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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은 이때 연해주 안정에 혁혁한 공을 인정받아 대한제국 9번째 도가 된 연해도의 도지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외무대신 이범진의 동생이며 간도관리사였던 이범윤(李範允 1856)은 이때 해삼위시의 시장에 임명되어 있었다.
최재형이 이범윤에게 승선을 하고 있는 장병들을 보며 감회어린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이 시장님, 드디어 상륙부대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출정을 합니다. 이번 출정에 반드시 일본을 정벌해서 그동안 애국지사들이 흘린 수많은 피의 대가를 꼭 받아 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범윤의 목소리도 감회어리긴 마찬가지였다.
“걱정 마십시오. 그동안 우리 대한제국군이 올린 혁혁한 전공과 무력을 생각하면 이번 출정도 반드시 승리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야지요. 그래야 우리민족이 그동안 당했던 피맺힌 한을 풀 수 있지 않겠습니까?”
“꼭 그렇게 되고 말 것입니다.”
두 사람이 이렇게 기원을 하고 있을 때 몇 명의 대한제국군 장교들이 최재형에게 다가왔고 최재형은 그들을 보고 반갑게 먼저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군단장님.”
다가온 사람은 5군단 양성환 군단장과 5군단 51여단장인 신군출신 남경진 대좌와 친위군단 기계화여단장 송요섭 대좌 그리고 군단참모들이었다.
양성환 장군도 반갑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고 이어서 다른 사람들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도정이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도지사님께서 직접 우리 군을 지원해주시느라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최재형이 아니라며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고생이라니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저희 같은 관리들이야 당연히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국군이 일본원정에 나섰다는 말을 듣고 새벽부터 자원해서 봉사를 나오신 주민들이 훨씬 고생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연해주가 독립운동의 온상지답게 연해도 주민들의 민족의식은 다른 어느 곳보다 투철했다. 그런 주민들이 일본정벌을 위해 출병을 한다는 소식을 듣자 수천 명의 주민들이 몇날며칠동안 군수물자를 이고지고 하면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양성환도 자원봉사중인 주민들에게 고마워했다.
“본관도 이렇게 주민들이 많이 나와서 도와주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 연해주에 이주해 있던 주민대부분은 탐관오리들의 학정과 일본 놈들의 압제를 피해 이주했던 사람들이라 민족의식만큼은 다른 어느 곳보다 투철해서 그럴 것입니다.”
양성환 군단장도 이전에 주변의 지인들 중 몇 사람이 연해주로 이주한 적이 있었기에 이런 상황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저런 분들만 있으면 대한제국의 앞날은 그야말로 창창 대로일 것입니다. 그런데 도지사님께서 그동안 하시던 군납업을 접으셔서 어떡하십니까? 저희 군에서는 도지사님께서 그대로 하시는 것이 좋은데 말입니다.”
최재형이 펄쩍 뛰었다.
“무슨 말씀을 다하십니다. 대한제국국법에 공직자의 겸직금지조항이 있는데 사업을 겸직을 하다니요. 천부당만부당입니다.”
친위군단 기계화여단장 송요섭 대좌는 역시 애국지사들은 남들보다 달라도 뭐가 다르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질문했다.
“그나저나 본국으로의 입국이 거부된 러시아인들의 사할린 이주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송요섭 대좌의 질문에 러시아인 이주를 담당하고 있는 이범윤이 대답했다.
“겨울동안 흑룡강 변에 머물던 러시아인들이 4월부터 사할린으로 이주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경험이 없어 조금 힘이 들었었습니다만 제주에서 올라온 러시아군 포로들이 이들을 잘 이끌어 주고 있고 5군단에서도 적극 도와주셔서 이제 이주를 대부분 끝마치고 지금은 사할린에서 정착촌을 건설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해 입국을 거부당하는 바람에 혹독한 북방의 겨울을 제대로 된 집도 없이 보내기가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인명피해는 많이 없었습니까?”
그때 참모 중 한 명이 나서서 설명했다.
“우리 군 장병들이 자원해서 그들과 함께 나무로 집을 짓고 우리들이 보유한 군수물자로 군막을 치고 해서 큰 피해 없이 겨울을 넘길 수가 있었습니다.”
“저들은 버리고 우리는 돕고 그랬었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버린 러시아에 대해 적대감이 아주 대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범윤이 보충설명을 했다.
“그 덕분에 사할린 이주에 아주 협조적으로 나오고 있고 정착촌 건설도 대단히 열정적이라고 들었습니다.”
최재형이 만감이 교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전에 우리도 조국을 등지고 이곳에 정착하면서 수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지금이야 위치가 바뀌어서 서로 총칼을 맞대고 있지만 러시아의 일반주민들은 우리 이주민들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오히려 아주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두만강을 넘어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정부에서 사할린에 정착한 러시아인들에게 앞으로 상당한 배려를 해줄 계획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도와주셔야합니다. 비록 국가 간의 전쟁을 했고 또 언젠가는 러시아제국과 다시 일전을 겨뤄야 하겠지만 저들은 이미 자신들의 조국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전에 도망치듯 연해주로 넘어와야만 했던 우리들처럼 말입니다.”
이범윤도 최재형의 이 말에는 만감이 교차한 얼굴이었다. 그 자신도 간도에서 쫓기듯 연해주로 넘어 왔었기에 최재형의 말에 울컥해 있었다.
양성환이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 두 분들은 물론 연해도 주민들께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만은 꼭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라가 힘이 없어 국민들이 나라를 등져야 하는 그런 불행한 일은 두 번 다시 만들지 않겠다고 군인의 한사람으로서 맹세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자세를 바로하고는 두 사람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흑흑흑~~~~”
최재형이 윤성환이 정식으로 다짐하는 말에 그만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눈물을 쏟았고 옆에 있던 이범윤도 두 눈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제 생에 이런 날이 있을 줄 정말 몰랐습니다. 지금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우리 대한제국이 힘이 있다는 것이 국민에 한 사람으로서 정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최재형이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멈추지 못하자 이범윤도 더 이상 참지 못하자 서로를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두 사람이 대성통곡을 하자 윤성환과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날 최재형과 이범윤이 흘린 눈물은 이후 상륙부대 전체에 알려지게 되면서 장병들의 의기를 더욱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모든 장병들이 수송선에 승선을 마친 날 밤이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 출항을 앞두고 5군단 511대대장 이동휘 상좌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수송선 갑판에 앉아 있었다.
“대대장님, 여기 계셨습니까?”
이동휘가 돌아보자 본부중대장 전영진 대위였다.
“아! 전 대위.”
“늦은 시각인데 주무시지 않고요.”
“잠이 잘 오지 않아서 나와 있었네.”
전영진이 이동휘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무슨 걱정이 있으십니까?”
“그게 아니고 아까 낮에 도지사와 시장께서 대성통곡하신 것을 생각하고 있었어.”
“아!~”
전영진도 낮에 있었던 두 사람의 통곡을 먼발치에서 지켜봤었기에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이동휘의 입에서 긴 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후~~~”
“왜 그러십니까?”
“나는 그동안 너무 나 자신만 보고 살았었나보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최재형 도지사 같은 분은 개인적으로 수많은 고초를 겪고 난관을 헤치면서 자수성가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 않으셨는가. 더구나 이범윤시장 같은 분은 간도를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다 여의치 않자 관직을 버리고 연해주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일본을 몰아내려고 노력하셨네. 그런데 나는 군문에서 나라의 녹까지 받아먹으면서 너무도 안일하게 세상을 대처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어떻게 보면 우리 같은 군인이야말로 나라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고 있었는데 말이네.”
“그동안 일본이 철저하게 군에 대한 감시와 회유를 시도하고 있어서 집단행동이 불가능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군인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군인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면 나 개인이라도 일찍 군문을 박차고 의병에 가담이라도 했어야 했었어.”
이동휘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깊게 자책하는 눈치였다. 잠시 동안 이동휘의 상태를 지켜본 전영진이 다시 나섰다.
“대대장님 말씀대로 혹 마음속에 빚이 조금이라도 있으시다면 이번 일본원정에서 모두 풀어버리십시오.”
전영진의 말에 이동휘가 고개를 끄덕였다.