최재형이 연해주수복 후 그동안 자신이 쌓아놓은 신망과 능통한 러시아어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러시아인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나섰다.
다행이었던 것은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해삼위 등의 도시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최재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설득은 상당히 주효하여 러시아인 절반 정도가 대한제국으로의 귀화를 선택했다. 하지만 대한제국의 국력에 대한 불신과 조국인 러시아가 다시 연해주를 재탈환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도 절반이나 되었으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연해주의 지도층세력이었다.
이때부터 최재형의 대활약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연해주에 정착한지 수십 년이 되었고 그 자신이 지도층 인사였던 최재형은 이들의 재산에 대해 거의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이들이 귀화를 거부하는 순간 이들의 재산은 최소한의 호구지책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몰수해 버렸다.
국외이주를 택하게 되면 재산이 몰수된다는 것을 몰랐던 러시아인들은 뒤늦게 귀화를 하겠다고 난리를 피웠지만 한 번 마감된 귀화신청은 두 번 다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절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들이 국외이주를 위해 북쪽으로 올라가 흑룡강에 도착했으나 러시아정부의 거부로 강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피의 일요일에서 발발된 러시아의 정정불안은 만주에서 일본군에게 패하면서 다시 격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때 전쟁에서의 패배로 터전을 잃은 십만여 명의 연해주주민들이 입국을 하게 되면 자칫 불만세력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이유를 들면서 입국을 전면 거부했던 것이다.
대한제국에서는 청국공사 차준혁을 전면에 내세워 이들의 입국을 계속 추진했으나 러시아제국은 끝내 이들을 외면하고 만다.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생각에 절규하며 차르인 니콜라이 2세에게 수없이 많은 저주를 퍼부었지만 어쩔 수 없이 흑룡강 변에서 너무도 길고 고통스런 겨울을 보내야만했다.
일본에 대한 폭격이 시작될 때부터 해삼위에는 5군단의 1개 여단과 친위군단의 1개 여단이 일본 상륙을 위해 합동훈련을 하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해삼위의 9월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하지만 상륙작전을 위해 2개 여단병력이 수송선에 승선을 하고 있는 해삼위 항구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